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81)
26. 기 싸움! (1)
동부 사령관의 걱정과 달리 바로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이언은 짐을 풀고 나가 동부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수많은 배가 오가고 활발히 움직이는 사람들.
온갖 물자들이 여기저기 움직이고 있는 모습들은 북동부라면 상상할 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자유롭긴 하네.”
이번 생은커녕 전생과 현대에서도 그는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
현재는 북동부에 묶여 있고.
전생은 가문에.
현대에선 일에 치여 살다가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였다.
“내 인생도 참 끔찍하네.”
아이언이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다가 내린 결론은 끔찍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현대로 돌아가고자 발버둥 치는 것은, 바쁘기만 했던 그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준 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분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을 드리고자 노력하는 것.
하지만 이젠 그마저도 희미해져 버렸다.
그저 이 세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자신의 목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곳에서 너무 오래 있었던 탓인가?”
아이언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자유롭게 다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기러기조차 굉장히 자유로워 보였다.
오늘따라 감상적인 자신의 모습에 헛웃음을 터뜨린 아이언은 복받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런 기분이 오래 지속되면 냉철해지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그에게 필요한 건 감성이 아닌 이성이었다.
“아이언 중령님?”
멀리서 그를 발견한 마테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왔다.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그냥…… 동부가 어떤 곳인지 구경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아…….”
아이언의 설명에 마테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참 활기차네요.”
아이언이 부럽다는 듯 말하자 마테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활기차다는 건 보기 좋아 보이지만 동시에 끔찍한 범죄가 늘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특히 동부 같은 경우 해적들과 연계된 범죄 조직들이 많았다.
“활기찬 풍경이라……. 외부에서 오신 분들은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마테오가 그렇게 말하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아이언은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마테오 대위가 생각하는 동부는 어떤 곳입니까?”
“제가 생각하는 동부라…….”
아이언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마테오가 나직이 말했다.
“범죄자들의 소굴……이랄까요?”
생각보다 과격한 대답에 아이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북동부는 몬스터라는 거대한 적이 있어 항상 힘들지만 내부의 적은 적지 않습니까?”
마테오의 물음에 아이언은 입을 다물고 미소만 지었다.
그런 아이언의 모습에, 마테오도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닌지 다시 말을 이었다.
“동부는 다릅니다. 외부의 적인 해적이 있음에도 내부에선 범죄 조직이 그들과 손잡고 있고, 상인회의 다른 상인들 역시 밀수를 위해 해적들과 손잡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음…….”
“동부를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많이들 모여들지만 그들 중 성공하는 건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노숙자가 되거나 범죄 조직의 수렁에 빠져들게 됩니다.”
마테오의 설명에 아이언은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현 동부의 체제에 상당히 많은 불만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처음 워프 게이트에서 얘기를 나눴을 때도 느꼈지만 마테오는 동부의 지금 체제를 바꾸고 싶어 하는 인물인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은 위험한데…….’
아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테오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현 동부 사령관께선 훌륭한 분이라 들었습니다. 그런 분이 사령관으로 있으니 조금씩이라도 바뀌어 가겠죠.”
“물론 그렇습니다만…… 개인의 힘이란 건 언제나 한계가 존재하죠.”
마테오가 그렇게 말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동부 사령관을 존경하는 것 같지만 그의 한계 역시 명확히 파악했기에 그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아이언은 침묵하며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더 바다를 구경했을까?
마테오가 가 봐야겠다면서 아이언에게 인사했다.
“일이 밀렸는데 오랜만에 외부의 손님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길어져 버렸습니다.”
“이런……. 제 탓입니까?”
아이언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마테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앞으로 바빠질 테니 오늘 하루는 푹 쉬시길…….”
마테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쁘게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사라졌다.
그렇게 마테오를 보낸 아이언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마도 공방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첫날부터 그럴 수는 없었다.
베스트는 그쪽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것이기에 아이언은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동부의 바다와 건물들을 구경했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고 그가 숙소로 돌아올 때였다.
“찾고 있었는데 밖에서 오시는 길이군요.”
다니엘이 자신을 찾아다녔다는 듯 말하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절 찾으신 겁니까?”
“예.”
다니엘 세바요르의 대답에 아이언은 차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길게 얘기할 거라면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에 다니엘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다니엘의 모습에 아이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절 찾으신 이유가?”
“이번 팀에서 빠져 주십시오.”
“흠…….”
다니엘의 요구에 아이언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이유가 뭡니까?”
“신수가 봉인된 이상 아이언 중령께서 팀에 크게 도움 될 거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대놓고 이유를 말하는 다니엘을 보면서 아이언이 피식 웃었다.
“사령관님도 같은 판단이십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다니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다니엘의 모습에 아이언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생각이 있는 양반이면 자신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잘 알 것이다.
북동부에 일어난 두 번의 차원의 균열의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이번 역시 신수가 엮여 있다면 자신의 도움이 그 누구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동부 사령관이 북동부 사령관에게 사정사정해서 여기까지 자신을 부른 것이다.
“일단 사령관님께 허락을 맡아 오시는 게 빠를 것 같군요.”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니엘을 지나치려 할 때였다.
“아이언 중령께선 모르시겠지만, 이번 팀은 매우 중요합니다! 향후 신수로 인한 차원 균열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팀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란 말입니다!”
“그래서요?”
“이런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도움도 되지 않는 분을 억지로 끌고 가 향후 팀의 평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쇼.”
