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89)
28. 동맹과 배신 (3)
인어족이 부리는 바다의 요술.
파도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내며 재해라 불리는 소용돌이와 폭풍까지 만들어 내는 일족.
그렇기에 위험하며, 마스터라도 바다에서라면 싸우길 피해야 한다는 일족이었다.
하지만 그 인어족을 막는 쪽 역시 바다라면 지긋지긋하게 경험했으며, 마도사의 경지에 이른 자였다.
바다를 활용할 줄 아는 것은 동부 사령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바다와 그걸 얼려 버리는 강대한 얼음 마법.
이 2개의 거대한 마력의 충돌의 영향은 항구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마스터들 간의 싸움이 서로 간의 거리를 좁혀 나가는 것이라면, 마도사들끼리의 싸움은 영역을 더 빠르고 넓게 확장하는 것이었다.
“제법이군. 인어족이라도 이 정도 크기의 파도를 만드는 건 힘들 텐데…….”
그저 복수를 위한 어린 인어족은 아니라는 걸 확인한 리처드 버튼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인어족이 갖고 있는 특별한 보물을 이용해 마도사급을 흉내 낸다고 생각했던 리처드 버튼이지만, 싸울수록 그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은 진짜다!’
자신도 모르게 인어족의 강함을 인정한 리처드 버튼은 본격적으로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강력한 인어족을 상대로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다.
리처드 버튼이 본격적으로 얼음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인어족 역시 단순히 파도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물을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새 두 사람의 주위에는 그들만의 영역이 만들어졌다.
꽁꽁 얼린 바닷물을 이용해 영역을 만들어 낸 리처드 버튼.
바다의 물결을 이용해 자신만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낸 인어족.
각자의 영역이 만들어지자 곧바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기 위한 공격이 시작됐다.
바다를 얼려 버리는 동부 사령관의 마법과, 파도를 일으켜 그걸 부숴 나가는 인어족.
두 존재는 그걸로 부족했는지, 인어족이 파도를 뭉쳐 거인을 만들면 동부 사령관 역시 부서진 얼음 조각들을 모아 얼음 거인으로 맞상대했다.
당연히 이 두 존재의 싸움에 의해 항구 한쪽은 완전히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지역으로 변해 버렸다.
결국 두 마도사급 존재들에 의해 항구가 봉쇄되어 버렸지만 그곳 외에는 영향이 없었기에 항구를 침범하는 해적들도, 그들을 막기 위해 나선 배들도 각자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최소 수백 척은 되어 보이는데…….”
“미치겠군. 함선이 너무 부족해.”
근방에 있는 해적들이 있는 배 없는 배 다 박박 긁어 왔는지 숫자 자체가 상당히 많았다.
그것도 어중이떠중이만 있는 게 아니라 대포도 달려 있는 나름 건실한 놈들이었다.
즉,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해적들이 동맹을 맺은 셈.
그걸 확인한 함선들은 자신들이 유리한 지형에서 방어선을 세우고 미친 듯이 몰려드는 해적선들을 상대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막아라!”
“전원, 일제사격!”
“여기가 뚫리면 안 된다!”
사력을 다해 해적선의 진입을 저지하려는 해군.
그리고 그런 해군을 뚫고 항구로 진입하려는 해적들.
아무리 잘 정비되고 거대하게 건조된 함선이라 해도 물량 앞에는 장사 없었다.
수십 척의 배로 항구로 진입하는 해적선들을 전부 막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자신들의 배가 부서지는 걸 감내하면서 돌진하는 해적선들이라 더더욱 힘들었다.
결국 조금씩 해적선들이 항구 내에 진입하는 상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명색이 제국 최강의 해군답게 다수의 해적선들을 더는 진입하지 못하게 묶어 두는 데는 성공했다.
나머지는 항구 안에 있는 방어진지에서 최대한 버텨 주기를 바랄 뿐…….
문제는 현재 마리카 항구는 해적들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멀리서 항구를 관찰하던 병사가 상인의 거리를 약탈하고 있는 범죄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곧바로 사령부 쪽으로 튀어 나갔다.
“참모장님!”
“무슨 일인지?”
“범죄자들이 상인의 거리까지 침범했습니다!”
장교의 보고에 참모장 콘스빌의 표정이 굳어졌다.
“거기 있던 호위 병력은…….”
“상인들을 대피시키고 있거나…….”
“전멸인가?”
콘스빌의 물음에 장교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콘스빌이 직접 확인하기 위해 사령부의 가장 높은 전망대로 향했다.
거기서 그가 본 항구의 풍경은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항구의 음지에 처박혀 있던 범죄자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거지, 부랑자, 범죄자, 암상인, 밀수업자 등등 음습한 항구에 있던 자들이 모조리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상인 거리를 약탈하고, 거들먹거리던 하위 귀족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항구의 권력자들이 있는 곳을 위주로 공격해 나가자 평소에 불만 있던 자들 역시 그것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마치 혁명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들불처럼 번져 나간 것이다.
