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88)
28. 동맹과 배신 (2)
“자네가 이렇게까지 이세계인들을 잘 알 줄은 몰랐군.”
“용병이나 이세계인이나 그게 그거 아니겠습니까?”
자신을 칭찬하는 리처드 버튼을 향해 아이언이 빙그레 웃었다.
중앙의 귀족들과 얽혀 있는 이세계인들이 이렇게 중앙을 헌신짝 버리듯 버려 버리고 동부로 갈아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할인!
특권!
기회!
요거에 미치는 놈들이 이세계인들이다.
정말 게임이라 생각하는 놈들과 성장에 미친 놈들.
보상을 위해서 개처럼 뛰는 놈들이 베타테스터였으니, 이곳에 온 사람들이라 해서 다를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자가문.
처음 아이언이 리처드 버튼에게 말한 후 라이너에게 연락했을 때가 떠올랐다.
-동부로 와 달라고?
“예.”
-내가 왜 그래야 하느냐?
겨울산 때처럼 내기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라이너가 굳이 이걸 들어줘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걸 예상한 듯 아이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번 차원 균열은 엄청난 규모입니다.”
-그래서?
“그때 마녀와 못 싸웠다고 아쉬워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아이언의 말에 라이너의 입이 다물렸다.
무려 두 개의 달과 크림슨이 같이 싸웠음에도 밀렸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보여 주었던 대마녀.
그녀와 싸우지 못했던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던 라이너였다.
-도발하는 것이냐? 하나 수가 얕구나.
“그럼 이건 어떠십니까? 내기하는 겁니다.”
-내기라…….
아이언의 말에 라이너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이미 동부에 참전하는 것만으로 사자가문엔 이득일 테지만 가주께서 그런 거에 움직이실 분이 아니죠. 그러니 다시 내기하는 겁니다.”
-네놈이 걸 게 있느냐?
“지면 가주께서 원하는 바 하나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잠시 침묵하던 라이너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 겨울산에서의 내기의 2차전인 것이냐?
“그렇습니다.”
-좋다! 어디 재밌게 놀아 보자꾸나.
“아! 참고로 판이 좀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더 좋지.
라이너의 대답에 아이언이 빙그레 웃으면서 수정구를 껐다.
그렇게 대화가 끝났을 때만 해도 아이언은 자신의 의도대로 잘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미친놈이 갑자기 동부 마탑과 손잡은 것이다.
설마 사자가문이 동부 마탑과 손잡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아이언은 벙찐 표정을 지었으나, 북부가 서부와 손잡기 위해 움직이자 그 역시도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자가문은 동부 마탑과 동맹이 확정되고, 북동부는 중앙 마탑과 동맹을 맺기 위해 움직였었다.
라이너의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바쁘게 움직이게 되었지만 결과는 더 좋았다.
라이너 덕분에 제국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용병과 이세계인을 훨씬 더 많이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검가문의 참여.
그건 적당히 여흥만 즐기려던 라이너에게 불을 지핀 꼴이었다.
그렇다 보니 동부에 예상보다 더 많은 정예 병력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동부도 위치를 공고히 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내일 당장 동부 사령부는 중립을 지킬 거라고 발표해야겠군.”
아이언의 말에 리처드 버튼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중립을 지키는 동부군.
이것은 또 다른 세력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정하는 것과 동시에 여러 세력으로 얽힌 동부에 중심을 잡아 주기에 좋았다.
적어도 동부군의 말만은 어느 정도 따라 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바다의 보주와 유령섬을 포기해야 하지만, 이미 상인회와 동부의 각 세력에게 엄청난 지원을 약속받았기에 동부는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그럼 동부 사령부를 지원하는 상인회와 다른 세력들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할인이라는 것도 말장난이었다.
동부로 수많은 사람들과 세력이 모인 시점에서 큰 손해는 아니었다.
오히려 점점 정체되어 가는 동부 상권이 다시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리스크 관리도 가능하니 이득이었다.
