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83)
27. 분열 (1)
동부에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남부의 마탑과 중앙의 마탑, 그리고 동부의 신성이 한 사람에게 깨졌다는 것.
바로 북동부의 영웅인 아이언 카터 중령 혼자서 세 명을 동시에 박살 냈다는 소문이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혼자 세 명을?”
“그래도 북동부 영웅인데 가능하지 않을까?”
현재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성이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신성이 강해 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
하지만 피떡이 된 신성들을 봤다는 몇몇 장교들의 증언에, 사령부에서 부상당한 신성들을 본 의사들의 증언이 더해지면서 이 소문은 사실이 되었다.
“아주 피떡이 되도록 처맞았던데?”
“그 정도야?”
“그래, 진짜 죽기 직전까지 처맞았다고 하더라고.”
입 싼 장교들이 퍼뜨린 소문.
거기다 병원에서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은근슬쩍 흘리는 정보들이 모여들고, 심지어 밖으로 나온 신성들을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목격하면서 신성들이 한 사람에게 발렸다는 소문은 기정사실화됐다.
붕대로 온몸을 감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엄청난 소식은 빠르게 확산되어 다른 지역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몇몇 자기 지역에 애착이 강한 자들은 북부의 신성들을 두고 만들어진 가짜라고 퍼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의 주장은 이번 소문으로 인해서 완전히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피떡이 된 다른 신성들과 달리 아이언은 멀쩡하게 걸어 다녔기 때문이다.
덕분에 동부의 항구도시 마리카는 지금 떠들썩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언이 동부 사령관실로 불려 갔다.
“후…….”
동부 사령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앞에 아이언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도록 커졌군.”
“죄송합니다.”
아이언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사령관이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지켜봤기에 아이언이 크게 잘못한 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팀은 반쯤 붕괴된 상태였고, 남부와 중앙에선 항의해 오고 있었다.
게다가 다니엘 역시 피떡이 되었기에 은근히 사령관에게 상인회에서 압박을 가해 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방에서 사령관을 압박하는 상황.
죄가 없는 아이언이지만 수척해진 사령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죄송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겠나? 오히려 내가 자네에게 사죄해야 할 판인데.”
동부 사령관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는 다시 한번 긴 한숨을 쉬면서 아이언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후…… 사실 남부 마탑과 중앙 마탑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네. 문제는 다니엘 세바요르 대위네.”
동부 사령관의 말에 아이언은 고개를 들고 갸웃거렸다.
“다니엘 대위의 뒷배가 있습니까?”
“뒷배라…….”
사령관이 잠시 과거를 생각했다.
막 군부를 지원했던 다니엘은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였다.
일반적인 장교 출신의 자식이 아닌 평민이라 생각될 만큼 순수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장교가 되고 군부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난 후 그의 가문이 드러났다.
“자피트 가문이라고 들어 봤나?”
리처드 버튼의 질문에 아이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 상인회를 이끄는 한 축 아닙니까? 현재 의장으로 있는 로트실 자피트 백작 가문이라 알고 있습니다.”
“맞네. 다니엘은 그 가문 출신이네. 그의 정확한 네임은 다니엘 자피트 세바요르 대위일세.”
리처드 버튼의 말에 아이언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령관께 상인회에서 항의하고 있습니까?”
“후…… 맞네. 사실 동부 군부는 알게 모르게 상인회의 지원을 받고 있거든. 그 과정에서 다니엘의 입지가 높아졌지. 정확히는 중간 다리 역할을 했었네.”
아무리 내놓은 자식이라지만 그 자식이 밖에서 신성이 되어서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런 자식이 남한테 처맞고 누워 있다면 부모라는 이름을 내세워 항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다니엘 대위는 상인회의 힘으로 신성이 된 겁니까?”
“그건 아닐세.”
아이언의 물음에 라치드 버튼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평민 신분으로 들어왔었네. 하지만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두각을 드러냈고, 점차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신분이 드러난 것이네.”
“아…….”
“뭐, 자피트 가문 입장에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자식이 유명해지니 그제야 찾은 것이나 다름없지.”
“그럼 다니엘 대위 입장에선 자피트 가문이 미울 것 같은데…… 아닙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리처드 버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그랬지. 하지만 돈의 힘은 위대하더군. 청렴하던 한 인물을 바꿔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리처드 버튼이 그렇게 말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막대한 지원과 함께 가족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
그 때문인지 다니엘 세바요르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의 마지막 신념인 동부군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는 것과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욕심에 기대를 걸어 봤던 것인데, 이젠 그것마저도 끝나 버렸다.
