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70화 (67/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70)

21. 마녀와의 거래 (2)

아이언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유령 군대를 미친 듯이 베어 냈다.

수없이 수련한 기초 검식을 기반으로 제국식 기본 검법을 풀어냈다.

가장 기초적인 검식이었지만 완벽한 자세와 함께 풀려나오는 마력은 유령을 가르기 충분했다.

푸른 불길을 머금은 유령의 실체화된 몸은 강철 같았다.

하지만 더 강하게, 더 오래 제련한 강철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급조한 철검 따위는 명인이 만든 진정한 강철검에 무너지는 법이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약해질지라도 명인의 검은 부러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말한다.

‘때론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선 때론 부러질 필요도 있다.’라고.

맞는 말이었다.

아이언 역시 전생에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후회했다.

자신의 그 판단으로 인해 죽어 간 사람들.

이용당한 사람들.

좌절하고 절규한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그렇기에 이번 생은 결코 흔들리지도, 부러지지도 않겠다 생각했다.

그 생각이 강철로 이어졌다.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

수백을 넘게 베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아이언을 보면서 유령왕이 감탄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고는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령 군대에 의해 지치고 상처 입은 육신을 향해 잔인하게 거대한 낫을 휘둘렀다.

푸른 불길이 휘감긴 거대한 낫을, 아이언은 자세를 바로잡고 막아 냈다.

캉! 캉! 캉!

푸른 불길을 휘감은 낫이 사정없이 휘둘렸음에도 튕겨 나갈지언정 다시금 자세를 잡는 아이언.

그 모습을 본 호박 인형은 더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수많은 유령 군대의 공격 역시 아이언을 더욱 힘들게 괴롭혔다.

팔이 너덜거릴 정도로 검을 휘둘렀다.

어깨.

허벅지.

허리.

몸에 상처 입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실로 독한 놈이로다.

강인한 무인이라도 포기할 만큼 몰아붙여도 서 있는 어린 녀석을 본 호박이 질린 표정으로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이걸 막는다면 네놈의 동료가 이곳에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내 패배가 되겠지.

호박 인형이 그렇게 말하면서 거대한 낫의 크기를 더욱 키워 나갔다.

그러자 유령 군대가 푸른 불길로 변하면서 낫으로 하나둘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마 네놈이 살아남는다면 우리의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로 성장할 것 같구나.

유령왕이 깃들인 호박 인형이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낫에 몰아넣었다.

고스트들을 막고 레인저들을 견제하는 유령을 소환하느라 큰 힘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눈앞의 어린놈 하나는 뭉갤 수 있을 만큼의 힘을 모았다.

“한 가지만 묻겠다.”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유령왕을 바라보자 그가 푸른 화염이 깃든 거대한 낫을 들어 올린 채로 말했다.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곳에 있는 마녀가…… 단 한 명뿐인가?”

아이언의 물음에 유령왕이 키득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용케 알아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 다다르기까지 마녀는 단 한 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사역마인 유령왕만이 나타났을 뿐이다.

처음엔 차원 균열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보기엔 다른 사역마가 나타나지 않은 점이 이상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곳엔 마녀의 여왕 혼자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모든 마녀를 이끌었던 존재라면 마스터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가질 것이고, 그녀의 영역이라면 혼자서 이 말도 안 되는 걸 해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곳엔 마지막 마녀이자 최강의 마녀였던 ‘그녀’만이 존재한다.

“혼자서…… 북동부 정예 전력 전체를 상대한다고?”

-여왕의 영역은 그 옛날 그랜드 마스터조차 꺼리던 곳이거늘……. 당연한 거 아니겠나?

유령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거대한 낫을 아이언을 향해 휘둘렀다.

마치 마지막 말은 들어 줬다는 듯, 조금의 망설임 없이 휘두르는 낫.

그 순간 아이언의 몸을 중심으로 주위의 마나가 몰려들어 하나의 돌풍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마나의 돌풍이 거대한 낫에 휘감긴 푸른 불길을 걷어 냈다.

유령들이 공허충을 제물 삼아 만들어 낸 영혼의 불길이 검은 돌풍에 걷히고, 검은 돌풍 사이에서 뿌려지는 빛줄기에 유령들마저 터져 나갔다.

