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128화 (128/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28)

44. 세계수의 시험 (2)

세계수가 사라지자 곧이어 나무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이언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뿌리에 칭칭 감긴 아이언의 몸이 옴짝달싹할 수도 없을 만큼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성력은 서서히 퍼져 나가 나무의 곳곳을 누비며 정화해 나가고 있었다.

나무를 강제로 풀어내고 나가 보려고 해도 성력이 자신을 막아섰다.

게다가 마력을 끌어 올리는 것도 성력과 자연의 기운이 막고 있었기 때문에 저절로 힘이 빠져 버렸다.

마치 ‘이게 정화될 때까진 얌전히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꼼짝없이 갇혀 있는 신세인가?”

나무가 완전히 정화되기 전까진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언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어느새 뿌리들이 의자 모양을 만들어서 아이언이 최대한 편하게 있게끔 배려해 주었다.

게다가 어디서 났는지 열매도 가져와서 아이언의 앞에 대령했다.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자연의 기운이 뭉쳐서 초록빛 빛 덩이가 되어 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이언이 있는 나무의 중심부에는 여러 빛으로 빛나는 빛 덩이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세계수…….”

자연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세계수의 뿌리 중 하나.

그것이 검은 나무의 정체였다.

비록 뿌리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그 본질은 세계수였기에 수많은 자연의 기운들이 정령으로 변해 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막 태어난 정령들은 성력을 뿜어내는 아이언에게 친근감을 느끼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자연의 사랑을 받는 듯한 느낌에 아이언이 빛 덩이들을 바라보면서 멍 때리고 있을 때, 밖의 상황은 처참했다.

물러설 수 없는 북부 연합군.

사실상 패배라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싸우는 엘프 연합군.

두 진영의 피 튀기는 전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포성이 터지고, 수많은 오염된 나무들이 인간 진영이 구축한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다.

그것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동안에도 인간들은 죽어 나갔다.

하지만 다행인 점이라면 시간은 더 이상 엘프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아아…….”

검은 나무가 정화되어 가자 몇몇 다크 엘프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그리고 그중에서 자연의 기운에 속박되어 힘을 잃어버린 이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차원 게이트에게 공허의 기운을 가진 붉은 촉수들이 다크 엘프들을 휘감아 완전히 타락한 존재로 변모시켰다.

그건 더 이상 엘프도 현계의 존재도 아닌 괴상한 생물체였다.

완전히 타락해 공허의 존재로 변모한 다크 엘프들의 힘은 막강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더럽고 끔찍해 보이는 팔을 휘두를 때마다 오염된 기운이 주변을 잠식하고 타락한 정령체들이 나타나 공격했다.

다크 엘프들이 죽어 나갈 때마다 완전히 타락한 공허 생명체는 계속해서 만들어졌고, 그럴수록 점차 전선이 밀려났다.

“마지막까지 싸워라!”

“물러서지 마라!”

피를 토하면서도 저항하는 지휘관들과,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듯 온 힘을 다해 싸우는 병사들.

그들로 인해 간신히 유지되는 전선.

그런 인간들의 용맹에 감탄한 것일까?

검은 나무였던 세계수의 뿌리에서 신성한 힘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빛의 파장과 함께 본래라면 세계수의 곁을 맴돌고 있을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분노한 듯, 강렬한 자연의 기운을 뿜어내면서 다크 엘프와 엘프들의 앞을 막아섰다.

본래라면 자신들에게 힘을 빌려줬어야 할 존재들이 앞을 가로막자 충격받은 엘프들도 존재했지만, 몇몇은 이젠 정말 끝이라는 생각과 함께 공허의 기운에 몸을 맡겨 버렸다.

그렇게 엘프들마저 공허의 기운에 잠식되면서 북부의 전쟁은 공허의 존재들과 인간들의 싸움으로 재편되었다.

엘프들을 완전히 잠식한 공허의 힘은 그 대가로 차원 게이트를 벌리면서 더 강력한 사도를 불러내었다.

그러자 세계수의 뿌리 역시 그에 대항할 정령이 나타났다.

숲 곳곳이 파헤쳐지고 성역과 공허의 기운이 치열하게 충돌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싸웠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공허의 군세와 인간의 군대가 맞부딪쳤다.