“다니엘 세바요르 대위의 존재는 동부군 입장에선 상당히 중요하네. 상인회뿐만이 아니라 민간단체와도 연결 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지.”
처음 다니엘이 상인회와 민간단체의 지원을 받은 것은 전부 동부군을 더 발전시키기 위함이었다.
더 강한 무기를 연구하고 더 강력한 군함을 만들 자금을 지원받는 것.
하지만 그러다 보니 막대한 자금과 권력에 노출되면서 조금씩 변해 갔다.
그러다 결국 돈에 묶여서 그의 신념이 조금씩 변질된 것이다.
“과거야 어찌 되었든 다니엘 대위가 이렇게 된 것에는 내 책임도 있으니…….”
“상인회 입장에선 동부군에 강력한 입김을 넣을 절호의 찬스겠군요.”
상인회와 자피트 가문 입장에선 이참에 동부군에 대한 상인회의 입김을 더 강하게 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거기다 남부 마탑과 중앙 마탑까지 사령관을 압박하고 있다.
물론 사령관이 개인적으로 모아 놓은 증거를 내놓으면 그들도 항의를 멈출 것이다.
당장에 다니엘이 행한 비겁한 행동과 아이언의 목숨을 노린 신성들의 공격만 규탄해도 금방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리처드 버튼은 이 기회를 그렇게 날려 버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일을 크게 키우려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아이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리처드 버튼이 잠시 고민했다.
지금 아이언의 도움을 받는 게 맞는 것인지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것이다.
“북동부에서 자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
리처드 버튼의 물음에 아이언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묻지. 자네의 힘으로 고스트를 여기에 불러들일 수 있겠는가?”
리처드 버튼의 물음에 아이언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건 공식적인 물음입니까, 아니면 비공식적인 것입니까?”
“공식적인 거라고 해 두지.”
“그렇다면 가능은 할 겁니다, 차원 균열이라는 명분이 있으니……. 단지 동부군에서 그걸 받아들이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북동부에 정식으로 요청한다는 것은 동부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남기는 것이다.
북동부군이야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하니 다른 군에 지원 요청하는 것에 큰 반감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군들은 달랐다.
괜히 다른 지역에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 지역 군벌들의 자존심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 마음 같아선 내가 직접 하고 싶지만…… 내가 요청하긴 힘드네.”
리처드 버튼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역 군벌의 쓸데없는 자존심.
그리고 타 지역 군대가 온다면 자신들의 세력이 약해질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타 지역의 군대가 오는 걸 꺼리는 자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만약 사령관이 직접 요청하게 되면 동부의 군벌들이 반기를 들 수도 있고, 사령관의 권위가 추락되어 군의 장악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평소였다면 차원 균열이 열린 것만으로도 명분이 되겠지만, 지금은 하필 북동부가 4개의 차원 균열을 무사히 막아 낸 게 문제였다.
북동부는 4개나 막아 냈는데 자신들은 고작 1개가 열리는 것으로 다른 곳에 지원을 요청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복잡한 문제에 직면해 있기에, 리처드 버튼 입장에선 귀찮지만 돌아가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애초에 각 지역의 핵심 전력을 끌어들일 생각으로 저를 이곳에 부르신 것이었습니까?”
아이언은 북동부가 그러했던 것처럼 동부군 역시 각 지역의 핵심 전력을 끌어들이는 것이 리처드가 자신을 부른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공식적으로 동부군이 요청하면 동부 군부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짓이지만, 아이언을 통해 북부와 북동부의 명예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끌어들이면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음에 대답이 없는 리처드 버튼을 본 아이언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신했다.
지금 리처드 버튼이 구상하는 건 크게 세 가지였다.
1. 아이언을 이용해 북동부와 북부군을 끌어들여 남부, 중앙 마탑과 상인회로부터 압박받는 지금의 처지를 양강 구도로 맞춘다.
2. 끌어들인 세력을 차원 균열을 해결하는 데 이용한다.
3. 위의 과정을 통해 동부군이 분열하는 걸 최대한 방지한다.
이 세 가지 이유를 파악한 아이언이 동부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너무 과하신 것 같습니다. 상인회 하나 견제하자고 북부군까지 끌어들인다면 후에 반드시 사령관님에게 불만을 가진 장교들이 나올 것입니다.”
