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71)
21. 마녀와의 거래 (3)
계약으로 인해 이어진 붉은 실은 지금 이 말이 진실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마녀의 눈에 당혹감과 흥미로움이 감돌기 시작했다.
“진실이구나.”
“중요한 거래에 거짓을 말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아이언의 말에 마녀가 피식 웃었다.
“이게 전부인가?”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그쪽도 내놓는 게 있어야지?”
아이언의 도발에 마녀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방자한 놈이었다.
현시점이라면 대륙에서 첫손가락에 꼽힐 강함을 지닌 자신을 향해 이리 무례하게 구는 어린 소년이 궁금했다.
‘좀 더 알고 싶다.’
‘무슨 비밀을 감추고 있는 걸까?’
‘다른 세계라면 어떤 곳일까?’
마녀의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호기심.
이 감정을 잠시 음미하듯 느끼던 마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가 더 말해 준다는 조건하에 북동부 차원 균열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마.”
“좀 더 써 봐. 내가 어떻게 넘어오게 되었는지도 알려면 더 내놔야지?”
“흠…… 차원 균열을 일으키는 세력에 관해서라면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대충 앞으로 뭘 하려는지 정도는 알려 줄 수 있겠구나. 네 정보의 가치론 이 정도가 한계다.”
마녀가 빠르게 아이언의 정보에 대한 가치를 정하고 난 뒤 말하자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언이 입을 열었다.
“좀 더 내놔.”
“욕심이 많구나.”
“황실. 그거에 대한 정보도 덤으로 넘겨줄게.”
아이언의 말에 마녀의 두 눈이 커졌다.
“사료를 찾아보니 제국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진 않을 거 같더라고? 게다가 황실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마녀는 아이언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아쉬운 놈이 풀어야지, 뭐…….”
한숨을 푹푹 쉰 아이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이곳에 넘어온 건 갓 게임이라는 것 때문이야. 아! 게임에 대해서 설명해 줘야겠구나?”
아이언이 ‘아차차!’ 하는 표정으로 마녀에게 게임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다 현대 문명에 대한 이야기로 삼천포에 빠졌다가 간신히 돌아와서 전생에 겪었던 이야기를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다.
전생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황실에 대한 분노를 양념 삼아 열심히 까 댔고, 그것이 마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줬는지 까칠해 보이는 마녀가 추임새까지 넣어 주게 되었다.
“그렇지. 황실 놈들은 예로부터 싸가지가 없었다. 겉으로는 근엄한 척하지만 속은 좁쌀만 한 쓰레기들이지.”
“맞아. 어쨌든 그 덕분에 이용만 당하다 죽게 되었고…….”
“그때 갓 게임이란 놈이 다시 나타났구나.”
“그래.”
아이언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마녀가 잠시 고민했다.
생각보다 훨씬 큰 정보를 듣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 역시 그에 걸맞은 정보를 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냥 자신이 아는 정보만 알려 주는 건 아까웠다.
“한 가지 약속하거라.”
“약속?”
아이언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더 요구하는 건 양심 없는 거 아니야?”
“너도 황실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음…… 그래서?”
“내가 약속받고 싶은 건 바로 그 부분이다.”
마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가만히 응시하자 잠시 혀를 차던 아이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언 입장에서도 나쁠 것 없는 제안이다.
지금도 황족이라면 갈아 마시고 싶을 정도로 깊은 분노를 가슴속 한구석에 고이 모셔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실 놈들에게 언젠가 네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크게 한 방 먹여 주었으면 싶구나.”
“그게 전부?”
“지금 네 실력으로는 그것조차 언제가 될지 모를 것 같은데?”
마녀의 말에 아이언의 입이 조가비처럼 다물렸다.
“후…… 좋아. 만약 살아남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황실에 반드시 한 방 먹여 주지.”
아이언의 확답에 마녀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적이지만 공통의 적을 갖고 있기에 성립될 수 있는 거래였다.
“마음 같아선 내가 직접 쓸어버리고 싶지만…… 힘들겠지.”
마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황족이란 놈들은 제 몸 하나는 기막히게 챙기는 놈들이었다.
그러니 이 강대한 마녀도 황족을 직접 쓸어버릴 생각은 못 하고 여기서 수를 쓰는 것이다.
“근데 말이야.”
