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38)
48. 흩어진 중앙군을 규합하라 (1)
서부 사령관인 게르만의 조언에 따라 아이언은 중앙으로 향하기로 정했다.
하지만 이왕 서부에 도움을 주러 온 김에 제대로 돕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역을 펼치는 것.
“와…… 미쳤군.”
한 병사가 성역이 펼쳐지자 영 힘을 쓰지 못하는 죽음의 부대를 바라보았다.
재앙과도 같았던 죽음의 부대가 저런 오합지졸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편하네.”
“그러게.”
한결 편해진 전투.
고작 성역 하나 펼쳐진 것뿐인데 서부군의 전투 양상은 안정적으로 변해 갔고, 병사들의 얼굴엔 평온함이 감돌았다.
성역이라 함은 부정한 것을 소멸시키고, 아군에게는 활력과 치유, 그리고 사기를 올려 주는 힘을 가지는 곳.
거기다 뱁새의 힘이 더해지니 지쳐 가던 서부군에 활력이 샘솟기 시작해 서부군 입장에선 편안하다고 느낄 만도 했다.
아이언의 성역 안에서 싸우는 서부군은 저마다 감탄과 평온이 공존하는 얼굴로 전투에 임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 때, 어느 정도 정비를 마친 특수기동단이 본격적으로 합류를 시작했다.
“이쪽은 우리가 맡을 테니 조인족에 집중하십쇼.”
특수기동단의 기사단장 아리엘이 죽음의 부대를 썰어 대면서 서부군이 조인족에게 집중할 수 있게끔 했다.
그건 카드로를 비롯한 다른 특수기동단의 지휘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죽음의 부대가 수없이 몰려왔지만 실시간으로 죽어 나가면서 섬멸되자, 마음껏 인간들을 유린하면서 돌격했던 그들의 진격이 처음으로 완전히 멈췄다.
“조인족이 요새로 진입한다! 요격 준비!”
“함대를 뚫고 온다! 개별 사격으로 떨어뜨려!”
서부군이 조인족의 침공에 재빨리 대응했다.
그동안 숱하게 싸워 본 덕인지 그런 서부군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아이언의 특수기동단이 죽음의 부대를 맡아 주면서 조인족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 서부군은, 한결 편하게 적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조인족으로 인한 피해가 적었다.
게다가 아이언의 신수들이 함께하니 오히려 반격까지 했다.
하늘을 나는 두 개의 달과 피닉스의 활약으로 서부군의 비공함대와 비룡 부대에도 여유를 찾은 것이다.
그렇게 실로 오랜만에 여유를 찾은 서부군의 사기는 점차 오르기 시작했다.
성역과 신수.
소문으로만 듣던 아이언의 힘을 경험한 서부군은 아이언이 이곳에서 하루라도 더 머물기를 희망했다.
그렇다 보니 바로 중앙으로 보내려던 서부 사령관도 은근히 눈치를 보면서 아이언에게서 떠난다는 말이 나오기 전까진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아이언도 그걸 알기에 굳이 말하지 않고 서부군이 충분히 체력을 끌어 올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서부 7군단 복귀 완료했습니다.”
“서남부 10개 부대 사령부로 복귀를 시작했습니다.”
“2개 사단이 전선 복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사령부가 안전해지기 시작하자 서부군은 서서히 전선을 견고히 하면서 흩어진 부대들을 하나둘 끌어모았다.
고작 며칠 사이에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서부군이기에 북부와 남부를 연결하면서 물자를 한데 모아 새로이 전선을 구축해 나갔다.
고작 일주일.
아이언이 서부 사령부에 머문 시간이었다.
하지만 서부군에게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휴식 시간이었다.
망가진 통신망을 복구하고, 전선을 견고히 하고 흩어진 부대를 끌어모았다.
서부 사령관 입장에선 엄청난 도움을 받은 것이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도움을 받는군.”
“그렇습니까?”
게르만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이언은 빙그레 웃었다.
