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137화 (137/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37)

47. 중앙군의 붕괴 (2)

아이언의 말에 게르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하고 찔러본 것인데 자신의 짐작이 맞는 것 같자 아이언의 표정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찔러본 것인가?”

게르만의 물음에 아이언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서부 사령부에 온 건 수도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수도방위군이 무사한지 알아보려는 것이었군.”

“그렇습니다.”

게르만의 말에 아이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

게르만은 담배를 피우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게르만의 물음에 아이언은 잠시 침묵했다.

그런 아이언을 보면서 게르만이 말했다.

“전부 말해 보게. 그럼 나도 아는 바를 가능한 한 전부 말해 주지.”

게르만의 말에 고민하던 아이언은 입을 열었다.

“수도방위군이 건재하다는 전제하에 중앙군이 붕괴되었다면 중앙은 수도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최소한의 길목만 제외하고 중앙 지역 대부분을 버렸다고 생각됩니다.”

“또?”

“감당하기 힘든 적을 각 지역에 나눠서 분산시킬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피해를 입은 북부가 중앙으로의 지원을 시간을 끌며 미룰 가능성이 있으니 차라리 중앙군을 먹잇감으로 던져 주고 북부로 죽음의 부대를 유인할 것 같습니다.”

아이언의 추측에 서부 사령관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한정된 정보로 많은 것을 예측했군.”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 입에 문 게르만은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르만을 보면서 아이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죽음의 부대, 저것들의 원인이 정부에 있는 겁니까?”

“…….”

아이언의 물음에 게르만은 굳은 표정으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것조차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는 게르만을 보면서 아이언은 자신이 예상한 것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어디서 들은 것인가?”

게르만의 물음에 아이언은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조사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이언은 자신이 이곳에 오면서 잡았던 죽음의 부대 지휘관들과, 그들을 고문하면서 얻은 정보들을 알려 주었다.

첫 번째로 실험의 흔적이 있었다.

여기저기 꿰맨 흔적들과 정상적이지 않은 피부, 그리고 몸과 팔다리가 다른 형태의 조직을 갖고 있는 것 등을 토대로 실험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고문 끝에 겨우 받아 낸 자백.

하지만 금제가 되어 있었는지, 실험을 행한 자들이 누구인지는 끝끝내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추론은 할 수 있었는데, 그 근거는 그들이 현 황족들과 중앙정부에 끝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것과, 황족의 이름만 나오면 분노에 찬 고함을 질러 대는 것들이었다.

마지막으로 계약의 문양.

다크 엘프나 인어족처럼 공허의 힘 혹은 외부의 힘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계약의 인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통해 단순한 실험체였던 그들이 죽음의 기운을 부릴 수 있게 된 것일 터.

종합해 보면 마법사의 실험체인 키메라나, 연금술사의 호문클루스였던 이들이 공허의 존재들과 계약하면서 끔찍한 혼종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중앙은 그것을 끝까지 숨기려다 감당하지 못하고 중앙군 붕괴라는 수를 쓴 것이다.

“제가 생각한 건 여기까지입니다.”

아이언의 말에 게르만은 담배를 씹어 대다가 ‘퉷!’ 하고 뱉어 냈다.

“후…… 내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군.”

게르만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사실 거의 다 알고 있다고 봐도 되겠어.”

“……그렇습니까?”

“그래. 자네가 예상했다시피 죽음의 부대 지휘관들은 중앙의 연구 실험실에서 살아남은 희생자들이네. 오랜 시간 이루어진 실험 속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자들……. 그들이 오직 정부에 대한 복수만을 꿈꾸며 모인 것이지.”

게르만은 그렇게 말하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중앙의 연구소에서 최초로 살아 나온 자는 뱀파이어의 혼혈이었네.”

“아…… 그래서…….”

아이언은 죽음의 부대가 흡혈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허에 있는 신들과 계약한 것 역시 그 뱀파이어 혼혈일 가능성이 높네. 인간의 짧은 수명보다 몇 배는 긴 그가 오랜 시간 이 순간만을 위해 준비했고, 결국 중앙의 비밀 실험소들이 하나둘 파괴되면서 문제가 커져 버렸지.”

“결국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려고 정보를 감추려다가 이 꼴이 난 거군요.”

아이언의 말에 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크 엘프와 인어족, 그리고 서부의 조인족까지, 그들이 정부에 반기를 드는 존재들이었던 것과, 과거 황족의 욕심에 의해 희생당한 종족들이라는 것은 사령관급 정도 되면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국의 존속, 그리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잘못된 걸 알아도 그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 혼란의 시기에 제국의 분열은 곧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부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나머지 부분만 설명하도록 하지.”

게르만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 속에서 한 장의 서신을 꺼내 아이언에게 건네주었다.

“얼마 전에 그림자가 찾아왔네.”

“아…… 이것이…….”

아이언은 자신이 받은 서신을 내려다보다가 게르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서부로 죽음의 부대가 올 것이니 잘 대비하라더군.”

그렇게 말하면서 서신을 읽어 보라고 재촉하는 게르만의 말에 아이언이 서신을 열어 보자 정말로 그 안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솔직히 그 말을 반신반의했지 결과적으론 맞는 말이었네, 안으론 죽음의 부대, 밖에선 조인족의 공격이 이어졌으니……. 뭐, 혹시나 싶어서 준비했던 덕분에 사령부를 내주고 전선이 망가지는 선에서 끝났지.”

게르만이 그렇게 말하면서 ‘그때 좀 더 확실하게 준비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했다.

하지만 아이언은 눈앞의 게르만이 괴물 같았다.

