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72)
22. 몬스터 웨이브의 시작 (1)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고스트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지치고 다친 몸이지만 마녀에게 의식을 빼앗겼을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어느새 아이언의 몸을 휘감고 있는 초록빛 힘이 내상과 외상 모두를 빠르게 치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닥난 마력 역시 검은 숲에 있는 마나가 스스로 들어와 채우고 있었다.
‘마녀의 힘이 약해진 건가?’
마녀의 힘에 제약받던 검은 숲의 마나와 두 개의 달의 힘이 점차 풀려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전보다 두 개의 달과의 동기화가 잘 이루어지면서 검은 숲의 마나 전체에 대한 감응력 역시 미친 듯이 상승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도 신수력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충만한 마력.
유령왕과의 싸움을 통해 얻은 심득.
이 2개가 아이언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쾅!
폭발음과 함께 나타난 아이언을 바라본 린텔이 눈을 크게 떴다.
수많은 유령들과 싸우면서 지쳐 있는 린텔의 뒤를 노리는 유령의 폭발을 온몸으로 받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했기 때문이다.
“너…… 뭔가 달라졌다?”
“그렇습니까?”
린텔이 아이언의 몸에 휘감긴 마나를 보면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검은 숲의 마나가 아이언의 신수력에 동조하며 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게다가 뱁새의 치유력까지 빛을 발하면서 아이언의 몸 자체에 묘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령의 폭발을 막은 것처럼 아이언의 마력 자체도 약간이지만 변화가 있었다.
‘강철에 가까워진 건가?’
아이언이 린텔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약간이지만 변한 마력의 색.
거기다 마녀와의 거래가 끝나고 나자 급격하게 신수에 대한 감응도가 올라간 듯한 기분이다.
그렇게 아이언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어느새 다가든 유령 하나를 베어 내자 린텔도 다시금 검을 들고 유령들을 베었다.
아이언의 적절한 합류 덕분인지 고생하던 고스트들 전체에 여유가 생겼다.
5단계에 근접한 아이언의 무력.
검은 숲의 마나를 통한 마녀의 디버프 무효화.
뱁새의 치유와 활력의 힘으로 지친 고스트들에게 버프.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자 밀려 가던 고스트들 전체가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진짜 고스트 수준에 들어선 건가?’
무력 자체는 조금 달릴지라도 신수력까지 포함한다면 얼추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에 기분 좋아진 아이언이 빙그레 웃으면서 더 힘을 내 유령들과 싸웠다.
어느새 고스트들 주위의 유령들이 전부 소멸하자, 유령왕 역시 힘의 소모가 컸는지 몰아붙이던 것을 멈추고 차원 게이트 쪽으로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에 고스트들도 쉼 없이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을 시간을 벌었다.
“후…….”
아이언도 숨을 길게 내뱉으면서 땀을 훔치고는 상공에서 엄청난 숫자의 유령들과 인형들을 홀로 상대하는 칼 구스타프를 바라보았다.
곧이어 마력이 섞인 충격파로 근처에 있던 마지막 유령들을 날려 버린 칼 구스타프마저 전투를 마무리하고 아이언에게 다가왔다.
“이제 괜찮나?”
“예.”
아이언이 조용히 대답하면서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깨어난 이후 점차 선명해지는 마나의 흐름.
그리고 그 마나의 흐름은 차원 게이트 쪽으로도 이어지고 있었다.
‘공허충들이 마나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나?’
겉으로 보기엔 게이트를 공허충들이 구성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순수한 마나를 공허충들이 이동하지 못하도록 강제로 붙잡고 있었다.
문제는 이미 한계 이상으로 집약되어서 굳어진 마나를, 마녀가 계속해서 뭉치고 있다는 것이다.
‘차원 게이트는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른 거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사실상 차원 게이트는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남은 건 오염된 마나로 영역화를 완전히 이루는 것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녀는 계속해서 마나를 모으고 있었다.
