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3)
8. 제이든의 가치 (4)
멀리서 진격해 오는 트롤들의 모습을 보면서 퇴각을 알리는 호각 소리와 함께 제이든이 먼저 사격을 실시했다.
기사들과 교수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트롤들에게 마탄을 쏘자 학생들 역시 제이든과 같이 기사들과 교수들에게서 떨어진 곳을 향해 공격에 들어갔다.
“연사하지 마! 최대한 정밀하게 쏴야 해!”
제이든이 고함을 지르면서 연사하려는 아이들을 제지했다.
아무리 아이에 맞게 제작된 총이라지만 가뜩이나 일반 총보다 파괴력도 약한데, 아이의 팔 힘으로 연사하는 순간 조준마저 엉망이 되어서 트롤들에게 어떠한 타격도 줄 수 없게 된다.
그럴 바에야 단발로 정밀하게 조준해 트롤에게 조금이라도 타격을 주는 편이 좋았다.
그러자 멀리서 쐈음에도 운 좋게 급소 부위에 맞은 트롤들이 괴성을 질러 댔다.
게다가 일반적인 가죽 부위에 맞는다고 해도 순간적으로 따끔한 아픔 정도는 있었다. 물론 금방 회복되긴 하지만, 인간도 그렇듯 약간의 따끔함도 계속되면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기세 좋게 들어오던 트롤들이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자 기사들과 교사들이 퇴각 소리에 반응해서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둥! 둥! 둥!
-그오오!
한 트롤이 북소리와 함께 고함을 지르는 순간 푸른 마력이 주변을 휩쓸면서 트롤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트롤들의 눈이 푸르게 변하면서 신체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리고 곧 푸른 화염과 함께 트롤들이 광전사처럼 변하면서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영악한 트롤답게 지금 기사들과 교수들을 놓치면 짜증 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광폭화다!”
“조심해!”
교수들이 아카데미 정문으로 뛰면서 학생들을 향해 고함쳤다.
하지만 교수들의 걱정과 달리 학생들은 당황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격했다.
광폭화가 진행된 트롤들의 재생력은 배는 강해지고 근육 역시 일시적으로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총알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프지는 않더라도 총알이 계속 팔이나 몸에 박히면 간질거리는 느낌은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트롤들의 광폭화는 심해졌다.
“지원군이 온 거냐?”
“아닙니다.”
전술학 교수의 물음에 제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한데 어찌…….”
“일단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자신을 나무라려는 교수의 말을 자르고 제이든은 슬쩍 눈짓을 해 주었다.
그러자 아카데미 정문 곳곳에 박혀 있는 폭약을 본 교수가 움찔하다가 한숨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온 기사들 역시 걱정 어린 표정으로 학생들을 보다가 안으로 들어가자 트롤들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문 닫아!”
제이든의 고함 소리와 함께 학생들이 거대한 문을 힘을 모아 닫았다. 그러자 닫히려는 문 때문에 괴성을 지르면서 트롤들이 몰려들었다.
“물러나자.”
제이든의 말에 모든 아이들이 다급히 문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어느새 트롤들이 문에 접근했는지 당장이라도 부술 기세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멀찍이 떨어진 제이든과 학생들은 서서히 문이 부서지면서 생겨난 빈틈으로 몸을 집어넣는 트롤들을 바라보았다.
부서진 구멍들 사이사이로 트롤들 수십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제이든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들이 폭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문과 벽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문을 두드리던 트롤들과 벽을 타고 넘어오려는 트롤들 전부 폭발에 휘말렸다.
지축을 흔들 정도로 엄청난 폭음이었고 문이 있던 자리의 지반이 붕괴될 정도였지만, 트롤들의 재생력이라면 이 정도에 죽지는 않을 거라 판단했다.
가장 근처에 있는 트롤들이라면 일부 죽음을 맞이했을지 몰라도 근방의 녀석들은 살아남았을 것이다.
팔이 날아가도 재생되는 녀석들의 괴물 같은 재생력이 목숨을 부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자.”
제이든의 말에 폭발을 위해 남았던 학생들도 전부 아카데미 건물 쪽으로 도망쳤다.
연병장의 바깥쪽으로 돌아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지친 표정의 교수들이 제이든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폭발이 생각보다 크긴 했지만 트롤이라면 이 정도로 죽진 않을 거야!”
