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90)
29. 바다의 재앙 (1)
아이언에게 들려온 동부 사령부가 함락당했다는 소식.
충격적인 소식이었기에 아이언은 이걸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하나 고민하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고민은 곧바로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아이언이 들은 소식이 다른 이세계인들에게도 전해지면서, 곧 유령섬으로 가는 모든 함대에 그 소식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동부 사령부가…… 진짜 함락된 것인가?”
“말도 안 돼!”
“사령부가 해적들 따위에게 함락당한다고?”
동부군이 동요했다.
지금이라도 주력함대를 돌려야 하는지, 아니면 이대로 유령섬으로 진격해야 하는지를…….
하지만 유령섬 토벌군을 데려다주는 주력함대의 주인인 동부 사령관은 사령부에 있었고, 함대를 지휘하는 장교에겐 두 사령관과 가주들, 탑주들을 돌려세울 힘이 없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일단 유령섬 쪽으로 함대는 계속해서 진격했다.
그럴수록 초조하게 시간을 흘러갔고, 곧이어 돌아가야 한다는 쪽과 이대로 진격하자는 쪽이 격렬하게 싸웠다.
돌아가자는 쪽은 동부 사령부를 이대로 적에게 넘겨주면 보급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이었고.
진격하자는 쪽은 최대한 빨리 차원 균열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것이 동부 사령부의 희생에 보답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둘 다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장교는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마법 통신구를 쉼 없이 사령부 쪽에 연결하는 것밖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연락은 계속해서 닿지 않았고, 사령부가 함락당한 것이 기정사실화되었을 때였다.
모두가 염원하면서 바라보던 마법 통신구에 빛이 들어온 것이다.
“통신을 받은 자는 누군가!”
크림슨의 물음에 모두들 긴장한 표정으로 통신구를 바라보았다.
상대가 해적이나 인어족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 세바요르 대위입니다.
다니엘의 대답에 크림슨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
“현재 동부 사령부의 상황은 어떤가?”
-……지금 상황이 좋지 못해 짧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말하고는 말을 멈췄다.
멀리서 포격음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한창 전투 중인 것 같았다.
다들 떨리는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면서 다니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금 다니엘의 말이 들려왔다.
-현재 동부 사령부의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사령부의 주요 건물들이 테러당했으며, 주요 상징물들 역시 불탔습니다. 이세계인들에게 확인해 본 바, 그들이 말하는 ‘시스템’이 동부 사령부의 함락으로…….
“그건 알고 있네.”
크림슨의 대답에 다니엘이 잠시 침묵하더니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아, 그쪽에 이세계인들이 더 많았죠.
깜빡했다는 듯 자책한 다니엘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지금 상황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마리카 항구엔 해적들이 몰려왔고, 소수의 인어족들과 범죄자들로 인해서 항구 전체가 전장이 된 상태입니다.
“사령관은! 사령관은 괜찮은가?”
-예. 현재 인어족과 전투 중이시며 호각으로 싸우고 있어 언제 결판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니엘의 보고에 두 사령관들과 고위 관계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부의 최강자가 살아 있다면 지휘 체계 혼선은 없을 것이고, 그럼 힘들겠지만 결국엔 해적들을 토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럼 아직 항구 자체는 무사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다만…… 대규모 전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추가적인 지원이 이뤄지기엔 시간이 많이 걸릴 거 같습니다.
다니엘의 말에 다들 깊이 침묵했다.
한마디로 지금 전력만으로 유령섬을 정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최악의 가정은 면했다.
마리카 항구만 살아남는다면 사령부가 복구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럼 우리가 도우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건 아닙니다. 이미 후방의 동부군이 지원군으로 오고 있고, 각 지역을 담당하는 함대들 역시 사령부로 복귀 중입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것이군.”
-예! 그러니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유령섬으로 진격해 주십시오.
크림슨의 말에 다니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일부 함대라도 가서 도와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닙니다. 오히려 유령섬으로 진격하는 분들이 더 위험한 상황입니다. 이미…… 차원 게이트는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다니엘의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사령부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는데, 그가 인어족의 혼혈이었습니다. 지금의 정보는 그에게 들은 것입니다.
“배신자? 사령부 내부에 말인가!”
-예. 배신자 마테오 가르시아에게 얻은 정보로, 여러 정보들을 검증한바 신빙성 있는 정보로 판단됩니다.
다니엘의 말에 근처에서 듣고 있던 해군 장교들이 놀란 눈으로 통신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게 정말이냐! 마테오가 배신자라고!”
“확실해!”
“다니엘! 대답해라! 마테오가 정말 배신자란 말이냐!”
고위 장교들이 다니엘에게 추궁했지만 더 이상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통신구 너머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지지직! 쾅! 쾅! 두두두두두!
갑자기 들려오는 폭발음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통신구를 바라봤다.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총소리, 포격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는 걸 한참을 듣고 있자, 기다리고 있던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만 끊어야 될 것 같습니다. 사령부가 복구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니엘의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이 끊겼다.
통신구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만으로 현재 마리카 항구가 어떤 상황인지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마테오 이놈!”
“배신자라니…… 감히!”
“동부군을 배신하다니!”
함대를 지휘하는 지휘관들의 표정에 분노가 깃들었다.
그런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면서도 지금 당장 중요한 걸 잊지 말라는 듯 크림슨이 단호하게 말했다.
“진정하게. 지금 분노하고 있을 때가 아니네.”
