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73)
22. 몬스터 웨이브의 시작 (2)
피닉스.
전설 혹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환상종.
현대에는 거의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종이었지만 용과 같이 실재했다.
수많은 전설과 신화에 등장하는 만큼 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불을 뿜는 새.
불 속에서 태어나는 새.
불만 있다면 수천 년을 살 수 있는 새.
불과 관련된 수많은 특징을 갖고 있는 새인 피닉스.
하지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었다.
피닉스 하면 불을 떠올리지만 피닉스가 전장에서 가장 큰 활약을 펼친 건 ‘불’이 아니었다.
“정화하겠다고?”
-삑!
피닉스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니 생각할 시간 따윈 없었다.
게이트가 붕괴하면서 오염된 마나가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폭주하면서 일어나는 오염된 힘이 북동부 전체에 퍼지기 전에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야 했다.
“뭘 해야 해?”
-삐비빅!
피닉스는 자신에게 모든 걸 맡기라고 했다.
아이언이 할 일은 그저 버티는 것.
“후…….”
공허충들이 폭주하는 마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가거나 죽어 나가는 게이트 근방으로 온 아이언이 긴 숨을 내뱉었다.
그 순간 동기화되었던 두 개의 달이 아이언을 향해 날아왔다.
-부우우!
거대한 부엉이가 몸을 점점 줄이면서 아이언의 머리에 안착하는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뱁새를 머리에 얹은 붉은 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힘을 다해서 자신에게 안겼을 때와는 달리 조금은 더 성장한 모습이었다.
-삑!
“그냥 해!”
아플지도 모른다는 경고에 아이언이 상관없다는 듯 말하자 두 개의 달이 눈을 빛내면서 동기화를 한계까지 끌어 올렸다.
그러자 검은 숲의 모든 마나가 아이언을 중심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뱁새가 육체가 버틸 수 있도록 활력과 치유력을 잔뜩 불어 넣어 주었다.
“크으으…….”
부엉이가 신수력을 기반으로 아이언이 계약한 신수들과의 동기화를 돕기 시작하자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파 왔다.
두 개의 달만 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버거웠는데 환상종인 피닉스까지 더해지자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둘 이상으로 신경 쓰이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뱁새였다.
‘뱁새…… 넌 대체……?’
두 개의 달과 피닉스 이상의 존재감을 숨기고 있는 뱁새.
아이언에게 부담 가게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힘을 숨기고 있지만 과도한 동기화로 살짝 엿본 뱁새의 본질은 결코 환상종인 피닉스에 비견될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신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이언은 이내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으윽!”
깨질 것 같은 두통에 결국 모든 생각을 멈추고 버티는 데 집중했다.
그러는 사이 피닉스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직 힘이 회복되지도 않았지만 붉은 불길이 퍼져 나가면서 오염된 마나를 전부 태워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태워진 마나는 전부 정화된 순수한 마나로 변화되어서 피닉스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쿨럭!”
-삑?
피를 토하는 아이언을 본 피닉스는 황급히 힘을 거둬들이려 했다. 그러나 아이언이 고개를 저었다.
계속하라는 아이언의 신호에 피닉스가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불길을 더욱 넓게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아이언의 안색이 창백해져 갔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차원 균열의 폭발로 근방에 있는 모든 이들이 오염된 마나에 노출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피닉스의 힘 덕분인지 압축되는 마나가 정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두 개의 달이 장악한 마나와 정화된 마나가 힘을 합쳐 오염된 마나와 싸우기 시작하면서 마나가 폭발될 때까지 압축되는 것이 미뤄지고 있었다.
-부부!
-짹!
-삑!
점차 죽어 가는 아이언을 보면서 신수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이언의 몸을 생각하면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중단하면 차원 게이트의 폭발과 함께 차원 균열의 에너지가 북동부 전체로 퍼져 나갈 것이다.
현재 아이언의 실력으로는 차원 균열의 폭주는 막을 수 없다.
