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15)
39. 최전선으로! (3)
만약 정상적인 부대였다면 쓸 만한 걸 넘어 정말 특수부대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중령 신분으로 기사단, 레인저, 포병이 포함된 병력 구성을 언제 만져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대부분이 신참, 훈련병, 부상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쓰레기네.”
아이언이 중얼거린 소리에 아리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말처럼 정말로 쓰레기는 맞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사는 전원 4단계라 다행인가?”
“미안.”
“응?”
갑자기 사과하는 그녀를 보면서 아이언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3단계도 좀…… 있어.”
“북동부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닐 텐데? 사령관님이 허락하셨다고?”
아이언의 물음에 아리엘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언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북동부군이다.
솔직히 영지군이야 3단계도 못 되는 기사들이 수두룩하다지만 다른 곳도 아닌 북동부였다.
게다가 사령부 직속 기사단이다.
북동부에 몬스터가 넘쳐 나던 시절에도 4단계가 되어야 정식 기사로 임명했던 북동부인데 그 관례를 이번 전쟁에서 깬 것이다.
“그걸 지키기엔 너무 많이 죽었어. 견습 기사로는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으니까……. 일단 올려놓고 실전을 쌓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결정이 났어.”
“그 정도야?”
“응. 우리 조는 견습 기사들 전원을 채워 넣었어도 완편이 안 되었어.”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
“3단계 애들을 넣었다면 그냥 3단계 애들 더 뽑아다 완편해도 되잖아.”
“견습 기사였던 애들에 한해서라고 못 박기도 했고, 다른 곳에서 빼 올 인원도 없어. 다들 인원 없다고 허우적거리는데 우리만 완편하겠다고 욕심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선배들이 대부분 2~3조로 갔으면 4조는…… 정식 기사가 아니었어야 할 놈들로 채워졌겠네?”
“……응.”
“하! 미치겠다. 설마 레인저도 그 꼴이야?”
“비슷할 거야.”
아리엘의 대답에 아이언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 아이언의 모습에 아리엘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수뇌부는 최악의 조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그걸 확인하고자 한다더라고.”
“애초에 중령급인 내가 기사단과 레인저를 이끄는 게 이상하긴 했지.”
억지로 인원수만 맞춰서 대대급 병력처럼 만들어 놨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그래서…… 할 거야?”
아리엘의 물음에 아이언이 잠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고스트로 복귀는…… 힘들겠지?”
“그건 네가 정상이었어도 힘들었을 거야.”
“왜?”
“고스트들은 전부 북부의 숲 심층부에 가 있는 상태거든. 오늘 당장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몬스터들을 뚫고 갈 병력을 짜려면 시간이 좀 걸려.”
아리엘의 설명에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 그래. 어차피 내가 목표했던 것이 몬스터 섬멸이었으니 잘됐지. 자율권은 보장되지?”
“아마? 그것도 안 주면 네가 하지 않으려고 할 게 뻔하니…….”
“그럼 됐어.”
고작 대대급 병력에 불과하지만 일반적인 병력이 아니었다.
기사단, 레인저, 포대, 그리고 부상당했지만 경험 많은 병사, 장교, 부사관이 배치되어 있는 부대였다.
잘만 키워서 써먹는다면 훌륭한 부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걸 알뜰살뜰 키워서 내가 하고 싶은 작전을 펼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정말 하려고?”
“어.”
“이런 부대로 뭘 하게?”
“처음부터 좋은 부대가 어딨어? 고쳐 쓰고 키워 쓰고 하는 거지.”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까지 가야 해?”
“어……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네가 한다고 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특별히 시간제한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부대도 전부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이번 주 안으로 갈게. 그때까지 전부 모아 주기나 하라고 해.”
“……알았어.”
아리엘이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직속상관이 되서 불편하냐?”
“음…… 그런 것도 조금은? 그보다는 괜히 정쟁에 휘말리는 것 같아서 찜찜해.”
“그런 거 없는 곳이 어딨어.”
아이언의 말에 아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북동부는 그런 게 적은 편이었는데 요즘 들어 점점 많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리엘이야 어렸을 적부터 북동부에 있었기 때문에 적응이 힘들더라도, 아이언은 아니었다.
그냥 오랜만에 느껴 보는 기분일 뿐.