실제로 이것만 아니더라도 크림슨과 두 개의 달을 좀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강제로 마나를 끌어모으느라 마녀의 마력이 상당 부분 소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아이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주변에 고스트들이 모여들었다.
“뭐야?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린텔이 아이언을 향해 물어보려고 하자 빌리 브란트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면서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에 린텔이 입을 다물자 아이언이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마녀가 했던 말.
‘차원 균열의 폭주를 막을 수 없다.’
그건 곧 차원 게이트 상태를 유지하려는 생각은 마녀도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계 이상으로 집약시킨 마나.
‘마나의 폭발?’
마나를 한계 이상으로 압축시키면 폭발한다.
그건 마법사뿐만 아니라 검사들조차 알 수 있는 이론.
폭검을 사용하는 검사들 역시 이러한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며 폭발 마법을 주로 연구하는 마법사들 역시 이 이론에 기초해서 마법을 만들어 낸다.
이 두 가지를 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차원 게이트를 폭발시키려는 건가?”
결론에 도달한 아이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그걸 듣고 있던 고스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게이트 폭발? 겨울산에서처럼? 근데 그걸 왜 마녀가?”
린텔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많은 공허충들이 나오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차원 균열을 봉인할 수 있게 되니 이쪽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녀는 분명 겨울산의 차원 균열도 다시 열린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서리산맥과 대균열의 유적지에 남아 있는 균열들도 더 크게 폭주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 뜻은…….
‘이곳을 폭발시켜 그 여파로 북동부 전체의 균열에 영향을 주려는 건가?’
아이언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순간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이 정도 규모의 차원 균열을 폭발시키고 그 충격파와 오염된 마나를 배가시키는 건 마녀에겐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북동부 전체의 차원 균열을 불완전하게나마 폭주시킨다면?
수많은 공허의 생명체.
오염된 몬스터.
변이 생명체와 오염된 마나로 인한 환경.
이 모든 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몬스터들이 북동부를 떠나 북부로 옮겨 갈 것이다.
생존을 위한 몬스터들의 대이동.
그리고 그 후로 계속해서 생성되는 변이된 생명체들의 이동.
“몬스터 웨이브…….”
전생처럼 대규모는 아니지만 중규모 몬스터 웨이브에 근접한 재앙을 만들어 내기는 충분할 것이다.
비록 중규모라지만 현재의 북동부는 그것조차 감당하려면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설명 좀 해 봐!”
고스트들이 몬스터 웨이브란 소리에 발작하면서 묻자 아이언이 그럴 시간 없다는 듯 칼 구스타프를 바라봤다.
“저 게이트를 구성하는 공허충들을 날려 버릴 수 있겠습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칼 구스타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접근만 한다면 가능하지. 다만…….”
유령왕이 소환한 수많은 유령들과 어느새 나타난 엄청난 숫자의 유령 나무들과 호박 인형들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직접 낫을 들고 날아다니는 유령왕 역시 만만치 않은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이언과 싸우면서 상당히 많은 힘을 소모했는지 그 전처럼 엄청난 유령 군대를 불러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까다로울 정도의 힘을 발현하고 있었다.
“힘들어도 해야 합니다.”
아이언이 단호하게 말하자 고스트들이 무겁게 침묵했다.
“차원 게이트를 부수는 것을 넘어서 차원 균열을 구성하는 마나 자체를 날려 버려야 합니다! 아니면……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겁니다.”
“후…… 부수는 건 그렇다 치자. 차원 게이트에 있는 마나를 무슨 수로 날려?”
린텔의 물음에 대답은 칼 구스타프가 했다.
“일단 차원 게이트부터 박살 내고 마탑에 부탁해야겠지.”
“……예. 일단 더 이상 차원 균열이 강해지는 걸 멈추는 게 급선무입니다.”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스트들에게 할 일을 알려 준 뒤, 자신도 급히 움직이려 했다.
그러다 상공에서 크림슨을 상대하던 마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눈에 보이는, 마치 이제야 눈치챘냐는 듯한 눈웃음.
