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132화 (132/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32)

45. 보상 그리고 중앙에서 온 수상한 자들 (4)

그의 말에 아이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건 크림슨과 제든 윅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엘프들의 시신을 요구한 겁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 그들 대부분은 북부의 숲에 묻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지금 세계수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엘프의 시신을 달라는 건 세계수와 적대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언의 설명에 두 사령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가 차원 게이트를 손쉽게 뭉개 버리고 강제로 차원 균열까지 봉합시켜 버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물론 이곳에 그 막대한 힘을 발휘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대적할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기에 북부를 지켜야 하는 두 사령관 입장에선 웬만해서 세계수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이언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계수의 축복까지 받은 몸인데 굳이 그가 싫어할 만한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이들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제국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오.”

“이유를 알고 싶소. 이 일이 북부가 세계수를 적대할 정도로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일이오?”

제든 윅스가 그림자를 보면서 말하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현재 중앙이 어지러운 건 알 것이라 생각하오. 그런 상황에서 폐하를 호위하는 로열 가드들과 우리 그림자들을 더 강하게 해 줄 방안을 찾아야 했소. 이 일은 그것들 중 하나요.”

그림자의 말에 아이언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더욱 강화된 병사와 기사, 그리고 병기의 개발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오. 협조 부탁하오.”

그림자가 살살 구슬리듯 말했지만 두 사령관은 침묵했다.

고작 그 정도로 세계수를 적대하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황제에 충성심이 높은 자라도 고민할 일이었다.

정말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넘쳐흘러 오직 제국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놈들이 아니고서야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두 사령관 모두 황제에게 충성심이 넘쳐흐르기는커녕 중앙에 대한 반감이 있는 양반들이기에 그림자의 은근한 회유에도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놈들이네.’

오직 황제만을 위한 친위대.

그들 중 겉으로 드러난 조직이 로열 가드들인데 그들에 대한 것마저도 철저히 기밀에 부쳐져 있어 제대로 된 건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하물며 음지에 숨어 있는 자들인 그림자들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두 사령관들조차 그런 조직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알려진 게 거의 없을 정도로 비밀에 휩싸인 존재들인데, 이번 일로 그들이 어떻게 강해지고 유지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전생에서도 잠깐 황제의 비밀 조직이 드러난 적이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호문클루스였다.

뜬소문이라고 유야무야 넘어갔고, 실제로 그들을 봤다는 사람들도 나중에 말을 바꿔서 거짓으로 치부되었지만 아이언은 그 소문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설마…… 그동안 이종족을 실험에 사용해 왔던 건가?’

엘프뿐만 아니라 마녀 같은 소수민족들까지 그들의 고유 능력을 카피하기 위한 실험에 동원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런 아이언의 추론이 맞다면…….

‘황족은 미친놈들이다!’

이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전생에서도 느꼈지만 이놈들은 진정 미친놈들임이 분명했다.

오직 지들 이득을 위해서만 머리를 굴리는 이기적인 놈들.

이놈들의 마음속에 제국의 안녕과 영광 따윈 조금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권위를 높일 생각만으로 가득한 오만한 족속이었다.

그렇게 아이언이 속으로 황족에 대해 욕을 내뱉으면서 언젠간 반드시 박살 내 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불가하오. 세계수의 힘은 추정조차 힘들 정도로 강대하오. 그런 존재를 적대할 순 없소.”

크림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그림자는 부드러운 회유는 글렀다는 것을 깨달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폐하의 명이오.”

황제의 명령이라는 말에 두 사령관이 움찔거렸다.

반면 아이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전생에 황족 놈들이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짓.

지들이 최고라는 사상을 갖고 있는 놈들의 수하답게 황제의 명이면 다 되는 줄 아는 것 같았다.

전생에 자신도 황제를 들먹이면 쫄았던 기억이 있었다.

“이건 폐하께서 중앙의 안정을 도모하고 더 강대한 제국을 위해서 엘프의 시신이 필요하다는 요청서요.”

그렇게 말하며 문서를 넘기는 그림자의 모습에 아이언이 한숨을 쉬었다.

딱 봐도 공식적인 문서는 아닌 것 같았다.