그렇게 제2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의외로 활약한 건 마스터나 고위 기사가 아닌 이세계인이었다.

-공허의 존재를 베어 냈습니다. 공적치가 약간 올라갑니다. 공적치에 따라 보상이 달라질 수 있으니 더 많이 활약하시기 바랍니다.

공허의 존재들을 베어 낼 때마다 들려오는 알림음.

그 알림음에 의해 유저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서로 간에 공허의 존재들의 약점을 공유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존재를 베어 내기 위해 뭉쳤다.

유저들끼리만 뭉치는 게 아니었다.

선택받은 자들 역시 공허의 존재를 죽여 나갈 때마다 자신의 힘이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실시간으로 보상을 받는 느낌?

그렇기에 더더욱 힘을 냈다.

“저놈은 내 거야!”

“무슨 소리! 내 거다!”

나중에는 서로 자신들의 것이라면서 죽여 나갔다.

그렇게 전쟁이 진행될수록 유저들과 선택받은 자들이 더 날뛰고, 그사이 여유를 찾은 군은 재정비해서 반격의 준비를 마쳤다.

비록 유저와 선택받은 자들만큼은 아니지만, 병사들 역시 공허의 존재를 죽일수록 성장하고 있었다.

신성한 기운이 깃들면서 예전이었다면 할 수 없는 활약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것이 이 전투 후에 사라져 버릴 힘이라도 병사들에겐 귀중한 경험이었다.

본래 자신이라면 할 수 없는 활약과 함께 그 경험이 고스란히 몸과 머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만 만들 수 있다면 그 병사는 한 단계 더 강해질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군대가 점차 강해지자 공허의 타락한 군대는 조금씩 무너져 갔다.

하지만 오염된 존재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이대로 북부에서 물러날 수 없다는 듯, 지독하게 인간들을 공격했다.

숲의 절반이 어둠에 물들고 나무를 비롯한 온갖 식물들이 끔찍한 모습으로 변모해 인간들에게 저항했다.

하지만 아이언으로부터 시작되어 세계수의 뿌리를 통해 증폭된 신성력은 점차 숲 전체로 성역을 넓혀 갔다.

이 땅에 공허의 기운을 하나도 남김없이 불태워 버리겠다는 듯, 공허의 기운에 오염된 생명체를 남김없이 태워 버렸다.

그렇게 태워진 재 속에서 실시간으로 나무가 자라나고, 식물들이 자라났다.

그중 몇몇은 엔트나 꽃의 정령이 되어 공허의 존재와 싸웠다.

“끝……인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린 다크 엘프의 수장이 조금씩 가루가 되어 무너지고 있었다.

타락한 대가로 막대한 힘을 뿌려 대던 그였지만 신성한 힘에 결국 굴복했다.

특히 세계수에 의해 나타난 정령들의 분노를 모조리 감당해야 했던 그였기에 육체마저 남기지 못하고 소멸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그를 향해 환하게 빛나는 신수를 타고 한 사내가 나타났다.

“사도…….”

자신의 계획을 끝까지 방해한 존재.

그가 자신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날 조롱하러 왔나?”

다크 엘프 수장이 자조 섞인 말투로 물었다.

그런 그를 향해 아이언이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작게 입을 열었다.

“세계수의 전언을 전해 주기 위해 왔다.”

아이언의 말에 다크 엘프 수장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았으나, 그의 표정을 보고선 진실임을 느꼈다.

아무리 타락했어도 하이 엘프였던 그다.

그렇기에 그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것쯤은 단숨에 눈치챌 수 있었다.

“……뭐지?”

실시간으로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다크 엘프 수장이 세계수의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해 초인적인 힘으로 무너지는 육체를 멈추었다.

그런 그를 위해 아이언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고생했다.”

뿌리에 칭칭 감겨 있던 아이언에게 나무에서 들여온 음성.

고생한 자신의 자식에게 전해 주라는 말.

그건 고생했다는 단 한마디뿐이었다.

하지만 다크 엘프 수장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면서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

다크 엘프 수장은 마지막으로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는지 이내 몸 전체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 다크 엘프의 수장을 씁쓸히 바라본 아이언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세계수의 두 자식 중 하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큭!”