첫날 서부군에서 여단급 병력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는 말을 했던 게르만이었건만, 일주일 동안 특수기동단에게 큰 도움을 받아 버렸으니 머쓱할 수밖에 없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허허, 큰일이네. 자꾸만 욕심나는군. 괜히 가라 했나?”
게르만이 너스레를 떨면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여단급 전력.
하지만 누가 이끄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 주는 듯, 아이언의 병력의 활약은 대단했다.
죽음의 부대 한정이라지만 극상성의 힘을 적절히 이용해 학살하듯 죽음의 부대를 섬멸해 나가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감탄밖에 안 나왔다.
“될 수 있는 한 서부로 올 수 없도록 막아 보겠습니다.”
“무리하지는 말게. 괜히 자네한테 헛바람 넣었다고 크림슨 사령관께 혼나네.”
“하하…….”
게르만의 장난스러운 말에 아이언은 어색하게 웃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고마웠네.”
“무운을 빌겠습니다.”
“자네의 앞길에 무신이 함께하길…….”
게르만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 아이언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아이언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비공선이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부군과 작별 인사를 하면서 두 개의 달을 타고 비공선으로 들어가자 자신의 부대원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경례를 하면서 그를 환영했다.
“지금부터 중앙군을 구출하러 간다.”
아이언의 명령에 모든 장교들이 눈을 빛냈다.
“각오 단단히 하도록. 이제부턴 진짜 위험한 실전이 반복될 테니까. 알겠나?”
“예!”
“좋아, 출발하지.”
명령이 떨어지자 곧장 비공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부에서 서부로 오면서 소모된 모든 물자를 꽉꽉 채운 비공선들은 천천히 중앙 쪽으로 전진했다.
서부 사령부에서 벗어난 지 하루.
고작 하루 만에 영주성 몇 개가 죽음의 부대 때문에 무너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중앙에서 넘어온 죽음의 부대로 인해 서부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 전투의 흔적과 반쯤 망가진 마차, 수송 물자 등이 남아 있었다.
문제는 시체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것.
식량을 비롯한 많은 물자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정작 생명체만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기이한 풍경이었다.
“지독하군.”
시체 하나 없는 깔끔한 땅.
그렇기에 더더욱 괴상한 땅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땅엔 하나같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서 평등하리라.]
중앙군을 붕괴시킨 죽음의 부대는 보라색으로 오염된 땅에 적혀 있는 이 문구로 인해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만물이 평등하다는 논리에 따라 그들은 인간들에게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전부 강제로 자신들의 병사로 만들어 거대한 군단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아이언의 부대가 서부에서 중앙으로 이동할 때마다 만나는 부대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언이 이끄는 특수기동단 역시 보다 능숙해지고 강해지고 있었다.
당장에 아이언만 하더라도 신성력의 양이 많아졌고, 보다 정교한 컨트롤이 가능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신수들 역시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그나마 정체된 게 검술이었지만, 그것도 쥐꼬리만큼씩은 성장하고 있었다.
다수를 상대하면서 보다 빨라지고 정교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코어만을 노려서 단번에 죽이기 위해서는 섬세함이 필요했는데, 다수가 아이언을 노리다 보니 검술 역시 정교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이 이렇게 성장할 정도이니 휘하의 부하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기사들은 물론이고 레인저 부대와 강습부대 역시 전투 스킬이 빠르게 늘었고, 병사들 역시 마력의 사용이 보다 능숙해졌다.
거기다가 아이언 이끄는 부대만의 특수한 힘이 생성되었다.
바로 신성력.
“어? 색깔이 좀 이상하지?”
“그러게?”
“이거 신성력 아니냐?”
마력에 신성력이 조금씩 섞여 들어가 하얀 마력이 발산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처음엔 마력 발현이 가능한 기사들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마력을 막 각성한 병사들이 마력을 사용할 때마다 몸에 은은한 빛무리가 발생하면서 점차 전 병력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전투가 반복되고 성역 안에서 싸움이 지속될수록 병력의 몸에 은은한 빛무리가 감돌았고, 서부를 벗어나 중앙에 진입할 즈음이 되자 마침내 병력 전원이 신성력을 조금씩이나마 사용할 수 있게끔 되어 버렸다.
