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96)
32. 혼란의 시작 (1)
이세계인들이 인어족의 수장을 몰아붙였다.
그들 입장에선 목표 중 하나였던 천둥새를 놓친 것만으로도 타격이 크기 때문에 적어도 그에 준하는 것이라도 얻어야 했다.
바다의 보주야 마스터들 때문에 힘들더라도, 인어족의 수장을 사로잡는다면 그 밑의 것들은 이세계인들이 얻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마스터들과 주력 군인들이 초거대 문어에 붙잡혀 있는 동안 인어족의 수장을 죽이거나 사로잡아야 했다.
무지막지한 크기의 초거대 문어라지만 마스터가 세 명이다.
거기다가 이제 비공선에서 뛰어내리는 북부 사령관까지 합류해, 총 네 명의 마스터가 초거대 문어 하나를 완전히 해체시킬 기세.
버텨 봐야 30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세계인들 입장에선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했다.
“모두 전력을 다해라!”
김정태의 고함 소리에 모든 이세계인들이 자신들이 숨겨 온 힘을 꺼내 들었다.
고유 능력을 바탕으로 이곳에서 익힌 기술들을 융합한 힘.
불의 고유 능력에 오러를 결합하거나 마법에 고유 능력을 합쳐 강화한 형태.
제각기 다른 형태의 힘이지만 본래보다 몇 배나 증폭된 힘이 인어족의 수장의 목숨을 끊기 위해 날아들었다.
“크으…….”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끝끝내 살아남은 인어족의 수장이 김정태를 바라보았다.
검은 물은 김정태의 방해 공작에 제대로 컨트롤하기 힘들었고, 오염된 마나는 에바스톨에게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고유 능력이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에 의해 인어족의 장기와 차원 균열을 통해 얻은 힘을 봉인당한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인어족의 수장은 버텨 냈다.
힘의 대부분이 묶여 있음에도 그의 높은 경지와 기술만으로 이세계인들의 공격을 버텨 낸 것이다.
“역시 괴물들이야.”
김정태가 혀를 내둘렀다.
베타테스트 때도 느낀 것이지만 마스터급에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괴물들뿐이었다.
저 인어족의 수장은 온전한 마스터급도 아닌 듯 보이는데, 이세계인들의 파상 공세를 홀로 버티고 있었다.
그것도 그와 에바스톨로 인해 힘의 제약이 심한 상태에서 오직 기술만으로 버티고 있으니, 그저 감탄밖에 안 나왔다.
자신들의 힘을 최소한의 힘으로 비틀고, 깨고, 부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어째서 마스터급 존재들이 존경받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적이라도 마스터들이 나타나면 존경의 예를 표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오만한 김정태조차 마스터들의 힘만큼은 인정했다.
하지만 인정만 할 뿐이다.
이세계인들은 그간 경험해 온 모든 것들을 통해 철저하게 인어족의 수장을 ‘공략’했다.
마스터급이라도 다수가 모인 이세계인들이라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는 걸 베타테스트 시절에도 보여 줬었다.
그렇기에 하얀 고래 입장에선 지금 혼자 있는 인어족의 수장 역시 공략 가능한 존재 중 하나에 불과했다.
“더 달라붙어! 지치게 만들어라!”
“공격을 멈추지 마! 우리가 힘들면 저 녀석은 더 힘들다!”
악을 쓰면서 공격하는 이세계인들.
사방에서 쉼 없이 공격해 들어왔고, 마치 게임에서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것처럼 철저하게 루틴을 정하며 인어족의 수장을 괴롭혔다.
그러다 보니 인어족의 수장은 서서히 지쳐 갔고, 그럴수록 빈틈이 생기면서 상처를 입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하얀 고래가 몇 분 안에 인어족의 수장을 산 채로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인어족의 수장이 잡힐 위기에 처한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뭔가가 이세계인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뭐…….”
김정태가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거대한 뭔가가 그들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크으…….”
검은 물로 만들어진 거대한 주먹.
그것이 이세계인들을 통째로 압사시키려 하는 것이다.
저항하기 위해 김정태는 사력을 다해 물을 컨트롤했고, 에바스톨을 비롯한 정화자들은 오염된 물을 정화했다.
그러자 이번엔 인어족의 수장이 힘을 발휘했다.
자신의 힘을 묶고 있던 김정태와 에바스톨이 거대한 검은 주먹에 맞서고 있는 동안 나머지 이세계인들을 쓸어버리려 한 것이다.
“그만해. 여기서 더 버티긴 힘들어.”
어느새 나타난 검푸른 머리칼의 여인이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인어족의 수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처럼 이세계인들뿐만 아니라 군 병력 역시 인어족의 수장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하나둘 주력 병력이 당도하면서 자신들을 향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더 머뭇거렸다가는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새 이세계인들 역시 다시금 자리를 잡고 자신을 공격할 진형을 완성했다.
“……이대로 끝날 순 없다.”
“전쟁은 이제 시작이야.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우리 동족들을 희생시키지 마.”
여인의 말에 인어족의 수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새 흉측한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검푸른 머리칼의 사내로 변해 있었다.
“후…… 그래,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지.”
인어족의 수장이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제국을 멸망시키고자 하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전쟁으로 희생당한 모든 종족들이 제국을 증오했다.
또한 이 세계 자체를 멸망시키고자 하는 이들 역시 가장 먼저 제국을 멸망시키고자 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의 전투는 앞으로 있을 제국 멸망의 서막에 불과했다.
“길게 보자.”
“……그래, 수백 년을 기다렸는데 고작 몇 년 더 기다리는 게 무에 어려울까.”
