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23)
42. 반격! (3)
다크 엘프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박살 낸 후, 아이언이 타고 있는 비룡으로 다가온 크림슨.
“오랜만에 보는군.”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언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동부에서 본 이래로 처음 보는 것이니 오랜만이긴 했다.
게다가 동부에서도 먼저 가 버렸기 때문에 몇 개월 만에 보는 것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는 크림슨의 모습은 동부에 있을 때와는 또 달랐다.
그때도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초췌하지는 않았다.
“잠은 제대로 주무시는 겁니까?”
아이언이 걱정스레 묻자 크림슨은 쓴웃음을 지었다.
“살 수 있을 만큼은 자고 있네.”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한숨을 쉬었다.
“후…… 그만큼 심각한 겁니까?”
“자세한 건 도착해서 얘기하지.”
크림슨은 아이언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빙그레 웃으면서 비룡 기사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보내고 직접 비룡을 움직였다.
“비룡도 탈 줄 아십니까?”
“이 나이쯤 되면 웬만한 건 전부 할 줄 알게 된다네.”
크림슨은 웃으면서 비룡을 몰고 지휘부로 향했다.
중간중간 화살들이 날아왔지만 그때마다 손쉽게 막아 내서 그런지 별다른 피해 없이 지휘부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고작 한 단계 차이가…….’
6단계에 이른 아이언이지만 크림슨이 보이는 신위는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압도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바심이 생겼다.
‘앞으로 몇 년간 성장하면 저 경지에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아이언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처음 환생했을 때만 하더라도 5단계만 제대로 도달해 보자는 생각이었지만 막상 6단계에 도달하니 욕심이 났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자신이 목표했던 바를 이루어 버리니, 자꾸만 마스터의 경지가 아른거렸다.
그동안은 연이은 전투와 신경 써야 될 것이 많아 잊고 있었지만 6단계에 오르니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 아이언의 마음을 느낀 것인지 크림슨이 조용히 말했다.
“조급할수록 길은 멀어질 것이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하게.”
그 말에 아이언은 말없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크림슨의 등을 바라보았다.
“아직 벽에 다다르지도 못했지 않나. 그러한 고민은 벽에 도달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을 걸세.”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아직 마스터의 벽에 다다르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런 고민은 사치에 불과했다.
크림슨의 조언 때문인지 아이언의 흔들리던 눈빛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 그를, 크림슨은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차피 자넨 신수도 있으니 꼭 벽을 넘으려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최대한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아직 젊은데 조급할 필요가 없지.”
“그렇긴 합니다만…….”
신수라는 엄청난 무기가 있는 이상 아이언에게 마스터라는 경지는 꼭 필수가 아닐지도 몰랐다.
현재의 가치만으로 마스터 이상의 신위를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웠다.
6단계.
마스터까지 고작 한 단계만 남아서 그런지 더 탐이 났다.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자네가 마스터에 올라서는 것도 꿈은 아닐 걸세. 그러니 잡생각에 휘둘리지 말게나. 자네는 바른 길로 가고 있네.”
크림슨의 확신에 찬 말에 아이언의 흔들리는 마음이 완전히 안정되었다.
마스터에 이른 노장의 확신.
그것은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맞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었다.
‘마스터라…….’
누구나 꿈꾸는 경지.
모든 기사들이 목표로 하는 마지막 경지가 마스터였다.
실상은 5단계조차 오르지 못해 허덕이는 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욕심이 났다.
단순히 욕심만 내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다크 엘프와 미지의 존재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만큼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이언이 생각한 것이, 마스터에 오르고 신수의 모든 힘을 개방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기만 하면 다크 엘프와 같은 존재들이 어떤 함정을 파더라도 살아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일단 다크 엘프부터 처리하는 게 급선무야.’
생각을 정리한 아이언의 눈빛이 다시금 또렷하게 변하자 크림슨이 비룡을 지상에 내렸다.
일부러 허공에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준 것을 깨달은 아이언은 크림슨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죄송합니다.”
“괜찮네. 누구나 그 경지에 오르면 그럴 걸세. 마스터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는데 욕심이 나는 게 정상이지.”
크림슨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지휘부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먼저 들어가겠네. 인시하고 들어오게.”
크림슨의 배려에 아이언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뒤 고스트들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보네.”
린텔의 인사에 다른 고스트들도 아이언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모든 고스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자 반가웠지만 웃는 얼굴과 달리 어딘가 굳어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바로 그때, 칼 구스타프가 뒤늦게 들어와서 말했다.
“일단 들어가자.”
“아…… 네.”
왠지 기묘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애써 무시하며 칼 구스타프와 함께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곳엔 북동부의 수뇌부가 전부 앉아 있었다.
사령관 크림슨 헤일로.
선봉 군단장 카이든 월.
산악 군단장 오스 테리보.
안개 군단장 포그 코즈웨이.
레인저 사단장 데이븐 아처.
기사단장 카심 나이츠.
철벽 사단장 발리오스 가드.
현 북동부의 최고 지휘관들이 전부 착석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사령부를 지켜야 할 철벽 사단장과, 몬스터를 관리할 오스 테리보 산악 군단장까지 모조리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수뇌부가 모인 건 실로 오랜만이군.”
크린슨이 그렇게 말하면서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 사령관을 바라봤다가 아이언에게 시선이 옮겨 갔다.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잘 알다시피 북부의 전선은 점차 우리에게 불리해져 가고 있네.”