전생에 지긋지긋하게 겪었던 일이고, 이런 건 애들 장난으로 여겨질 만큼 이용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별다른 기분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잔챙이들이야 전쟁이 끝나면 전부 정리될 것이니 중요한 건 황실의 개입인데, 중앙이 시끄러운 상황에서 지들 앞가림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북부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한마디로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에 아이언은 지금의 상황이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최악의 상황은 면했으니 그걸로 됐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아리엘을 보내고 몸을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며칠이 흐르고, 최전선으로 가기 위해 사자성의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괜히 사람들이 많으면 미안하기에 일부러 새벽을 틈타 움직였는데 한 청년이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가냐?”
“그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카이덴이 검을 뽑아 들었다.
“가기 전에 한판 붙자.”
“부상자랑?”
“다 나았으니까 가는 거 아니냐?”
카이덴의 물음에 아이언이 입을 다물었다.
무식하게 생겨서는 은근히 머리가 돌아가는 타입인지 카이덴이 허튼소리 한다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너 혼자 갖고 되겠냐? 다 데리고 한꺼번에 덤벼도 모자랄 텐데.”
아이언이 귀찮다는 듯 말하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 왔네.”
카이덴이 심드렁한 말투로 아이언에게 말했다.
둘째 카이덴부터 셋째 세리덴, 루뎀·로뎀 쌍둥이 형제까지.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정식으로 요청하지. 제이든 레온하르트에게 직계의 대표로 사자의 시험을 요청한다. 받아들이겠나?”
카이덴의 말에 아이언의 동생들이 일제히 기세를 끌어 올렸다.
“사자의 시험이란 무력으로 소가주가 되기 위해 인정받는 방법 중 하나일 터. 난 해당 사항이 없을 텐데?”
아이언의 말에 카이덴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자검식을 사용하지 않으며 가문에서 나왔기에 소가주가 될 자격은 없지. 게다가 직계 전체가 모이지 않았기도 했고.”
“그런데 왜?”
“그냥.”
“뭐?”
카이덴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한번 보고 싶어서 명분 하나 만들어 본 거뿐이야.”
카이덴의 말에 다른 형제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6단계에 올랐다는 소문, 그것이 사실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가문을 버릴 만큼 네가 선택한 길이 가치가 있는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카이덴의 솔직한 물음에 아이언이 입을 다물었다.
“웬만하면 받아들여 주라, 형님 피맛 좀 보게.”
세리덴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말하자 아이언이 미간을 찌푸렸다.
“쟤는 진짜냐, 컨셉이냐?”
“몰라.”
카이덴이 관심 없다는 듯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후…… 그래. 몸 좀 푼다고 생각하지 뭐.”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기세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카이덴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사자의 시험을 받아들이겠나?”
“그러지.”
“좋아.”
아이언의 대답에 동생들이 일제히 사자의 기운을 뿜어냈다.
직계답게 짙은 혈족의 기운이 사방을 메우기 시작했다.
전부 4단계에 들어선 무인들답게 개개인의 각기 다른 기세가 뿜어졌다.
5단계의 특성화된 마력은 아니지만 피의 힘으로 사자의 기운을 흉내 내며 날카롭고도 무거운 사자의 기운을 만들어 냈다.
“투기 같은데?”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며 얼마 전에 보았던 멧돼지 형상을 만들어 낸 오크 챔피언을 생각했다.
그 정도급은 아니지만 네 명의 마력이 뭉치자 사자의 형상이 만들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매서운 힘이 쏟아졌다.
“재밌는 걸 배웠네?”
사자가문의 직계들이 힘을 모았을 때를 대비하려 가르치는 기술.
‘사자신의 강림.’
혈사자, 은사자, 철사자는 각기 다른 진형과 기술을 배우지만 그 원류가 바로 사자신의 강림이다.
높은 경지의 기사들이 마나의 파장을 맞췄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기술.
같은 사자검식을 배우고 비슷한 형태의 마력을 가져야만 가능한 기사단 고유의 기술.
그 원류가 직계들에게 전해지는 사자신의 강림이었다.
그리고 이 기술이야말로 사자의 시험을 받는 이들에게 쓰이는 고유한 기술이었다.
“미숙하네. 그걸로 내 강철을 깨뜨릴 수 있겠어?”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온몸에 검은 마력을 퍼뜨렸다.
“그건 해 봐야 아는 법.”
카이덴이 짧게 대답하면서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그러자 뒤이어 세리덴과 쌍둥이들 역시 매섭게 달려들었다.
압도적으로 강한 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든 기술답게 사방에서 사자가 사냥하듯 철저하게 약점을 공략해 왔다.
