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14)
39. 최전선으로! (2)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한 여성이 들어왔다.
“어? 넌…….”
아이언이 놀란 표정으로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야.”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네.”
아카데미 이후 여기저기서 활약했다는 걸 소식으로만 들은 아리엘 파브리스가 웃으면서 들어왔다.
“또다시 엄청난 활약을 했던데?”
“그냥 살려고 발버둥 친 거지.”
아리엘의 칭찬에 아이언이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아리엘의 눈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비록 마지막뿐이지만 사자성의 혈투의 결과를 전부 본 아리엘 입장에서, 끝까지 생존해 승리를 이끌었던 아이언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소문만 듣는 것 이상으로 아이언의 전공은 훌륭했다.
괜히 사자성의 사람들이 아이언을 존경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내심 부러웠다.
자신과 같은 나이에 벌써 몇 차례나 믿을 수 없는 전공을 세우고 있는 아이언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전투에 임했다.
분명 아리엘 자신도 제국의 다른 신성들보다 몇 걸음 앞서 있는 상황임에도 아이언의 소식을 듣게 되면 항상 위축되었다.
하지만 이번 사자성의 혈투를 보면서 그냥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전공을 세우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모르면서 그저 결과만 보고 부러워한 셈이었다.
“그런데…… 그 몸으로 최전방에 지원한 거야?”
“음…….”
아리엘이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포션의 효과가 좋다지만 단기간에 부러진 뼈까지 붙여 주진 못했다.
게다가 마력이 담긴 검상 같은 경우 상처가 봉합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두어야 했다.
그나마 뱁새의 치유력으로 빠르게 호전되고 있지만 완치까진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움직일 만해.”
아이언이 애써 그렇게 말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아리엘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 몸으로 최전선은 무리야.”
아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의 눈을 바라보았다.
“너…… 아직 최전선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
아리엘의 물음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같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어. 매일매일 누군가가 죽어 나가고, 그 빈자리를 신입이 메꾸는 걸 반복해.”
“…….”
아리엘의 공허한 목소리에 아이언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전생에 겪었던 수많은 전투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죽어 나간 수많은 병력들을 떠올리며 아리엘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기에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어.”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가야 해.”
아이언의 말에 아리엘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내가 조장이 된 이유…… 궁금하지?”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유는 짐작할 수 있으나 그녀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입을 다물었다.
“조장이…… 죽었어. 선배들도 죽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된 거야. 우리 조에서 내가 제일 강하니까.”
아리엘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5단계에 근접했기에 기사단에서 그녀의 서열도 높을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에 상당히 많은 기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리엘이 조장을 맡았다?
그렇다는 건 그 많은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북동부에서 몬스터 웨이브와 수많은 작전을 펼칠 때도 이 정도로 많은 기사들이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다크 엘프와의 전쟁은 달랐다.
제대로 준비해 온 다크 엘프들은 겨울산과 북동부에서의 실패를 교훈 삼아 치밀한 작전을 구상했고, 덕분에 북부군과 북동부군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져 나갔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아리엘이 속한 기사단이었다.
“거기도 힘들구나.”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자성 역시 힘들었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지원군을 보내는 게 늦어질 정도로 최전선은 최악이었다.
울먹이는 아리엘을 보면서 침묵으로 그녀를 위로하던 아이언이 조심히 물었다.
“그런데 최전선이 바쁘다면서 이렇게 내 병문안 올 시간도 있어?”
아이언의 물음에 그녀가 울먹이던 것을 멈추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널 데려가려고 온 거야.”
“나?”
“응.”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반 부대도 아니고 기사단에서 날?”
아이언의 말에 아리엘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한동안은 나와 같이 움직이게 될 거야.”
“후…… 갑자기 이게 무슨…….”
아이언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단에 소속되는 건 단순히 실력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기사단은 오랜 시간 합을 맞추면서 보유하고 있는 진형 등을 연습하며 뭉쳤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집단이었다.
게다가 서로 간에 마력 흐름을 맞추면서 상대를 압박하기도 하는 등 단순한 대형을 갖추는 것 이상의 합이 필요했기에 아이언이 기사단에 소속되어 봤자 불순물처럼 방해만 될 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외부인이 기사단에 소속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이언의 물음에 아리엘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후…… 사실 난 널 말리려고 온 거야.”
“날 말리러 왔다고?”
“응.”
“이유는?”
“이대로 최전선으로 간다면 넌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가게 될 거야.”
아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의 몸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있는 몸으로 최전선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는 걸 방관할 수는 없었다.
“후…… 자세히 말해 봐.”
아이언이 비상한 머리로 최전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눈치채고는 아리엘에게 상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머뭇거리는 아리엘이었지만, 아이언이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며 재촉하자 하는 수 없다는 듯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설명은 간단했다.
1. 최전선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병력 공백이 심화되고 있다.
2. 한 명이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데려온다는 입장과 부상자까지 데려올 수는 없다는 입장이 대립한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중상자라도 포션으로 응급처치를 한 상황이라면 일단 싸울 수는 있었다.
게다가 경험 많은 자들이라면 신참보다는 훨씬 도움이 되는 상황.
