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91)
29. 바다의 재앙 (2)
파도를 일으키는 인어족들.
그들을 저마다 삼지창을 들고 있었으며 바다의 종족이라는 걸 증명하듯 강대한 바다의 요술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바다의 출렁거림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바닷바람 역시 매섭게 인간들을 향해 불어닥쳤다.
더 이상 바다는 인간들의 편이 아니었다.
마치 인간들이 적이라도 된 것처럼 바다의 모든 것들이 함대를 공격했다.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고 소용돌이가 치며, 심지어 회오리까지 나타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인어족들이 하는 마법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해신의 축복 때문인가?”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린 아이언이 난간을 붙잡았다.
아무리 인어족이라도 이 정도의 힘을 부리는 건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했다.
세 명의 마스터들조차 고전하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바다의 힘.
그걸 부리는 건 해신의 축복 때문이 확실했다.
바다의 재앙이라 불리는 거대한 몬스터들.
인어족의 끝을 모르는 마력을 통해 만들어진 바다의 재앙.
이 2개만 하더라도 주력함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연합군의 사기를 더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라미아들이다! 라미아 군대가 나타났다.”
인간만 한 크기였지만 하반신이 물고기와 같은 모습의 인어는 보는 것만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인어들과 다르게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거대하고 흉측한 존재들이 있었다.
인어가 아닌, 인어를 닮은 괴물이 되어 버린 불쌍한 종족.
인어처럼 마법에 능하기보다 육체 능력을 통한 강함을 추구하는 종족인 라미아마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두 종족이지만 공통의 적을 상대로는 힘을 합치겠다는 듯, 인어족의 명령에 순응하면서 라미아들이 일제히 함선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라미아가 등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바다의 군대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크랩맨이다!”
“샤크맨도 나타났다!”
“거대 불가사리가 함선 하부를 부수고 있어!”
수많은 바다 몬스터들이 나타나서 함선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바다는 순식간에 거대한 전쟁터로 변했다.
바다는 출렁거리고 바닷바람은 인간들을 향해 매섭게 불어닥치는 와중에 바다의 군대까지 상대해야 한다.
인간 측 입장에선 최악인 상황.
그런 상황에서 아이언을 비롯한 고스트들은 배에 올라오는 거대한 라미아와 크랩맨은 물론이고 날카로운 코와 이빨을 갖고 있는 샤크맨까지 베어 넘기면서 함대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바다라는 환경 때문인지, 제국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주력함대의 병력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다수의 인어족이 만들어 낸 바다의 마법에 세 명의 마스터들이 묶여 있고, 바다의 재앙이라 불리는 상위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마탑주들도 묶여 있었다.
게다가 주력함대 역시 수많은 해양 몬스터에게 묶여 있는 상황.
믿을 건 비공선 함대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희망을 박살 내겠다는 듯, 상공에 수많은 세이렌과 시 드레이크가 나타났다.
“유령섬에 가기도 전에 전멸하겠네.”
아이언의 중얼거림에 근처에 있던 고스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비공선 함대가 수많은 세이렌들과 시 드레이크들에 의해 진격하지 못하고 전투에 돌입하는 것을 본 아이언은 이 상태로는 답이 없다고 판단했다.
믿었던 비공선 함대마저 가로막힌다면 유령섬에 도착할 때쯤이면 대다수가 죽어 나가 반쪽짜리가 된 병력으로 차원 게이트를 막아야 할 판이었다.
마력이 담긴 노래로 정신 공격을 하면서 환각 마법에 능한 세이렌들과 꼬리 부분이 물고기처럼 생긴 시 드레이크들이 비공선 함대를 완벽히 막아서는 걸 본 순간,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비공선 함대의 강력한 힘으로 세이렌들과 시 드레이크들을 뚫고 나가길 바랐지만 그건 바람에 불과했다.
결국 모든 함대가 가로막힌 상황에서 몇 척의 배가 인어족의 파도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저건?”
“이세계인들이 탄 배 아니야?”
린텔과 빌리 브란트가 바라본 배들은 전부 이세계인들이 탄 것들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독특한 능력으로 인어족의 파도 공격을 전부 무산시키고 있었다.
특히 선두에 선 배에는 물의 흐름마저 좋아 보였다.
인어족의 바다의 장악력을 넘어서는 존재가 배에 탄 것이다.
‘김정태다!’
물에 관해서라면 절대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김정태라면 저 현상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직 약하기 그지없는 김정태이기에 고작해야 자신의 배 주변에만 간신히 장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배 주변에 은은히 빛나는 빛무리는 오염된 마나를 밀어내거나 정화시키고 있었다.
“저래서 하얀 고래인가?”
아이언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김정태가 몸담은 길드를 바라보았다.
아무나 받아서 수를 채운 것은 아닌 듯, 전부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바다의 재앙이라 불리는 상위 몬스터들은 동부군의 함대가 막고 있었고, 인어족들은 마스터들을 막느라 바빴다.
이 상태라면 이세계인들의 함선을 막을 존재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쿠르르릉!
“미친! 여기서 폭풍이 추가된다고?”
린텔이 멍하니, 돌연 나타나 이세계인들의 함선을 집어삼키는 폭풍을 바라보았다.
수없이 많은 번개들이 내리치면서 김정태의 하얀 고래를 가로막았다.
게다가 용오름까지 솟구치기 시작하면서 완벽하게 앞을 막아 버리자, 하얀 고래라도 더 이상 전진할 수는 없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번개와 용오름이 미묘하게 하얀 고래 길드가 탄 배를 피해 간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뭐지?”
