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92)
30. 유령섬 (1)
똥폼을 잡으며 매력을 어필하던 아이언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선 쉴 새 없이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용오름으로 솟아오른 바닷물은 곧바로 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고, 주변에서는 폭풍으로 거친 파도가 일렁였다.
하지만 아이언의 힘 때문인지 주변에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그의 배만은 안전했다.
마치 태풍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고요함.
이 모든 것이 아이언의 고유 능력 ‘조류 박사’ 때문이었다.
오직 ‘조류’에 한정되는 반쪽짜리 신수 능력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강력했다.
특히 신수력이 강해질수록 그 능력이 배가되는데, 이전에는 신수력이 쥐꼬리만 해 매번 능력이 반감되었다면 이제는 일정 수준 이상 강해져서 그런지 그 힘을 제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특히 피닉스와 계약하고 두 개의 달이 온전한 힘을 되찾은 이후부터 신수력이 가파르게 상승 중이었다.
신수가 봉인당한 상황이라 아이언 입장에선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 보니 무지막지한 친화력이 천둥새에게 닿은 것이다.
“신기하네.”
린텔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배 바로 옆에 뇌전이 내리꽂히는데 이 배만은 멀쩡히 지나가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주력함대와 하얀 고래의 배는 번개 때문에 진입은커녕 뒤로 물러나야 할 판이었다.
그나마 하얀 고래 쪽이 조금 덜한 것은 신수를 부리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까웠나?”
폭풍이 몰아치는 지역을 벗어나자마자 저 멀리 유령섬의 모습이 보였다.
유령섬답게 굉장히 음산한 모습이었지만 주변에 자욱하게 깔린 검은 안개는 차원 균열의 여파가 분명했다.
“이미 차원 물고기까지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게. 검은 숲 때보다 심각한 것 같지?”
린텔의 말에 아이언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 정도로 영역이 확장된 상태라면 더 상위의 존재들이 넘어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최악이네.”
린텔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하자 다들 말없이 유령섬을 바라봤다.
동부로 지원하러 온 북동부군은 이미 검은 숲에서 차원 균열을 경험해 본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공허충이라면 지긋지긋하게 경험해 본 자들이라 유령섬 전체로 확장된 차원 게이트의 모습에 얼마나 많은 공허충들이 있을지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우리만으로는 어림도 없을 거 같은데요?”
린텔이 칼 구스타프에게 묻자 그가 말없이 유령섬을 바라봤다.
고작 배 한 척이지만 엘리트들로 구성된 병력만 타고 있었기에 부족한 전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개방된 차원 게이트가 상대라면 할 수 있는 게 없는 애매한 전력이기도 했다.
“일단 탐색부터 들어가지.”
“알겠습니다.”
구스타프의 명령에 모든 이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동부군 역시 그에 발맞춰 탐색대를 위한 작은 배들을 준비시켰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탐색 작전을 벌이려 할 때였다.
-끼룩…… 끼룩!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아이언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유령섬 쪽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환청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유령섬 가까이 다가갈수록 들려오는 소리가 명확해졌다.
신수력이 강해진 탓일까?
아직 계약하지 않은 신수의 소리마저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후…… 진짜 이것들은 신수가 뭔 죄라고…….”
멀리서 들려오는 신수의 소리는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었다.
피닉스 때도 그랬지만 신수력을 강제로 뽑아내 차원 균열을 여는 데 사용하는 건 신수에게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에게 계속 말을 거는 천둥새의 목소리에는 고통 때문에 내는 신음과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곧 벗어나게 해 줄게.”
아이언이 타이르듯 말하자 고통에 신음하던 천둥새의 소리가 줄어들었다.
바로 그때, 오염된 기운이 아이언이 있는 곳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둥새에 접근한 당신에게 해신이 불쾌감을 느낍니다. 앞으로 해신의 영역에서 당신을 향한 적대감이 배로 상승합니다.
