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99)
33. 대해전 (2)
사실 크림슨도 아이언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일어나자마자 무리한 아이언을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한 후 복귀시키려 했지만 인어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대규모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유령섬 습격이 실패로 돌아가고 난 후 인어족도 다급했는지 움직임이 과격하게 변한 것이다.
그러자 동부 사령부도 더욱 바삐 움직였다.
어느 정도 부대가 모이면 유령섬으로 한 번에 움직이려던 것을 포기하고, 일단 준비되는 부대부터 하나둘 유령섬으로 왔다.
거기다가 북동부 역시 주력부대를 보내는 일이 빨라졌다.
북동부를 지킬 철벽 사단과 선봉 군단을 제외하고 나머지 북동부 부대들은 지원하러 가기 위해 준비했다.
산악과 안개 군단은 북부를 돕기 위해 움직였고, 사령부의 핵심 부대인 레인저와 나이트 그리고 비룡 부대들을 모아서 동부로 지원하러 왔다.
절반 이상의 병력이 지원하러 나가는 셈이었지만 그럼에도 타격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몬스터 웨이브로 북동부의 많은 몬스터들이 빠져나갔고, 차원 균열을 적절히 관리하는 인원이 생기면서 그들에게 몬스터도 견제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제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게 아니었다.
“저곳인가?”
아이언은 수평선 너머로 언뜻 보이는 검은 안개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신수 계약자라서 그런 것일까?
다른 이들보다 검은 안개의 오염된 기운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신수력이 강해질수록 오염된 기운이 악취, 벌레가 기어 다니는 혐오스러운 느낌 같은 걸로 느껴졌다.
신수들이 어째서 오염된 기운을 질색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기분이었다.
“암초 지대다! 모두 조심해라!”
“곧 첫 번째 전략 거점지에 곧 도착한다! 모두 준비하도록!”
푸에르 군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암초들로 이루어진 곳에 도착했다.
버그랜의 유령섬처럼 안개가 짙은 이곳은 검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유령섬의 안개보다 더 짙고 농축된 오염된 마나가 가득했다.
“유령 군도라는 이명에 걸맞군.”
함장이 암초 지대를 보면서 자신의 감상을 중얼거렸다.
어디선가 유령이 튀어나올 것 같은 모습.
과거 버그랜의 유령섬이 발견되고 얼마 뒤에 알게 된 이 군도의 다른 이름은 ‘유령 군도’.
수많은 배들을 침몰시키고 많은 선원들의 목숨을 앗아 간 악마의 지역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많은 해양 몬스터들이 살고 있었고, 안개 때문에 대처하지 못해서 동부군조차 손 놓은 곳.
그런 곳에 인어족들이 자리를 잡았고 차원 게이트까지 열린 상황은, 이곳을 공략해야 할 동부군 입장에선 절망적인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섣부르게 들어가기보다 더 완벽한 준비를 하고자 했다.
동부 사령부 – 후방 사령부
↓
유령섬 - 중간 기지
↓
암초 지대 - 전진기지
이렇게 정해 놓고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다행이라면, 암초들이 유난히 모여 있는 곳이 있어서 마법과 비공선을 통해 일시적으로 그곳을 메우고 기지를 세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혹시라도 작업 중에 습격받을까 대부분의 전력이 이곳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유령섬의 방어가 일시적으로 비워졌는데, 바로 이때 인어족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다행인 점은 고스트들이 유령섬에 머물고 있었기에 쉽게 방어되었다는 점이다.
“미쳤네.”
아이언은 암초 사이사이를 메우는 막대한 양의 모래와 흙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현실이었다고 해도 힘든 일인데 아공간에 압축 마법까지 걸어서 비공선에 잔뜩 실어 퍼다 나르는 흙과, 산호초에 기지를 세우면서 온갖 마법들을 떡칠하는 걸 보니 고개를 절로 저을 수밖에 없었다.
거의 반쯤 요새를 만들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완성되면 인어족이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주력함대 없이 일주일은 버틸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돈이 어디 있어서…….”
“상인회가 주고 있다.”
