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64)
20. 검은 숲을 뚫어라 (1)
황태자를 홀로 수도로 보내 버린 아이언이 다시금 임무에 복귀하자 다들 생각보다 빨리 온 아이언을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황태자이니 적어도 사령부까지는 따라갈 줄 알았는데 바로 임무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괜찮냐?”
임무에 복귀한 아이언에게 황태자를 어떻게 떨궈 냈는지 설명을 들은 린텔이 걱정스레 물었다.
“예.”
“그래도 황태자 전하신데 밉보이면 큰일 나는 거 아니냐?”
“글쎄요……. 제게 신경 쓸 틈도 없을 겁니다.”
아이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말처럼 황태자는 그를 신경 쓸 틈이 없을 거다.
막 도착했을 때는 수도에서 북동부의 불만을 잠재운 영웅 취급받을 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북동부에 가서 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게 드러나게 되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4황자가 귀족들을 규합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바로 수도에 진짜 혼란이 시작되는 날일 것이다.
‘2황자와 3황자가 언제까지 참고 있을지도 궁금하네.’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전생에 황족들을 상대한 끔찍한 기억들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달콤했다.
황제 위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나라를 팔아먹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2황자와, 독특한 비밀과 엄청난 암중 세력을 갖고 있는 3황자.
이 두 사람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 수도는 지옥이 될 것이다.
‘거기에 몬스터 웨이브까지 뿌려 주면 아주 볼만하겠어.’
아이언이 거기까지 생각하면서 히죽거리자 옆에 있던 린텔이 그런 아이언을 미친놈 보듯 했다.
“왜 자꾸 히죽거리면서 혼자 웃냐? 미쳤어?”
“흠흠…… 아닙니다.”
“너 이중인격자 같은 거 아니지?”
린텔이 슬금슬금 피하려고 하자 아이언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미친놈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자꾸 자신을 피하려는 린텔에게 일부러 다가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장난치면서 놀고 있을 때였다.
정찰 임무를 맡은 레인저 하나가 말린 육포를 뜯으며 말했다.
“후…… 지겹다! 지겨워.”
그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 있었다.
맨날 검은 숲 주변을 맴돌면서 정찰만 하고 앉았으니 지겨울 만도 했다.
안전 지역 확보와 북동부에 숨어든 다크 엘프 수색이라는 미명하에 레인저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현재 그들은 옛 아카데미 지역을 중심으로 몬스터 영역을 밀어내고 검은 숲 안을 정찰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밀어낼 때는 좋았는데 막상 검은 숲에 도달하니 정찰만 죽어라 하고 있었다.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겨울산에서 다크 엘프들의 위험성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 지루해!”
“좀 닥쳐라.”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레인저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남자가 아이언을 향해 다가왔다.
“아이언 소령.”
“네.”
“검은 숲 부근에서 느껴지는 건 없습니까?”
“아직 별다른 느낌은 없습니다.”
아이언이 미안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현재 레인저들을 이끄는 최고참인 짐 로저스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20대의 나이에 중령(진)에 오른 인물로 한때 스카이 랭스와 함께 쌍벽을 이뤘던 인물이었다.
또한 북동부에서는 유명한 두 천재를 배출해 낸 117기의 기수 출신이었다.
‘저 사람도 참 아쉬워.’
비록 근소한 차이로 스카이 랭스가 1위가 되었고 이후 기사 사단에서 선봉 군단장까지 맡으며 앞서 나가긴 했지만, 짐 로저스는 그와 더불어 북동부를 이끄는 뛰어난 인재로 평가받았다.
‘누군가 끌어 준다면 더 빨리 성장할 것도 같은데…….’
아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힐끔 짐 로저스를 바라보았다.
캡틴 고스트인 칼 구스타프에 비견되는 재능을 갖고 있는 짐 로저스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스카이 랭스, 칼 구스타프 둘 다 후견인이 있지만 짐 로저스는 그런 존재가 없다는 점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려고 하는 고집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만, 그 고집을 조금만 꺾어도 지금보다 더 성장할 인물이었다.
‘뭐, 저것도 제 팔자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이언은 검은 숲을 주시했다.
피닉스 때처럼 뭔가 보이지도 않았고 팍 하고 느낌이 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변 마나가 약간 이질적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이질적인 게 맞는지 애매했지만 오랫동안 머물면서 점차 확신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좀 더 안쪽을 정찰해야겠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칼 구스타프가 고민했다.
“흠…….”
“어차피 신수도 없는데 좀 더 안쪽으로 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짐 로저스까지 이렇게 말하자 결국 칼 구스타프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대비해 두 사령관께 보고는 드리고 움직이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시죠.”
짐 로저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칼 구스타프가 직접 사령관한테 보고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식으로 검은 숲에 대한 정찰 임무가 주어졌다.
정찰은 먼저 고스트와 레인저가 팀을 짜서 검은 숲으로 진입하고 주위에 산악 군단의 병력을 지원해 만약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안개 군단 역시 병력 대부분을 한곳으로 모아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북동부의 정예들인 2개 군단이 검은 숲 주위를 빙 둘러싸서 대비했고, 사령부 역시 나이트와 비룡 기사, 마법 병단을 파견할 준비를 서둘렀다.
수많은 병력이 겨울산의 경험을 토대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검은 숲을 전 방위로 압박하자 마침내 숲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아~.
“윽!”