-해신의 영역이 된 유령섬에 있는 모든 오염된 마나가 당신을 오염시키려 듭니다.
-해신의 힘에 의해 천둥새와의 교감이 강제로 끊겼습니다. 다시 교감하려면 천둥새와 더 가까운 거리에 도달해야 합니다.
알림음과 함께 강제로 천둥새와의 연결이 끊어지자 아이언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그러자 구스타프가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괜찮나?”
“……괜찮습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애써 괜찮다고 말한 아이언이 유령섬 쪽을 노려보았다.
아이언과 천둥새가 가까워지는 걸 질투하는 해신.
하지만 추한 발목 잡기에 불과했다.
이미 천둥새는 반쯤 그에게 넘어온 상황이었다.
두 개의 달 때처럼 교감을 쌓기 위해 고생할 필요도 없었다.
피닉스 때처럼 그냥 동기화되는 순간 천둥새는 그의 품으로 들어올 게 분명했다.
“추하네.”
아이언이 작게 중얼거리면서 몸을 바로 했다.
“신수 때문인가?”
“예, 뭔가가 저와 신수의 연결을 끊어 버렸습니다.”
“음…….”
아이언의 대답에 구스타프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령님!”
병사의 부름에 구스타프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서 새까만 뭔가가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모두 전투준비!”
“전투준비!”
“빨리 움직여!”
적들이 다가오는 것을 본 순간, 모든 병력이 일제히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함포를 준비하고 모든 병력이 적에게 대응할 수단을 갖추는 순간 북동부 병사 중 누군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공허충?”
그 병사의 중얼거림과 함께 하늘에서 공허충들이 배를 향해 돌진해 왔다.
공허충들이 하늘을 날아 돌진해 오자 급히 그것들을 막기 위해 마법과 함포가 불을 뿜었다.
문제는 적이 공중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바…… 바다에도 있습니다!”
공허충과 닮은 뭔가가 바다에서도 나타났다.
그것은 바다를 헤엄치는 공허충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존재들이 나타나자 북동부 병력은 혼란스러워했다.
자신들이 아는 공허충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곧 바다와 공중을 까맣게 만들 만큼 많은 공허충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은 대규모 마법을 준비해라!”
함장의 명령에, 배에 탄 마법사들이 모여서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함포를 쉴 새 없이 쏘고 장전된 마탄으로 공중에서 날아드는 공허충들을 요격하면서 정신없이 싸울 때, 아이언은 유령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 진행된 거라면…….”
수없이 많은 공허충들이 변이 과정을 일으킨 걸 확인한 아이언은 표정을 굳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변종 공허충들의 힘이 상당한데?”
“차원 물고기 때문입니다. 녀석들이 타 차원의 환경을 이곳에 구성하면서 다른 공허충들까지 넘어온 겁니다. 문제는 이런 공허충 따위가 아닙니다.”
린텔의 물음에 아이언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뭐가 문젠데?”
“차원 게이트를 뚫고 상위 존재가 넘어오는 겁니다.”
“상위 존재?”
“예, 마스터조차 일대일로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들, 그런 존재들이 넘어온다면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전생에서도 몇 번 보지 못한 존재들.
하지만 한번 넘어오면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내는 존재들이었다.
제국이 결국 차원 균열에 대응하지 못하고 계속 전선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소환된 녀석들은 차원 물고기가 만든 특수한 환경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공허충들이 계속 넘어와서 영역을 확장하고 차원 물고기가 그 영역 내의 환경을 바꾸면, 조금씩 상위 존재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차원 균열을 통해 끊임없이 나오는 공허충을 감당하지 못해 인류는 계속해서 후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악순환의 반복.
이것이 초기에 차원 균열을 처리하지 못하면 나타나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쿠구구궁!
아이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유령섬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공허충들을 상대하던 배에까지 진동이 울릴 정도였다.
“혹시…… 저게 자네가 말한 상위 존재인가?”
