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97)
32. 혼란의 시작 (2)
[동부군이 유령섬을 탈환했다!]
수도의 신문에 나온 짤막한 기사.
본래라면 대서특필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기사가 짤막하게 한 줄 나오고 끝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제국 곳곳에서 엄청난 일이 터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동부만 해도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인어족의 등장. 그들은 어디에?]
[푸에르 군도에 대규모 인어족의 군대 발견!]
[전설상에 존재하는 인어족의 바다 도시 아틀란티스가 푸에르 군도에 등장했다!]
[동부군이 과연 버그랜의 유령섬을 지킬 수 있을까?]
유령섬을 탈환했고 차원 균열을 막았지만, 전쟁이 끝난 게 아니었다.
마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거대한 전쟁이 또 하나 시작될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제국의 곳곳에서 동부만큼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남부에 나타난 수인족 연합. 멸종되었다 알려진 호인족을 필두로 한 잊힌 종족들이 제국에 칼을 겨누었다!]
[서부에 나타난 수상한 공중섬! 그곳에 사라진 조인족이 나타났다.]
[북부에 다시 나타난 다크 엘프들! 이번엔 북부를 위협하다?]
제국의 각 지역에 나타난 수상한 존재들.
북부의 다크 엘프.
남부의 수인족.
동부의 인어족.
서부의 조인족.
전부 사라졌거나 멸종되었다 알려진 존재들.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었고, 제국에 복수하기 위해 돌아왔다.
특히 서부 같은 경우 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한 왕국들부터 가장 먼저 피해를 입었다.
제국만큼 강대한 힘을 가지지 못한 소국들 같은 경우 차원 균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막대한 피해 속에서 피난길에 오르는 곳도 있었다.
남부 왕국들은 그나마 강국이 많았기에 서로 연계하며 버텨 냈지만 점차 밀릴 수밖에 없었다.
오염된 마나에 노출되어 더욱 흉포해진 몬스터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공허충들.
그리고 차원 게이트가 되면서 점차 넘어오기 시작하는 괴상한 생명체들까지.
이젠 제국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륙 전체가 차원 균열에 휘말릴 판이었다.
그렇다 보니 유령섬을 탈환했어도 동부군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대륙인들의 관심을 끄는 건 북동부였다.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가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가 되어 버린 북동부.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동부에서 넘어간 마도 공방과 상단들, 그리고 마탑에서 나온 마법사들은 활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통제되는 차원 균열.
마나 코어.
수많은 희귀종들.
넘쳐 나는 오염종들까지.
이 모든 것을 북동부의 강력한 군부 아래 ‘안전하게’ 연구할 수 있다는 점과 그걸 토대로 많은 무기들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 북동부를 제국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으로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동부와 연계해서 새로운 무역로까지 만든다는 발표가 나자마자 수많은 상단과 중소 마탑이 너도나도 북동부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북동부를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곳으로 발돋움시키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아이언은 유령섬 한쪽에서 죽은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아이언은 언제 보낼 겁니까?”
잠들어 있는 아이언의 방 밖에서 린텔이 구스타프를 보면서 물었다.
“아직 동부 사령부가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은 것 같다.”
“바로 북동부로는 못 보내는 겁니까?”
“인어족이 바다를 점령했다.”
린텔의 물음에 구스타프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국 최강의 해군력으로도 커버되지 않을 정도로 인어족은 지독했다.
바다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듯 활개 치고 다니는 그들 때문에 해군은 매번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래도 베테랑답게 서서히 인어족에 대항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세계인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둘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이세계인들 중에 밀덕이라는 자들이 해군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듯싶다.”
“밀덕요?”
처음 들어 보는 말에 린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밀리터리 덕후의 줄임말이라는데 솔직히 뭔 말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무기 쪽의 전문가들로 보이는데, 그들의 세상에서 통용되는 무기와 전술 방법을 이곳에 적용해 인어족에게 써먹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음…… 그때까진 저 녀석이 여기에 있어야 된다는 겁니까?”
“그렇겠지.”
육지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전지대로 보내겠지만 이곳은 섬이다.
바다로 가로막힌 상태라 비공선을 이용하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곳곳에서 돌아다니는 공중형 몬스터들 때문에 위험했다.
그렇다고 아이언 하나 때문에 주력함대가 이동할 수도 없는 법이었다.
“동부 사령부가 안정화되는 대로 지원군이 오는 편에 실어서 보낼 생각이다.”
“후…….”
구스타프의 말에 린텔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다른 고스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스스로를 희생해서 결과를 만들어 낸 미련한 막내를 보면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 상태로 고착화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제까지고 여기에 머물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린텔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유령섬을 탈환했지만 인어족의 주력은 푸에르 군도 쪽에서 떠오른 아틀란티스에 있었다.
차원 게이트 역시 그쪽에 있을 거라 판단하고 있었다.
학자들은 어쩌면 아틀란티스 자체가 차원 게이트화된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하고 있는 상황.
그도 그럴 것이 바다의 보주가 아틀란티스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라면, 그게 타락해서 차원 게이트화되었다는 가정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부 사령관께서 직접 이곳으로 오기로 했다.”
“그곳에 마도사급 인어족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린텔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러자 구스타프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마도사급은 아닌 듯싶다. 기물의 힘을 빌려서 짧은 시간 동안 마도사급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고 하니…….”