거대한 차원 균열의 위험을 겨우 이 정도 손해로 메꾼다?
상인 입장에선 엄청나게 남는 장사인 셈이다.
그럼 리처드 버튼만 이득을 봤나?
그것도 아니다.
‘이미 여기서 얻을 건 다 얻었다.’
아이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리처드 버튼과 인사를 나누고 크림슨 사령관이 묵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자가문이 동부에 합류한다는 약속을 받은 그 즉시 리처드 버튼의 소개로 영세한 마도 공방과 작은 마탑, 공방이 북동부로 옮기기로 약속을 받았고 진행 중이다.
거기다가 동부 사령관의 지시로 벌써부터 바덴강 하류 지역에 작업이 들어가는 상황.
즉, 북동부 사령부 입장에선 이미 얻을 건 다 얻은 상황이란 것이다.
이번 유령섬 공략은?
북동부 입장에서는 그냥 추가로 여흥 삼아 소소한 이득을 챙기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이기면 좋고 그게 아니어도 별로 아쉬울 거 없는 상황.
“정말 자네 말대로 되었군.”
“운이 좋았습니다.”
아이언이 겸양의 말을 하자 크림슨이 활짝 웃었다.
“하하! 제든 그놈이 벌써 눈치채고 시부렁거리기 시작했네. 북동부만 이득 봤다고 말이야.”
“그건 아닙니다. 북부 역시 무역로가 정비되고 있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이미 이득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만큼은 아니지.”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우리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준비를 해 볼까?”
“지금부터 고스트에 합류하겠습니다.”
“그리하게.”
크림슨의 허락과 동시에 동부에 도착한 고스트에 합류한 아이언은 본격적으로 유령섬 공략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부에 모인 세력들이 저마다 동맹을 맺으면서 유령섬 공략을 위해 움직일 때, 거대 세력만이 아닌 소규모 세력들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병들을 비롯해서 소규모 모험가 길드까지 많은 세력들이 동부로 몰려들었지만 그중에 가장 눈여겨볼 세력들이 나타났다.
중앙에서 밀려난 이세계인들의 길드들이지만, 차원 균열에 앞장선 길드들이기도 했다.
또 중앙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길드들 역시 동부에서 자리 잡아 비상하려는 꿈을 갖고 모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길드가 나타났다.
“긴줜퉤가 들어간 길드라고?”
“그 긴줭퉤?”
“와…… 그 녀석도 길드가 있었구나?”
“혼자 다니는 줄 알았는데…… 깅줜태를 받아 주는 길드도 있네?”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발음으로 말하는 김정태가 들어간 길드.
[하얀 고래]
깃발에 하얀 고래가 그려져 있고, 그 안에 하얀 고래라는 이름이 쓰인 문양이 길드원들의 가슴팍에 박혀 있었다.
한 가지 신기한 건 김정태가 속해 있는 길드는 그곳을 중심으로 이세계인들의 길드 몇 개가 뭉쳐 있다는 점이다.
거대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 이세계인들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이다.
그러자 용병 길드 역시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중앙의 고귀한 혈통들이 모여 만들어졌다는 로열 블러드의 용병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용병 부대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유령섬으로 가는 연합이 하나둘 완성되기 시작할 때, 리처드 버튼이 발표했다.
“저희 동부 사령부는 유령섬 공략에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동부군은 유령섬 공략을 위한 도움을 주기 위해 중립적인 위치에 임할 것이며 앞으로 모든 공략은 각 세력이 맡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 리처드 버튼의 발표가 끝나자, 동부 사령부 정문에 주요 세력들의 연합 형태가 적힌 공문이 붙여졌다.
북동부 사령부 – 중앙 마탑
북부 사령부 - 서부 사령부
사자가문 - 동부 마탑
신검가문 - 남부 마탑
로열 블러드 – 용병 부대
하얀 고래 - 이세계 연합
앞으로 이 6개의 연합이 유령섬을 공략하기 위해 싸울 것이며, 최종 승자만이 가장 달콤한 과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연합들이 동부 항구에 모여들어 유령섬으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동부 사령부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함선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정예 병력 위주로 구성된 6개의 연합 팀을 수송하는 데 주목적을 둔 함대.