오만한 황족의 특징대로라면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해 금가루라도 뿌려 놨을 텐데, 이 문서는 무척 수수했다.

“두 사령관들의 입장은 잘 알고 있소. 이제 겨우 전쟁이 끝났는데 위험을 감수하긴 힘들 것이라 생각하오.”

그림자가 마치 다 안다는 듯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아이언 준장만 빌려주시오. 세계수 몰래 엘프의 시신 몇 구만 빼내겠소. 만약 세계수에게 걸린다면 아이언 준장이 최대한 설득해 주시오. 대륙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이 일이 반드시 필요하오.”

그림자가 대의를 위해서 이런다는 듯 포장했지만 개소리였다.

세계수가 허락하겠는가?

설령 허락하겠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 세계수의 호의는 저 멀리 사라진다.

그건 겨우 안전해진 북부가 다시금 알 수 없는 세력에 의한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아이언이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면서 그림자를 바라봤다.

‘점점 더 수상하네?’

오만한 족속답지 않게 혀가 길다.

중앙 관료들조차 지 잘난 맛에 사는 놈들이었다.

별거 아닌 중앙 관료들도 그러할진대 그림자들이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다고?

‘요놈들 진짜 이상한데?’

가지고 온 문서만 봐도 공식 문서가 아닌데, 심지어 협박조차 안 하고 설명만 많다. 그렇다면 뒤가 구린 게 있다는 뜻.

“그거…….”

아이언은 손가락으로 그림자가 쥐고 있는 요청서를 가리켰다.

“공식 문서입니까?”

아이언의 말에 두 사령관이 곧바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가만히 침묵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언이 빙그레 웃었다.

“후…… 아무리 다급하다지만 북부가 다시 대위기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비밀문서로 작전을 진행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아이언의 말에 두 사령관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가 다시금 본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후…… 북부 입장에선 더 이상의 전쟁은 어렵소. 그런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폐하의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 이상 움직이기는 힘들 것 같소.”

“북동부 역시 마찬가지요. 폐하의 명이라도 수도로 직접 찾아가 만류해야 할 판국이오.”

두 사령관의 말에 그림자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을 방해한 아이언을 노려보았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그가 노려본다 한들 겁먹을 아이언도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제국의 영광을 위한 일이오. 다시 생각해 보시오.”

그림자가 마지막으로 제국을 들먹이며 말해 보았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북부 대전쟁에서 그렇게 지원을 요청했어도 지들이 힘들다고 다 씹은 놈들이 중앙이었다.

충성심?

그딴 건 진즉 쓰레기통에 처넣었지만, 설령 남아 있었다 하더라도 북부 대전쟁을 시작하면서 죄다 사라졌을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오, 지금 그대들의 이런 판단이 폐하의 안전을 심히 위협하고 있다는 뜻이니…….”

“걱정 마시오. 중앙이 위험하다면 우리는 언제든 지원하러 갈 준비가 되어 있소.”

“후…… 그대들의 이런 결정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아시오?”

크림슨의 말에 한숨을 쉰 그림자가 자조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중앙이 위험하다면 정식으로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하시오.”

“후…….”

크림슨의 원론적인 얘기에 그림자가 한숨을 쉬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자신이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표정이었다.

어떤 것도 똑바로 밝힐 수 없는 입장인 그림자는 결국 한숨과 함께 포기했다.

“그대들은 이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오.”

그림자가 마지막으로 협박을 해 보았지만 두 사령관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이 중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친히 워프 게이트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중앙으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 두 사령관은 접객용 미소를 지으면서 친절히 보내 주었다.

그렇게 그림자들이 다시 돌아가자 두 사령관이 곧바로 그들을 욕했다.

“미친놈들 아닙니까?”

“이거, 사령관 체면이 말이 아니군. 저런 잡것들마저 상대해야 하다니…….”

“쯧. 그림자들이라고 해서 상대해 주긴 했는데 기분만 잡쳤네요.”

두 사령관이 그림자들을 잘근잘근 씹어 대면서 욕하는 동안 아이언은 뒤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지금 이런 요구가 무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북부군뿐만 아니라 선택받은 자와 이세계인의 유저들까지 대거 모여들었던 전쟁이다.