“아…… 그래도 일시적으로라도 마도사급 힘을 발휘한다면 여전히 문제 아닙니까?”
“바다여야만 한다는 환경적 제약도 있고, 한번 힘을 사용하면 오랫동안 다시 사용하지 못하는 듯싶다. 지금은 동부 사령부에서 완전히 물러나 아틀란티스로 후퇴한 것 같다. 기물의 힘이 다해서 그런 것 같다고 추측 중이지.”
구스타프의 말에 린텔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툴루퍼스는 역소환시켰으나 여전히 크라켄, 시 서펜트, 메갈로돈은 남아 있었다.
물론 인어족도 그들을 부리는 데 조건이 필요한 것 같지만, 여전히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녀석이 있는 만큼 섣부르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동부 주력군이 모조리 유령섬으로 몰려든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다.
북동부의 주력군도 하나둘 이 유령섬에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제국의 5개 군부 중에 2개의 주력부대가 움직인다면 아무리 인어족이라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거기다가 이세계인들 역시 타 지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인어족들이 사용하는 기물이 탐나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지역으로 가 봤자 다른 이세계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
이곳에 모인 이세계인들 입장에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에서 승부를 봐야 했다.
삐이이이이이!
“습격입니다! 인어족이 습격했습니다!”
“봉인된 균열이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사들의 외침과 함께 고스트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유령섬에서 가장 안전하게 만든 진지에는 어느새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전부 인어족과 차원 균열에서 나온 공허충들을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가 고함치면서 인어족을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기절해 있는 아이언의 몸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파직!
아이언의 몸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정전기.
처음엔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따끔할 정도의 짜릿한 정전기 수준.
게다가 정전기가 발생하는 것도 아주 가끔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현상을 다른 이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어족이 이번엔 마음먹고 공격해 왔는지 전투는 금방 끝나기는커녕 장기화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병실에서 아이언을 관리해야 할 의무병들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전투 중이라 실시간으로 부상자가 발생하는 통에 아이언에게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의무병도, 북동부군과 동부군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아이언의 몸은 급박한 환경과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이상 현상을 만들었다.
파직! 파지직!
이제는 눈에 보일 정도로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인어족들의 습격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아이언의 몸은 점차 떨려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눈꺼풀마저 떨리면서 정말 깨어나기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신수력이 소폭 회복되면서 천둥새의 능력이 일부 깨어납니다.
-천둥새의 능력이 고유 능력 ‘뇌전’에 영향을 줍니다.
-고유 능력 ‘뇌전’에 의해 육체에 자극이 가해집니다.
-자극받은 육체에 의해 예정되었던 기절 시간이 단축됩니다.
-지속되는 자극에 정신이 일부 깨어납니다.
신수력의 회복.
그로 인해 천둥새와 아이언의 고유 능력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시너지를 만들어 냈다.
천둥새의 능력+고유 능력 → 육체 자극 → 기절 시간 단축 → 무의식 각성 → 육체 회복으로 신수력 회복 속도 ↑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자극의 선순환이 반복되었고, 마침내 아이언의 정신이 완전히 깨어났다.
“으음…….”
무거운 눈꺼풀이 마침내 바로 떠지면서 아이언의 시야에 급조한 건물의 천장이 들어왔다.
파직! 파지지직!
눈을 뜬 아이언은 몸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전류를 다스리기 위해서 정신을 집중했다.
온몸을 휘감은 전류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간 침상 전체가 불타오를 기세였기 때문이다.
깨어나자마자 힘을 제한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자 머리가 ‘띵’ 하고 울려 왔지만 아이언은 애써 참아 내면서 힘을 컨트롤하려 애썼다.
그러자 육체와 힘이 둘 다 반발하며 저항했으나 계속 반복해서 뇌전의 힘을 컨트롤하자 육체 밖으로 튀어나오는 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후…… 얼마나 지난 거지?”
모든 힘을 거둬들인 아이언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어 눈살을 찌푸릴 때였다.
쾅! 쾅!
멀리서 포격음과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실 밖에서 치열한 전투 소리가 들려오자 아이언은 바들거리면서 침상에서 내려왔다.
그러고는 문을 작게 열어서 밖의 상황을 살폈다.
“유령섬?”
자신이 아직 유령섬에 있는 걸 확인한 아이언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파직거리면서 뇌전이 아이언의 의도에 따라 움직여 주었다.
고유 능력인 뇌전과 천둥새의 번개의 힘이 합쳐지면서 끊임없이 힘을 증폭시켰다.
그 덕분인지 아이언의 몸에 반쯤 잠들어 쓰일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힘이 반응했다.
파삭!
손에 맺힌 서리가 부서져 내리는 것을 확인한 아이언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부상자가 모여 있는 곳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인어족 몇이 언데드들과 함께 습격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지금의 부상으로는 방해만 될 테지만, 이 힘이라면 지금 몸 상태로도 저들을 막는 데 충분히 힘을 보탤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잠시 고민하던 아이언이지만, 이내 확신에 찬 눈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여전히 육체는 부들거렸지만, 몸 안에서 날뛰는 힘은 언제라도 밖으로 나갈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그리고 마침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볼 적당한 상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