인어족의 수장은 애써 분노를 참아 내며 검은 물을 통해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자 김정태가 이를 갈면서 거대한 물의 창을 만들어 내던졌다.
하지만 물이라면 인어족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았다.
타락했지만 그래도 인어족은 인어족이다.
“제길!”
자신의 창이 물의 방패에 가로막히는 것을 본 김정태가 분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천둥새를 놓친 것으로도 모자라서 인어족의 수장까지 놓쳤다.
그렇게 하얀 고래와 이세계인들이 자신들의 계획을 실패할 때, 네 명의 마스터들은 크툴루의 사도인 툴루퍼스를 역소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마탑주들과 동부 주력함대의 활약으로 바다의 재앙들마저 쫓아내는 데 성공한 상황.
“바다의 보주만 확보하면 끝이군.”
라이너가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마나 집합체.
최상위 마나 코어라고 불리는 바다의 보주.
하늘의 눈.
대지의 심장.
바다의 보주.
빙하의 보석.
대륙 최고의 보물이라 불리는 4개의 코어들.
그중 하나가 하늘에서 오염된 마나를 줄기차게 뿜어내면서 차원 게이트를 유지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공허충이 나오고 차원 물고기가 그 주변을 배회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상해.”
“자네도 느꼈나?”
라이너의 말에 신검가주 테리언이 눈살을 찌푸리며 오염된 바다의 보주를 바라보았다.
저 정도 규모의 차원 게이트에서 공허충만 주로 나오는 것이 이상했다.
라이너와 테리언이 북동부에서 경험한 차원 균열만 해도 조금만 방심해도 괴생명체들이 비집고 나오려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저 차원 게이트는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그런 현상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마녀가 인위적으로 공허충만 나오게 설계했던 차원 게이트와 같은 모습.
게다가 더 이상한 건, 바다의 보주치고 느껴지는 마나가 적었다.
북동부에서 발견된 마나 코어보다 뿜어지는 마나양이 적은 느낌.
“저게 바다의 보주가 맞나?”
라이너의 물음에 테리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저게 바다의 보주가 맞다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바로 그때, 차원 게이트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혼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것을 유지하고 있던 바다의 보주 역시 차원 게이트와 함께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마스터들이 일제히 차원 게이트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붕괴되기 시작한 바다의 보주와 차원 게이트는 그들이 간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짜군.”
“그래, 이건 가짜야.”
완전히 부서진 잔해들을 모은 라이너의 말에 테리언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코어의 모습을 한 가짜.
하지만 막대한 마나를 담고 있었던 것은 맞는 듯, 부서진 잔해를 모은 것만으로 주변에 막대한 마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게다가 차원 게이트였던 것 역시 붕괴되었어도 차원 균열을 만들어 내 끊임없이 공허충을 내뱉고 있었다.
“이건 마치…… 중앙에 나타난 인위적인 차원 균열 같군요.”
한 이세계인의 말에 라이너와 테리언이 동시에 뒤돌아보았다.
“인위적인 차원 균열?”
라이너의 물음에 이세계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중앙에 나타난 수많은 차원 균열이 저 방식을 띠고 있습니다. 물론 요것처럼 엄청난 마나 코어 수준은 아니고 오염된 상급 마나석 정도 되는 녀석으로, 짧은 시간 동안 여는 방식입니다.”
이세계인의 말에 라이너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건 테리언과 근방에 있던 두 사령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건 전초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군.”
라이너의 중얼거림에 근처에 있던 모든 이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처럼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모두 느낀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인물인 인어족의 수장은 놓쳤고, 바다의 보주 역시 발견하지 못한 상황.
그렇다면 아직 동부의 싸움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유령섬에 모인 이들이 그 사실에 피로감을 느낄 때, 더욱 놀라운 사실이 그들을 맞이했다.
동부 사령부에서 각 동맹들에 날아온 소식들.
개별적으로 그것을 받아 든 최고 지휘관들의 표정은 일시에 굳어졌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남부 쪽이었다.
“아무래도 난 여기까지 해야겠군.”
“저 역시…….”
테리언의 말에 남부 마탑주 시에라 역시 바다의 보주 쟁탈전에서 빠지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그들의 결정에 다른 이들은 혼란스러워했지만 남은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큰 경쟁자가 사라진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지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저 역시 여기까진가 보군요.”
“후…… 사자가문 역시 빠지겠다.”
북부 사령관 제든 윅스와 사자가문까지 빠지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다들 여기까지 와서 물러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중앙 마탑과 서부 사령부까지 차례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서 남은 이들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러다 북동부 사령관 크림슨에게 온 서신에 의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국 전체에 차원 균열이 일어났다고?”
크림슨의 중얼거림에 근처에서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커졌다.
북부, 서부, 중앙, 남부.
4개 지역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거대한 차원 균열.
동부까지 포함하면 제국 전역에 차원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었다.
그것도 중앙에서 자잘하게 일어나던 작은 균열이 아니었다.
유령섬의 그것처럼 큼지막한 것들이 각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 자세한 정보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탑주들뿐만 아니라 두 가주까지 다급하게 갈 정도라면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차원 균열이 열리지 않은 곳은 북동부뿐이었다.
과거 제국 최악의 지역 중 하나였던 북동부만이 차원 균열이 열리지 않은 청정 지역이 된 셈이었다.
“이 전투가 전초전이었는가?”
크림슨은 파란 하늘에 벌어진 차원 균열을 바라보았다.
동부에서 시작된 인어족과의 싸움.
아직 이 전쟁조차 끝나지 않았는데 제국 곳곳에서 큼지막한 전투들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후…… 제국의 앞날이 어둡구나.”
크림슨이 그렇게 말하면서 무거운 표정으로 멍하니 차원 균열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