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02)
35. 동부의 영웅 (1)
아틀란티스가 무너졌다.
인어족의 신이 죽은 그날, 아틀란티스 역시 무너져 내리면서 인어족의 찬란한 문명은 푸에르 군도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바다의 보주만은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신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정화가 자신의 유일한 임무라는 듯, 끊임없이 오염된 마나를 정화하고 그 정화된 마나를 연료 삼아 다시금 주변의 마나를 정화했다.
아이언이 뒤로 후퇴했음에도 스스로 정화의 힘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 푸에르 군도 주변을 쓸어버렸다.
그 덕분에 차원 게이트에서 나오는 오염된 마나들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되면서 전황은 점점 더 동부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신의 죽음에 슬퍼하던 것도 잠시뿐, 바다의 분노가 가라앉으며 인어족과 인간의 전쟁은 재개되었다.
보주를 빼앗기고 아틀란티스가 무너졌으나, 차원 게이트와 바다의 군대는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인어족은 끝까지 항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부군은 사력을 다해 전쟁에 임했으며 북동부 군대 역시 그것을 도왔다.
바다의 보주를 지키기 위한 동부군과 북동부군의 연합 전선.
차원 게이트를 중심으로 뭉치는 인어족의 바다의 군대.
이 2개의 진형이 서로 물고 물리는 전투를 벌여 가면서 치열하게 싸웠다.
한 가지 의외인 건 모험가와 용병, 이세계인 역시 남아 있다는 점이다.
푸에르 군도의 산호초 섬이 모여 있는 곳에 아틀란티스가 가라앉은 탓인지, 이세계인들은 인어족과의 전쟁에 참여하면서 아틀란티스에 남아 있는 보물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중 가장 앞서 나가는 건 하얀 고래였다.
자신들이 목표했던 것이 모두 무산된 것에 분노했는지 미친 듯이 푸에르 군도를 뒤져 가며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 움직였다.
오염된 마나와 생명체들이 부식된 문명의 잔재들이지만 여전히 가치가 높았기에 팔면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상태가 좋은 건 정화만 한다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바다의 오랜 문명을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 그런지 하나같이 가치가 높은 것들이기에 모두가 눈이 뒤집어졌다.
“내 거다!”
“꺼져! 내 거야!”
“저기다! 저거!”
모두가 푸에르 군도에 있는 수많은 보물들을 차지하기 위해서 혈투를 벌이는 동안 인어족과 동부군은 바다에서 지지부진한 싸움을 이어 갔다.
그러는 사이 제국의 상황은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인어족과 싸우는 동부는 물론이고, 조인족과 싸우는 서부, 수인족과 싸우는 남부 역시 전황이 좋지 않았다.
최악인 것은 북부였다.
다크 엘프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오염된 숲의 군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차원 게이트 너머에서 온 괴 식물들부터 다크 엘프처럼 타락해 버린 엔트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다 악마의 나무인 트렌트, 타락한 정령 위습 등 타락한 숲의 군대가 북부를 점령했다.
북부의 위협이 되는 다크 엘프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북부군에서 북동부군에 다급히 지원을 요청했다.
인어족을 밀어붙이던 연합군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
하지만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전황을 북동부군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전달받자 크림슨으로서도 더는 무시하기 힘들었다.
북동부군은 북부군에 많은 병력을 지원한 데다 도움을 준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북동부 최정예군이 동부에 몰려 있기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결국 북동부군은 북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연합 전선에서 빠지기로 결정했고 동부 사령관 역시 이에 동의했다.
“거의 끝나 가는데 빠져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여기까지 도와주셨는데 나머진 알아서 해결해야죠.”
크림슨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자 리처드 버튼이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북동부군이 빠진다는 것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투를 지속할 수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공중은 개조한 비공선 부대를 이용해 막으면 되었고, 군도에서의 싸움은 이미 이세계인들과 용병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었기에 자신들이 손댈 일이 별로 없었다.
남은 건 해전뿐이었는데, 이 부분은 동부군의 장기였기에 자신들이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도 미안했는지 크림슨이 몇 개의 부대를 동부군에 남기기로 했다.
적어도 인어족이 완전히 푸에르 군도에서 물러날 때까지는 정예 병력 일부를 남겨 두기로 한 것이다.
2개 비룡 부대.
1개 기사단.
1개 레인저부대.
1개 마법 병단.
고스트 1명.
북동부군의 최정예 병력 중 일부를 뚝 떼어서 주자 리처드 버튼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이 정도 병력을 여기에 남기시려는 겁니까?”
“도중에 빠지는 것도 미안한 일인데 이 정도는 남겨 둬야 하지 않겠소?”
크림슨의 말에 리처드 버튼이 고마운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동부에 남는 고스트 1인의 이름을 보았다.
“……아이언 카터 중령?”
리처드 버튼이 멍하니 아이언의 이름을 말하자 크림슨이 쓴웃음을 지었다.
“왜 중령이 여기에 남는 겁니까?”
“스스로가 원했소.”
“예? 중령이 말입니까?”
“이곳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다고 했소.”
리처드 버튼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마무리 지을 일이 뭐가 있겠냐 싶은 표정이었다.
그러자 크림슨 역시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모쪼록 이곳에 남을 병력을 잘 부탁드리오.”
“모두 안전하게 살려서 북동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크림슨의 말에 리처드 버튼이 다짐하듯 말하면서 악수했다.
그렇게 두 사령관이 마지막 인사를 할 때, 고스트들은 아이언과 작별 인사를 했다.
“후…… 이 지긋지긋한 바다도 끝이구나.”