“고맙다.”

부엉이의 도움임을 느낀 아이언이 검을 바로 세웠다.

남은 건 거대한 낫의 형상을 한 마력의 집결체.

그 정도는 자신이 버텨 내야 했다.

‘할 수 있다!’

아이언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면서 단번에 갈라 버릴 기세로 날아드는 거대한 낫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한계까지 압축된 검에 아이언의 강철 같은 의지가 깃들면서 약간이지만 검게 물들었다.

그 순간 겨울산에서 다크 엘프의 공격을 막으면서 느꼈던 감각이 되살아나며 아이언의 검에 깃든 마력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호박 인형의 낫과 아이언의 검이 충돌했다.

쿠우웅!

지축을 흔들 정도로 거대한 폭음이 일어나면서 주변에 막대한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그 엄청난 충격 속에서도 아이언의 검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버티고 선 아이언의 두 다리 역시 굳건했다.

-좋은 검이군.

크그극!

기어이 강철 같은 아이언의 마력을 뚫었음에도 검까지는 뚫지 못한 자신의 낫을 보면서 유령왕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호박 인형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면서 아쉬운 듯 눈이 축 처지는 것을 보자 아이언이 인상을 찡그렸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괴이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검을 가진 것도 자네의 능력이겠지.

유령왕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뒤에서 벽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린텔의 쾌검이 호박 인형을 꿰뚫으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가로막은 유령왕의 낫이 린텔을 튕겨 냈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 봐야겠군. 2차전은 여왕과 함께하려나? 재밌겠어.

유령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사라지자 하나둘 모여든 고스트들이 아이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괜찮나?”

“……예. 이 검 덕분에 살았습니다.”

자신의 검을 바라보면서 말하는 아이언을, 칼 구스타프가 빤히 바라보았다.

겨울산에서도 다크 엘프에게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기적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아이언의 검이었다.

아다만트가 굳건히 버텨 준 덕분인지 뭉개지고 균열이 간 미스릴이 끝끝내 버텨 내면서 검의 형상을 유지했다.

덕분에 피닉스 사건이 있은 후 그걸 수리하기 위해 부러진 일반 장교의 검을 녹여 내 사용해야 했다.

“검 좀 아껴서 사용해라. 매번 그게 뭐냐?”

이번에도 상당히 손상된 아이언의 검을 보면서 린텔이 타박했다.

아이언도 그건 찔렸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잡담은 나중에.”

칼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일으켜 세우고는 곧바로 움직였다.

포션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약재가 묻은 붕대로 상처 부위를 감아 준 뒤 움직였다.

부엉이가 찢어 낸 검은 장막 쪽으로 움직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축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녀?”

“아뇨. 같은 편입니다.”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자신의 몸에 차오르는 신수력을 느끼면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주변 지반이 무너지면서 환상으로 보았던 거대한 부엉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푸른 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두 눈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마녀의 결계가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밖에서 마녀의 마법을 상대로 싸우고 있던 크림슨의 폭풍검이 작렬했다.

“저게 진짜 차원 균열…….”

마녀의 결계와 마법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보이는 풍경은 엄청난 숫자의 공허충들로 만들어진 건물과 게이트였다.

공허충들을 쌓아 건물을 만들고 차원 균열마저 공허충으로 고정시켜 놓은 기괴한 모습.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마녀였다.

“환각 마법? 아니 조종술? 뭘로 저들을 조종한 거지?”

공허충마저 조종할 수 있는 마녀의 능력에 린텔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실로 경이로울 정도의 능력.

“고대 마녀인가? 대단하군.”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온 크림슨마저 감탄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 공허충을 저런 식으로 이용할 생각을 할까?

“어쩐지 공허충이 너무 없다 했어.”

린텔은 외부에 있는 공허충이 겨울산 때보다 너무 적었음을 깨달았다.

지금도 하나둘 나오는 공허충들을 조종해서 주변을 견고하게 다지는 모습에 크림슨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외부는 공허충으로 영역화해서 오염된 마나를 끌어오고 나머지 공허충은 저런 식으로 사용한다.

저러면 굳이 차원 균열을 키우기 위해서 마나를 끌어올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단 저거부터 부숴 버려야겠군.”