“그래, 상처를 입긴 하지만 광폭화가 된 트롤의 재생력은 버텨 낼 거다.”
일반 마수학 교수의 말에 대형 몬스터 전술학 교수도 동의하듯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습니다.”
“뭐?”
쾅!
제이든의 대답과 동시에 거대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끝이 아닌 듯 동시다발적으로 연이어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녀석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폭탄밭을 뚫고 와야 할 겁니다. 그러면 천하의 트롤이라도 재생력 저하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건…….”
처음 한 번은 버틴다 하더라도 연이어서 큰 부상을 입게 된다면 아무리 트롤의 재생력이라도 회복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광폭화라 한들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광폭화의 약점은 짧은 시간과 그 후에 오는 힘의 상실감에 따른 무력감입니다. 맞습니까?”
“……그래.”
제이든의 물음에 일반 마수학 교수가 멍하니 대답했다.
“녀석들이 여기까지 당도할 때면 광폭화가 풀리거나 피투성이가 될 겁니다. 그럼 부상당한 교수님들과 기사님들로도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이든이 그렇게 말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시간에 이곳까지 도착했을 때의 이야기지만요.”
제이든의 말에 근처에 있던 학생들도 미소를 지었다.
아카데미 정문에서 교수들을 엄호하던 제이든과 학생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이 묻어 둔 것은 폭탄만이 아니었다.
조잡하지만 아카데미에 있는 함정, 장치를 이곳저곳에 묻어 두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여기저기 묻어 둔 폭탄까지 트롤의 진격을 자꾸만 방해했다.
물론 정문에서 아카데미 건물까지 거리가 그리 긴 편이 아닌 만큼 결국 트롤들이 교수들과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도달하기는 했다.
타다다다당!
-그오오오!
피투성이가 된 채 달려오는 트롤들에게 사격 세례를 먹여 주고, 그마저도 뚫고 들어온 녀석들은 기사들이 가볍게 목을 잘라 마무리를 지어 주었다.
광폭화가 풀려서 비틀거리는 트롤을 마무리 짓는 것은 기사들에게 손쉬운 일이었다.
교수들 역시 몇 마리씩 화망을 뚫고 들어오는 트롤들을 차례차례 죽여 나갔다.
징그러운 트롤의 생명력이 그들의 목숨 줄을 부여잡고 학생들이 있는 곳까지 끌고 왔지만, 반쯤 죽어 나간 그들의 신체는 기사들의 공격에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오오오오!
둥! 둥! 둥!
트롤 족장은 그의 지위를 상징하는 뼈 목걸이와 뼈 장신구로 도배된 지팡이를 들고 고함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광폭화되었던 트롤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면서 무작정 돌격하던 것을 멈추고 족장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제이든이 다급하게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님! 산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술사?”
제이든의 다급한 말에 정신없이 전투 중이던 교수들이 일제히 족장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모두 산개해!”
교수의 명령에 모든 학생들과 기사들이 일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이어 트롤들이 모인 곳에서 푸른 불덩이가 생성되면서 일제히 아카데미 건물이 있는 쪽으로 발사되었다.
쾅! 쾅! 쾅! 쾅!
“저 미친놈들. 동료들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쏘네!”
“재생력이 있으니까 죽진 않을 거라 판단하는 거지.”
기사들이 트롤들의 동료를 생각하지 않는 공격에 욕설을 내뱉으면서 검으로 쳐 내거나 피했다.
그동안 학생들은 건물 안쪽으로 대피했다.
몬스터들이 있는 한복판에 지어진 건물답게 낡아 보여도 방어 마법진이 촘촘하게 깔려 있었고, 내부는 두꺼운 강철이 촘촘하게 박혀 있어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구조였다.
“헉……헉…….”
“미친놈들이야!”
“족장 미친 거 아니야?”
학생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동료까지 함께 공격하는 트롤들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하지만 이미 트롤들의 영악함을 잘 알고 있는 제이든은 흥분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말했다.
“녀석들도 아는 거야, 시간을 더 끌면 지원군이 몰려와서 자신들이 질 거라는 걸.”
“트롤에게 그 정도 머리가 있다고?”
“그래, 오우거와 달리 트롤들은 영악해. 몬스터치고 머리 회전이 빨라. 그런 녀석들이 인간들과의 숱한 전투 경험까지 갖고 있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거야.”
제이든도 전생엔 믿지 않았지만 무식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트롤들의 머리는 꽤 좋았다.