이윽고 평소 마리카 항구에 불만이 있던 모든 이들이 이 대열에 동참하자, 더 이상 병력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난리 났군.”
동부군의 주력은 유령섬으로 떠난 상황.
그나마 동부 사령관이 남아 있었기에 안심했었지만 그조차도 파도를 일으키는 인어족에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항구에 숨어 있던 범죄 조직들이 기세를 타고 사령부의 중요 지역들을 점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큰일이야.”
사령관이 인어족에 묶인 지금은 작전참모장이자 부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는 콘스빌이 최종 명령권자였다.
그렇기에 다급하게 올라온 작전참모 홀러웨이를 바라보았다.
“홀러웨이.”
“예!”
“고위 장교들하고 기사들 전부 소집해. 우리가 직접 범죄자들을 상대한다.”
“그렇게 하면 사령부가 비게 될 겁니다.”
홀러웨이 작전참모가 사령부를 걱정하면서 말하자 콘스빌이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위 장교와 기사 전원을 차출하면 남은 건 어린 장교 몇 명과 병사들뿐이었다.
사실상 네임드 범죄자 몇 명만 와도 사령부가 위험한 셈이 된다.
콘스빌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사령부만 지키고 있다가는 항구 전체가 위험할 판이었다.
“사령부 쪽으로 귀족들을 모아. 그럼 자연히 그들의 휘하 기사들이 사령부로 모이겠지.”
“그것으로 되겠습니까?”
“우리가 구출한 상인들의 호위 부대 역시 사령부 쪽으로 모아야겠지.”
콘스빌의 말에 홀러웨이가 한숨을 쉬었다.
그들을 모아 봤자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함께 훈련받지 않은 이상 제각각이었기에 제대로 된 병력에는 대항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홀러웨이는 다시 반대하려 했으나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콘스빌이 소리쳤다.
“정신 차려! 이대로라면 항구 자체가 위험해! 범죄 조직들이 노리는 곳을 생각해라!”
항구 곳곳에 설치된 방어 시설.
현 사태의 주동자인 범죄 조직들은 바로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선동당해 폭주하는 시민들과 잡범들을 상인의 거리와 귀족의 거리에 침입시켜서 눈을 돌리고, 그사이 해적들이 몰래 잠입할 수 있도록 항구의 주요 방어 시설을 타격하려는 것이다.
“지금 즉시 기사단을 모으겠습니다.”
“좋아.”
홀러웨이가 경례하고 급히 내려가자 콘스빌은 망원경을 이용해 주변을 살폈다.
“분명 주동자가 있다. 저 정도 되는 범죄 조직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난 건 우연이 아니야.”
콘스빌은 직감적으로 이번 사태 뒤에 굉장히 위험한 누군가가 있다고 판단했다.
처음엔 인어족인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지금이 기회다!’ 싶어서 들고일어난 것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질서 정연했다.
어딜 먼저 공략해야 항구의 혼란이 가중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놈이었다.
게다가 범죄자들이 들고일어난 시점 역시 심상치 않았다.
딱 주력함대가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멀어진 시간.
그리고 후방의 동부군이 사령부에 들어서기 전, 약간은 혼란스러운 그 빈틈을 노린 것이다.
이건 동부군 내에 첩자가 있지 않다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인어족과 손잡은 누군가가 정보를 팔아 꾸민 게 분명했다.
“대체 누구냐…….”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동부군을 배반한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할 거라며 콘스빌은 이를 바득 갈았다.
하지만 이렇게 분노하는 사이에도 마리카 항구는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곳곳이 방화범들에 의해 불타고, 이미 항구 전역이 약탈에 노출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방어선을 뚫고 해적선들이 하나둘 항구로 진입하는 상황.
“모두들 방어진지 위주로 작전을 펼친다. 절대! 해적들이 항구로 들어오는 걸 용납해선 안 된다! 알겠나?”
“예!”
기사단과 고위 장교들이 일제히 대답하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콘스빌이 다니엘 세바요르를 바라보았다.
“다니엘 대위!”
“예!”
“곧 사령부로 상인들과 귀족들이 올 거다. 그들의 호위무사들과 기사들을 데리고 무조건 사령부를 지켜라. 알겠나?”
“목숨 걸고 지키겠습니다.”
“좋다. 믿어 보겠다.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도록.”
콘스웰의 말에 다니엘 세바요르가 굳은 표정으로 경례하고는 병사들과 장교들을 데리고 사령부를 수성하기 위해 움직였다.
고급 병력이 대부분 밖으로 나간 이상 최대한 성문 위주로 병력을 집결시켜 막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기에 사령부 내에 있는 모든 병력을 정문에 집중시켰다.
그사이 도망쳐 온 상인들과 귀족들, 그리고 다른 제국민들을 하나둘 사령부로 밀어 넣고 뒤이어 쫓아올 범죄 조직들과 싸우기 위해 강제로 호위 병력을 차출했다.
“와아아아아!”
탕! 탕!
멀리서 총을 쏘면서 나타나는 범죄 조직들이 정문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리카 항구에 불만이 있어 들고일어났지만 사령부에 진입할 용기까진 없었다.