아이언의 중얼거림에 구스타프가 다가와서 답해 주었다.
화가 좀 풀린 것 같자 슬쩍 와서 아이언과 대화하려는 구스타프를 보면서 다른 고스트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상인회가 돈을 대고 있단 말입니까?”
“그래.”
“어째서 그들이…….”
“인어족만 물러나면 향후 이곳을 항로의 중간 기착지로 사용할 모양이다.”
구스타프의 말에 아이언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곳으로 향하는 항로가 있습니까?”
“있긴 한데 이거 때문에 힘들었지.”
구스타프가 검은 안개를 보면서 말했다.
“이건 나중에 차원 게이트가 없어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동부군이 이 기착지를 이용해 부대를 창설한다고 하더군. 뭐, 푸에르 군도에 동부군이 기지를 세우게 되면 이 지역에 항로를 만드는 게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닐 거다.”
그동안 돈이 없어서 못 한 거지, 동부군 입장에서는 기지뿐만 아니라 무기랑 배까지 만들어 준다면 사양할 필요가 없다.
상인회 입장에선 어차피 써야 될 돈, 좀 더 써서 미래를 위한 매력적인 항로를 만드는 거라 생각해도 되니까.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인 셈이다.
그렇게 반쯤 요새화되어 가고 있는 전진기지에 도착한 아이언과 북동부 병력은 본격적으로 아틀란티스 공략을 위한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은 인어 군대가 얼마나 강력한 군세를 확보했느냐였다.
1. 크랩맨, 샤크맨의 주력 군대 1만 이상으로 추정.
2. 세이렌, 시 드레이크 공중 부대.
3. 메갈로돈, 크라켄, 시 서펜트의 대형 몬스터.
여기까지가 유령섬을 공략하면서 확인된 병력이었다.
하지만 최근 동부군의 정찰함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수상한 군대가 더 발견되었다고 했다.
밤인데 보랏빛으로 발광하는 괴상한 생명체부터, 큼지막한 뭔가가 괴상하게 헤엄치면서 지나가거나, 뼈가 비치는 앙상한 생선이 보랏빛 안광을 뿜어내며 헤엄치는 걸 확인하는 등 괴생명체들이 많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런 상황에서 크림슨 사령관이 아이언과 고스트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내가 아이언을 왜 급하게 데려왔는지 궁금하겠지.”
크림슨이 고스트들을 바라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도 욕먹을 걸 뻔히 아는데 강제로 데려오는 게 마음 편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 작전에는 아이언이 꼭 필요했다.
구스타프 역시 작전에 대해서는 아직 듣지 못했는지 가만히 사령관의 말을 기다렸다.
“신수 계약자가 필요한 겁니까?”
구스타프의 물음에 크림슨이 고개를 저었다.
“신수 계약자라면 김정태…… 이 발음이 맞나?”
“그렇습니다.”
크림슨의 물음에 아이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 친구가 있으니 상관없지. 신수의 문제라면 이렇게 무리하게 부르지 않았을 걸세.”
크림슨이 단호하게 말하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정태가 있다 한들 아이언과 비교될 수는 없었다.
신수 계약자라는 것만 놓고 보면 대륙에서 가장 활약하고 있는 게 아이언이기 때문이다.
이미 유령섬에서의 활약이 소문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고, 한 마법사가 배에 설치해 놓은 영상구를 통해 아이언의 신수들의 모습이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크림슨은 신수 때문이 아니라 못을 박았다.
그렇다는 건 그도 웬만하면 아이언을 실전에 투입하기 싫었다는 뜻이다.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자네의 정화 능력.”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스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화 때문이라면 마법사들도 있었고, 그들로 어렵다면 신관들을 부르면 될 일이다.
차원 게이트가 대륙을 휘젓기 시작하면서 성국의 신관들이 대량으로 풀려났다.
웬만하면 대륙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성국이 본격적으로 대륙의 혼란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종교로 인해서 큰 몸살을 앓은 국가들이 성국을 반쯤 고립시키면서 중립을 자처해야 했던 성국이 명분을 쥐고 나선 만큼, 동부군이 도움을 청한다면 많은 신관들이 올 것이다.