아이언이 아쉬워하는 마녀를 보았다.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할 거라면 황족의 약점에 대해서라도 던져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이언의 말에 마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뭔가를 알고 있는데 입을 달싹이다 마는 마녀의 행동으로 보아 뭔가 제약이 있는 것 같았다.
“황족이랑 관련 있나?”
아이언의 물음에 마녀가 입을 다물고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런 마녀의 행동에 아이언이 한숨을 쉬었다.
“후…… 아쉽군.”
제약으로 인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마녀를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
침묵하는 마녀를 잠시 바라본 아이언이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마녀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이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순간 심장에 붉은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것을 본 마녀가 살짝 놀란 눈을 떴다가 미소를 지었다.
아이언이 진심으로 계약을 이행하려고 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덕분에 추가적인 조치를 하지 않고도 계약이 진행되면서 서로의 영혼과 마력이 계약으로 묶이게 되었다.
“이건?”
“계약이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네가 죽는 그날까지 반드시 황족 놈에게 한 방 정도는 먹여 줘야 한다. 날로 먹으려 했다간…… 심장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겠지?”
마녀가 그렇게 말하자 아이언이 당했다는 표정으로 마녀를 노려보았다.
이런 강제성이 있는 계약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기 계약이라고 무르려던 아이언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계획대로만 된다면 황족 놈들에게 한 방 정도는 먹여 줄 수 있으니 자신에겐 남는 장사였다.
“후…… 좋아. 이미 계약된 걸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남은 건 내가 받을 것뿐이네. 얼마나 대단한 걸 가르쳐 줄지 기대되는걸.”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그리고 이중 계약까지 하면서 자신에게 받아 낼 거 다 받아 낸 마녀를 바라보았다.
“너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았다. 갓 게임…… 그것과 내가 가진 정보를 조합해 보니 아주 기막힌 일이 떠오르더구나.”
“기막힌 일?”
“그 게임이란 거…… 어쩌면 이 세계를 두고 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마녀의 말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부터 갓 게임이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추론이었다.
“한데 단순히 이곳의 신과 차원 균열 너머의 신과의 게임일 뿐일까?”
“뭐?”
“그럼 왜 너를 이곳으로 불렀을까? 단순히 차원 균열을 여는 신과 이곳 신의 싸움이라면 이곳에 있는 이들로 하면 그만일 텐데.”
마녀의 말에 아이언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러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마녀를 바라보았다.
“제법 머리는 돌아가는구나.”
마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단순히 너 하나만이 아닌, 네가 사는 세상의 다른 이들까지 불러올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니까 마녀 네 말은…….”
“너희가 사는 세상, 어쩌면 그곳의 신도 이 게임이란 것에 엮여 있을 가능성이 높을 거다.”
“근거는?”
마녀의 말에 아이언이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의 세력 구성원. 그것이 곧 근거다.”
“자세하게 설명해.”
아이언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까지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기, 다른 세상의 게임일 뿐이라 생각했다.
살아서 돌아만 간다면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 모든 것이 깨진 아이언은 마음속에 남아 있던 한 줌 여유마저 사라졌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차원 균열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데 단순히 그것뿐일까?”
마녀의 물음에 아이언이 표정을 찡그렸다.
“무슨 말이야?”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소리다. 나야 제국과 대륙 전체에 복수하기 위해 손잡은 것뿐이지만 다른 녀석들은 다르더군.”
“다르다고?”
“그래, 배후 세력이 따로 있다.”
마녀의 말에 아이언의 눈이 커졌다.
“배후 세력…….”
아이언이 조용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면서도 확실한 감을 잡지 못한 것 같자 마녀가 좀 더 도움을 주려는 듯 입을 열었다.
“겨울산에서 지옥문이 열렸지?”
“그게 뭔……. 아! 설마?”
“그래, 다크 엘프는 지옥과 손잡았지. 그럼 다른 놈들은 뭐와 손잡았을까?”
마녀의 물음에 아이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차원 균열은 수단일 뿐. 이곳에 넘어오고자 하는 놈들이 임시 동맹을 맺고 잠시나마 힘을 합친 것이 내가 속한 세력의 정체다.”
“단순히 대륙 멸망을 위한 신의 농간이 아닌 건가?”