제국 최강의 함대가 하는 일이라기엔 다소 모양 빠지는 일이었지만 동부군 그 누구도 사령관의 결정에 불만을 품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해적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고, 그에 동조하는 무리가 항구에서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부군의 제1임무는 바로 사령부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
제국 제일의 항구인 마리카 항구를 지키기 위해서 차원 균열을 막는다는 명예를 버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역시…… 까다로운 사령관이야.”
푸른 머리칼의 사내가, 주력함대를 내보낸 후 철통같은 보안을 위해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간 사령관을 바라봤다.
“승산은…… 3할 이하인가?”
리처드 버튼과 자신의 승산을 점쳐 보던 푸른 머리칼의 사내가 혀를 찼다.
인어족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령관급을 상대하기는 벅찼다.
그래도 예전에는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쉽군. 동부 사령부는 내가 직접 무너뜨리고 싶었는데…….”
주력함대가 빠져나간 지금이 동부 사령부를 무너뜨리고 마리카 항구를 혼란에 빠뜨릴 절호의 기회였으나, 아쉽게도 사령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미 인어족이 배후라는 걸 밝힌 사령관이기에 자신이 직접 남아 마지막까지 항구를 지키기로 한 것이다.
“녀석을 믿을 수밖에 없겠군.”
어디선가 이 마리카 항구에 혼란을 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을 녀석을 떠올렸다.
“후…… 그럼 나의 전쟁터로 떠나 볼까?”
그렇게 말하면서 물방울이 되어 사라지는 푸른 머리칼의 사내.
그 순간 멀리서 군인들을 점검하던 사령관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사령관님?”
“쉿!”
장교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묻는 순간 사령관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순식간에 사라지기는 했으나 처음 느껴 보는 기운이었다.
“찾았다!”
동부 사령관이 그렇게 말하면서 마력을 끌어 올렸다.
“전군, 전시체제로 전환해!”
리처드 버튼이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상공에 거대한 푸른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된 순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다에서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저…… 저게!”
“인어족의 힘인가?”
옆에서 장교가 놀란 표정을 짓는 동안 리처드 버튼은 침착하게 마법을 완성시켰다.
그 순간 푸른 마법진에서 완성된 거대한 얼음의 창이 파도 정중앙을 꿰뚫고 지나갔다.
“허…….”
“저게 마도사…….”
마도사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강력한 힘.
거대한 파도 전체를 얼려 버린 리처드 버튼이 마력을 담아 전군에게 외쳤다.
“지금부터 적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모든 병력은 마리카 항구로 몰려오는 적들을 막아라!”
“예!”
놀랐던 모든 장교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리고 재빠르게 자신들의 자리로 흩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항구에 남아 있던 함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멀리서 해적 깃발을 흩날리면서 나타나는 해적선들.
“우와아아아아!”
멀리 항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범죄자들의 소리에 리처드 버튼이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양동작전인가?”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항구를 공격해 오자 리처드 버튼이 싸늘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노골적으로 살기를 뿜어 대며 자신과 겨루고자 하는 존재가 보였다.
“오냐, 함정에 걸려 주마.”
리처드 버튼이 그렇게 말하면서 공중으로 떠올랐다.
자신이 빠지면 사령부에 혼란이 올 것을 알지만 그는 믿었다.
부하들의 힘이라면 적들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항구 내에 남아 있는 다른 용병들과 이세계인들, 군인들 역시 믿었다.
“차원 균열을 막기 전에 치르는 전초전인가?”
리처드 버튼이 저 멀리 유령섬으로 떠났을 병력이 향한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가장 위험한 곳으로 떠날 그들을 위해서라도 전초전에서 승리해 그 승리의 기운을 보태 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리처드 버튼은 모든 마력을 쥐어짜 내서라도 인어족을 멸족시키고자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