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93)
30. 유령섬 (2)
마치 도박 상자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아이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상공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자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듯, 다급하게 Yes를 택했다.
그 순간 아이언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오면서 주변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개봉하기를 선택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신의 축복이 그대와 함께합니다.
Yes를 누르는 순간 온몸에 힘이 넘쳐 나면서 주변에 드리워지는 오염된 마나를 순식간에 완전히 정화시켜 버렸다.
그러자 툴루퍼스의 다리가 배로 향하던 것을 멈추고 움츠렸다.
정화력이 툴루퍼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의 사도라 한들 신보다 강할 수는 없는 법.
격의 차이 때문인지, 거대한 다리가 아이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피해서 달아났다.
그러는 사이 아이언은 연이어서 알림을 들었다.
-신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신의 선물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랜덤 상자가 굴러갑니다.
(……)
-빰바밤! 상급 상자를 개봉하셨습니다.
-지금부터 3시간 동안 당신은 미래의 신수력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격의 차가 큽니다. 3시간 뒤 당신은 장시간 기절하게 될 것입니다.
-이세계인 최초로 신의 축복을 경험합니다.
-업적 ‘신의 축복을 경험한 자’를 얻었습니다.
-업적 효과로 신수들에게 미약한 신성이 깃들게 됩니다.
아이언이 오랜만에 들려오는 엄청난 양의 알림음과 눈멀 것 같은 빛무리, 해롱거릴 정도로 몸에 충만한 신의 힘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아이언의 위로 신수들이 튀어나왔다.
-삐이이이~.
화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는 피닉스.
그보다 약간 작지만 거대한 두 눈이 인상적인 부엉이.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굉장히 작지만 무엇보다 신성한 것 같은 새.
세 신수의 등장과 함께 아이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더욱 강해졌다.
오염된 마나는 물론이고, 부정한 모든 것들을 정화시키는 압도적인 신성력.
그 힘을 빌려 함선이 전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툴루퍼스는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신이 직접 내린 축복의 힘은 크툴루의 사도인 그조차도 다가서기 힘든 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힘이 언제까지고 지속되지는 않을 거란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게걸스럽게 오염된 마나를 먹어 치울 정도로 탐욕을 부리던 그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짧은 시간만 버티면 건방진 놈들을 전부 먹어 치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렬한 빛을 피해 툴루퍼스를 비롯해 공허충들까지 모조리 유령섬 쪽으로 사라지는 동안 여유가 생긴 아이언에게 뱁새가 날아들었다.
-짹!
뱁새가 신성한 휘광을 두른 채 아이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 것일까?
유난히 반가워하는 뱁새.
하지만 아이언은 그런 뱁새가 어색했다.
지금 보이는 뱁새의 모습은 예전의 귀여움은 사라지고 신성한 느낌이 물씬 풍겨 왔다.
“반……가워?”
아이언이 멍청하게 인사하자 뱁새가 콕 하고 아이언의 이마를 찍었다.
정신 차리라는 뱁새의 행동에 아이언은 고개를 흔들며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짹! 짹짹짹!
뱁새의 설명에 아이언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부리로 열심히 설명하는 뱁새의 모습에서 예전의 귀여움이 묻어 나와 아이언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곧 날아드는 호된 질책에 뱁새 선생님의 말을 열심히 경청했다.
-짹!
그렇게 뱁새의 짧은 설명이 끝나는 순간 온몸에서 터져 나오던 빛이 사라졌다.
“거…… 거대 문어가 다시 움직인다!”
“모두 대비해!”
빛이 사라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는 툴루퍼스.
하지만 이번에 아이언 측은 멍하니 죽음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어두운 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피닉스가 거대한 불길을 토해 내면서 툴루퍼스를 저지했다.
게다가 두 개의 달처럼 환한 눈을 가진 부엉이가 빛을 쏘아 내면서 수많은 공허충들을 오지 못하게 저지했다.
두 신수의 압도적인 능력에 함선은 다시금 평화를 맞이했고, 그러는 사이 신성한 휘광을 두른 뱁새의 노래가 함선에 잔잔히 퍼졌다.
-짹짹짹~ 짹짹잭짹짹~.
귀여운 뱁새의 노래가 함선에 퍼져 나가자 지쳐 있던 병사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중상을 입은 부상자들의 상처가 치유되며 함 내에 있는 모든 병력의 얼굴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기적에 모두들 함성을 지르며 사기를 올렸다.
그러는 사이 아이언은 심각한 표정으로 구스타프에게 다가갔다.
“시간이 없습니다.”
“응? 무슨 말인가?”
“3시간…… 그 시간 내에 결판을 내든 후퇴를 하든 결정해야 합니다.”
아이언의 말에 칼 구스타프가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네…… 뭔 짓을 한 건가?”
척 봐도 정상이 아닌 아이언의 몸.
그의 몸에는 뱁새의 휘광처럼 범접할 수 없는 신성력이 깃들어 있었다.
이러한 힘이 그냥 나올 리가 없었다.
“자네 또 희생을 한 것인가!”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닙니다.”
아이언이 호통치는 칼 구스타프를 진중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힘이 있는 동안 주력 병력을 도와 인어족을 물리칠 것인지, 아니면…… 저걸 다시 역소환시킬 건지 결정해야 합니다.”
아이언의 말에 칼 구스타프가 거대한 문어를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서 가장 큰 문어라 알려진 크라켄조차 새끼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몸집.
하지만 신성한 불길을 두른 피닉스와 신성한 빛을 쏘아 내는 두 개의 달의 힘이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두 신수로 저걸 없앨 수 있겠나?”