린텔이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처음 몇 시간만 상쾌한 기분이 들었으나 바다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재난을 겪고 나니 지긋지긋했다.
하루라도 빨리 육지를 밟고 싶은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산호섬에 지은 요새도 있지만 바다 냄새가 나지 않는 진짜 육지가 그리웠다.
그것이 설령 전쟁터라도 오히려 그곳이 나을 것 같은 기분.
“넌 여기서 얼마나 더 있을 생각이야?”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린텔의 물음에 아이언이 멀리서 보이는 차원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완성된 차원 게이트를 무너뜨리는 건 힘들었다.
게다가 저 정도로 거대한 차원 게이트라면 잘못 건드렸다가 거대한 차원 균열로 더 큰 재앙이 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인어족을 몰아내고 천천히 차원 게이트 자체를 줄인 뒤, 그 규모가 가장 작아졌을 때 파괴해 차원 균열로 만들어야만 했다.
물론 아이언은 그때까지 동부군에 남을 생각이 없었다.
이곳의 최종 목표는 인어족의 몰락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
그것만 확인된다면 곧바로 북동부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칼 구스타프가 아이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항상 무리하는 고스트의 막내를 보면서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동부에서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복귀해.”
“그래. 어리다고 몸 막 굴리면 나중에 이곳저곳이 쑤신다.”
“조심해. 대장님 봐라. 비 오면 무릎이 쑤신다고 하잖아.”
“나이 들면 이곳저곳이 쑤신다고. 지금부터 관리해야 해.”
고스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아이언을 응원했다.
물론 그 이후에는 칼 구스타프의 처절한 응징을 받았지만 다들 잠시간의 헤어짐에 아쉬워하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렇게 동부에 남을 정예 병력을 빼놓고 모든 북동부군이 돌아갔다.
물론 북동부에 돌아간 병력은 도착하자마자 재정비하고 북부의 전쟁에 투입될 테지만 적어도 이 바다를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좋았는지 다들 환호성을 질러 댔다.
인어족을 통해 바다가 얼마나 무섭고 힘든 곳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으니 한동안 바다라면 치를 떨 것이다.
“전부 가 버렸군.”
아이언이 함대 일부와 사령부로 물자를 운반하는 비공선, 그리고 다수의 비룡 부대들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고스트가 되고 나서 쭉 함께했던 동료들이 사라지자 살짝 아쉬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불쌍한 작은 신과의 약속이 더욱 중요했다.
아직 심장에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자신에게 이곳에 남게끔 했는데, 그 묘한 느낌이 약속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아틀란티스가 무너지고, 바다의 보주가 정화의 힘으로 가득 차면서 인어족의 모습은 더욱 기괴하게 변해 갔다.
마치 오염된 것에 변이되는 것처럼 아름다웠던 인어족의 형상은 괴물의 얼굴로 변해 갔다.
그럴수록 오염된 마나는 더욱 강하게 퍼져 나갔으나, 바다의 생명체들에겐 배척받았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들이 조종하는 바다 몬스터를 제외하곤 그 어떤 바다 생명체도 인어족의 근처로 다가가지 않았다.
한때 바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그들이 이제는 바다의 ‘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안타깝네.”
오직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이들이 분노에 사로잡혀 그들이 가장 끔찍해하는 모습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는 건 그다지 보기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동부에 남기로 결정한 후 아이언은 온갖 전투에 참여하면서 인어족을 몰아붙였다.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 가는 인어족을 보면서 그들에게 죽음을 안겨다 주었다.
인어족의 신과 약속을 해서일까?
점점 괴물로 변해 가는 인어족을 보는 게 점점 마음이 편치 않아졌다.
제국인으로서, 군인으로서, 현대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으로서, 인어족은 명확하게 ‘적’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연민 때문인지 괴물로 변해 가는 인어족에게 ‘안식’을 내려 주고 싶었다.
복수에 휘말리지 말고 그들의 신이 있는 곳으로 떠나기를 소망했다.
그런 아이언의 소망 때문일까?
인어족은 점점 더 밀리면서 마침내 푸에르 군도 끝자락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인어족이 완전히 사라지면 차원 게이트도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한 탓일까?
차원 게이트에서 또다시 거대한 생명체가 나왔다.
거대한 상어 형상을 띤 그것은 검은 물을 휘감으며 허공을 유영했다.
메갈로돈은 새끼로 보일 만큼 거대한 그것은 정화의 힘을 내뿜는 바다의 보주를 노렸고, 그것을 막기 위해 동부 사령관과 동부군의 주력 전부가 달라붙어야만 했다.
인어족의 신이 안배한 것일까?
마지막까지 내몰린 인어족을 마무리하는 것은 북동부군의 정예들의 몫이었다.
오염된 인어들을 수없이 베어 내면서 그들의 수장이 있는 곳으로 진격했다.
너무 오염되어서 마도사급 힘을 발휘해 주는 인어족의 기물을 사용할 수도 없었고, 차원 게이트 너머의 해신에게 버림받았는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도 없게 된 나약한 인어족의 수장은 동굴 안에 있었다.
“신……수 계……약자…….”
인어족의 수장이 어눌한 발음으로 아이언을 부르며 바라보았다.
자신들을 패퇴하게 한 가장 큰 원흉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원망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죽음을 앞둔 자의 공허한 눈빛뿐이었다.
그런 오염되고 버려진 존재를 바라보며 아이언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을 버린 배신자여…… 당신의 신과 약속한 바에 따라 인어족의 멸망을 이 두 눈에 담기 위해 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