“……예.”
구스타프의 말에 아이언은 무겁게 대답했다.
아이언이 생각한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자 병사들의 사기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령섬 곳곳에서 거대한 문어 다리가 올라왔는데, 다리 하나하나가 크라켄의 다리 몇 개를 합친 것만큼 컸다.
바다의 재앙이라 불리는 크라켄보다 훨씬 큰 존재의 모습에 다들 저항할 의지조차 잃어버렸다.
“마스터라도 어렵겠군.”
구스타프의 말에 아이언은 침묵했다.
크라켄을 아득히 능가하는 크기의 거대 문어.
거기다 오염된 마나의 힘으로 크라켄 이상의 마력을 품고 있는 녀석이었다.
어느새 거대한 다리를 바다에 집어넣고 몸을 드러낸 녀석은 유령섬을 감쌀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아무리 마스터라도 저 괴물의 다리 몇 개만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것이다.
그만큼 어마무시한 놈이었다.
“어떻게 저런 녀석이 유령섬에 숨어 있었던 거지?”
절로 감탄사밖에 안 나올 거대한 크기의 문어를 보면서 구스타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차원 물고기가 만든 공간의 저편에 있었던 겁니다.”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검은 숲에서도 기를 쓰고 차원 게이트를 최대한 빨리 막으려 한 것이다.
차원 물고기가 넘어오는 건 별문제가 안 되었다.
문제는 그들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환경.
게다가 그 환경에 의해서 고정되어 버린 차원 게이트는 파괴조차 할 수 없었다.
사도급 성자가 대규모 정화를 해 주거나 신이 직접 강림해 오염된 마나를 한 번에 날려 버리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전엔 불가능했다.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일단 저 정도 되는 녀석을 토벌하고 난 뒤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크툴루의 ‘사도’ 툴루퍼스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일시적으로 오염된 마나가 줄어듭니다.
-천둥새의 저항으로 툴루퍼스의 능력이 50% 감소합니다.
-해신의 영향력이 줄어듭니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탐욕스럽게 주변의 오염된 마나를 빨아들이는 녀석.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만큼 막대한 오염된 마나가 필요했고, 그 덕분에 주변에 퍼진 검은 운무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문제는, 그만큼 많은 마나를 빨아들인 탓인지 녀석의 움직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천둥새 때문에 온전하게 소환된 게 아니라 힘에 부쳤지만 근처에 있는 오염된 마나를 죄다 먹어 치워서 그런지 그럭저럭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은 초거대 문어가 디저트를 먹기 위해 눈을 돌렸다.
마침 적당한 디저트가 녀석의 눈에 들어왔다.
그건 한참 공허충들을 상대하고 있는 아이언이 타고 있는 배였다.
고작 작은 배 한 척이었기에 간에 기별도 안 갈 것이 분명했지만 적당히 입맛을 돋워 주는 정도로는 충분했다.
“미치겠군.”
멀리서 거대한 다리를 뻗어 오는 툴루퍼스의 모습에, 구스타프가 전의를 상실한 채 중얼거렸다.
어느새 공허충들마저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하늘을 덮으며 천천히 다가오는 거대한 문어발들을 멍하니 바라볼 때였다.
모두가 절망할 때, 아이언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무리한 조건으로 크툴루의 사도가 소환되면서 반대 진영의 신이 개입할 명분이 성립되었습니다.
-신이 축복을 내리고자 합니다. 단! 영웅의 업적을 쌓은 자에 한해서만 가능합니다.
-근방에 영웅의 업적을 쌓은 자는 당신뿐입니다. 당신에게 신이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축복의 상자를 보냈습니다.
-※주의1 : 아직 격을 충분히 쌓지 못해 상자를 개봉한 여파로 장시간 기절할 수 있습니다.
-※주의2 : 상자에 담긴 힘은 랜덤입니다.
-상자를 개봉하시겠습니까? (Yes/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