내외부의 압박 속에서 끝끝내 병력을 지켜 낸 게르만의 지금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째서 제국 최고의 지휘관이라 평가받는지 알 수 있었다.

마스터급 강함 이상으로 병력을 지휘하는 그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군부의 지휘관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사령부가 붕괴되고 박살 난 전선의 병력을 수습해 이곳으로 모을 때, 그림자가 또 연락이 왔네. 이번 사태는 북부 때문이라고 이간질을 하더군.”

게르만이 그렇게 말하자 아이언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게르만은 다 안다는 듯 손을 내밀어 아이언을 진정시켰다.

“그림자가 엘프들의 시신을 요구했다는 건 알고 있네. 북부가 어째서 그것을 거절했는지도 알고 있으니 걱정 말게.”

“……예.”

“어쨌든 중앙에선 엘프의 시신, 그리고 우리가 확보한 조인족의 시신, 동부에서 타락한 인어족의 시신 등 아인종의 시신들을 모아 실험하려는 것 같네. 아마 그 실험을 통해 탄생한 뭔가로 반격을 꿈꾸는 것이겠지.”

“그것이 뭔지는 모르시는 겁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게르만은 입을 다물었다.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입을 벙긋하다가 결국 침묵하는 게르만.

그 모습을 보면서 금제가 걸렸음을 깨달은 아이언은 인상을 찌푸렸다.

“한 가지 말해 줄 수 있는 건 그들은 더 이상 마스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일세.”

“그게 무슨…….”

“그림자는 자신들의 계획이 완성되면 지금의 위기를 중앙의 힘으로 끝낼 수 있다고 했네.”

서부 사령관의 말에 아이언은 미간을 찌푸렸다.

“완성…….”

“오랜 시간 이어진 실험이 마침내 막바지에 도달했다더군. 뭐…… 조인족의 시신을 내준 우리와 다르게 엘프의 시신을 주지 않은 북부는 중앙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을 거라고 칭얼거리더군.”

게르만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별 기대는 안 하는 눈치였다.

중앙이 서부를 도울 때쯤이면 자신들은 이미 전멸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르만을 보면서 아이언은 이를 악물었다.

전생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한 중앙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반역을 저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아이언의 분한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게르만이 나직이 말했다.

“저들의 행태는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지만…… 황족은 필요하네.”

게르만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필요악.”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 말입니까?”

“그것도 있네만, 내가 말한 건 다른 의미에서의 필요악일세.”

그의 말에 아이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은 말해 줄 수 없다는 듯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남은 건 스스로 알아보라는 듯, 입을 다무는 게르만의 모습에 아이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게르만이 분위기를 전환시킬 겸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꺼냈다.

“그보다 다시 묻지. 중앙군을 도우러 가겠나? 아니면 서부에 남겠나.”

그의 질문에 아이언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서부군을 돕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게르만에게 모든 설명을 듣는 순간 중앙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필요악…….”

게르만이 대답하지 못했던 의미.

갑자기 그것이 알고 싶어졌다.

그러자 아이언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을 들은 게르만이 멀쩡한 팔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결정 났군.”

“……예?”

“중앙군을 도우러 갈 거 아닌가?”

게르만의 질문에 아이언은 곧바로 아니라고 대답하려 했으니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게르만이 나직이 말했다.

“물자를 지원해 줄 테니 중앙으로 가게나.

“하지만 서부가 위험합니다.”

“아네. 하지만 겨우 여단급 병력으로 이곳에서 무슨 큰 도움을 주겠나?”

그의 물음에 아이언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반면 죽음의 부대는 아니지. 자네가 그들의 극상성 아니던가?”

게르만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가서 쓸어버리게. 그리고 붕괴된 중앙군을 규합하고, 고립된 레오폴드 후작을 구해 주게나.”

게르만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의 귓가에 조용히 말했다.

“북부가 유일한 희망일세. 난 비밀을 들은 대가로 금제를 당해서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네. 하지만 북부는 다르지.”

“아…….”

“자네가 밝혀내게. 그리고 북부가 움직일 근거를 찾게.”

게르만의 말에 복잡했던 아이언은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얽혀 있던 실타래들이 하나둘 풀려 가기 시작했다.

우선순위가 하나둘 정해지고,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그리고 이 제국에 얽힌 비밀들을 어찌 풀어 가야 할지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기적인 황족과 그들로 인해 피해 입은 희생자들.

그리고 그 희생자들로 인해 대륙에 혼란을 초래하는 신들과 그런 신들을 막는 자들.

그들의 복잡한 이야기들을 알아내고 싶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그 이야기의 마지막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말하지 못했던 비밀들을 스스로 찾아보게.”

“그리하겠습니다.”

게르만의 말에 아이언은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그런 아이언의 자신감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게르만도 빙그레 웃었다.

“좋네. 다만…… 우리가 물자를 지원해 주는 만큼 요구할 게 있네.”

“말씀하십쇼.”

게르만의 말에 아이언은 각을 잡고 섰다.

“이왕 중앙으로 가는 거, 서북 방면으로 움직여 주게나. 그쪽이 좀 취약하거든.”

장난스럽게 말하는 게르만의 모습에 아이언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는 족족 죽음의 부대를 쓸어버리겠습니다.”

아이언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게르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령관실로 향했다.

“임시로 만든 거라 뭐가 없네. 대접할 거라곤 싸구려 차 정도인데 괜찮나?”

“물밖에 못 마셨는데 차라면 황송하지요.”

“거참, 젊은 친구 입담이 괜찮군.”

게르만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의 등을 팡팡 두드리고는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비록 부상당해서 절뚝이지만 발걸음 하나하나에 힘이 차 있었다.

자신이 없어도 이 대단한 사령관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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