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27)
44. 세계수의 시험 (1)
많은 이들의 희생 끝에 기어코 도달한 아이언이 막대한 신성력으로 오염된 샘물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오염이 진행된 상태라 단기간에 정화되지는 않았다.
기절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나오는 신성력으로 인해서 계속해서 정화되고는 있었으나, 나무 위쪽은 여전히 오염이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신성력 때문일까?
본래의 색으로 변한 나무가 구멍을 오므라들게 만들면서 점점 게이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무를 휘감고 있던 붉은 촉수가 나무에서 벗어나 게이트를 휘감기 시작했다.
마치 나무가 더 이상 게이트가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듯 구멍을 메꾸기 시작하자 게이트 자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붉은 촉수들이 나무 밖으로 게이트를 갖고 나온 것이다.
그렇게 나무와 게이트 간의 싸움이 시작될 때, 밖에서 다크 엘프만을 사냥하던 유저들에게 알림음이 들려왔다.
-메인 퀘스트 세계수의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퀘스트는 북부 최후의 전쟁과 연동됩니다.
-현재 검은 나무(세계수의 뿌리)는 정화되고 있습니다. 완전히 정화될 때까지 검은 나무를 보호하십시오.
-이 퀘스트는 북부 최후의 전쟁 승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알림음이 끝나자 잠시 망설이던 유저들은 무기를 쥐고 북부 연합군의 전선에 합류했다.
밖에서 다크 엘프만을 사냥하던 유저들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전쟁에 가담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북부 연합군에게 승기가 굳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검은 나무였다.
뒤늦게 도착한 철벽 사단과 레인저들이 엘프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안에서 부상 입은 누군가가 나왔고, 엘프들이 그를 부축하면서 황급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다크 엘프가 아닌 일반 엘프가 있는 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건 강력하기로 유명한 기사단 대다수가 죽거나 중상을 입은 채 누워 있다는 점이었다.
“카심!”
기사단장인 카심이 온몸에 피 칠갑을 하면서 철벽사단장을 바라보다 선 채로 기절했다.
다른 기사들 역시 정신력의 한계가 찾아온 듯 하나둘 쓰러지자 병사들이 황급히 그들을 부축했다.
“너희들은 날 따라와라!”
“예!”
카심을 눕히고 좀 더 앞으로 나아가자 마지막까지 싸우고 있는 고스트들이 보였다.
“쿨럭! 쿨럭!”
“자네 괜찮나? 일단 이거 마시게.”
피를 토하면서도 검을 놓지 않고 있는 칼 구스타프를 보면서 철벽 사단장 발리오스가 황급히 부축했다.
그러고는 다급히 포션을 꺼내서 칼의 입에 부어 주고 나머지는 중상을 입은 상처 부위에 뿌렸다.
하지만 워낙 중상이기에 자체 치유력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 안에…… 아이언 중령이…… 있습니다.”
“알겠네. 더 이상 말하지 말게.”
발리오스가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최대한 빠르게 오기는 했지만 이미 북동부 기사단 다수가 죽음을 맞이했고, 단장인 카심마저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에 빠졌다.
그들을 응급처치하고 황급히 검은 나무로 진입하자 그곳엔 고스트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동안 숱한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고스트들이 대부분 죽어 있었다.
살아남은 건 마지막까지 이 악물고 싸운 칼 구스타프와 빌리 브란트, 린텔 베르너 정도였다.
“여…… 여기 한 사람 더 살아 있습니다!”
병사의 외침에 황급히 얼굴을 확인한 발리오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밀턴인가?”
발리오스가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라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추가로 살아남은 고스트는 고작 한 사람.
북동부 최정예라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간 것은 뼈아픈 손실이었다.
그만큼 힘든 전투였다.
아마 북부군은 북동부 이상으로 많이 죽어 나갔을 것이다.
“부상을 입었더라도 전부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발리오스가 그건 자신의 욕심이라는 걸 알기에 한숨을 쉬었다.
최소한의 응급처치로 고스트들을 살린 발리오스는 칼의 재촉에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자 그곳에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그 누구도 발견할 수 없었다.
“흠…… 아이언 중령이 이긴 거 같은데…….”
검흔을 토대로 살펴보면 아이언이 이겼을 거라 추정됐지만, 나무 한쪽이 팬 곳에 핏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자 발리오스가 흔적을 따라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엄청난 신성력이 결계를 만들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 시작했다.
강제로 열려고 했으나 아이언의 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발리오스는 행동을 멈추고 시야가 확보되는 선에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 아이언이 샘물에 검을 박아 넣은 채로 기절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성한 결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다시 밖으로 나온 발리오스는 병력에게 외쳤다.
“이곳을 요새화한다! 준비해!”
“예!”
자신의 병력에게 철벽 사단의 가장 장기인 요새화를 명령하고, 동시에 병력을 불러 모았다.
의무대를 설치하고 속속 도착하는 병력을 모아 부상자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전투는 계속되었으나 엘프들과 다크 엘프들을 뚫고 들어온 병력이 안에서 공격해 오자 하나둘 숲으로 피신했다.
방어선이 뚫린 지금 양쪽에서 공격받으면 곧바로 전멸당할 위험이 있기에 각자 숲으로 후퇴한 것이다.
여전히 북부의 숲은 오염되어 있었고, 오염된 숲은 다크 엘프들의 영역이었다.
게다가 검은 나무에서 후퇴한 엘프들 역시 숲에 숨어들면서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레인저 사단장 데이븐 아처가 고함을 지르면서 안이해지려는 병사들의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러는 사이 비룡 부대를 이끄는 스카이 랭스가 물자를 가져오면서 속속 검은 나무를 중심으로 진영을 꾸리기 시작했다.