무려 대마녀가 본인을 희생해서 만든 상황을 아직 여물지도 못한 아이언이 막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위력이라도 감소시켜야 한다 생각했기에 이런 무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선 그것도 불가능했다.
아이언이 스스로를 희생한다 한들 겨우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을 버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기에 신수들은 생각했다.
자신들과 함께 아이언을 이곳에서 봉인하자!
신수들과 아이언이 매개체가 되어서 강력한 정화의 힘을 뿌리도록 만든다.
극한까지 동기화된 덕분인지 그런 신수들의 계획은 아이언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갔고, 아이언은 피를 머금은 채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짹!
뱁새가 고통스러워하는 아이언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작은 날개로 머리를 토닥여 준 후 가장 먼저 힘을 발현했다.
두 눈을 감은 귀여운 뱁새가 초록빛 마나를 휘감으며 이내 아이언의 머리에서 돌처럼 굳기 시작했다.
초록빛 돌로 굳어지자 뱁새의 힘이 아이언과 완벽하게 이어졌다.
뱁새의 능력은 ‘치유’와 ‘활력’.
이 두 가지의 힘이 아이언의 몸에 흘러들어 가면서 아이언의 몸도 점차 마나가 응집되면서 돌처럼 굳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점차 붕괴되어 가는 육체는 치유와 활력의 힘으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었다.
하지만 힘의 한계치가 달리기 때문인지 점차 오염된 마력이 우위를 점하려 했다.
바로 그때 두 개의 달이 움직였다.
오른쪽 어깨에 자리를 잡은 두 개의 달이 검은 숲에 퍼져 있는 자신의 모든 마력을 끌어모았다.
동시에 그에 합류한 마나 역시 모으면서 부엉이 역시 검푸른 돌로 굳어져 갔다.
두 개의 달의 능력은 두 눈에서 나오는 강력한 파괴의 빛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 두 개의 달의 능력은 바로 ‘마나 응집’과 ‘증폭’이었다.
2개의 눈에서 나오는 파괴 광선은 한계까지 마나를 압축시키고 증폭시켜 날리는 결과물인 것이다.
-부우우우!
부엉이가 힘을 쥐어짜 내 검은 숲의 모든 마나가 아이언을 중심으로 돌게끔 만들면서 돌로 변했다.
두 신수가 돌로 변하자 아이언의 몸을 중심으로 2개의 신수력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능력과 뱁새의 능력이 시너지를 발휘하며 아이언의 몸이 끊임없이 오염된 마나와 싸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해 주었다.
그러자 이젠 피닉스가 나섰다.
-삐이이익!
두 신수와 아이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인지 피닉스가 모든 힘을 쏟아 냈다.
본인 역시 봉인될 기세로 모든 힘을 끌어모아 아이언의 왼쪽 어깨에 자리 잡으며 아이언과 동화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주변에 강력한 붉은 파장이 퍼져 나가면서 오염된 마나를 정화했다.
붉은 화염이 비산하며 차원 게이트 주변을 붉은 빛으로 가득 메웠다.
그리고 동시에 붉은 화염이 오염된 기운을 태워 나가면서 정화해 공허충들이 만들어 낸 영역을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나 폭발에 터져 나가던 공허충들부터 숨어 있던 공허충들까지 죄다 모여들어 피닉스를 막으려 했다.
“막아! 아이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마라.”
공허충들의 움직임에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칼 구스타프였다.
칼의 명령에 모든 고스트들이 아이언 주위로 모여들어 자리를 잡으면서 달려드는 공허충들을 막아 냈다.
그러자 이번엔 크림슨이 고함치면서 숲으로 진입한 모든 병력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아이언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임무로 설정한다. 이건 나 크림슨이 북동부 사령관으로서 하는 명령이다!”
“예!”
북동부 사령관의 정식 명령에 레인저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몰려드는 공허충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느새 진입한 기사들이 아이언을 중심으로 진을 형성했다.
겹겹이 진을 형성하면서 그 누구도 아이언을 건드릴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크림슨이 있었다.