“후…… 자네들의 의문이 뭔지 아네. 이미 신관들과 마법사들이 이곳에 와서 비밀리에 작전 중이었네.”
크림슨의 말에 고스트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지만 그들이 확인한 건……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았네.”
“그럼 막내도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회복되지도 않은 막내 혼자서 뭘 어쩌겠습니까?”
린텔의 물음에 다른 고스트들도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북동부와 유령섬.
두 차례에 걸쳐 막내에게 희생을 강요한 고스트들 입장에선 더 이상 아이언이 다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최근 들어 더욱 빡세게 훈련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이들의 마음을 잘 아는 크림슨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들 말로는 자신들의 정화 능력과 아이언 중령의 정화 능력은 조금 다르다더군.”
“……예?”
아이언이 멍청하게 되묻자 크림슨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들 말로는 자네의 정화 능력은 자연에 가까운 힘으로 바꾸는 성질이라 하더군.”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의 정화는 인위적으로 마나로 되돌리는 것이고, 신성력은 신의 힘으로 부정한 것을 쫓아내기만 하는 것이라고 했네.”
“그럼 막내는 다릅니까?”
린텔의 물음에 크림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언 중령의 정화는 순수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 되돌리는 힘이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법사가 하면 마나가 짙어져 마나 코어가 생성될 걸세. 그럼 제2의 차원 균열 위험이 생기지.”
“신성력은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구스타프의 물음에 크림슨이 한숨을 쉬었다.
“변질되네.”
“예?”
“말 그대로네. 신성력의 힘으로 강제로 정화시키면 이곳 군도 전체가 변질될 거라 하네.”
“어째서…….”
신성한 힘으로 정화시키는 것인데 어떻게 변질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떠한 물체가 있다고 가정해 보지. 거기에 빛과 어둠이 강제 반발을 일으키면 어떻게 되겠나?”
“……하지만 여태껏 신성력이 정화시켜서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숨긴 것이지. 생각해 본 적 없나, 어째서 차원 게이트가 열렸는데 그걸 그대로 내버려 뒀는지?”
역사에 기록된 차원 게이트들.
그 기록 속에 신관들의 활약은 분명히 적혀 있다.
하지만 차원 게이트를 없애고 나서 그걸 정화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일정 수치 이하는 신성력으로 완전 ‘정화’가 가능하다고 하네. 다만 차원 게이트급을 정화할 시…… 반발로 인해 변질될 위험이 크다는군.”
“변질된다는 건…….”
“북동부처럼 변이된 개체들이 나온다는 것이겠지.”
크림슨의 말이 끝나자 가만히 듣고만 있는 아이언에게 모든 시선이 몰렸다.
그리고 그런 그를 크림슨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어쩌겠냐고 묻는 듯한 눈빛.
여기까지 들었는데 아이언 입장에서 선택지가 있을 리 없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고, 이 침묵은 답을 듣기 위한 기다림일 뿐이다.
“후…… 해야겠죠.”
“……미안하네.”
“저만 목숨 걸고 싸우는 것도 아니니 괜찮습니다. 다만 제 힘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화 자체는 그들이 해 줄 걸세. 다만 자네가 해 줄 일은 ‘조율’이라고 하더군.”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뭘 부탁한 것인지 파악한 것이다.
“변질되지 않게끔 말입니까?”
“그러네.”
“……알겠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크림슨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얼마 후 동부 사령부에서 지원부대가 도착했고, 북동부의 비룡 부대를 타고 정예부대들 역시 속속 모여들었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비공선들 역시 무기를 달고 하늘에 떠올랐다.
동부와 북동부군이 모을 수 있는 모든 병력이 모이고, 상선을 타고 이세계인들 역시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인어족들이 가진 기물과 아틀란티스의 보물을 노리는 수많은 모험가들부터 이세계인들, 용병들까지 모여들면서 대해전을 시작할 모든 준비가 마쳤다.
이제 남은 건 동부 바다가 걸린 최후의 해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