“제길!”
아이언이 다급하게 유령을 베어 내면서 전진하자 고스트들이 칼 구스타프를 중심으로 뭉쳤다.
게이트를 날리는 핵심 전력인 칼 구스타프를 보호하는 진형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유령왕이 놀고 있을 리 없었다.
어느새 거대한 낫을 들고 다시금 앞을 막아서는 유령왕을 뚫기 위해 고스트들이 움직였다.
“먼저 움직이십쇼.”
항상 보호만 받던 아이언이 이번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몇몇 고스트들과 함께 유령왕의 앞을 막았다.
그러자 그 모습에 린텔과 빌리 브란트가 흐뭇하게 웃었다.
어리기만 했던 막내 녀석이 흐뭇하게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스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칼 구스타프, 린텔, 빌리 브란트 세 명이 차원 게이트까지 도달하게끔 하기 위해서, 남은 고스트들도 유령왕의 앞을 가로막았다.
수많은 유령들이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고스트들은 사력을 다해서 놈들 또한 상대했다.
이번엔 그 고스트들 사이에 아이언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유령부터 치워 주십쇼.”
“버틸 수 있겠냐?”
폭검을 사용하는 밀턴의 물음에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분 정도라면?”
“좀 더 버텨 봐라.”
밀턴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엄청난 숫자의 유령과 인형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러자 다른 고스트들 역시 유령왕을 아이언에게 잠시 맡겨 두고 주변에 넘실거리는 유령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달려 나갔다.
-다시 만났구나.
유령왕이 호박 머리에 파인 입 부분으로 미소를 지었다.
“급한 거 아냐? 덤벼.”
-급한 건 너희들일 텐데?
유령왕이 아이언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말했다.
-그리고 난 급할 필요가 없다. 이미 원하는 건 얻었으니…….
유령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차원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시선을 따라 차원 게이트를 바라본 아이언의 표정이 굳어졌다.
갑자기 주변이 흔들리면서 오염된 마나가 솟아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늦은 건가?”
아이언이 홀로 중얼거렸다.
어느새 고스트들을 막아서던 유령들 역시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할 일은 끝났다는 듯 다크 엘프들처럼 스스로를 제물로 삼아 차원 게이트의 붕괴를 앞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막을 수 없는 싸움이었구나.”
마녀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황에서 마지막 유희를 위해 자신을 만난 것일 뿐이었다.
아이언이 허망한 표정으로 마녀를 바라보자 크림슨과 두 개의 달을 튕겨 낸 그녀가 마주 보았다.
유령왕 역시 기괴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재밌었다.
-내가 죽어도 마녀의 계약은 유효하다는 걸 잊지 말려무나.
유령왕과 마녀는 아이언에게 마지막 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서서히 몸이 가루로 변해 갔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마녀의 하수인들과 유령왕의 부하들 역시 푸른 가루가 되어 붕괴되어 가는 차원 게이트로 흡수되었다.
“정녕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가?”
사라져 가는 마녀와 유령왕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이언을 일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삑!
“응?”
어디선가 들어 본 소리에 이어 이번엔 익숙한 뱁새의 소리가 들려왔다.
-짹짹짹!
뱁새의 부름에 아이언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였다.
방금 들려온 소리가 피닉스였음을 깨달은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금 피닉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삑!
“피닉스?”
-삑삑!
“저것의 규모를 줄일 방법을 안다고?”
-삑!
피닉스의 말에 아이언의 눈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래, 뭐가 되었든 일단 움직이자.”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마나를 끌어 올렸다.
이미 앞을 가로막는 건 없었다.
유령왕과 마녀 역시 가루가 되어 사라진 지금, 모든 이들은 멍하니 붕괴되고 있는 차원 게이트를 바라볼 뿐.
그들은 모두 허망한 표정으로 하늘만을 바라봤다.
하지만 가장 나이가 어린 청년 하나만은 희망을 갖고 홀로 차원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곧 기적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