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84)
27. 분열 (2)
아이언의 말에 리처드 버튼이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 가출했다는 장남이……?”
“예, 접니다.”
아이언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하자 리처드 버튼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허허…… 이거 갑자기 툭 튀어나온 영웅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엄청난 혈통이었군.”
리처드 버튼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아이언을 바라봤다.
“이거 엄청난 비밀을 들어 버린 기분이군.”
“그렇습니까?”
아이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사자가문까지 온다면 당연히 그냥은 아니겠고……. 원하는 것이 있나?”
“북동부가 현재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알고 있네. 북동부를 중심으로 신무역로를 개척하는 것 말이지?”
동부 사령관인 그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야 우리도 이득이 되는 일이니 당연히 도와줄 걸세.”
리처드 버튼이 그렇게 말하면서 말로만 약속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며 서류를 가져왔다.
동부 사령부 입장에서도 현재 고착화되어 있는 중·남부의 무역로와 더불어 1개의 큰 무역로를 더 만들게 된다면 좋았다.
리스크를 나눌 수 있는 데다, 현재의 상인회와 기득권자들과는 다른 세력권을 만들어 서로 견제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받은 것이 있으니 최대한 돕겠네.”
리처드 버튼이 아이언에게 받은 것을 상기하면서 열의를 불태웠다.
그러고는 앞으로 북동부가 계획하는 일을 성실히 돕겠다며, 차원 균열의 위험이 끝나는 즉시 함대 전력 30%를 투입하겠다고 확약했다.
동시에 북동부가 개척할 바덴강 일대를 청소하는 것을 돕고, 신무역로 개척에 병력 역시 도움을 줄 것을 명확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언에게 받은 것이 많아 미안했는지 리처드 버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무역로만으로는 너무 과한 선물을 받는데……. 내가 더 도와줄 게 있는가?”
리처드 버튼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이언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겨우 이것 하나 받자고 북부와 북동부 정예 병력이 여기까지 오는 건 수지타산이 안 맞기는 했다.
자신이 처음 봤던 것처럼 리처드 버튼은 경우를 아는 사람이었기에 이곳에 오기 전 준비해 왔던 것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럼 몇 가지 도와주실 게 있습니다.”
“말해 보게.”
뭐든 말해 보라는 표정의 리처드 버튼을 보면서 아이언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현재 동부에서 밀려난 마도 공방이나 상단이 있을 겁니다.”
“그들을 북동부에 데려가고 싶은 건가?”
아이언이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알아들은 리처드 버튼이 턱을 문지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아이언의 대답에 리처드 버튼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흠…… 솔직히 난 이 부분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확답을 주긴 어렵네. 아무리 나라도 강제로 그들을 북동부로 옮겨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무리 사령관이라고 하더라도 상인들의 입장에서 이득이 나지 않는 한 북동부를 추천해 주기 어려웠다.
그걸 알고 있는 아이언이 자신 있게 말했다.
“자리만 만들어 주십쇼.”
아이언이 설득할 자신이 있는 것처럼 말하자 리처드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후…… 알겠네.”
리처드의 대답에 아이언은 빙그레 웃었다.
“덕분에 크림슨 사령관님을 설득하기 쉬워졌습니다.”
“마도 공방과 상단 때문에 말인가?”
“그렇습니다. 북부 사령관도 분명 관심이 있을 겁니다.”
두 사령관이야 당연히 관심이 있겠지만 과연 동부의 상단들이 관심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언은 확신했다.
마나 코어와 차원 균열, 그리고 그로 인해 강력해질 수많은 무구들이라면 상인들의 눈이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흠…… 뭐, 나야 자네가 그렇게 말해 준다면 고마울 뿐이지.”
리처드 버튼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했다.
아이언의 계획대로 북부와 북동부 모두가 동부에 병력을 보내고 사자가문까지 오게 된다면 제아무리 간 큰 자들이 하더라도 섣부르게 움직이긴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황실 역시 사자가문의 눈치를 봐야 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동부 사령관과 아이언 간에 밀약이 끝나고 며칠 후, 마리카 항구에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자들이 몰려왔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남부 마탑이오.”
남부 마탑에서 왔다는 무리를 보면서 워프 게이트를 지키는 동부의 기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척 봐도 기세가 남다른 자들만 몰려왔기 때문이다.