크림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 대위가 목숨 걸고 알려 준 정보를 상기하게. 우린 최대한 빨리 유령섬으로 가야 하네.”
크림슨의 말에 제든 윅스와 마탑주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 사령부가 치열한 전투 끝에 알려 준 소중한 정보를 헛되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통신구 너머로 들려온 동부 사령부의 전투 소리에 지휘관들이 머뭇거렸다.
“다들 정신 차리게!”
크림슨의 호통에 함대 지휘관들이 정신을 차렸다.
“이미 늦은 것 같소.”
그때 라이너의 말과 동시에 저 멀리서 마스터들을 자극하는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두 사령관이 움찔거리면서 반사적으로 검에 손을 올렸다.
“오길 잘했군. 유령섬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
신검가주 테리언 시구르드가 오싹할 정도의 살기를 뿜어 대는 존재를 느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끝나자 곧 마탑주들도 기운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황급히 모든 이들이 밖으로 나왔다.
“비상! 비상! 전방에 적 출현!”
“규모는!”
“알 수 없습니다. 오염된 마나로 보이는 검은 기운이 깔려 있어서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병사의 보고에 장교들이 망원경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새까맣게 몰려드는 검은 운무와 그 사이에서 언뜻 보이는 괴상한 생명체들.
“이거…… 아무래도 우리 연합이 먼저 유령섬으로 가야 할 것 같소.”
밖으로 나온 제든 윅스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그의 위로 비공선 함대가 하늘을 유영하듯 천천히 하강했다.
동부군의 주력함대에 타고 있던 모든 병사들을 비공선에 태워서 공중을 통해 단번에 유령섬으로 진입할 생각인 듯싶었다.
그러자 크림슨과 라이너, 마탑주들의 표정이 찡그러졌다.
서부를 지키느라 참여하지 못한 서부 사령관이 주력 비공선 함대를 보내 주었다.
“하하! 먼저 가겠소!”
자신들의 병력만 쏙 빼서 가 버리는 얄미운 제든 윅스를 보면서 다들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여기선 손잡아야 할 듯싶은데…….”
“그래야 할 것 같소.”
“쯧!”
라이너의 말에 크림슨과 테리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테리언의 경우 라이너와 손잡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게 표정에서 드러났다.
그건 라이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과 불처럼 서로가 싫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는 둘이지만 지금의 상황만큼은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자 자! 이럴 시간 없소. 각자 위치로 가서 적들을 맞이해 줍시다.”
크림슨의 말에 라이너와 테리언이 각자 자신들의 주력 병력이 있는 함선으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마탑주들 역시 저마다 자신들의 함선으로 흩어졌다.
“모두 공격대형으로!”
함선의 지휘관들이 저마다 명령을 내려 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순간.
갑자기 양쪽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인어족인가?”
라이너가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치 사자가 발톱을 휘두른 것처럼 할퀸 듯한 상처가 나면서 거대한 파도가 무너졌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에 무너질 마법이 아니었다.
곧이어 아까보다 더 거대한 파도가 만들어지면서 함선 전체를 집어삼키려 했다.
그러자 마치 한 번에 파도를 없애지 못한 라이너를 비웃기라도 하듯 테리언의 거대한 검이 파도 전체를 날려 버렸다.
“재수 없는 놈.”
라이너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오러를 끌어 올렸다.
아까와는 달리 자세를 잡은 라이너가 오러가 휘감긴 검으로 사자검식을 풀어냈다.
-크와아앙!
마치 사자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크기의 파도 전체가 충격파에 터져 나가면서 거대한 물의 흐름이 반대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바다는 인어족의 영역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해신의 축복 때문일까?
또다시 거대한 파도가 만들어지면서 테리언과 라이너의 공격을 받아 내고는 연이어서 함대 전체를 휘감는 소용돌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난질이 과하군.”
라이너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전력으로 오러를 끌어 올렸다.
인위적으로 바다를 조종하는 마력의 흐름을 끊어 버리겠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건 크림슨과 테리언 역시 마찬가지인 듯, 전력으로 오러를 끌어 올려 바다의 흐름을 조종하는 마력 덩어리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세 명의 마스터가 소용돌이와 파도를 상대로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함선에 재앙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콰드득!
함선 일부를 휘감은, 거대한 빨판이 붙은 다리.
그것을 본 해병들은 곧바로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크…… 크라켄이다!”
거대한 다리를 바로 앞에서 목격한 해병이 숨넘어갈 것 같은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치자 다들 황급히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선 여러 척의 배를 휘감고 있는 크라켄의 다리를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북동부와 중앙 마탑 연합 쪽에 나타난 크라켄을 보면서 나머지는 자신들이 아니라 안심했다.
그렇게 안도하면서 어딘가에 숨어 있을 인어족을 찾으려 할 때였다.
콰아앙!
거대한 충격과 함께 배 한 척이 반쯤 뚫려 버리는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
“메갈로돈이다!”
동부 마탑의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함대 쪽에서 나타난 거대한 상어.
크라켄과 마찬가지로 바다의 재앙이라 불리는 메갈로돈의 등장에 다들 혼란스러워하면서 다급하게 마법과 포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앙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삐오오오!
“시 서펜트다! 뒤쪽에서 시 서펜트가 출현했다!”
거대한 물뱀의 등장과 동시에 남부 연합마저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동부군의 주력함대 전부가 혼란에 빠져 있는 틈을 타 이 소란을 일으킨 주범이 나타났다.
“인어족인가?”
고스트들과 함께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아이언이, 물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어족을 보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