발톱으로 내리찍는 것 같은 카이덴의 검술.
집요하게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세리덴의 검술.
사냥감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며 서서히 죽여 나가는 쌍둥이의 검술.
제각기 다른 형태의 검술들이 아이언의 강철을 뚫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아이언의 몸에 닿지 못했다.
단순한 검술에 수많은 경험이 녹아들어 완성된 아이언의 검술은 묘했다.
일반적인 검술 형태에서 벗어난 괴이한 움직임 속에서도 단단함이 깃들어 있었다.
수없이 기본 형태를 수련한 끝에 어떠한 움직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형님의…….’
‘길인가?’
‘길이야?’
카이덴과 직계들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단단한 아이언의 검술에 튕겨 나갔다.
어떤 이는 검술을 펼치면서 충격파를 만들어 내고.
어떤 이는 참격을.
어떤 이는 폭풍을.
어떤 이는 뇌전을.
어떤 이는 환영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아이언은 어떤 특징도 없었다.
이것이 6단계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특색이 없었다.
하지만 붙어 보면 알 수 있었다.
어떤 화려한 특징이 없지만 그 속에 감춰져 있는 단단함을.
그 어떤 검술에도 밀리지 않는 검술이 아이언의 몸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헉……헉…….”
카이덴이 지친 표정으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항상 미소를 짓고 있던 세리덴은 미소를 잃었으며, 쌍둥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시험은 끝났냐?”
“……그래.”
“그래서 평가는?”
아이언의 물음에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카이덴이 조용히 말했다.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을 축하한다. 벽을 뚫고 완성되는 그날까지 응원하지.”
“강철의 길을 인정합니다.”
“인정합니다.”
“인정합니다.”
카이덴의 뒤를 이어 형제들 전원이 아이언이 가는 길을 인정했다.
전생에 그토록 무시당했던 아이언이 현생에서는 가문을 나와 다른 검술을 익혔음에도 인정을 받았다.
오로지 강함으로 증명받는 곳.
그러한 사자가문의 직계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에 아이언은 묘한 감정이 일어났지만 애써 누르며 말했다.
“고맙다. 너희들의 길 역시 곧 찾게 되기를 기원하마.”
아이언의 말에 네 명의 직계들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길을 찾은 이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그런 그들의 예를 받아들인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폴덴은 어딨는 거냐?”
“그 녀석도 형님처럼 자신의 길을 찾으러 떠났습니다.”
세리덴이 존댓말을 하면서 말하자 아이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존댓말?”
“사자의 시험에서 인정받으면 그렇게 하기로 정했으니까요.”
세리덴이 그렇게 말하면서 카이덴을 바라보았다.
“정말이냐?”
“맞수.”
아이언의 물음에 구수한 사투리로 대답한 카이덴.
마치 여기까지가 마지노선이라는 것처럼 일부러 사투리를 사용하면서 대답하는 카이덴을 보면서 아이언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그 녀석의 길이란 게 뭔데?”
“정보 길드. 그곳에 들어가서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스스로 수장이 되어 돌아오겠다 했습니다.”
“음…….”
세리덴의 말에 아이언이 잠시 침음성을 터뜨렸다.
아무리 재능 좋은 사자혈족이라도 스무 살 때까지 정보길드 하나를 접수하는 건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도 이 정도 공을 세울 줄은 예상 못 했으니 폴덴이라고 꼭 못하리란 법은 없었다.
“그래. 뭐…… 시험을 통과하긴 했어도 소가주 자리에는 관심 없으니까 걱정 마라.”
아이언이 일부러 안심시키듯 말했지만 직계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마음대로 하슈, 나야 상관없으니.”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나도.”
“나도.”
카이덴의 말에 세리덴이 웃으면서 대답했고, 쌍둥이들은 손을 들어 올리면서 활짝 웃었다.
소가주 싸움이 불리하다는 것보다 강한 형님이 와서 기쁘다는 듯 활짝 웃는 쌍둥이들과 세리덴.
그리고 애써 인정하기 싫은 티를 내지만 카이덴 역시 기분은 좋아 보였다.
“방심하지는 마슈, 몇 년 내에 거기까지는 따라잡아 줄 테니.”
“그래.”
카이덴의 귀여운 경고를 들은 아이언은 피식 웃고는 작별 인사와 함께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후 환한 빛과 함께 아이언이 사라지자 근처에 사자성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께 전해라, 우리는 형님을 인정했다고.”
카이덴이 그렇게 말하고 저택으로 향하자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