“너희들, 언제 신관이 됐냐?”
아이언이 하도 어이없어서 기사들에게 물었지만 그저 의례적으로 입에 담는, 무신을 믿는다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심지어 병사들은 무신조차 믿지 않았다.
“신이 너무 막 퍼 주는 거 아닌가?”
자신을 믿지도 않는 인간들에게 신성력을 퍼 주는 신을 보면서 아이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장에 성국에는 신관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마음을 갈고닦는 자들이 널렸는데, 그들조차 겨우겨우 성인이 돼서 쥐꼬리만 한 신성력을 깨우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병력은 별생각 없이 매일같이 죽음의 부대를 처죽이는 걸 반복할 뿐인데도 신성력을 얻었다. 아마 신관들이 이 장면을 봤다면 자신들은 이때까지 뭐 했나 하고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신 입장에선 저것들을 때려죽이는 우리들이 더 믿음직스러웠나?”
아이언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멀리서 보이는 죽음의 부대를 바라보았다.
지겨울 정도로 박살 낸 죽음의 부대.
하지만 죽여도 죽여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부대원들이 많이 능숙해진 덕분에 쓸데없이 포탄이나 마탄을 낭비하는 일 없이 근접전으로 죽여 나가고 있어 물자 소모가 크진 않았지만, 병사들 얼굴에도 점차 지겹다는 표정이 가득해졌다.
‘오히려 이게 다행이지.’
전쟁터에서 지겹다는 감정이 생긴다는 건 그만큼 안전하다는 것을 뜻한다.
별다른 위기감 없이 죽음의 부대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것.
지휘관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서부 영역까지였다.
중앙 지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아이언의 부대 역시 매우 바빠졌기 때문이다.
“달려! 멈추지 마라!”
“제길! 언제까지 쫓아오는 거야!”
“북부 근방만 가도 살 수 있어! 좀만 더 힘내라!”
중앙군에서 찢겨 나간 부대 일부가 사력을 다해 도망가고 있었고, 지휘관인 중대장이 남은 병력을 독려하면서 어떻게든 부대원을 북부까지 데려가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지쳐 가면서 점차 따라잡히면서 하나둘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죽음의 부대를 막아 보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아…… 안 돼…….”
축복을 받고 성수로 적신 무기로도 단번에 죽일 수 없는 괴물들.
그것들이 중대장을 덥석 물려는 순간.
콰앙!
어디선가 들려오는 포격음과 함께 하늘에서 인간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하얀 빛이 폭사하면서 주변에 엄청난 양의 신성력을 뿌려 댔다.
“중앙군이십니까?”
“그…… 그렇습니다만…… 누구……?”
“북동부 특수기동단입니다. 아이언 카터 준장께서 이끌고 계시죠.”
특수기동단의 한 장교가 상처 입은 중대장을 치료하면서 검을 들고 뱀파이어 같은 놈을 베어 냈다.
미약하게 신성력이 서려 있는 검을 보자 중대장이 눈을 부릅떴다.
무기에 축복과 성수를 발라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닌 장교 본인이 사용하는 힘이란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특수기동단의 모든 병력이 장교와 같이 미약한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들이라면…….”
그렇게 중얼거린 중대장은 특수기동단 장교를 붙잡았다.
“도…… 도와주십쇼!”
중대장의 도움 요청에 장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돕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표정이었다.
“저희가 아닙니다!”
“그럼…….”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부대가 있습니다.”
“예? 어딥니까? 규모는요?”
“규모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부대입니다!”
중대장의 말에 장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단장님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위치는 어딥니까?”
“여기서 남쪽으로 40km 떨어진 방향입니다. 313-13 연구소가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