한 사람이 아쉬운 판국에 평시와 똑같은 판단으로 후방으로 뺐다가 다시 복귀시키는 건 시간 낭비라는 지휘관들의 판단도 맞기는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3. 전쟁이 심화되면서 최전선에 있는 부대들이 하나둘 고립되기 시작한다.
이런 고립된 부대들을 구하기 위해 병력을 모아야 하는데, 문제는 최전선 어디에도 따로 병력을 빼낼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전선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운 실정이니 당연했다.
그렇다 보니 후방에서 신참, 혹은 아직 훈련 중인 병력들까지 빼 와서 부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당연히 부상자들 중 어느 정도 회복된 병력들은 즉시 복귀시켜 구원 병력으로 써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고, 안 된다는 입장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와중에 아이언이 최전선으로 자원한다는 서신이 온 것이다.
부상자와 훈련병까지 끌어와 전쟁에 승리하고 보자는 과격파 vs 최소한의 선은 지키자는 온건파.
이 둘의 대립 속에 아이언의 최전선 지원 소속이 왔으니 더 격렬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아이언의 지휘 능력을 높게 평가하며 부상자라도 지휘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과격파의 말에 고립된 아군을 구하는 특수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임무를 주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그것도 최전선의 부상자들과 신참들 위주로 구성된 병력.
되면 좋고 안 돼도 큰 부담 없는 병력들로 부대 하나를 만들어 시험하는 것이다.
전선을 유지하는 베테랑들을 아낄 수 있어 좋고, 시험 부대인 만큼 과중한 임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차근차근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기에 온건파도 크게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물론 그냥은 아니야. 네가 원하는 걸 우선적으로 들어줄 생각인 것 같아.”
“내가 원하는 거?”
“그래, 사자성에서 네가 말했던 것.”
“설마…….”
“그래, 몬스터 토벌.”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수로?”
고립된 아군을 지원하는 게 주된 임무라고 들은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들에게 고립된 병력들이 있거든. 일단 우선적으로 그들을 구하는 것으로 너와 임시로 조직된 특수부대의 능력을 시험하는 거지.”
“만약 거기서 성과를 거두게 된다면 더 위험한 지역으로 파견되겠군.”
“맞아, 점차 위험한 지역으로 임무를 주면서 경험을 쌓게 하고 최종적으로는 지휘관들이 원하는 최전선 안쪽까지 보내는 임무를 수행하게끔 할 거야.”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왜 꼭 나야?”
아이언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자신이 활약했어도 몇 년 되지도 않는 어린 장교 중 하나에 불과했다.
북부 전체를 생각해 보면 자신 이상 가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게다가 지휘관으로서 아이언이 보여 준 건 사자성에서 혈투 한 번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널 견제하려는 걸 거야.”
“견제?”
‘견제를 하는데 왜 자신을 지휘관으로 두지?’라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납득했다.
보여 준 거라고는 고작 사자성 혈투 한 번뿐.
하지만 레온하르트 장자라는 신분으로, 과장되었다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지휘 임무를 맡겼을 때 실패할 확률이 높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굳이 날 견제까지 해야 할까?”
“응. 최근에 네 신분이 밝혀졌잖아.”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동부에서 밀어주는 신예. 게다가 레온하르트의 장자.”
“설마…….”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북부군 입장에선 부담스럽겠지. 게다가 북동부군 내에서도 말이 많아. 만약 네가 레온하르트의 소가주가 된다면 북동부군에서도 입김을 발휘해 자신들의 독립성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니까.”
“하…… 뭐 이런…….”
아이언이 욕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 냈다.
“온건파 중에 널 견제하려는 사람들이 과격파의 계획에 찬성하면서 이 부대가 만들어진 거야.”
“미치겠네. 북동부군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고?”
아이언이 아는 한 사령부 내에서 그런 사람들은 없었다.
선봉, 산악, 안개 군단장을 비롯해서 철벽, 레인저, 기사단을 이끄는 사단장급 존재들.
사령관.
고스트들.
엘리트급 장교들까지
전부 이런 정쟁이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이런 아이언의 의문에 아리엘은 한숨을 쉬면서 답해 주었다.
“군수 쪽 사람들과 후방 지휘관들.”
“아…….”
“그쪽 사람들 중 대부분이 북부의 영주들과 중앙 쪽 인사들과 연이 깊어. 북부군에서도 군수 쪽 사람들이 너에 대해 말이 많았나 봐.”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이런 상황에 정치질이라니…….”
아이언의 말에 아리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병력 구성은 어떻게 되는데? 딸랑 기사단 하나야?”
“아니. 내가 이끄는 기사단 4조, 그 밖에 레인저 5조, 그리고 경험 많은 자들로 꾸린 2개 중대, 1개 포대 정도?”
“생각보다 구성이 좋네?”
아이언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내가 이끄는 4조는 대부분 신참으로 구성되었어. 본래 있던 선배들은 전부 3조나 2조로 빠졌거든. 아마 레인저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리고 2개 중대는 대부분 부상자와 이제 막 훈련병에서 벗어난 신참들일 거고. 포병이야 부상의 유무는 크지 않으니까…….”
설명을 들은 아이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리엘에게 물었다.
“이딴 병력으로 뭘 하라는 거야?”
아이언의 물음에 아리엘이 어깨를 으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