“신이란 놈들도 성인군자는 아니니 이런 짓을 벌이는 거 아니겠나? 욕심이 있는 놈들이 제 이득도 없는 일을 하려 할까?”
마녀의 물음에 아이언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 한 놈이 아니라 치고…… 우리 세계와의 연관성은?”
“우리 세력이 여러 차원의 연합체라면 이곳의 신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설마…….”
“그래, 네놈 세상의 신 역시 이 세상의 신과 동맹을 맺은 것일 가능성이 있겠지.”
마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언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본래 살던 세상와 이곳 세상의 연합 전선.
그리고 차원 균열을 여는 자들의 연합 전선.
그 2개의 세력이 이 세상을 두고 거대한 싸움을 벌이려 하고 있었다.
신은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못한다.
그저 게임의 캐릭을 조종하는 것처럼 각자의 피조물들에게 방향을 잡아 주는 것만 가능하다.
세력 간의 규칙에 따라 전쟁을 일으키고, 즉, 아이언을 비롯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들은 그 전쟁의 장기짝 같은 존재.
‘미치겠군.’
마녀의 말을 듣자마자 아이언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대한 전쟁터.
주요 전선은 이곳 세상이라고 친다면 본래 세상은 병참기지나 마찬가지다.
지속적으로 병력을 지원하고 도움을 줄 기지.
아마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터다.
“뭔가 엄청난 비밀을 알아 버린 것 같네.”
“그래, 다만 이것만으론 내가 받은 거에 비하면 좀 부족한 것 같네.”
마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마력을 뭉쳐 돌덩이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아이언에게 그것을 툭 던져 주었다.
“그걸 갖고 다니거라.”
“이게 뭐지?”
“오염된 마나를 품고 있는 존재가 나타나면 붉게 빛날 거다.”
마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마 대륙 곳곳에 퍼져 있을 거다. 혼란을 야기하고 서로 간에 불신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겠지.”
“수도에도 있겠군.”
아이언의 물음에 마녀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더 자세한 건?”
“나도 세력에 묶인 몸이라는 걸 잊었구나.”
아이언과 계약 중이라고는 하지만 작전에 직접적으로 방해되는 건 말하지 못하는 제약에 묶여 있다 보니 마녀라도 자세한 건 얘기하지 못하는 듯싶었다.
“뭐, 이 정도는 얘기해 줄 수 있겠구나.”
마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손뼉을 쳤다.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아이언의 의식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런 마녀의 말이 아이언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북동부에 있는 차원 균열의 폭주는 이미 막을 수가 없다. 이미 봉인한 겨울산의 차원 균열 역시 다시금 열리게 되겠지.”
“아…….”
“다만 북동부는 그게 끝이니라. 생각 이상으로 저항이 거센 탓에 겁쟁이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느니라.”
마녀의 말에 아이언이 흐릿한 의식을 부여잡으면서 마녀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는 건?”
“나만 막으면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니라. 그러니 잘 막아 보거라. 후후후…….”
마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아이언의 의식이 다시금 끊겼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언의 의식이 돌아왔을 땐 상처 입은 몸으로 한쪽에 기댄 상태였다.
“괴물……인가?”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지만 자신이 의식을 잃은 이후로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지 않았다.
자신과 마녀가 대화한 시간을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짧은 시간만 흐른 셈.
그렇다는 건 시간의 흐름을 어느 정도 조종할 수 있다는 뜻.
검은 공간은 그걸 위한 결계일 가능성이 높았다.
시간 조작까지 할 정도의 마녀.
힘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대한 마녀가 눈앞에 있고 자신은 그것을 막아야 하는 입장.
하지만 그런 엄청난 마녀의 힘을 목격했음에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와 대화하면서 느낀 힘 때문일까?
그 정도의 힘을 보유한 것치고, 크림슨과 두 개의 달과 싸우고 있는 마녀의 힘은 유독 약해 보였다.
‘속 빈 강정?’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고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괴물 같은 마녀는 마스터와 두 개의 달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차원 게이트로 진행되는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눈치챘다는 걸 알았는지 전투 중에 마녀의 시선이 잠시 아이언에게 닿았다 떨어졌다.
그걸 본 아이언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알아채면 뭐 어쩔 거냐는 듯한 마녀의 여유.
아이언은 그런 마녀의 여유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살 내고자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