크림슨이 그렇게 말하면서 폭풍검을 일으키자 그것을 견제하기 위해 또다시 마녀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동시에 상공에 엄청난 숫자의 유령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 개의 달 역시 차원 균열을 향해 움직였다.

검은 숲의 마나를 이용해 차원 균열을 닫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토록 찾던 마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우!

두 개의 달이 분노한 표정으로 거대한 두 눈에서 빛을 쏘아 냈다.

하지만 환영으로 이루어진 마녀는 조금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순식간에 이동하는 마녀를 크림슨이 뒤쫓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건 아까 내내 싸웠던 검은 빛덩이였다.

“이거…… 자존심 상하는군.”

자신을 견제하면서 완전히 살아난 두 개의 달마저 상대하는 마녀의 모습에 크림슨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현역에서 물러날 때가 다가온 마스터라지만 이런 취급은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마녀에 대해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두 개의 달과 마스터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다시 나타난 호박 인형은 고스트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정말…… 마녀 혼자서 이 인원을 상대로 싸운다고?”

부리는 인형들과 유령 나무, 그리고 사역마의 유령들을 통해 군대를 막아 내고, 이곳에선 마스터와 두 개의 달을 직접 상대한다.

실로 경이로울 정도의 능력.

마녀의 엄청난 능력에 정신없이 싸우는 와중에, 아이언의 의식이 흐릿해졌다.

“윽!”

“아이언?”

정신없이 베는 와중에 아이언이 갑자기 휘청거렸다.

신기한 건 아이언이 빈틈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령들이나 마녀의 인형들이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아이언은 지금 이 모든 현상이 마녀가 만들어 낸 것임을 깨달았다.

‘괴물이네.’

크림슨과 두 개의 달을 상대로 싸우면서 이런 걸 할 수 있는 마녀가 괴물처럼 보였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아이언의 의식이 완전히 꺼졌다.

“신수 계약자라……. 고대에도 얼마 없었는데 흥미롭구나.”

검은 공간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젊은 여인을 보자 아이언은 단번에 그녀가 누군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마녀?”

“후후…… 유령왕의 말처럼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구나.”

마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허공에 의자를 생성하더니 요염하게 앉았다.

“유령왕이 그러더구나, 한 어린 녀석이 나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그래서 이리 힘을 써 보았지.”

마녀의 말에 아이언이 진중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한데 마녀에게 묻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느냐?”

마녀의 물음에 아이언이 고개를 저었다.

“대가. 마녀에게 무언가를 청할 땐 언제나 그만한 대가를 내놔야 한다. 네가 묻고자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만한 대가는 갖고 있느냐?”

“내게 대가가 없다면?”

“그럼 의미 없는 시간이 되겠지.”

마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아이언이 대가로 내놓을 것이 없음을 아는지 별 기대가 없는 눈빛이었다.

“나에게 내줄 대가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마도?”

“그럼 왜 날 부른 거지?”

“그저…… 저 두 개의 달의 계약자가 된 이가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서?”

마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요염하게 웃었다.

“고대에도 콧대 높았던 녀석이 어째서 인간 계약자를 두게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마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웃더니 손가락을 튀겼다.

“대가를 줄 게 없다면 기회는…….”

“있어.”

“음? 있다고? 참고로 네 생명력은 하찮아서 별 대가가 되지 못한다.”

아이언의 말에 마녀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어린애 생명력 따위는 별 가치 없다고 말하는 마녀의 눈에서 아이언은 그것이 거짓임을 깨달았다.

마녀는 그저 아직 어린 아이의 생명을 빼앗는 게 꺼림칙한 것일 뿐이었다.

“나에 대한 정보.”

“흠…… 내가 알 필요가 있을까?”

마녀가 별로 흥미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이언이 피식 웃었다.

“아마 제법 흥미로울걸.”

“좋아. 들어 보고 그에 상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마.”

마녀가 거래를 받아들이자 아이언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마녀는 반드시 정보를 풀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거래를 받아들이는 순간 마녀와 자신 사이에 붉은 실이 만들어졌다.

그것까지 확인한 아이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난 여기 사람이 아니야.”

“뭐?”

“말 그대로다. 난 이곳 세상의 사람이 아니야.”

아이언의 말이 끝난 순간 마녀의 두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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