크림슨의 말에 모든 수뇌부가 고개를 숙였다.
지금도 병사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전선이었고, 그마저도 이제는 후퇴를 결정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렇기에 북부에 있는 모든 수뇌부가 결정을 내렸다.
후방을 생각하지 말자고.
모든 병력을 이곳에 집결시켜 적을 섬멸하자는 결의에 동의했다.
그리고 오늘, 크림슨이 북동부의 모든 병력을 이곳으로 집결시켰다.
사령부와 요새들을 지킬 병력만 남기고 군단과 사단급 병력 대부분을 이곳으로 모은 것이다.
당연히 후방에서 몬스터를 섬멸 중이던 아이언 역시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단기전으로 가야 하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적을 섬멸하는 것. 이 안에 대해 사자가주와 북부 사령관, 그리고 그 밖의 주요 영주들 모두가 동의했네. 우린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어.”
본래라면 중앙에서 도움을 받으며 전선을 유지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중앙을 비롯해 제국 전역이 혼란스러운 상황이기에 다른 지역에서 어떤 도움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오로지 북부의 힘만으로 지금의 위기를 타개해 나가야 했다.
“사실 자네들을 불러 모은 건 앞으로 있을 본격적인 전쟁에 대해 설명하기 위함이네. 어쩌면 전멸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기에 병력에게 그것을 주지시키고,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명할 참이었네.
크림슨의 말에 수뇌부는 다들 입을 다물고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다들 어느 정도는 마음을 다잡고 왔기에 혼란에 빠진 자들은 없었다.
북동부의 군인들이라면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금 전, 내 눈으로 우리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 방법을 찾았네.”
크림슨이 눈을 빛내며 아이언을 바라보자 전 수뇌부가 시선이 크림슨을 따라서 그를 향했다.
“아이언 중령.”
“예.”
“방금 전에 있던 전투에 대해 설명을 해 주겠나?”
크림슨의 부탁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수뇌부의 표정이 환해졌다.
통신으로 들었을 때와 달리 직접 신성력을 보여 주면서 설명하자 그들의 표정에 믿음이 깃든 것이다.
“성흔이라……. 성국이 알면 난리 나겠군.”
설명을 전부 들은 크림슨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하자 다들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로도 모자라서 이젠 성흔이었다.
성녀, 혹흔 성자들에게 나타난다는 성흔.
신의 사도라는 증거이자 막대한 신성력을 뿜어낼 수 있는 힘의 근원이, 가뜩이나 가진 것 많은 아이언에게 나타난 것이다.
“후…… 소문이 퍼져 나간다면 앞으로 아이언 중령을 지키기가 더 어려워지겠어.”
크림슨이 골치 아프다는 말투로 말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자신의 군에 사도가 나타났다.
그것도 공허의 존재들에게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사도가.
“앞으로 모든 작전은 아이언 중령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할 걸세. 이에 동의하나?”
“동의합니다!”
크림슨 사령관의 제안에 모든 수뇌부가 곧바로 동의했다.
일반적으로 신성력은 삿된 힘을 멸하는 데 탁월한 힘을 보인다.
하지만 모든 사도가 똑같은 신성력을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어떤 이는 치유의 힘을.
어떤 이는 오러와 같은 무인의 힘을.
어떤 이는 불이나 물 같은 친화력이 가미된 신성력을 사용한다.
또 어떤 이는 마법을 통해 발현해야만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제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사도들의 신성력.
천편일률적인 일반 신관들과는 다르게 사도들은 그 개성이 뚜렷했다.
그리고 새로이 사도가 된 아이언의 개성은 다행스럽게도 공허의 존재들에 대한 압도적인 우위였다.
“다크 엘프들이 아이언 중령이 사도가 되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 시간부로 아이언 중령에 대한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 알겠나?”
“예!”
“고스트들의 임무 역시 앞으로는 아이언 중령의 호위가 될 걸세.”
“알겠습니다.”
크림슨의 명령에 모든 수뇌부가 대답하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아이언이라는 압도적인 ‘무기’를 획득한 북동부군은 그날부로 전군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병력이 모인 만큼 어영부영 시간을 끌 순 없었다.
단기전으로 끝장을 볼 생각과 동시에, 다크 엘프들이 아이언에게 대항할 준비를 마치기 전에 그들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북동부군의 판단은 옳았다.
“사…… 사도…….”
공허의 힘에 잠식된 숲이 정화되고, 대항하려는 의지마저 잃은 채 널브러지는 다크 엘프들.
그리고 수천수만의 공허충들이 재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보자 북동부군의 사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헉……헉…….”
“괜찮나?”
칼 구스타프가 지친 표정의 아이언을 보면서 물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신성력이었지만, 사용할수록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분명 마나나 신수력처럼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동부에서 사용했던 것과는 다르게 신성력을 사용할수록 쉽게 피로해졌다.
그렇게 방금 전처럼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면 자신도 모르게 휘청거렸다.
이러한 약점을 아는 듯, 다크 엘프들이 아이언을 노리고 공격해 들어왔지만 북동부군 전체가 아이언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기사단부터 비룡 기사단까지 죄다 아이언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고, 심지어 아이언 옆에는 고스트와 크림슨이 직접 자리해 있었다.
그렇게 북동부군의 과하다 싶을 정도의 보호 속에서 아이언은 천천히 숲을 정화하며 전진을 시작했다.
이제껏 밀리기만 했던 인류 군대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