다니엘이 뒤를 돌아보면서 말하자 아이언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차원 균열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팀의 결성.
5년 후에나 나올 팀의 결성이 벌써부터 이뤄지려 하는 것에 살짝 놀란 아이언이지만, 북동부를 무사히 막아 낸 지금이기에 모든 것들이 베타테스트 때보다 훨씬 앞당겨진 것이다.
“악영향이라…….”
아이언의 눈빛이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지금 다니엘은 괜히 능력도 안 되는 자를 억지로 끌고 가 향후 인맥발로 연명되는 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적어도 공훈에만 눈멀어 이 짓을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모양새.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사령관님이 판단하실 것이고, 만약 아니라고 판단하신다면 내일 판가름 날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아이언의 원론적인 대답에 다니엘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기어코 팀에 들어와 민폐를 끼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다니엘의 말에 아이언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똑똑한 양반인 줄 알았는데, 눈앞의 공훈에 눈멀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걸 보면 아직 어린 것 같다.
차원 균열을 겪어 보지 못한 자들의 오만함이 눈에 보였다.
‘이런 걸 보면 차라리 김정태가 나아 보인단 말이지.’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김정태지만 적어도 차원 균열의 무서움을 알았고, 수많은 실전 경험으로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둬야 할지도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이렇게 어린 생각으로 공훈에 눈먼 모습은 보이지 않는단 말이었다.
“만약 팀에서 제가 빠진다면 이대로 북동부로 돌아가게 될 텐데……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이언이 대놓고 북동부와 동부의 균열을 언급하자 다니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정사정해서 겨우 보내 줬더니 이딴 식으로 모욕을 준다면 북동부뿐만이 아니라 북부까지 동부를 적대시할 것이다.
“팀에서만 빠져 달라는 얘기였습니다. 신수를 소환하실 수 없는 지금 중령께선 사령부에 남아 차원 균열에 대한 경험과 정보를 토대로 작전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시는 게 가장 합리적입니다.”
“합리적이라…….”
아이언이 다니엘을 빤히 바라보았다.
꿀만 쪽쪽 빨아먹고 공훈은 지들이 다 가져가겠다는 말을 대놓고 하는 모습에 그는 어이가 없었다.
“일단 첫 번째로,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팀에 들어가지도 못한 상황에서 굳이 당신들을 위해 희생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이언의 말에 다니엘의 입이 다물렸다.
“두 번째로, 그쪽이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내가 유령섬에 가서 도움이 될 건지 안 될 건지를 판단하는 겁니까? 신수가 봉인되었단 것 말고 다른 근거라도 있습니까?”
“그건…….”
다니엘이 대답하려는 순간 아이언이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세 번째로, 본인들이 유령섬에서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자신하십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다니엘의 눈빛이 달라졌다.
억지로 쓰고 있던 가면이 완전히 부서진 것이다.
“쯧쯧~ 대화로 설득은 무슨……. 저딴 녀석은 힘으로 눌러 줘야 한다니까.”
“답답하군. 공훈을 안 챙겨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신수가 봉인된 주제에 욕심이 과하네.”
뒤에서 숨어 지켜보던 알란 리쇼어와 피터 마르비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수 하나 믿고 북동부에서 나댄 주제에 봉인되었으면 얌전해야지, 왜 이렇게 뻣뻣해?”
알란이 오만한 표정으로 아이언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수 하나라…….”
“왜? 검술 좀 한다고? 근데 너 강철 쪽이라며? 남들이 쓰다 버린 구시대의 유물 아닌가?”
알란의 말에 아이언의 미간이 구겨졌다.
“같은 단계라고 똑같다는 망상은 집어치우지? 게다가 우린 마법뿐만 아니라 정령도 다루는 엘리트들이다. 고작 압축 마력검 하나 믿고 나대는 너를 끼워 줄 필요가 있을까?”
알란이 독설을 내뱉으며 이제 알아들었으면 얌전히 꺼지라는 듯 고개를 오만하게 들어 올렸다.
하지만 아이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김정태, 당신도 같은 생각인가?”
아이언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하자 한쪽에 숨어 있던 김정태가 재밌는 장면을 본 듯 웃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흠…… 솔직히 잘 모르겠네? 그쪽이 얼마나 강한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으니까.”
김정태의 말에 아이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면서 굳이 이렇게 말하는 건, 그가 저들과 싸워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불구경과 싸움 구경 중 하나를 보게 생겼으니 굳이 자신에게 힘을 보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들 같은 생각인 것 같은데 눈치가 있으면 좀 빠지지? 여긴 북동부가 아니라서 좀 냉혹하거든.”
알란이 그렇게 말하면서 입술 한쪽을 삐뚜름하니 치켜올렸다.
마치 북동부에서 오냐오냐하며 만들어 준 영웅 아니냐고 말하는 것 같은 뉘앙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일이지만 타지에서 다른 이들에게 북동부가 모욕당한 느낌 때문일까?
‘열받네.’
자신도 모르게 열받는 느낌에 아이언은 고개를 뚜둑거리면서 풀었다.
“일단 사령관이 명령하기 전까지 팀에서 나갈 생각은 없다.”
아이언의 말에 알란의 표정이 굳어졌다.
동시에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듯 마력을 끌어 올리자, 그런 그를 보면서 아이언이 싸늘하게 말했다.
“꼬우면 덤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