스스로를 희생한 아이언의 의지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지켜 내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의지를 시험하듯 붕괴되어 가는 차원 게이트에서 더욱더 많은 오염된 마나가 나오면서 주변에 보랏빛 안개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언이 그렇게 경계하고 모든 이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던 녀석들이 나타났다.
“차원 물고기들이다!”
“비공선 부대! 뭐 하는 거야! 폭탄 떨궈!”
“포격! 포격해라! 목표는 차원 게이트!”
모든 병력이 일제히 붕괴되는 차원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고, 특수부대는 아이언의 호위를 중심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북동부의 모든 전력이 아이언의 호위에 가담하는 실로 이례적인 상황.
하지만 그것을 기뻐할 수는 없었다.
어느새 아이언의 온몸이 푸른 돌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검은 숲의 모든 마나가 아이언에게 몰려들어 굳어져 버렸고, 동시에 굳어진 아이언을 중심으로 붉은 기운이 퍼져 나가 일정한 영역을 만들어 냈다.
“레인저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몬스터 박멸 작전에 돌입한다.”
“나이트의 최우선 임무지는 앞으로 이곳이다.”
“철벽 사단의 최우선 방어 임무는 앞으로 이곳이다!”
북동부 사령부의 최정예 사단들이 아이언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고스트들 역시 아이언을 호위하는 임무를 최우선 사항으로 넣어 두었는데, 이 모든 것은 크림슨 사령관이 명령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명령에 반발하는 병력과 장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 *
북동부의 모든 병력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 검은 숲에서 그들은 공허충들과 차원 물고기들로부터 아이언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런 그들에 보답하듯 돌이 된 아이언 역시 최선을 다했다.
오염된 마나를 밀어내고 쏟아져 나오는 마나를 정화시키는 일의 반복.
폭주하기 시작하는 차원 균열과 그것을 저지하는 아이언과 신수들의 싸움.
지루할 정도로 오래도록 반복된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아이언은 북동부의 예정된 파멸부터 마녀가 강제로 일으킨 차원 균열의 폭주로 인한 총 4개의 차원 균열 폭주, 그리고 몬스터 웨이브로 이어지는 미래를 막지 못했다.
마녀가 바랐던 대로 검은 숲의 차원 균열이 폭주하면서 다른 지역의 4개의 차원 규열 역시 폭주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오염된 마나를 피해서 움직이는 몬스터들의 대이동, 즉 몬스터 웨이브 역시 시작될 조짐을 보였다.
‘마녀의 승리’.
결과론에 집착하는 학자들은 이렇게 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기적은 있었다.
아이언과 신수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마녀가 의도한 것의 반의반도 안 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록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해 버렸어도, 적어도 북동부 사람들만큼은 마녀와 아이언의 싸움에서 아이언이 승리했다고 손들어 줄 것이었다.
“결국 시작되었나?”
크림슨은 씁쓸한 표정으로 사령부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다는 보고서를 보았다.
그런 크림슨에게 북부 사령관인 제든 윅스가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준비한 것이 끝나 가는 시점에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최악은 면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후후…… 그렇군. 이것 역시 그 아이로 인해 시작된 것이거늘…….”
제든 윅스의 말에 크림슨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제는 제2의 사령부로 불리는 검은 숲에서 아직도 붉은 불길로 오염된 마나를 정화하고 있는 한 어린 고스트를 생각했다.
“뭐…… 그 녀석도 깨어난다면 지금의 결과물에 만족할 겁니다. 은근히 중앙정부를 싫어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대화할 때마다 은근히 중앙정부를 싫어하는 티를 냈던 아이언이다.
그런 아이언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펼쳐지고 있었다.
“얼른 깨어났으면 좋겠군.”
“그러게요. 이젠 우리도 저 어린 녀석이 아니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
제든 윅스가 그렇게 말하면서 청년이 더 이상의 희생을 그만두고 달콤한 보상을 받기를 희망했다.
이런 두 사령관의 염원 때문일까?
2년 가까이 변함없던 푸른 돌에 작지만 균열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