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13)
39. 최전선으로! (1)
사자성의 혈투가 끝난 후, 모든 사람들은 곧바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성을 지킨 사람들 중에 다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만큼 치열한 전투였기에 의무실은 물론 밖에 만든 간이 의무소마저 미어터져서 맨바닥에서 치료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치는 것뿐이었다면 차라리 나았다.
팔이 잘렸어도 신관과 포션이 있다면 다시 붙일 수 있고, 짓뭉개졌어도 오랜 시간 공들이면 치료는 가능했다.
이러한 부분이 현대와 다른 점이다.
신성력과 포션이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 덕분에 살아만 있다면 웬만한 건 전부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내는 건 이곳에서도 불가능했다.
“……연……대……장님.”
마른 나뭇가지처럼 뚝뚝 끊어지는 음성으로 전사한 쥬코프 연대장을 바라보는 북부군의 장교들.
비록 절대적인 한계치 때문에 대령에서 진급을 멈추었으나 북부군 내에서 베테랑이라 불리며 장성급에서도 존경받던 사람 중 하나였다.
실제로 장성급에 오른 후 은퇴하라는 권유조차 거절하며 현역 의지를 불태운 사람이었다.
어떤 이는 후배의 앞길을 막는 것 아니냐는 말을 했지만, 북부군의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수없이 죽어 나가는 북부군에서 수십 년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현역으로 남아 있다?
그건 그 자체로 고마운 일이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전부 은퇴를 계획하기 때문이다.
삶의 마지막은 편해지고자 하는 게 사람의 심리인데 쥬코프 대령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끄흡! 연대장님!”
“이리 가시면 안 됩니다!”
“연대장님!”
살아남은 북부군의 정예 병력이 쥬코프의 죽음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동문에 배치된 북부군 전원 사망.
장교부터 병사까지 동문에 배치된 북부 병력은 전원 사망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영지군과 소수의 경비대 인원들뿐.
그만큼 북부군이 처절하게 싸우며 앞을 막아섰다.
이들의 이런 희생 덕분인지 영지군과 경비대 역시 마지막까지 항전하며 고블린들이 사자성에 혼란을 주려는 목적을 막을 수 있었다.
“북부군은 누구보다 용맹했으며 사자성은 북부군의 고결한 희생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실베스티앙이 대표로 북부군을 위로했다.
하지만 북부군 중 그 누구도 이 위로에 감사하다 말하지 않았다.
그저 쥬코프와 동료들의 희생을 슬퍼하면서 멍하니 그들의 시신이 담긴 관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러한 일은 북동부군에서도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싸운 덕분인지 북동부군도 다수가 죽었고, 그들의 지휘관인 아이언 카터 중령 역시 중상을 입고 깨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죽을 자리로 간다고 생각했던 기사단이 생존율이 가장 높았다.
직계는 물론 실베스티앙을 비롯한 고위 기사들도 전원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사자성의 병사들 입장에선 북부군과 북동부군에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관할 지역이 아님에도, 목숨 걸고 막아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자성의 영웅들!]
짤막한 제목.
하지만 이 신문 기사의 제목은 북부에서 싸우는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신문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자성의 혈투’의 상세한 내용들.
[북부군은 용맹하게 싸우며 모두가 전사하는 노력 끝에 동문을 지켜 냈으며.
북동부군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전투에도 마지막까지 성문을 사수하였으며.
사자성의 기사들은 죽을 자리인지 알았음에도 용맹하게 돌진했다.
성안의 모든 병력 역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며 끝끝내 성벽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사자성의 혈투는 모두의 노력으로 승리한 기적적인 일이었다.]
마법 기록물에 담긴 것을 바탕으로 흑백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사자성의 처절했던 장면을 담아 냈으며, 소소한 생존자들의 증언까지 신문에 담기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점차 밀려가는 최전선에 모두가 지쳐 갈 때 말도 안 되는 전공을 세운 이들에 의해 북부 전체의 사기가 올라갔다.
그리고 또 하나!
북동부를 지켰던 영웅이 다시 한번 북부를 지켜 내자 사람들은 아이언 카터라는 이름을 머릿속 깊이 박아 넣었다.
동부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통해 간간이 아이언의 이름을 들었던 사람이지만 당장에 북부가 급했던 터라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북부에서 말도 안 되는 전공을 세우며 다시 한번 그 이름을 알린 것이다.
며칠 만에 북부 전역으로 퍼진 사자성의 혈투는 북부를 넘어 제국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자성의 소식에 모두가 흥분할 때, 기절했던 아이언 역시 의식을 회복했다.
“큭!”
“여…… 연대장님!”
아이언이 깨어난 걸 확인한 의무병이 황급히 치료사와 신관을 부르기 위해 뛰어나갔다.
얼마 후, 치료사와 함께 장교 몇 명이 함께 들어오자 아이언이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전……투는?”
아이언이 쩍쩍 갈라지는 음성으로 묻자 그들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끝났습니다. 몬스터 군단이 물러갔습니다.”
장교의 말에 아이언이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선 그 후의 일을 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문을 막느라 정신없었던 터라 알지 못했던 사자성의 일들을 하나하나 듣게 되었다.