세계수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축복이 뭔지도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요구를 해 온다는 건…….

“정말 중앙이 위험한 건가?”

아이언의 중얼거림에 열심히 씹어 대고 있던 두 사령관이 걸음을 멈추고 아이언을 돌아보았다.

“무슨 말인가?”

크림슨의 물음에 제든 윅스도 궁금하다는 듯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이렇게 설설 기면서 요구해 오는 게 좀 이상합니다.”

아이언의 말에 두 사령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한 그들의 표정에 아이언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본래 중앙의 스타일이라면 그냥 공식 문서로 찍어 누르듯 하거나, 뭐 줄 테니 협조하라는 식으로 나와야 합니다. 비공식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요청서 하나 갖고 와서 말로 설득할 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가져와 협상이라는 걸 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중앙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런 아이언의 생각에 두 사령관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상하긴 하군.”

“확실히…….”

두 사령관의 말에 아이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쩌면 현재 중앙의 상황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거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흠…… 중앙도 정신없긴 하겠지.”

크림슨은 보고받은 정보가 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제든 윅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령관 자리에 있다 보니 보고받는 정보의 질이 달랐다.

그렇기에 현재 중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아이언이 말끝을 흐리자 크림슨이 더 말해 보라는 듯 재촉했다.

“정말로 중앙의 내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부에?”

“……예.”

“첩자라도 있다는 뜻인가?”

제든 윅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동부의 인어족, 북부의 엘프, 서부의 조인족, 남부의 수인족.

드러난 것만 봐도 전부 유사 인종들뿐이다.

하지만 전혀 없다고 단정 짓기도 어려웠다.

“외부 위협뿐이라면 중앙이 이렇게 정보를 숨기려는 게 이상합니다.”

현재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서부와 남부는 실시간으로 전장의 상황이 알려지고 있었다.

북부도, 동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중앙은 위협이 있다는 것만 크게 알려져 있을 뿐 명확한 적의 정체도, 구체적인 피해 상황도 상세하게 알려진게 없었다.

‘대략적으로 어떤 부대가 당했다!’, ‘어느 구역이 피해를 입었다!’ 같은 단편적인 정보들만 계속해서 올라왔다.

중앙에서 정보를 감춰야 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

그런데 황제의 직속 친위대인 그림자들마저 이런다?

이런 생각이 단순 의심에서 확신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동부에도 첩자가 있었지?”

제든 윅스가 기억났다는 듯 말하자 크림슨도 고개를 끄덕였다.

“혼혈이 없진 않을 테지.”

“흠…… 정말 폐하께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지는데.”

지금 상황에서 구심점이 사라진다?

그건 곧 제국의 붕괴를 의미한다.

아무리 평소에 중앙이 꼴 보기 싫었던 두 사령관이라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선 필요악으로 남아 주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후…… 일단 사령부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지.”

“저 역시 좀 더 알아봐야겠습니다. 뭔가 알아낸 게 있으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리하시게.”

크림슨이 그렇게 말하면서 북동부 사령부로 돌아가는 워프 게이트에 몸을 실었다.

얼마 후, 아이언과 함께 돌아온 크림슨은 곧바로 중앙 쪽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정보장교들을 불러 모았다.

정말로 중앙이 위험하다면 지원하러 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의 정보는 마치 무언가에 차단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제대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보보다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긴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피해가 어느 정도고 어떤 곳에 군대를  보내 진압했다는 정보에 불과했다.

그림자의 경고와 달리 북부와 북동부엔 어떤 압박도 없었다.

도리어 그렇기에 불안했다.

‘중앙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 때문에 크림슨과 제든 윅스는 꺼림칙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곧 지워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군을 재건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아이언 역시 신참들을 미친 듯이 굴리면서 쓸 만한 부대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군을 재건하느라 온 힘을 쏟을 무렵.

오늘도 어김없이 회의 때문에 파김치가 된 장교들이 슬슬 마무리를 하며 자리에 일어서려 할 때였다.

회의장으로 들이닥친 한 통신장교가 다급히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서…… 서부 전선이 뚫렸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