“괴물이군.”

“그랜드 마스터에 가까운 존재인가?”

마스터 세 명이 달라붙어도 꿈쩍도 안 하는 존재.

정령들마저 자신들을 돕고 있었지만 엘프의 수장은 그마저도 뚫고 자신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이미 이지마저 상실하여 파괴만을 일삼은 엘프의 수장이었다.

본래라면 이지를 상실한 존재쯤은 제아무리 강하더라도 손쉽게 제압했을 마스터다.

하지만 엘프의 수장이 가진 힘은 이지를 상실했음에도 넘볼 수 없는 경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모든 생명을 걸고 정령들의 융합한 하이 엘프.

그가 타락한 기운에 완전히 잠식당하는 대가로 더 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지를 상실했을지언정 힘 자체는 그랜드 마스터에 가깝게 변모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혼자서 북부 연합군을 위기에 빠뜨릴 정도였다.

마스터들이 막강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가고, 정령들마저 공허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멀리 떨어질 때였다.

하늘에서 신성한 불길이 쏟아져 내리면서 주변에 신성한 빛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정령들과 융합하면서 그대로 타락해 버린 터라 마스터들이 달라붙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막강한 그였지만 신성한 불길을 토해 내는 피닉스와 거대한 두 줄기의 빛을 내뿜는 신수의 등장으로 조금씩 밀려 나갔다.

거기다 작은 새에게서 뿜어지는 빛 가루는 실시간으로 그의 육체를 붕괴시켰다.

가루에 닿을 때마다 신체 일부가 회색빛 가루가 되어 사라지자 점차 그의 힘도 줄어들어 갔다.

결국 반쯤 붕괴된 육체가 공허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그의 오염된 육체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쿨럭!”

검은 피를 토해 낸 엘프의 수장이 무릎을 꿇은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크 엘프의 수장과 같은 허망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그.

파스스…….

다크 엘프의 수장처럼 가루가 되기 시작하는 그 앞에 아이언이 다가왔다.

“세계수가 물으라더군.”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가만히 엘프의 수장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제 만족하느냐?”

아이언의 물음에 공허했던 그의 눈에 후회가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대답은?”

아이언의 재촉에 엘프의 수장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아이언은 대답이 되었다는 듯 다시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너의 어린 자식들은 세계수 안에서 평안을 찾을 것이라 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편히 쉬어라.”

아이언이 세계수가 부탁한 말을 모두 전하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다크 엘프의 수장과는 달리 아무런 반응도 없이 멍하니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자, 아이언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 그만해. 너희가 아니어도 이미 제국은 반쯤 망가졌어. 복수는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나?”

“…….”

대답을 하지 않는 하이 엘프를 보면서 아이언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해 줄 말은 전부했기에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엘프의 수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뭐지?”

아이언의 물음에 엘프의 수장이 사력을 다해 육체 붕괴를 늦추면서 물었다.

“그대는…… 황제에게 충성을 하는가?”

“충성?”

엘프의 수장이 묻는 말에 아이언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아이언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그에게 아이언이 웃으면서 말했다.

“다른 곳은 모르겠으나 북동부군은 황제란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평생 고생시킨 원흉이거든.”

아이언의 말에 하이 엘프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아이언이 다시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특히 난 황족을 끔찍이 혐오한다. 그렇기에 반드시 박살 낼 생각이야. 참고로 먼저 간 마녀에게도 약속했어. 그러니 믿어라.”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빙그레 웃어 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모습에 엘프의 수장은 멍하니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막아 놨던 소멸의 시간을 해방시켰다.

“진즉 너를 만났다면 좋았을 것을…….”

엘프의 수장이 그렇게 말하면서 안타깝다는 표정과 함께 잿빛 가루가 되어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빛이 뿜어지면서 음성이 들려왔다.

-시험은 통과되었으니 앞으로 북부에 자연의 축복이 함께할 것이다.

세계수의 말이 숲 전체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유저들에게 알림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메인 퀘스트 세계수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북부 대전쟁이 끝났습니다. 공적치에 따라 보상이 있을 예정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