아이언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하지만 귀와 상관없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숲에 대한 적대감이 서서히 사그라들어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숲이 아군이라도 되는 것같이 친근감이 들자, 아이언은 황급히 마력을 끌어 올려 소리에 저항하면서 지금의 감정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듯 팔을 꼬집거나 입술을 무는 등으로 정신 공격에 저항했다.
그런 상황에서 짐 로저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검은 숲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몬스터지?”
아이언은 일찍이 경험해 본 적 없는 공격에 미간을 찌푸렸다.
전생에 수많은 몬스터들을 경험한 아이언이지만 이처럼 단순히 짜증만 유발시키는 공격은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마나 파장을 이용해 자신들을 공격한 건 아닌가 싶었다.
파동의 힘을 이용해 내부를 진탕시키는 수법으로, 전생에서도 몬스터들이 종종 썼던 수법이었다.
수많은 세이렌들이 몰려와서 비명을 질러 대면 고막이 터져 나가고 심지어 마력이 약한 병사들은 뇌가 터져서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방식의 공격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람의 감정을 자극한다고?”
단순히 마력을 이용한 물리적인 공격이 아닌 정신적인 측면을 건드리는 공격.
이것은 일반적인 공격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방식이었다.
게다가 이런 유의 방식은 주로 고대에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같은 힘을 사용해도 물리적인 파괴력이 훨씬 더 높은 방법이 개발되면서 이와 같은 고대의 기술들이 사장되었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아냐.”
유령을 이용한 마법인 것 같았다.
언데드 마법 중 한 종류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그 유령을 이용해 이런 고차원적인 마법까지 사용한다는 건, 어쩌면 마도사급에 비견되는 힘을 가진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뜻했다.
“이런 마법이 있었나?”
전생에서 본 적 없는 기술이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고 수없이 많은 전쟁이 벌어지면서 마공학이 극도로 발전되기 시작한다.
어떡하면 좀 더 효율적인 마력 운용이 가능해질까?
병사들의 소모를 줄일 방법은?
병참기지와 물자 보급을 효율적으로 할 방법은?
이런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공학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거기다가 현대에서 넘어온 이들이 시너지를 일으켰다.
아이언같이 병실에서 처박혀 있던 자도 있겠지만 공돌이 같은 공학 박사들도 몇 명은 있었다.
게다가 용접 등의 기술자들도 넘어오면서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심지어 밀덕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과거의 마법은 더더욱 사장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뭔가 짐작 가는 게 있습니까?”
짐 로저스가 뭔가를 아는 눈치라 곧바로 다가가서 물었다.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마법은 대부분 고대 마법입니다. 그중에서 유령을 통한 대규모 마법 발현은…….”
짐 로저스가 검은 숲을 주시했다.
그곳엔 유령 하나가 떠올라서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마녀의 마법입니다.”
“마녀?”
“아…… 이게 마녀의 마법이었군.”
아이언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빌리 브란트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녀의 힘이라……. 마녀 마법은 독특하다고들 하던데 확실히 적응하기 쉽지 않겠습니다.”
“레인저 대장께선 편해 보이십니다.”
빌리 브란트가 익숙하지 않은 정신 공격에 표정을 찡그릴 때 상대적으로 편안해 보이는 짐 로저스를 보면서 아이언이 물었다.
“다행히 전 조상 중에 마녀가 한 분 계셔서 그런 듯싶습니다.”
아이언의 물음에 짐 로저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북부에 마녀의 혈통이 이어진 분이 계셨군요.”
“북부 출신들 중에는 마녀의 피가 이어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대를 걸쳐서 옅어졌지만 마녀, 드루이드 같은 존재들의 피가 이어진 경우가 있거든.”
린텔의 대답에 아이언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사자 가문이 신수술사이거나 템페트, 윈스텔 같은 가문에 정령술사의 피가 이어진 것과 같지. 한때 이 북부는…… 그런 이들이 모였던 땅이니까.”
린텔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자 아이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때 이 북부에 있던 다양한 종족과 특수한 이능을 가진 혈족들을 생각했다.
수인, 엘프 같은 존재부터 정령술사, 신수술사, 마녀, 드루이드 같은 존재들까지, 다양하지만 자연을 존중하는 존재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래서 존슨이…….”
겨울산에서 자신의 휘하로 있던 존슨을 생각했다.
그가 옮기기 전까지 정령사로 완전히 각성하지는 못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자신의 재능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정령과 계약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 녀석도 북부 출신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조상 중 누군가가 정령술사였을 것이다.
‘황태자가 전혀 틀린 건 아닌가?’
아이언만 해도 혈통발로 신수와 계약했고, 북부의 많은 사람들도 혈통에 따라 재능이 남아 있었다.
이런 걸 보면 혈통이 중요하긴 한 것 같았다.
혈통이 좋다는 건 남들보다 좋은 무기 하나를 더 들고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마녀라……. 뭔가 아는 게 있습니까?”
“자세히는 모릅니다.”
아이언의 물음에 짐 로저스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아무리 조상 중에 마녀가 섞여 있다 한들 워낙 오래전 인물이고, 제국에서 한차례 마녀사냥이 있었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마녀에 대한 기록은 씨가 말랐다.
“하…… 미치겠네. 다크 엘프만 해도 골치 아픈데 마녀라…….”
아이언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검은 숲을 바라보았다.
감정을 건드리는 고대 마법.
아마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지금은 기록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대 마법을 사용하는 마녀.
게다가 다크 엘프.
만약 이 둘이 한편이라면 다른 잊힌 존재들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골치 아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