목표했던 검은 나무까지 도달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이세계인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갓게임의 유저들에게 나타난 퀘스트 내용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검은 나무를 지켜라!”
내용을 들은 장교들이 황급히 전군에게 이 내용을 알렸고, 모든 병력이 검은 나무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다크 엘프와 엘프가 오염된 숲으로 후퇴한 지금, 숲에 진입한 모든 병력은 나무 주위로 집결하려 진형을 짰다.
다크 엘프들이 소환한 존재들 역시 숲으로 사라지면서 마스터들 또한 검은 나무로 모였다.
“고스트들이…….”
크림슨이 고스트들의 시신을 확인하자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숱한 고비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고스트들이 이 전투로 과반이나 죽어 버렸다.
게다가 기사단까지 다수가 죽어 나가자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런 손실은 북동부뿐만이 아니었다.
북부 직속 기사단은 반쯤 붕괴되었고, 특수 기동대 역시 과반이 넘는 사상자를 기록했다.
사자가문 역시 혈사자 절반을 잃었고, 은사자와 철사자들 역시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
다른 영지군들 역시 기사와 마법사를 다수 잃어 향후 십년은 족히 재건에 힘써야 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손실을 입었음에도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쾅! 쾅! 쾅!
밤이 되자 다크 엘프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검은 나무를 두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번에 방어하는 쪽은 인간의 군대였다.
밖에서 비공선과 함께 지원군이 오면서 숲을 압박하고 안에서는 검은 나무를 지키기 위해 다크 엘프들과 싸우면서 숲 안팎에서 엘프의 군대를 공격했다.
다시 한번 시작된 치열한 혈전.
엘프나 인간들이나 이게 마지막 싸움이 될 것임을 알았기에 이를 악물고 싸웠다.
“여기서 지면 끝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힘내라!”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인간 진영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때, 엘프 연합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검은 나무를 탈환하고자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붉은 촉수에 의해 게이트 자체가 파괴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허의 기운을 계속 주입받으면서 끊임없이 전쟁을 이어 나갔다.
어느 쪽도 쉽게 결판나지 않는 싸움 속에서 검은 나무가 서서히 본래 나무의 색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검은 안개가 사라졌고, 오염된 북부의 숲의 영역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아이언의 신성력과 자연의 힘이 합쳐져 숲을 점차 정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점차 회복되어 가는 검은 나무를 보면서 다크 엘프들은 점차 조급해졌다.
어떻게 훔쳐 낸 세계수의 뿌리인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 만든 계획이었나?
오로지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 타락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만든 계획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겨울산에서부터 자신들을 방해한 인간이 대계마저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힘으로 부족해 그토록 증오하는 엘프마저 꼬여 내 대계에 합류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가 눈앞에 있었다.
“이럴 수는 없다.”
다크 엘프 수장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점차 정화되어 가는 검은 나무를 바라보았다.
간악한 인간들.
평화롭게 살던 자신들을 괴롭힌 제국 놈들에게 복수하지 못하고, 이리 패배해야 하는 것에 분통이 터졌다.
“마지막까지 싸울 것이다.”
다크 엘픠 수장의 말에 모든 다크 엘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공허와 계약하면서까지 이 대계를 만들었으니 실패를 한다면 전원이 죽음을 맞이할 각오로 싸워야 했다.
그렇게 다크 엘프들이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인간들과 치열한 혈투를 이어 나갈 때, 검은 나무를 점차 정화해 내던 아이언의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이 돌아왔구나.
“당신은…….”
초록빛 요정이 나무 안에 만들어진 나뭇가지에 앉아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떤 강대한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옆에 언제나 있는 자연의 힘과 같은 순수하고도 포근한 힘.
그것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자 마치 끝도 없는 막대한 기운이 얼핏 지나갔다.
“세계수?”
-눈치가 빠르구나.
아이언의 말에 작은 요정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뿌리 중 하나가 정화되어 가길래 이리 찾아왔느니라.
세계수의 말에 아이언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의 시험을 통과하기 직전이구나.
“시험…….”
은발의 엘프가 말했던 것을 떠올리곤 가만히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의문이 많이 담긴 아이언의 눈을 보고선 작은 요정이 빙그레 웃었다.
-많은 것이 궁금하겠지만 말해 줄 건 별로 없구나. 나에게 직접 찾아온 것도 아니니 말해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느니라.
“엘프들은…… 버릴 건가?”
아이언의 물음에 요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물어볼 줄은 몰랐구나, 본래 세계에 대해 물을 줄 알았더니……. 답하자면 그건 그들의 선택이니라. 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할 뿐……. 멸망이 그들의 선택이라면 그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하느니.
개소리 같았지만 요정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슬픔에 아이언은 침묵했다.
그런 아이언을 보면서 요정은 빙그레 웃었다.
-내가 답해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이건 알려 줄 수 있겠구나. 앞으로 북부는 한동안은 안전해질 것이다. 뭐…… 그것도 그날이 시작되기 전까지에 불과할 테지만.
“그날?”
-자세한 건 말해 줄 수 없느니. 그땐 정말로 나도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공허와 계약을 할지 아니면…….
세계수가 말하다가 입을 뻐끔거렸다.
더는 말할 수 없음에 미간을 찌푸린 요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더 알고 싶으면 나를 찾아오너라. 마침 내 곁에 있는 녀석도 널 보고 싶어 했으니…….
그 말을 끝으로 요정의 몸이 점차 희미해지더니 초록빛으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