실제로 전생에 북부전쟁 당시 오우거 몇 마리보다 고블린과 트롤이 더 골치 아팠던 적이 꽤 있을 정도로 영악한 몬스터들은 문제였다.
“이 상태라면 뚫리는 거 아냐?”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되는 거야?”
학생들이 울상을 지으면서 밖을 바라보았다. 교수들과 기사들이 분전하기는 하지만 폭격을 멈추고 달려들기 시작하는 트롤들을 상대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폭격 속에서 살아난 트롤들까지 일어나자 점점 더 어려워졌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하나야.”
제이든이 울상을 짓는 학생들을 보면서 말했다.
“폭격으로 쓰러진 트롤들을 확인 사살하는 것.”
“어떻게?”
“항문을 찔러.”
“항문…….”
제이든의 말에 2번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력을 조금이라도 담을 수 있는 건 대충 30번대까지지?”
제이든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10개 조로 나누자. 1번부터 20번까지는 한 명씩 조를 채우고 21번부터는 두 명씩 채워.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이 엄호하는 방식으로 가자.”
제이든의 말이 끝나자 모든 학생들이 재빨리 엘리트 학생들을 한 명씩 골라 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이든 역시 그의 뒤에 아홉 명의 학생들이 모여든 것을 확인한 순간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모두 살아남자.”
제이든의 말에 모든 학생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제이든의 그 말을 시작으로 학생들이 일제히 건물 밖으로 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실력으로 트롤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다 죽어 가는 트롤을 마무리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다수의 학생들이 총으로 보조하고, 능력이 되는 학생들이 검으로 트롤의 항문을 쑤셔 넣었다.
단순히 쑤셔 넣는 것을 넘어서 마수학 교수실에서 훔친 독을 발라서 항문을 개판으로 만들어 두었다.
-끄워어어! 끄워!
괴로워하는 트롤들이었지만 학생들은 사정을 봐줄 만큼 여유롭지 않았기에 더욱 잔인하게 괴롭혔다.
그렇게 죽어 가는 트롤들을 한 놈씩 마무리하며 몰려드는 트롤들을 상대로 견제하면서 조금이라도 진격을 늦추려고 애썼다.
하지만 기사들과 교수들이 하나둘 다치기 시작하면서 간신히 유지되던 전선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상공에서 불길이 터져 나왔다.
“비룡?”
초록빛 불길을 본 순간 제이든이 멍하니 상공을 바라보자 비룡을 탄 기사들이 상공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상공에 그려진 거대한 마법진에서 트롤들을 향해 낙뢰를 떨어뜨렸다.
주술로 대응해 봤으나 베테랑 기사들이 트롤 주술사들을 향해 뛰어내리면서 베어 내자 트롤들의 방어선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것을 본 학생들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하나둘 주저앉기 시작했다.
“사…… 살았다!”
“살았어!”
“와아! 해냈다!”
학생들이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환호성을 터뜨리면서 상공을 바라본 순간 제이든에게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북동부 아카데미에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세우셨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북동부의 신성’으로 부를 것입니다.
-칭호 ‘북동부의 신성’이 생성되었습니다.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 북동부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세운 당신을 모든 사람들이 찬양할 것입니다. 위 칭호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당신이 세운 업적과 칭호를 배가시켜 줄 것입니다.
-칭호 : 북동부의 신성(스무 살 때까지 이룬 칭호 효과 2배 상승).
-몬스터에 해박한 지식이 뛰어난 전술과 결합했습니다. 학자들은 당신의 몬스터에 대한 지식을 찬양하며 몬스터 학자라 부를 것입니다.
-칭호 : 몬스터 학자(해당 몬스터에 관한 지식 습득 시 해당 몬스터를 상대로 공격 효과가 2배가 됩니다.)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다!’와 연계될 시 효과가 상승합니다.
연이어서 들려오는 기계음에 정신없는 와중에 제이든이 가장 기다리는 알림음이 들려왔다.
[두 번째 신수에 대한 단서]
아픈 부엉이를 잘 돌봐 주세요! 나중에 큰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게 전부?”
제이든은 황당한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고생고생해서 클리어한 보상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막상 나온 것은 황당할 정도로 짧은 글귀가 전부였다.
어이없을 정도로 짧은 단서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새 사령부의 기사들이 트롤들을 학살하면서 아카데미의 위기는 끝나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