“모르겠습니다.”
아이언도 환수종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두 개의 달의 힘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렇기에 사도를 없앨 수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쉬운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없앨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하면?”
“제 신수들이 저걸 막는 동안 우린 천둥새를 찾아야 합니다.”
아이언의 말에 칼 구스타프의 두 눈이 빛났다.
“그때 그 방법이군.”
겨울산과 검은 숲에서 그러했듯 묶여서 힘을 빨리고 있을 신수를 구출하는 것.
“후…… 이러다 신수 구출만 전문적으로 하게 되는 거 아닌지…….”
칼 구스타프는 푸념하듯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좋네. 고스트들이 목숨을 걸고 자네에게 길을 터 주겠네.”
칼 구스타프가 북동부에서 그러했듯 이번에도 목숨 걸고 아이언을 지키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면 이 어린 영웅은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듯 반드시 결과물을 가져올 것이다.
그렇게 구스타프는 고스트와 함선 내 모든 병력을 불러 모아 아이언의 상태와 앞으로의 작전을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병력이 전부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또다시 스스로를 희생하는 아이언의 모습에 다들 경외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대의 희생에 경의를 표합니다.”
구스타프에게 설명을 들은 함장이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 아이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함선 내부에 있는 모든 병사들과 장교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렸다.
어떤 희생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북동부에서 이미 한차례 스스로를 희생한 경력이 있는 아이언이기에 적어도 희생했다는 말에 거짓이 있지 않음을 알았다.
그렇기에 다들 아이언에게 존경 어린 눈빛으로 진심 어린 경외심을 보여 주었다.
“흠흠…… 이럴 때가 아닙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아이언이 헛기침하며 애써 그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하자 다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작전을 시작합니다. 먼저 아이언 카터 중령.”
“예!”
칼 구스타프의 부름에 아이언은 경직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천둥새가 어디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겠나?”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령섬에 진입하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언의 말에 구스타프가 믿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동부군이 할 일은 최대한 유령섬에 근접하는 것이군요.”
“예, 일단 유령섬 근방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북동부군이 작전에 돌입하겠습니다.”
“그럼 그동안 함선에서 최대한 엄호하겠습니다.”
함장과 구스타프가 빠르게 작전을 세부화하면서 유령섬으로 진격했다.
그동안 툴루퍼스의 공격이 힘겨웠는지 두 개의 달까지 합류해서 문어 다리를 막아 냈다.
그러자 공허충들이 이때다 싶었는지 배를 향해 몰려들었다.
“막아라!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반드시 유령섬에 접안해야 한다. 하다못해 근방까지는 가 줘야 할 거 아냐!”
함장이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동부군을 독려했다.
“명색이 제국 최강의 해군인데 돌아갈 때 뭐라도 할 말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북동부군을 유령섬에 데려다주는 것.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겠나?”
“예!”
“좋다! 목숨 걸고 임무를 완수하자!”
함장의 목소리에, 동부군의 눈에 임무 완수에 대한 열망이 떠올랐다.
하지만 수많은 공허충들의 습격은 아무리 동부군의 정예들이라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보다 못한 칼 구스타프가 북동부군을 대표해 도우려 하자 함장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우리의 임무입니다. 유령섬 내부에서 힘든 싸움을 하실 텐데, 벌써부터 힘을 낭비해선 안 됩니다.”
칼 구스타프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 함장이 지휘봉 대신 검을 뽑아 들고 나섰다.
배가 유령섬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공허충들이 앞을 막아섰으나, 동부군은 그것을 뚫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병사들은 함포를 쏘고, 마법사들은 탈진할 때까지 마법을 사용했다.
기사들은 그런 마법사들을 지키기 위해 피투성이가 되면서 싸웠다.
장교들 역시 지휘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검을 뽑아 들고 공허충들을 한 놈이라도 더 잡아내려 애썼다.
함장마저도 피를 흘리면서 싸울 만큼 격렬한 전투.
하지만 북동부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 움직인다면 동부군의 명예를 저버리는 것이었고, 본인들 역시 유령섬에서 더 위험한 작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체력과 마력을 아껴야 했다.
그렇게 처절하리만큼 싸운 동부군의 노력 덕분일까?
수없이 몰려드는 공허충들을 뚫고, 마침내 유령섬 근방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까지면 충분합니다.”
칼 구스타프가 그렇게 말하면서 피 흘리는 함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지금부터 북동부군의 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구스타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고스트들이 가장 먼저 공허충들을 베고 지나갔다.
그사이 북동부군은 작은 배들을 내리는 작업을 실시했다.
“동부군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북동부군에 무운을 빌겠습니다.”
구스타프의 말에 함장이 무운을 빌어 주었다.
두 사람이 악수한 후 마침내 북동부군의 임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유령섬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
작은 배들을 타고 북동부군이 이동을 시작하자 동부군이 함포를 쏴 대면서 엄호했다.
“우리의 임무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저들이 유령섬에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엄호해라!”
“예!”
함장의 명령에 선내에 있는 모든 병력이 일제히 대답하면서 북동부군을 엄호했다.
쾅! 쾅! 쾅!
배에서 쏟아지는 함포와 남은 마력을 쥐어짜 내 사용하는 마법들 덕분에 최소한의 손실로 유령섬에 도착한 북동부군.
“지금부터 천둥새 구출 작전을 시작한다. 모두 살아서 만나자.”
“예!”
구스타프의 말에 모든 병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유령섬의 한 해안가에 모인 북동부군이 구스타프의 명령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천둥새 구출 작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