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39)
48. 흩어진 중앙군을 규합하라 (2)
연구소라는 말에 장교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곧장 아이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언뜻 듣기에도 중요해 보이는 ‘연구소’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죽음의 부대와 숱한 전투를 치렀기 때문인지 여유롭게 전장을 정리하는 부대를 지켜보던 아이언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장교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남쪽으로 40km 부근에 중앙군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이 연구소가 있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연구소?”
아이언이 장교를 보면서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 그렇습니다.”
“정말 연구소라고 말했다고?”
“예!”
장교가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하자 아이언은 직접 중대장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자인가?”
“그렇습니다.”
장교가 맞다는 듯 대답하자, 아이언이 재빨리 그에게 다가갔다.
“추…… 충성!”
“지원을 원했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다!”
“자세히 얘기해 보게.”
아이언의 말에 중대장이 주변 상황을 바라보았다.
아직 전투가 채 끝나지 않은 상황.
하지만 아이언은 주변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중대장에게 다가갔다.
“연구소라고 들었네만…… 내가 알기로 이 근방에 연구소는 없거든. 마을 하나가 있던가?”
아이언의 말처럼 공식적인 지도상에는 연구소가 없었다.
기껏해야 마을 하나 정도?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만든 작은 요새가 있을 뿐이다.
그것도 비공선이나 비룡들이 잠깐 쉬다 갈 수 있는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었다.
“비…… 비밀 연구소입니다.”
“흠……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나?”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그 안에 제국에 중요한 연구 기관이 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수해야 한다고…….”
“그런데 자네는 왜 여기 있지?”
중대장의 말에 아이언이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할 곳에 있지 않고 도망친 중대장.
이건 군법회의에 넘기지 않고 곧바로 사형에 처해도 될 사안이었다.
그것을 중대장도 익히 알고 있는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하들을 개죽음으로 몰고 갈 순 없었습니다. 제 목숨은 거둬 가도 좋습니다. 하지만 부하들만큼은…… 살려 주십쇼. 제발…… 부탁드립니다.”
중대장이 울먹이면서 말하자 아이언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더 말해 보게. 들어는 주겠네.”
아이언의 말에 중대장이 무릎을 꿇고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죽음의 부대와의 전투는 이어지고 있었지만 어느새 모여든 기사들에 의해 적은 두 사람 곁에는 얼씬도 못 한 채 죽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중대장은 어떤 상황이 일어났고, 어째서 여기까지 도망쳐 왔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의 부대의 역할은 거점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사람들이 와서 지하에서 뭔가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물자를 옮기는 동안 그곳을 지키라는 명령과 함께 거점을 지키는 중앙군을 외부로 밀어냈다.
죽음의 부대가 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돕기는커녕 물자를 옮기는 데만 주력하면서 중앙군을 희생시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모든 게 제국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국을 위한다라…….”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부하들을 희생시킬 순 없었습니다. 이미 거점을 지키던 중앙군의 지휘관들은 그들을 따라가 버렸고, 남은 자들 중에 엘리트 계열은 지하 연구소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자네들은?”
아이언의 물음에 중대장이 고개를 숙였다.
“연구소 안에 수용할 수 있는 숫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병력을 버렸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중대장의 말에 아이언이 한숨을 쉬었다.
황족들도 쓰레기지만 중앙 지역 역시 썩을 대로 썩은 곳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인맥을 통해 줄을 세우고, 라인을 타지 못하면 도태되는 쓰레기 같은 곳.
그곳이 중앙이었다.
“후…… 그럼 자네를 따라온 자들은 남은 자들인가?”
“……예.”
아이언의 물음에 울먹이면서 대답한 중대장.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을 굳이 도울 필요가 있을까?”
아이언의 물음에 근처에서 듣고 있단 다른 이들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하들을 버린 자들.
그런 자들을 위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구원하러 갈 필요가 있을까?
그 의문에 중대장이 작게 대답했다.
“그들과 상관없는 부하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구하고 싶은 건가?”
“……그렇습니다.”
중대장의 말에 아이언이 입을 다물고 고민에 잠겼다.
그런 그의 모습에 중대장이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저도…… 중앙군도 깨끗하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북동부나 다른 지역군에 비해 썩을 대로 썩었으니 저희를 안 좋게 바라보시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중대장이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하지만! 정말 순수하게 중앙군에 배치된 병사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죄가 없습니다. 장교들은 버리셔도 상관없으니 병사들만이라도 구해 주십쇼.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숙이면서 부탁하는 중대장의 모습에 진정성을 느낀 아이언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후…… 알겠네.”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전장은 정리되었고 모든 병력이 아이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언이 명령을 내렸다.
“근처에 아군이 있다고 한다. 힘든 건 알지만 곧바로 출정 준비를 하지.”
“알겠습니다!”
모든 병력이 일제히 대답하며 부상 입은 중앙군을 비공선으로 데려가고, 자신들 역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신속한 기동을 위해 창설된 부대답게 순식간에 하늘로 떠오른 비공선들과 비룡 부대들.
순식간에 하늘을 가르면서 목적지에 도착하자 비공선의 포격이 떨어져 내렸다.
마을을 불태우고 연구소의 입구를 뚫어 내며 살육을 저지르던 죽음의 부대를 향해 아이언의 부대의 강력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포탄마저 신성력이 깃들었기에 맞는 순간 괴성을 토해 내며 죽어 나가는 죽음의 존재들.
“지…… 지원군이다!”
“지원군! 지원군이 왔어!”
“살았다!”
치열한 혈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비공선의 등장에 모두가 환호했다.
신성력이 깃든 포탄에 죽음의 부대는 저항조차 못 하고 육체가 뜯겨 나가며 마도포의 빛에 소멸되었다.