“쥬코프 대령께서 그리 가셨나?”
아이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령께선 북부 사령부로 가셨나?”
“아닙니다. 아직 사자성에 남아 계십니다. 간소하게나마 사자성 사람들의 방문을 받아 장례식을 진행하고 사령부로 보내 정식 절차를 밟으실 걸로 보입니다.”
장교의 말에 아이언이 인상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아직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치료사가 기겁하면서 만류하자 아이언이 몸 상태를 확인했다.
“움직일 만한 것 같은데…….”
“의식을 회복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이 불안정하십니다.”
“전사자들만 보러 다녀오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얌전히 말을 따르겠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장교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치료사도 잠시 침묵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치료사의 허락까지 받아 낸 아이언은 장교들의 부축을 받아 북부군과 북동부의 전사자들이 안치된 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눈에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관이 사자성의 광장에 정렬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중앙에 쥬코프 대령의 관이 투박하게 장식된 채로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쥬코프 대령의 관에 도착한 아이언은 말없이 그의 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북동부군과 북부군의 다른 전사자들까지 돌아본 아이언은 가만히 눈을 감으며 광장에 임시로 만들어진 추모비에 조용히 꽃을 올려놓았다.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이고는 그들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전생에서도 수없이 느꼈고, 현생에서도 동료의 죽음을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때보다 더 침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부족한 병력과 물자.
어쩌면 전멸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두가 힘을 합쳐 성을 지켜 냈다.
하지만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 있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북부군과 북동부군 중에 사자성의 혈투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이언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자신도 그중 하나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살아남았기에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나 전투가 끝난 후가 제일 힘들군.”
아이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장교들의 부축을 받아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사자성의 사람들 모두 무거운 마음으로 추모비를 바라보았다.
전투가 끝난 것에 환호하던 자들도 무거운 표정으로 전사자들을 추모했다.
그렇게 모두가 전사자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추모한 후, 마침내 북동부 사령부와 북부 사령부에서 비공선이 날아왔다.
전사자들의 관을 먼저 전부 태워서 옮긴 후, 살아남은 병력 역시 하나둘 사령부로 데려갔다.
아이언 역시 중상자 명단에 적혀서 사령부로 이송해야 하지만 그가 거부했다.
대신 사자성으로 찾아가 수뇌부에게 말했다.
“이대로 놔두면 몬스터 군단은 다시 세력을 규합해 나타날 겁니다. 그 전에 몬스터들을 섬멸해야 합니다.”
아이언이 냉철한 눈으로 말했지만 아쉽게도 사자성의 병력은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여력이 없었다.
영지군이라도 모아서 다시 훈련시켜 보면 좋겠지만 그것도 힘들었다.
그들 역시 최전선의 부족한 병력을 메꾸기 위해 대거 차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사자성을 지키는 건 북부 사령부와 북동부 사령부에서 추가로 보낸 대대급 병력이 전부였다.
아이언 역시 이를 잘 알았지만 이대로 놔두면 몬스터 군단은 다시 생겨날 것이기에 마음이 조급했다.
힘들더라도 지금 움직이는 게 백번 낫지만 말로 설명해 봐야 알아들을 리 없었다.
‘쥬코프 대령이라도 계셨다면 동조해 주셨으려나?’
경험 많은 쥬코프 대령이라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쥬코프라면 위험을 감수하고 움직였을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새로 온 대대장들은 위험을 삼수하기보단 안정을 택했다.
같은 중령이고 자신보다 짬밥도 많은 자들이라 강제하기 어려웠다.
사자가문의 장자라는 신분을 드러내며 압박할 수도 있겠지만 수뇌부를 보아하니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따라 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 역시 극심한 피해를 복구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몬스터 군단이 다시 만들어져 쳐들어온다?
솔직히 이런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는 게 이상한 일이다.
몬스터들 역시 이번 전투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고, 오히려 다른 몬스터 세력에 잡아먹히는 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생에서 몇 번이나 몬스터 군단을 상대해 온 아이언의 경험상 몬스터들은 남쪽으로 내려가고자 다시금 세력을 뭉쳤었다.
그때도 그리했으니 이번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기에 아이언은 결국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결국 씁쓸한 표정으로 사자성을 나온 아이언은 곧바로 연락병을 찾아갔다.
“후…… 최전선으로 복귀한다고 전하게.”
연락병에게 자신의 뜻이 담긴 서신을 전하자 그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 몸으로 최전선으로 가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연락병의 물음에 아이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자신이 어렸을 적에 생각했던 것처럼 이곳이 현실이 아니었다면…….
현대로 돌아가는 것만 생각해도 되었다면 절대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몸과 융합된 이 육체는 이제 진짜 자신이었다.
또한 돌아가는 상황이 이곳의 결과에 따라 현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전생처럼 북부가 다시금 몬스터에 의해 혼란에 빠지는 걸 좌시할 생각은 없었다.
“최전선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치유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미 온몸에 포션을 들이부어서 그런지 외상은 거의 다 치유되었다.
남은 건 내상.
그것도 뱁새의 능력이라면 빠른 속도로 치유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이언은 몸 상태를 치유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이며 최전선으로 배치받을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최전선에서 장교 하나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