“방문 이유는 무엇입니까?”
“동부 사령관 그리고 아이언 카터 중령을 보러 왔소.”
마법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이를 뿌득 가는 게 보였다.
“일단 연락은 넣어 두겠습니다. 사령부는 이쪽 길을 따라 쭉 가시면 됩니다.”
“고맙소.”
기사의 말에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마법사들이 일제히 사령부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후, 또다시 워프 게이트에서 마법사들이 몰려왔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중앙 마탑이오.”
“혹시 방문 이유가 사령관님과 아이언 카터 중령입니까?”
“잘 아시는군.”
동부 기사의 말에 마법사가 싸늘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후…… 이 길로 쭉 가시면 사령부입니다. 그쪽에서 안내원에게 물으시면 바로 가르쳐 줄 겁니다.”
“고맙소.”
마법사가 인사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사라지자 동부의 기사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난리 났군.”
동부 기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황급히 다시 사령부로 연락했다.
남부 마탑에 이어서 중앙 마탑까지 몰려오자 동부 사령부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리처드 버튼은 마법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법사들의 첫 번째 행선지는 사령관실이 아니었다.
“멍청한 놈. 자만하더니 이 꼴이더냐?”
“……죄송합니다.”
“내 제자라는 놈이 이렇게 처맞아 누워 있는 게 말이 된다고 보느냐?”
서슬 퍼런 목소리로 말하는 스승의 질책에 알란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탑주님의 명예를 실추시킨 점, 정말 죄송합니다.”
알란의 고개 숙인 모습에 남부 마탑주 시에라 레오나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항상 자신감 충만한 모습으로 문제를 일으키던 녀석이 이렇게 쭈글쭈글하게 처져 있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났다.
“후…… 사죄는 되었다. 그보다 물어나 보자.”
“아이언 카터 중령 말입니까?”
“그래, 내 비록 중앙 마탑과는 사이가 안 좋다만 그놈이 키운 제자 녀석도 만만치 않은 놈인 건 안다. 그런데 너와 그놈의 제자가 협공했음에도 한 사람한테 진 게 정말 사실이냐?”
마탑주의 물음에 알란이 그때 일을 생각하며 덜덜 떨다가 고개를 숙였다.
“……맞습니다.”
“다니엘이란 놈과 세 명이서 얻어터지기만 했다는 것도?”
“……예.”
“허…….”
제자 놈의 대답에 시에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신수도 봉인되었다던데?”
“그렇습니다.”
“이런 미친! 네놈이 정녕 내 제자가 맞느냐?”
시에라가 분노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알란 리쇼어를 질책했다.
그러자 알란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했다.
“아이언 카터 중령은 신수가 아니라도 강했습니다.”
“검술? 압축 마력검 하나에 쥐어 터진 게 자랑인 것이냐? 구시대의 쓰레기 같은 검술이라면 마법이 절대적 우위에 있는 것인데!”
“이미 강철을 이루었습니다.”
알란의 말에 질책하던 시에라가 멈칫했다.
“뭐라 했느냐?”
“아이언 카터는 이미 5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알란의 말에 시에라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네가 지금 제정신으로…….”
시에라가 그렇게 말하려다 알란의 눈을 보고선 사실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어째서 북동부에서 그렇게 자랑질을 해 댔는지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놈은 괴물……인 것이냐?”
“……예.”
시에라의 물음에 알란이 아주 작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화를 끝으로 병실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일 났군.”
시에라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으면서 말했다.
“무슨……?”
“이번 일은 단순하게 네가 맞은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알란이 물으려 할 때 시에라가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넌 어째서 그동안 북동부가 무시당했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시에라의 물음에 알란이 고개를 저었다.
“왜 제일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곳임에도 북동부 아카데미가 제국에 이름을 떨치지 못했는지 아느냐?”
시에라의 말에 알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해 보니 제국의 신성들 하면 북동부 아카데미에서 제일 많이 나와야 함에도 그렇지 않았다.
그저 북동부의 특수성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북동부와 우리 간의 암묵적인 협약 때문이다. 북동부는 정보를 감추고자, 우린 각 지역의 영재들을 통해 향후 찬란한 미래를 약속받고자 각 지역의 중요 아카데미가 엘리트를 키우기에 적합하다는 이미지, 그걸 만들었던 것이다.”
