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65화 (62/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65)

20. 검은 숲을 뚫어라 (2)

기본적으로 마녀라고 하면 마법을 상징한다.

하지만 마녀가 더욱 골치 아픈 건 주술이다.

자신의 생명력 혹은 그에 준하는 뭔가를 바쳤을 때 강력한 주술을 발현시킬 수 있는데, 그건 대마법사라고 하더라도 풀 수 없을 만큼 지독했다.

그래서 고대에는 마녀와 척지지 말라는 말이 나왔었다.

그런 마녀를 지금 적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고스트들과 레인저들의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후퇴해야겠습니다.”

“예, 마녀라……. 골치 아파졌습니다.”

칼 구스타프와 짐 로저스는 후퇴하기로 마음먹고 곧바로 퇴각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두 사령관에게도 마녀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렇게 모든 고스트들과 레인저들이 일제히 후퇴한 뒤, 사령부는 검은 숲을 특급 위험지역으로 선포하고 가용 병력을 통해 봉쇄를 진행했다.

그리고 추가로 검은 숲에 대한 조사를 명해서 관측 부대부터 비룡 부대까지 모조리 동원해 상공에서 검은 숲을 감시했다.

무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심도 있게 감시했는데, 결국 마녀로 원인을 결정지을 수밖에 없었다.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정보들을 토대로 군사학자들이 사료를 통해 대조해 본 결과, 마녀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령부에서는 고스트도, 레인저도 움직이지 못하게끔 묶어 두고 만약을 대비한 후 검은 숲 공략에 대해 논의했다.

“마녀라…….”

사령부에 묶인 후 할 일이 없어진 아이언은 수련에 전념했다.

하지만 마녀라는 미지의 존재 때문에 수련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매일같이 마녀에 대해 생각하면서 도저히 집중하지 못하자 차라리 마녀에 대해 조사해야겠다는 생각에 군사학자들을 찾아가 같이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마녀들이 안타까웠다.

마녀사냥.

제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다.

황제가 자신의 불안한 황권을 다지기 위해서 자행했던 일.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면 그저 ‘그런 시기도 있었구나.’ 했을 것이다.

제국의 위정자들은 전쟁을 일으킬 때면 흑마법사와 마녀를 끼워 팔곤 했다.

어떤 국가에서 흑마법사와 결탁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거나, 어떤 곳에 마녀가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등.

그들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제국은 그들을 핍박했다.

“후…… 이 제국은 차라리 멸망하는 게 나았을 뻔했어.”

제국 역사상 몇 번이나 멸망의 위기가 있었는데 차라리 그때 멸망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제국의 역사는 쓰레기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많이 고쳐졌을까?

북부를 버림패로 사용하는 것이 고쳐진 것이라면, 제국은 이미 뿌리 끝까지 썩은 것이다.

“다크 엘프처럼 모든 걸 다 거는 타입이라면 피곤할 거 같은데…….”

아이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녀라는 존재가 하나 더 나타났을 뿐인데 머릿속이 꼬이는 것 같다.

다크 엘프처럼 전생에 나타나지 않았던 존재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상당히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잠정적으로 북동부의 멸망의 원인 중 하나로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몬스터 웨이브 때 왜 전혀 발견되지 않았는지가 설명되지 않았다.

겨울산에서도 모든 다크 엘프가 희생된 건 아니었다.

그럼 그 살아남은 녀석들이라도 나타났어야 말이 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다크 엘프와 마녀, 둘의 연관성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아직 둘이 같은 편인지 확실치 않지만 아이언은 내심 그 둘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그 둘의 공통된 관심사가 차원 균열이라 생각해 볼 때 추론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첫째, 제국에 지독한 원한이 있는 것.

이것일 경우 황족 때문일 가능성이 있었다.

자신만 하더라도 황족이라면 개처럼 패서 굶겨 죽이고 싶을 정도로 짜증 났다.

만약 이들이 고대에 자신보다 더한 핍박을 받았다면 지금까지 원한이 유지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될 만했다.

둘째, 인류 자체에 원한이 있는 것.

차원 균열이라는 게 한번 열리면 대륙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단순히 제국만이 목적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타 종족을 배척해 왔다는 것은 오랜 역사가 증명해 왔다.

지금에서야 사죄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지만 이미 이종족은 깊이 숨어든 후였다.

즉, 이 대륙의 대다수는 인간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다크 엘프만 봤을 때 인간 자체를 증오할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마녀들이다.

마녀 역시 인간 출신이었다.

그렇다면 다크 엘프와 인간인 마녀가 서로 손잡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멸망……. 그걸 위해선 인간과 손잡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면…….”

대륙의 멸망.

차원 균열을 열겠다는 건 이것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힘드니 차라리 대륙 전체를 공허의 존재들에게 넘기겠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원한이 깊다는 것.

문제는 이런 존재들이 다크 엘프와 마녀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치겠네.”

전생에선 분명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일이 자꾸만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이 북동부의 멸망의 원인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현생에서만 특별히 일어나는 일인지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만약 후자라면 전생보다 난이도가 더 높아진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숨어서 살아 본들 생존 확률은 턱없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자신의 생존 계획이 어려워지는 걸 느낀 아이언은 과연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욜로족이 되어 해피 라이프를 즐기다가 저승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언이 점차 암울해져 가는 자신의 생존 계획에 좌절하고 있을 무렵, 이 상황이 보고된 중앙은 난리가 났다.