그동안 쭉 겪어 본 동부군의 위용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 조직들은 달랐다.
어디서 들은 정보인지 몰라도 사령부의 전력이 충분히 점거 가능할 수준이라는 걸 알았기에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항구의 방어진지를 공격해 해적들을 들여보내는 쪽과 사령부를 점거하려는 쪽, 둘로 나뉘어 동부군을 공격했다.
하지만 명색이 동부군이다.
아무리 썩었다지만 중앙군처럼 인맥으로만 유지되는 군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범죄 조직들을 상대로 훌륭하게 버텨 냈다.
아직은 미숙한 다니엘의 지휘에도 훌륭하게 정문을 사수하는 동부군.
하지만 문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콰아앙!
“어디냐!”
“사…… 사령부 내부입니다!”
“뭐?”
다니엘이 당황한 표정으로 병사를 보다가 초임 장교 몇 명을 돌아봤다.
“너희들은 나와 같이 간다.”
“이…… 이곳은 어떡합니까?”
“그냥 버텨!”
다니엘은 그렇게 고함치면서 몇 명의 장교들과 함께 재빨리 사령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에도 폭발음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건 범죄자들이나 해적들이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령부 건물 여기저기가 터져 나갔지만 안으로 들어온 적이 보이지 않았다.
“폭탄을 찾으시오! 폭탄!”
다니엘은 폭발음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에게 폭탄을 찾으라는 말을 하며 건물을 바라보았다.
사령부에서 중요한 건물들에서만 폭발음이 들려왔다.
사령관실.
작전 회의실.
사령부 로비.
무기고.
동부 사령부 자료 저장실.
이런 중요한 곳들은 물론, 사령부를 상징하는 상징물들도 터져 나갔다.
정문에 걸린 제국기와 사령부의 깃발이 불태워졌다.
역대 영웅들의 초상화가 걸린 영웅관.
영웅들의 석상.
동부군의 역사관.
이런 것들까지 터져 나가자 다니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동부 사령부의 명예를 바닥까지 처박겠다는 의미가 담긴 듯한 테러.
인어족이 침입한 건가 싶었지만 동부 사령부의 장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최단거리를 이용해 테러가 이어졌다.
그런 흔적들을 본 다니엘은 배신자를 찾기 위해 매의 눈으로 사령부를 뒤졌다.
그러다 ‘혹시?’ 하는 표정으로 황급히 사령부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미 사령부의 중요 건물과 명예를 상징하는 상징물들도 죄다 불태워진 상황.
그런 상황에서 사령부에 남은 상징물은 딱 하나뿐이었다.
건물 맨 위에 걸린 동부군의 깃발.
그 앞에 익숙한 한 남자가 횃불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냐?”
다니엘의 물음에 깃발을 불태우려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남자의 모습에 다니엘이 핏줄이 선 채 고함쳤다.
“마테오 이 개×××야!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다니엘의 고함 소리에도 마테오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동부군의 깃발을 불에 태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다니엘이 분노하면서 마력을 끌어 올려 마테오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미친 새끼야!”
콰아앙!
전력을 다한 다니엘의 공격.
하지만 그의 정령 공격을 막아 낸 마테오.
당연히 막힐 줄 알았던 공격.
4단계 언저리에 있는 마테오라면 당연히 막아 낼 공격이었다.
하지만 다니엘의 눈은 미친 듯이 커져 있었다.
그가 공격을 막기 위해 사용한 힘이 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
다니엘의 ‘물의 창’을 막아 낸 ‘물의 방패’.
“정령……술사였어?”
“그래.”
자신보다도 더 강력한 물의 정령술을 느낀 다니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체…… 대체! 왜! 뭐 때문에 우릴 배신한 거냐!”
“인간과 인어족의 혼혈이니까.”
다니엘의 분노에 찬 물음에 담담히 고백한 마테오.
그의 대답을 들은 다니엘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멸족했다 알려진 인어족의 혼혈이라는 말에 그의 행동이 단번에 이해가 갔던 것이다.
너무 화나면 머리가 냉철해지는 것일까?
어느새 흥분을 가라앉힌 다니엘은 검을 뽑아 들었다.
“네가 왜 이러는지는 알겠다. 그러니…… 이젠 적으로만 생각할게.”
다니엘의 말에 마테오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사령부에서 뭘 할 생각 따윈 버려야 할 거야.”
“할 생각도 없어. 내가 해야 할 일은 끝났으니까.”
마테오의 말에 다니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동부 사령부의 상징물을 부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테오 역시 그것까진 모르는 듯 그저 다니엘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테러한 사람도, 그걸 막으러 온 사람도 알 수 없었던 그 이유를, 유령섬으로 향하는 자들은 알게 되었다.
-동부 사령부가 인어족에게 함락당했습니다. 해신의 축복이 추가적으로 인어족에게 부여됩니다.
-무언가의 힘이 강해지면서 차원 균열의 힘이 강해집니다.
“뭐야…… 이거?”
배를 타고 가고 있던 아이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동부 사령부가…… 함락당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