“아…… 하지만 북동부 아카데미도 엘리트들을 키우는 곳으로 유명하지 않았습니까?”
알린의 물음에 시에라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신 위험하지. 고위 귀족들이 자식들을 죽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보내고 싶어 하겠느냐?”
“아닙니다.”
알란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쯧쯧! 가문의 핵심 인재를 위험한 곳으로 보내는 정신 나간 가문은 없다.”
“그…… 그렇군요.”
알란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제자를 보면서 시에라가 한숨과 함께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고위 귀족들은 그 지역의 아카데미에 미래의 인재들을 보내고 막대한 지원금을 보내지. 즉, 제국의 고위 귀족들은 그 지역의 중요 아카데미를 통해야만 진정한 세력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우리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잃어버린 북동부에 우린 지원을 약속했다. 그것이 초기에 북동부와 북부에 약속한 맹약이다.”
시에라의 말에 알란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어서 머리가 굳어 버린 알란.
그리고 그런 알란을 보면서 시에라가 질책하듯 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북동부에 지원하는 물자는 점차 줄어 갔다. 결국 지금의 북동부는 더 이상 참지 않았고 터뜨린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들이 키운 천재들을 세상에 내보였다. 그게 무슨 의미겠느냐?”
“설마……?”
“그래, 이제는 자신들이 최고라는 걸 세상에 알린 것이다. 자신들이 키운 천재들이 향후 제국의 미래를 책임질 거라고 말한다. 지금의 귀족들은 반신반의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 북부로 모여들기 시작할 것이다.”
시에라의 말에 알란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럼 이번에 제가 이곳에 온 이유가…….”
“그래, 동부에 신성들을 모은 것은 각 지역의 시선이 북동부로 모이는 걸 조금이라도 분산시켜 보고자, 귀족들의 자식들이 북동부로 가는 걸 최대한 막아 보고자 한 것이다.”
시에라의 설명에 알란은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깨닫자 더 이상 스승을 볼 면목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파문당하고 싶을 정도로 죄스러웠다.
이런 풍경은 바로 옆, 피터 마르비오의 병실에서도 이어졌다.
“미쳤군. 후…… 네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북동부와 북부의 신성들에 대한 소문도 완전히 사실을 기반으로 했다고 봐야 하는데…….”
“사실일 겁니다.”
피터 마르비오의 말에 중앙 마탑주 산토스가 침묵했다.
오히려 소문이 축소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이언이 고스트라는 신분 때문에 일부러 소문을 축소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검술은 이미 5단계.
게다가 신수들의 능력까지 더하면?
무력적인 측면에서 이미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아이언 카터를 높게 평가한 것은 무력보다 그의 지략이었다.
몬스터에 대한 정보와 군을 움직이는 전술적 움직임을 높이 샀다.
그런데 거기에 무력까지 더해진 것이다.
“후…… 진 것은 그렇다 치겠다. 한데 이번 일 자체도 너의 잘못이 컸다고?”
“……그렇습니다.”
피터 마르비오가 스승의 물음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수가 봉인되었다는 말에 그를 빼 버리려 했다는 것이냐?”
“……예.”
“허…… 정녕 내가 이런 놈을 제자로 키운 것인가?”
산토스가 피터를 실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공훈에 눈먼 제자의 모습에 깊이 실망한 스승의 모습.
그렇게 둘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깊이 침묵했다.
두 병실에서 사제 간에 침묵의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한 사내가 아이언 카터를 찾아왔다.
“아이언 카터 중령을 보고 싶은데…….”
“죄송하지만 현재 사령관님의 명령으로 아이언 카터 중령과의 접견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런……. 정녕 안 되겠나?”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기사의 말에 금발의 사내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기사의 단호한 말에 잠시 고민하던 사내가 품속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난 이런 사람인데……. 정녕 안 되겠나?”
금발의 사내가 품속에서 꺼낸 신분증.
그것은 화려한 금과 붉은 보석으로 장식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로 화려한 신분증에 붉은색을 쓸 수 있는 신분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호…… 황족.”
“4황자 이스칸드 솔 디 그랑시엘이라 하네.”
4황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정말 안 되겠나?”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다시 한번 묻는 4황자의 물음에 기사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