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01)
34. 절규하는 바다!
자신을 죽여 달라는 바다를 보면서 착잡한 표정을 짓는 아이언.
하지만 표정과 달리 아이언의 마력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단단한 강철 마력이 아이언의 몸을 구석구석 강화하기 시작했다.
팔, 다리, 몸, 머리부터 안에 있는 모든 장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곳을 강화시켰다.
“후…….”
몸 전체에 검은 마력이 감돌기 시작하자 아이언이 감았던 눈을 뜨고 신수력을 풀어내었다.
바다의 보주에 의해 증폭된 신수력.
아슬아슬하게 막아 두었던 신수력들을 모두 풀어내자 바다의 보주에 반응해서 날뛰려던 신수력들이 바다를 만나는 강처럼 무지막지하게 흘러나갔다.
그렇게 아이언의 몸에 있는 모든 신수력이 바다의 보주로 흘러들어 갔고, 그 힘들은 10배, 100배, 1천 배로 증폭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약한 힘이었다.
막대한 차원 게이트의 오염된 마나에 대항하기는커녕 금방 잡아먹힐 정도로 미약한 힘.
하지만 바다의 보주와 만난 신수력은 수없이 증폭하더니 근방에 있는 오염된 마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너보다 위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염된 마나보다 한 차원 높은 격을 보여 주면서 정화해 나갔다.
거기다 증폭된 아이언의 신수력에 정화 마법진과 신관의 신성력이 스며들면서 폭발적으로 오염된 마나를 정화했다.
신성력.
정화 마법.
피닉스의 정화력.
이 세 가지 모두 오염된 마나라는 하나의 공통된 적을 상대로 힘을 합쳤고, 바다의 보주 안에서 증폭되어 퍼져 나갔다.
성스러운 붉은 빛이 아틀란티스 전체를 비추자 차원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괴 생명체들이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우워어어!
-그워어!
-끼에엑!
증폭된 정화의 힘은 주변으로 계속 확장해 나갔고, 그렇게 정화된 마나는 바다의 보주로 흡수되어 또 다른 정화의 힘으로 변화할 힘으로 사용되었다.
바다의 보주 자체가 정화의 힘으로 변환되는 무한한 사이클의 중심축이 되자 차원 게이트에서 나온 존재들이 위기감을 가졌다.
이 상태라면 추후 차원 게이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오염된 존재들은 과감하게 행동했다.
바다의 보주에 연결된 끈을 잘라 내고, 아틀란티스를 버렸다.
이미 완성된 차원 게이트이기에 더 이상 아틀란티스와 차원 게이트의 도움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쿠구구!
아틀란티스에 연결된 수천 수만 개의 끈들이 하나둘 끊어지자 공중에 떠 있던 아틀란티스에 굉음이 들려왔다.
본래 아틀란티스를 유지하던 힘은 바다의 보주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보주의 힘이 전부 차원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서 오염된 마나로 유지되었던 것이다.
한데 그 힘들이 하나둘 끊어지기 시작했으니 거대한 섬 이곳저곳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오염된 마나를 마음껏 사용하던 인어족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본래 인어족은 자체적인 바다의 마력을 품고 있었으나 타락한 그들에게 바다의 생명력이 깃들 리 없었다.
결국 그들의 힘의 원천은 오염된 마나가 되었는데, 아틀란티스에 연결하여 무한히 사용하던 오염된 마나에 문제가 생기니 단번에 그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이것이 어찌 된 것이냐!”
갑자기 줄어드는 오염된 마나에 인어족들이 당황하자 그 틈을 토리고 인간 군대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요새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던 병력이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오염된 마나를 이용해 반쯤 세뇌당하던 크랩맨, 샤크맨을 비롯한 바다의 몬스터들은 인어족의 혼란으로 인해서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약하지만 바다의 보주에서 퍼지는 정화의 힘에 영향을 받아 멍하니 멈춰 섰다.
그렇게 바다의 군대 전원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지만, 인간들은 오직 인어족만을 노렸다.
괜히 혼란스러워하는 적을 노리기보다 그 원흉인 인어족만을 노려 지휘 체계를 빠르게 무너트리려는 것이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한 인어족의 외침에 혼란스러워하던 인어족들이 빠르게 진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다의 군대 역시 다시금 인간을 향해 흉포한 이빨을 드러냈다.
오염된 마나를 극한까지 활용해서 바다 그 자체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아틀란티스에 연결된 오염된 마나가 줄어드는 건 큰일이지만, 그런다고 바다의 군대 전체가 단번에 끝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인어족 개개인의 능력으로 충분히 커버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차원 게이트는 굳건했고, 아틀란티스를 이용해 빠르게 오염된 마나를 활용할 수는 없었지만 인간들처럼 오염된 마나를 체내에 받아들여 사용하면 그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점차 밀려가는 바다의 군대와, 밀어붙이기 시작하는 제국의 주력 병력.
거기다 모험가와 이세계인들이 약해져 가는 몬스터들을 뚫고 하나둘 아틀란티스로 진입하고 있었다.
인어족 입장에서는 최악인 상황.
덕분에 바다의 보주를 공격하려는 차원 괴물들은 이세계인들과 모험가, 용병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 덕분인지 여유가 생긴 아이언이 작은 아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어때? 만족해?”
아이언의 물음에 어린 인어족의 신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인어족을 이끌었던 왕이자 신이 된 그였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인어족을 증오하는 자.
그런 그가 조용히 아이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의 현재 심정이 아이언에게 느껴졌다.
그는 한때 인어족을 멸족에 가깝게 만든 제국인들에게 분노했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눈물을 흘렸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이용하고 배신한 인어족들.