아주 먼 거리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이언의 감각을 자극하는 이 느낌은 신수력과 비슷했다.
다만 끈적끈적한 느낌이 따라붙어서 이것이 신수력이 맞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전투를 치르면서도 계속 느껴지는 묘한 느낌에, 표정을 구기면서 적을 베어 낸 아이언이 결국 앞에서 돌진해 오는 크랩맨을 베어 버리고는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함장님.”
“예.”
“혹시 저기 근처로 가실 수 있겠습니까?”
아이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하얀 고래가 있는 곳이었다.
번개가 내리치고 용오름이 솟아나는 곳으로 가 달라는 말에 함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려운 거 알고 있습니다. 다만…….”
“뭔가 느껴지시는 겁니까?”
“……예.”
“신수와 연관되어 있는 겁니까?”
함장의 물음에 아이언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함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상태가 지속되면 피해가 누적될 뿐이었다.
지금은 뭐라도 해 봐야 할 때였다.
“지금부터 하얀 고래를 향해 전진한다!”
함장의 고함 소리와 함께 해병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아이언과 고스트들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해 메꾸기 시작했다.
전원 5단계 이상의 엘리트 집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배로 올라오던 크랩맨들과 라미아들이 바다로 하나둘 도망쳤다.
인어족이 어떤 공격을 할지 몰라 아껴 두었던 힘을 전부 풀어낸 덕분이다.
“또 느낌이 온 거냐?”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린텔이 웃으면서 묻자 아이언은 고개를 저었다.
“흠…… 그래도 저기에 뭔가 있다는 거지?”
“예.”
“그럼 가야지.”
아이언의 대답에 린텔이 망설일 것 없다는 듯 말하며 칼 구스타프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 역시 아이언을 믿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런 상황을 두 차례나 경험한 린텔과 고스트들은 아이언의 감을 믿고 최선을 다해 배에 올라온 바다의 군대를 몰아냈다.
그러자 동부 해병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북동부에서 온 병력 전원이 아이언의 말 한마디를 믿고 움직이는 모습이, 열심히 배를 움직일 준비를 하던 동부의 해병들에게는 놀라웠던 것이다.
그것도 지휘관급이나 장성급 장교도 아니고 중령에 불과한 아이언의 말을 저렇게까지 철석같이 믿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언이 북동부에 가져다준 평화를 생각해 보면 절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북동부 병력의 강력한 신뢰 덕분일까?
동부의 해군들 역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고스트들은 하얀 고래가 있는 곳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었다.
여전히 사방에서 바다의 군대가 달려들었지만 어찌어찌 떨쳐 내면서 유령섬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였다.
콰르릉!
사방에서 달려드는 라미아와 크랩맨을 배 아래로 떨궈 버리면서 전진하는 순간 아이언의 배를 경계하듯 번개가 몰아쳤다.
마치 더 이상의 접근은 불허한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앞으로 갈수록 그건 더욱 심해졌고, 그럴수록 아이언 역시 움찔거리는 횟수가 많아져 갔다.
언뜻 보기엔 번개와 천둥소리에 놀라서 움찔거렸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린텔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느낌 왔냐?”
“예.”
아이언이 이번엔 확실하다는 듯 말하자 린텔이 빙그레 웃었다.
“이게 신수의 능력인가?”
굉장히 넓은 지역에 용오름과 번개의 폭풍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면서 린텔이 중얼거렸다.
아이언이 뭔가를 느꼈다면 신수의 능력일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이번에도 새일까?”
“아마?”
“흠…… 이번엔 고래 같은 녀석이면 좋겠는데…….”
고스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뭔가 집중하는 표정.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항상 일을 내고는 했던 아이언이기에 다들 기대 어린 표정이었다.
그 순간 아이언이 있는 쪽으로 번개 하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나서서 막아 주려던 칼 구스타프가 벙찐 표정으로 굳었다.
내리치던 번개가 스스로 피해서 다른 곳으로 날아간 것이다.
이런 일은 연속해서 일어났다.
시간이 지나자 간간이 배에 내리꽂히던 번개들 역시 배를 피해서 내리쳤다.
배 바로 옆에만 내리꽂히거나 용오름 역시 길을 터 주면서 배가 영향을 받지 않게끔 해 주었다.
이런 신기한 현상이 반복되자 어느새 아이언의 배는 하얀 고래 길드가 탄 배를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번개의 폭풍이 몰아치고 용오름이 솟아오르는 지역에서 마치 아이언의 배가 있는 곳만 안전 지역이라는 듯 그곳만 피해서 폭풍이 몰아쳤다.
이 기현상에 멀리서 지켜보던 주력함대는 물론이고 인어족마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해신이시여…… 어찌하여?”
인어족이 멍하니 아이언이 탄 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아이언에게 하나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당신의 ‘조류 박사’의 능력이 해신의 능력을 걷어 내고 ‘천둥새’에게 닿았습니다.
-모든 조류에게 압도적인 친화력을 보유한 당신의 능력은 해신의 권능마저 일시적으로 벗겨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신수력 보유량의 부족으로 함선 하나의 영역을 며칠 정도 안정 영역으로 지정할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당신이 탄 배라면 천둥새를 통해 발현된 해신의 저주가 통하지 않습니다.
-‘천둥새’가 당신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듭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이 매력은 커집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 보세요♥
연이어서 뜨는 알림음에 정신을 못 차리던 아이언이 멍하니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그러고는 똥폼을 잡으면서 중얼거렸다.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