“마녀라니요!”

“멸족하지 않았습니까?”

“허…… 다크 엘프도 모자라 마녀까지?”

중앙의 관리들은 마녀라는 소식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저마다 토의하기 시작했다.

일단 한 가지 확실한 건, 현재 북동부 전력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마녀가 나왔다면 다른 무언가도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신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게다가 다크 엘프까지 완전히 토벌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황태자.”

“예, 폐하!”

“태자가 갔을 땐 마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그렇사옵니다.”

황태자의 대답에 황제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턱을 괴면서 말했다.

“그런데 시기가 묘하군. 태자가 수도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말이야.”

마치 그의 무능을 지적하는 듯한 모양새에 대신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대전에 정적이 흐르자 황태자의 얼굴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턱을 타고 떨어졌다.

여기서 잘못 말하면 그대로 쭉 미끄러질 수 있음을,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눈치 하나는 황족 제일이라 자부하는 그가 지금 인생 최대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그 당시에는 북동부 상황을 파악하느라 바쁜 관계로…….”

“그래, 파악했다는 것이 고작 상인 몇 놈 알아낸 것과 대신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준 것뿐인가?”

황제가 다시 황태자를 몰아붙이자 대신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반면에 은근히 4황자를 밀고 있던 고위 귀족들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마침내 저 황제가 황태자를 버리려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귀족들에 대한 견제로 황태자를 밀어주었던 황제였다.

최고위 귀족들은 황태자의 재능이 동생인 4황자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걸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황제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최대한 오랫동안 권력을 놓지 못하게 구도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황제가 가장 원하는 일이었고, 황태자의 재능은 그런 황제의 의도에 딱 맞았다.

눈치 하나는 비상하니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 것이고, 아예 못 써먹을 정도로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연기력도 쓸 만하니 얼굴마담 정도는 시켜 먹을 수 있으리라.

자신이 죽을 때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황제 자리를 넘겨줘도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그런 황제의 생각에 찬물을 끼얹었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겠지.’

백성들이 황실을 욕한다.

귀족들도 황실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폐쇄적이던 북동부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것에 반응해서 다른 군부들도, 그동안의 비리가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하면서 중앙을 압박해 오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선 황태자로는 부족했다.

‘드디어 4황자 전하에게 기회가!’

‘역시 라인을 잘 타야 돼.’

‘하하! 4황자 파에게 봄이 오는가?’

황태자 파와 4황자 파로 갈라졌던 세력 구도에서 황태자가 이번 일로 내려오게 된다면 남은 건 4황자뿐이었다.

“마침 4황자 전하께서 훌륭한 안건을 보내왔사옵니다.”

“안건이라……. 녀석이 제법 똘똘했지. 그래, 무슨 안건이오, 말디니 후작?”

황제의 물음에 그가 부복하면서 말했다.

“수도의 마스터 중 한 명을 지원 병력으로 보내는 것이옵니다.”

“흠…….”

황제가 그것뿐이냐며 실망 어린 표정을 지으려 할 때였다.

“그것을 명분으로 삼아 테리언 시구르드 공작도 함께 북동부에 파견하시옵소서.”

“호오~.”

이번엔 꽤 괜찮았다는 듯 황제의 반쯤 감겨 있던 눈이 떠졌다.

남부 최강의 검가인 신검세가의 가주인 것으로 유명한 테리언 공작을 보낼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웬만한 걸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테니 중앙에서 제법 큰 것을 내주면서 보내 버리는 것이다.

제국의 두 축 중 하나인 레온하르트의 사자가주가 있으니 신검가주가 올라가면 제법 재밌는 장면에 연출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황제가 비뚜름하게 웃었다.

자신의 의견이 제법 괜찮게 받아들여진 것을 인지한 말디니 후작이 미소를 지었다.

“수도의 마스터 중에선 누가 갔으면 좋겠나?”

“레오폴드 후작이 어떠실는지요?”

“수도를 지키는 총사령관을?”

“무거운 자리에 있는 사령관이오나 오직 제국만을 위하는 사람이니 문제를 배제할 수 있사옵니다.”

말디니 후작의 말에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이 역시 황제의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황실을 따르는 로칸 후작과 다르게 레오폴드 후작은 철저히 제국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존재였다.

그러다 보니 황제의 명령을 거역할 때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마스터라는 경지를 개척한 무인답게 황제조차 함부로 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골치 아픈 상태로 방관했는데, 이참에 북동부로 치워 버릴 수 있었다.

황제는 그사이 자신이 기르는 개들로 수도 방위군을 장악할 생각을 했다.

“그럼 임시 사령관이 필요하겠군?”

“그렇습니다.”

황제의 말에 말디니 후작이 급히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그 모습에 황제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말디니 후작이 한번 추천할 인물을 올려 보게.”

“감사합니다!”

황제가 흡족한 제안을 해 준 말디니 후작에게 당근 하나를 던져 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볼일 없다는 듯 다시금 무료한 표정으로 대전을 나서자, 대신들이 황급히 황제가 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중앙의 세력 구도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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