바다의 보주에 가둬 정신을 이용하고 자신의 육체를 이용해 기물을 만들어 아틀란티스 곳곳에 뿌려 뒀다.
그리고 끝내는 차원 너머의 신에게 자신을 팔아 오염시켰다.
그렇기에, 이제는 동족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은 배신자들에 대한 복수심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소멸이라는 소원을 완성하자 마지막으로 배신들의 멸망을 두 눈에 담고자 했다.
한때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제국인들에게 밀리고 있는 인어족을 보면서도 그의 눈동자는 담담하기만 했다.
깜깜한 암흑 속에서 끔찍한 오염된 마나에 먹혀 가며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고, 심지어 그 이후에도 자신의 영혼까지 이용해 먹은 인어족들.
분노와 복수라는 이유로 자신의 신을 끔찍한 악마들에게 내던진 족속들을 더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통쾌했다.
자신을 배신한 동족들.
오염된 차원 너머의 신을 해신으로 추앙하며 받드는 배신자들에게 멸망이라는 철퇴가 내려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래서 그것을 보기 위해 소멸될 수 있음에도 버티고 있는 것이다.
쩌적!
“…….”
흐릿한 아이의 형상에 조금씩 균열이 가는 것을 보는 아이언의 표정은 씁쓸했다.
그가 간절히 소망하는 소멸의 기회가 왔음에도 가까스로 버티며 인어족의 전투를 끝끝내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멸망이 좀 더 빨리 진행되기를 바라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보주의 힘을 더욱 끌어 올렸다.
“그만해도 돼.”
아이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 인어족의 멸망을 보고 말겠다는 굳건한 의지.
하지만 이미 ‘옛 신’은 한계에 봉착한 지 오래였다.
그런 신을 보면서 아이언이 조용히 말했다.
“힘들잖아. 그러니…… 이제 그만 쉬어.”
아이언의 말에 어린아이가 가만히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마치 인어족의 멸망을 약속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 담긴 두 눈동자.
“내 두 눈으로 저들의 마지막을 지켜볼게.”
아이언의 말에 어린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들어서일까?
순수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간 가엾은 신은 마침내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였던 것을 풀어내듯 서럽게 우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언이 쓴웃음을 지었다.
방울져서 떨어지는 눈물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는 가만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생했어.”
고생했다는 말에 아이는 아이언의 품에 안겨서 더더욱 서럽게 울었다.
아이의 눈물이 흘러내릴수록 점점 어려지면서 이제는 네댓 살짜리 작은 아이로 변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의 모습이 되자 서서히 몸이 빛의 가루로 변하며 허공에 뭉치기 시작했다.
차원 게이트에 힘을 거의 다 빼앗기고 그나마 남은 힘도 대부분 바다의 보주에 건네주었기에 이제 남은 힘은 고작해야 작은 빛덩이 정도.
그 작은 빛으로 한때 높았던 격을 이용해 아이언의 신수력을 증폭시켜 준 것이다.
-고마워.
마지막 남은 하나의 의념이 아이언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서서히 사라져 갔다.
작은 빛덩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는 아이언.
마치 성불하듯 찬란한 빛 가루가 되어 바다로 떨어지는 것을 본 아이언은, 마지막까지 바다를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한때 바다의 지배자 중 하나였던 이가 완전히 소멸한 것을 슬퍼하는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되어서 기쁜 것일까?
바다의 신 중 하나였던 이의 소멸과 함께 바다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아틀란티스는 붕괴되기 시작했고.
바다는 분노하듯 해일을 일으켰으며.
하늘에게는 빗줄기가 거세게 내렸다.
동시에 그의 고통에 분노하듯 용솟음친 거대한 회오리가 푸에르 군도 사방에서 몰아쳤다.
마치 세기말의 재앙을 보는 것 같은 느낌.
그 모든 걸 바다의 보주 위에 있는 아이언과 마법사, 신관들만이 살랑거리는 미풍 속에서 지켜보았다.
“바다의 절규인가?”
아이언의 중얼거림에 근처에 있던 마법사들과 신관들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자신의 신을 잃은 슬픔에 찬 바다의 절규.
그리고 자신의 신을 끝끝내 괴롭혔던 배신자들에 대한 분노.
그 모든 것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아아…… 아아아…….”
한 인어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솟구치는 슬픈 감정에 인어의 큰 눈에 눈물이 맺혀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중요한 뭔가가 도려내지는 듯한 느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건 다른 인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꺄아아아!”
“아아아아!”
무언가 중요한 게 사라진 것 같은 느낌에 인어족 전체가 눈물을 흘렸다.
“이게 대체…….”
한창 동부 사령관과 싸우던 푸른 머리칼의 사내도.
“큭!”
북동부 사령관과 싸우던 인어족의 수장도.
모두가 이 감정에 당혹스러워했다.
그 때문인지 갑작스러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인어족들이 전투할 의지를 잃고, 군대 전체가 아틀란티스 뒤편으로 후퇴했다.
그런 인어족을 쫓으려 했지만 인간의 군대 역시 더는 전투를 지속할 수 없었다.
바다의 해일과 소용돌이, 용오름 같은 재해들이 의지를 가진 것처럼 인간들의 군대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쟁을 멈추라는 듯한 바다의 의지가 느껴졌다.
결국 인어족과 인간들은 갑작스러운 재해에 휴전하게 되었다.
훗날 대해전이라 불리는 이 전투는 인어족의 패배로 기록될 것이다.
아틀란티스가 붕괴되고 바다의 보주를 잃었으며, 인간과의 대전쟁에서 치욕스러운 패배를 한 것으로 기록될 이날.
인어족에겐 그 기록들 이상으로 중요한 무언가를 잃었다.
그런 인어족을 아이언은 담담한 눈으로 지켜봤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