그렇게 죽음의 부대의 전열이 붕괴되자 강습부대가 낙하하면서 후방을 유린했다.
그러는 동안 비룡 부대의 도움을 받아 기사들이 연구소에 진입하면서 죽음의 존재들을 삽시간에 쓸어버렸다.
수도 없이 전투를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 전술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안에서 치열하게 저항하던 병사들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연구소 안에 있는 놈들이라도 죽여라! 한 놈이라도 더 죽음의 곁으로 보내 주자!
자신들이 전멸당할 것을 알았는지 죽음의 부대 지휘관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의 곁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뱀파이어 특유의 핏빛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죽음의 기운에 가려져 있던 혈기가 사방으로 퍼져 독특한 운무를 만들어 내면서 연구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나…… 나를 지켜라!”
“앞을 막아!”
“뭣들 하는 거냐!”
연구소 안의 장교들은 살기 위해 병사들을 앞세우고 죽음의 존재가 병사를 공격하는 순간 빈틈을 노려 그를 베어 냈다.
“마…… 막아! 앞을 막으란 말이야!”
악을 쓰면서 병사들을 앞으로 내미는 장교들.
본인들의 힘이 더 강하면서도 앞으로 나서기보다 병사들을 방패막이로 쓰는 그들의 모습에 뱀파이어로 변한 이들은 환멸을 느꼈다.
인간이었던 시절, 권력자에게 빌붙어 살던 기생충을 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약자를 괴롭히면서도 강자에게는 설설 기면서 뇌물을 바치기 바빴던 이들.
그들의 모습이 눈앞의 장교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쓰레기 같은 것들. 저들부터 죽여라.
죽음의 부대 지휘관이 싸늘한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자 뱀파이어들은 앞을 막아서던 병사들보다 장교들을 먼저 노리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 저리 꺼져!”
검붉은 안개와 함께 돌진해 오는 뱀파이어들을 보면서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장교들.
하지만 죽음을 각오한 그들은 성수가 묻은 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코 그들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콱!
“끄아아악!”
“사…… 살려 줘!”
장교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절규했지만 누구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둘 장교들이 죽어 나가고, 마지막까지 절규하면서 손을 내뻗던 한 장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자신들이 앞으로 내민 병사들을 보호하며 서 있는 기사들.
그리고 그 맨 앞에서 죽음의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을 막고 있는 한 인물.
어깨에 별 하나를 달고 있는 젊은 지휘관.
북부를 구한 영웅이 싸늘한 표정으로 죽어 가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 어째서…….”
어째서 자신을 구해 주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의 그런 의문은 곧 죽음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대신 살아남은 죽음의 존재들이 아이언의 이런 결정에 의문을 표했다.
-어째서 저들을 구하지 않았지? 북부의 성자라면…… 구할 능력쯤은 되었을 텐데.
“별로 구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저런 쓰레기들까지 구하기엔 내 능력이 너무 아까워서 말이야.”
아이언이 별거 아니라는 듯 답하자 죽음의 부대 지휘관은 피식 웃었다.
-죽음의 사도께서 말씀하신대로군.
피식 웃으면서 하는 그의 말에 아이언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에 대해 관심이 많나 봐?”
-우리의 대계를 방해한 위험인물이니 자세히 알 수밖에 없지. 그대가 황실을 싫어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흠…… 넌 좀 아는 게 있겠는걸.”
-날 잡고 싶은가 보군. 서부의 일족들처럼 나도 잡을 셈인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그를 보면서 아이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이번엔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몸 안에 있는 힘을 폭주시키려는 지휘관.
“어딜!”
아이언이 이미 많이 겪어 본 것이기에 자폭하려는 녀석의 몸을 붙잡고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가라앉기는커녕 신성력에 반발을 일으키면서 지휘관의 몸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런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이런…….”
자폭하기보다 스스로의 몸을 붕괴시키는 선택을 한 녀석을 보면서 아이언은 표정을 굳혔다.
압도적인 신성력으로 찍어 누르려 했지만 의외로 담고 있는 힘이 상당해 시간이 늦어졌고, 결국 녀석의 모든 코어가 부서져 버렸다.
온몸이 가루가 되어 천천히 사라져 가는 죽음의 부대 지휘관.
다른 뱀파이어들 역시 자폭하는 척하면서 스스로의 소멸을 택한 것을 보자 아이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런 아이언을 바라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은 지휘관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사도여,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 하지.
“충고?”
-지금이라도 돌아가 북부를 지키는 데 사력을 다해라. 그리하면 적어도 북부만은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
그의 말에 아이언이 인상을 찌푸렸다.
-후후…… 정 구하고 싶으면 다른 곳을 찾는 게 좋을 것이다. 중앙은 이미…… 늦었……으……니.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지휘관.
뭔가 찝찝한 말만 남기고 사라지는 통에 아이언의 표정이 풀어지지 않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모든 죽음의 부대가 사라지자 아이언은 살아남은 장교들을 바라보았다.
“연구소에 대해 아는 놈 있나?”
아이언의 물음에 모두들 서로의 눈치만 바라보았다.
대부분 아는 것이 없어 보였는데 그중 한 장교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아이언의 눈치를 보는 것이 보였다.
다른 장교들 역시 그 장교만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그러자 아이언이 그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아끌어 올렸다.
“이런 곳이 또 있나?”
“그…… 그건…….”
“말해! 죽음의 부대가 노리는 연구소가 또 어딨는지.”
아이언이 살벌한 안광으로 바라보면서 말하자 그가 식은땀을 흘렸다.
“말 안 하면 죽는다.”
아이언은 경고와 함께 검을 뽑아 들고 그의 목에 가져다 댔다.
“죽을 건지 말할 건지 택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