“알고 있네.”
아이언의 말에도 리처드 버튼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언이 더욱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 상인회를 밀어낸다?
그건 말이 안 되었다.
상인회가 미치지 않고서야 사령관과 척지면서까지 동부군을 장악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필시 다른 위험이 더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잠깐…….’
생각을 정리하던 아이언이 흠칫하면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듣던 대로 머리가 좋군.”
사령관이 그새 거기까지 생각했냐며 빙그레 웃었다.
언젠가 일이 벌어질 걸 예상했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마침 동부에 차원 균열이 발생했다.
북동부를 생각해 보면 차원 균열이 발생했다는 건 균열을 조장하는 다른 세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사령관은 그걸 파악한 게 틀림없었다.
“동부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그러네.”
“상인회 따위가 문제가 아니고, 더 큰 뭔가가 숨겨져 있는 겁니까?”
“맞네.”
고개를 끄덕이는 사령관의 말에 찌푸려진 아이언의 미간이 더욱 구겨졌다.
“나도 확실히 알지는 못하네. 다만…… 북동부에서 다크 엘프들이 그러했듯, 이곳에도 그런 존재들이 있을 거라 추정하네.”
“의심하는 바가 있으십니까?”
“몇 개 추려 보기는 했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종족은 이들이네.”
리처드 버튼이 그렇게 말하면서 뒤로 가서 직접 모은 정보가 담긴 서류를 건네주었다.
“인어……족?”
“제국에 의해 멸족당했다고 알려진 종족이지. 하지만 그중 몇은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네.”
“인어족이라……. 그들은 제국을 증오하겠군요.”
“맞네.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면 제국에 복수할 날을 몇 년이고 기다리겠지.”
리처드 버튼의 말에 아이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어족에 대한 정보를 읽어 내려갔다.
“인간으로 변신?”
“그러네. 현재 내가 이곳 사령부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일세.”
리처드 버튼이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빛냈다.
“이곳에 인어족이 잠입해 있을 수도 있네. 만약 이 마리카 항구도시에서 그들이 암약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저희가 유령섬으로 주력 병력을 데리고 떠났을 경우, 사령부가 위험하겠군요.”
“맞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동부의 세력과 결탁했을 수도 있을 걸세.”
리처드 버튼의 말에 아이언은 지금 동부 사령부가 얼마나 위험한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차원 균열만 해도 동부군 혼자 감당하기 버거울 수준일 텐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적과 그들과 결탁했을지도 모르는 세력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사령관 입장에서는 본인 명예가 깎여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외부 세력을 동부에 데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한 세력을 최대한 동부에 모아 놓는다면 그들이 다쳤을 때, 혹은 북동부에서처럼 거대한 규모의 차원 균열이 일어날 시에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네.”
“자칫 잘못했다간 황실이 개입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개입했네.”
동부 사령관의 대답에 아이언은 표정을 구겼다.
“누가 왔습니까?”
“4황자일세.”
역시 눈치 빠른 황족들답게 금세 냄새를 맡고 동부에 기어 왔다.
“황실이 개입하려 한다면 피곤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리처드 버튼은 동부 사령관으로서 반드시 동부를 지켜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그걸 해낼 수만 있다면 본인이 감당할 모욕 따윈 상관이 없었다.
“사령관님이 그렇게까지 다짐하셨다면…… 저도 좀 더 도움을 드려야겠습니다.”
“북부군까지 이곳에 데려오는 것만으로도 내 입장에선 과분한 도움을 받는 것인데?”
“이왕 받는 거, 더 받아 보시죠.”
아이언의 말에 리처드 버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북동부의 영웅이라지만 여기서 더 뭘 할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레온하르트 가문이 이곳에 오는 건 어떠십니까?”
“사자가문? 그들이 과연 여기까지 와 주겠나?”
“제 부탁이라면…… 3할 정도의 가능성은 있을 겁니다.”
“흠…… 사자가문이 자네에게 빚을 졌나?”
리처드 버튼의 물음에 아이언은 고개를 저었다.
“빚을 진 건 아니고, 제가 레온하르트 가문과 연이 좀 있습니다.”
“자네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아이언이빙그레 웃었다.
“예.”
“허…… 의외군. 방계 혈통이라도 되는가?”
“그건 아니고…… 제가 그쪽 현 가주의 아들입니다.”
아이언의 말에 리처드 버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런 사령관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가출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들이니 부탁하면 들어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