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63)
19. 북동부에 방문한 황태자 (3)
두 사령관에게 직접 아이언을 보고 싶다고 말한 황태자는 북동부에 짱 박히려는 것처럼 사령부에 눌러앉았다.
그냥 대충 둘러보고 갈 줄 알았던 황태자가 북동부에 남아 있자 크림슨은 당혹스러웠다.
황족들이 대개 그렇듯, 황태자 역시 지독한 혈통주의로 인해서 평민들은 인간 취급도 안 했고 불결한 것을 싫어하는 족속이었다.
그런데 그 황태자가 북동부에 남은 것이다.
그것도 그냥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언을 보고자 남는다고 하면 좋은 인재를 빼 가려는 도둑놈 취급받을 걸 알기에 사령부를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사죄하고 있었다.
황실과 중앙을 대표해 죄송하다고 말하는 황태자를 보면서 북동부 장교들은 당황했다.
“미안하네. 앞으로는 좀 더 북동부에 지원이 갈 수 있도록 내 직접 힘쓰도록 하겠네.”
두 손으로 장교의 손을 잡고서 얘기하는 황태자를, 다른 장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봤다.
이뿐만 아니라 북동부 전체를 돌면서 사죄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령부만 돌면 진심이 전해질 것 같지 않군요.”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으신지요? 지금까지의 행보만 보더라도 북동부 병사들은 충분히 납득했을 것이옵니다.”
황태자의 말에 크림슨이 만류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중앙에 북동부 지원을 납득시키려면 북동부가 어떤 곳인지 직접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태자의 말에 만류할 명분이 없었던 크림슨은 직접 황태자를 데리고 북동부 부대들을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엔 대충 미안하다 말하고 갈 줄 알았던 황태자는 본격적으로 사죄하기 위해 북동부 전 부대를 돌겠다고 선언한 후 다음 날부터 비룡을 타고 순회를 시작했다.
사령부를 시작으로 황태자는 새로이 건설된 아카데미, 훈련소, 군부대 등을 돌아다니면서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북동부에서 황태자의 행동을 ‘사죄의 길’이라 칭하고 있었다.
이런 소문은 곧 북동부를 넘어 북부까지 도달했고, 중앙까지 순식간에 퍼졌다.
그렇게 황태자가 북동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또 하나의 소문이 돌았다.
바로 황태자가 겨울산의 영웅을 보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이다
“겨울산의 영웅을 데려가려나?”
“사령관님이 내줄 리가. 앞으로 북동부 군부의 핵심 인재로 성장할 텐데.”
“그러게. 인재를 보는 눈은 높이 사지만 태자 전하가 욕심이 과하시네.”
“난 반대야. 오히려 중앙에서 더더욱 성장할 필요가 있다고 봐. 인맥도 만들고 해서 미래의 북동부에 더 큰 힘이 되는 게 좋을 거 같아.”
소문의 진위는 둘째 치고, 만약 아이언을 데려간다면 그게 좋은 결과를 낳을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지금처럼 많은 지원을 받으려면 중앙에 북동부 출신의 힘 있는 자가 필요하다는 것과, 지금 당장 핵심 역할을 하는 장교를 뺏길 수는 없다는 두 의견이 충돌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작전 중인 아이언에게 황태자가 편지 한 장을 보냈다.
“이 새끼가 약을 파네.”
황태자의 편지를 본 아이언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반갑네.
알렉사르 솔 디 그랑시엘이라 하네.
부족한 몸이지만 황태자란 신분을 갖고 있지.
흠흠…… 내가 자네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자넬 한번 보고 싶기 때문이네.
차원 균열을 막은 영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사실 친해지고 싶은 게 더 크네. 하하!
내 나이대의 영웅은 처음 보거든.
부디 내 청을 거절하지 말아 주게.
-친구가 되고 싶은 황태자가]
황태자는 나름 친해지고 싶다고 살갑게 다가서는 문체를 썼지만 아이언은 헛웃음만 나왔다.
전생에 황족을 겪어 본 아이언 입장에선 황태자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고, 어떻게 부하들을 다루는지 뻔히 아는 상황이었다.
이중인격자.
연기자였으면 톱스타 반열에 이를 놈.
지독한 혈통주의자.
욕심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쓰레기 같은 새끼.
이것이 전생에 겪어 본 황태자에 대한 평가였다.
아이언이 보기에 눈치와 연기 하나는 일품이었다.
4황자보다 모든 면이 달리는 황태자가 황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들자면 눈치와 연기력 그리고 인재를 보는 눈이었다.
거기다 나름 황실의 직계 혈통이라고 정치도 할 줄 알았다.
문제는 지금이 정쟁해야 할 때인지, 힘을 모아 적을 막아야 할지 구분도 못 하고 날뛰는 것이었다.
공부를 통해 어느 정도 능력은 확보했으나 시야가 좁아서 글러먹은 타입.
그것이 딱 황태자였다.
이런 녀석이 황태자 자리에 앉아서 제국을 몇 번이나 말아먹었으니 밑에 동생들이 기를 쓰고 황태자를 쫓아내려 한 것이다.
그런 놈이 또 끈질기게 버티고 앉아서 결국 제국이 패망의 길로 가는 지름길로 들어섰다.
“눈치는 빠르네.”
북동부에 짱 박혀 있는 게 지금 상황에선 자신에게 좋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싶다.
운이 좋다면 북동부 사람들이 황태자를 지지할지도 모르고, 설사 그게 아니라도 혼자 북동부에서 희생하고 있는 황태자에 대한 여론이 좋아질 것이다.
“그나마 황태자가 온 것이 다행인가?”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멀리 검은 숲을 바라보았다.
바쁜 와중에 황태자가 아닌 다른 이가 왔다면 그놈을 신경 쓰느라 임무를 소홀히 할 뻔했다.
특히 4황자는 골치 아팠다.
이제 목표한 고지가 얼마 안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황족 따위한테 한눈팔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거 뭐야?”
린텔의 물음에 아이언이 편지를 보여 주면서 대답했다.
“황태자 전하가 저 좀 보자고 하십니다.”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임무 중인데 어떻게 봅니까?”
“아니, 그래도 황태자 전하가 보자시는데…….”
“임무가 우선입니다.”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답장을 전했다.
지금 중요한 임무 중이라 태자 전하를 뵙기 힘들다는 내용을 길게 늘려서 쓰고는 비룡 기사를 불러서 대신 전하게 했다.
“와…… 너 간땡이가 부었구나?”
“설마 거절했다고 죽이겠습니까?”
린텔의 말에 아이언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다시금 임무에 집중했다.
겨울산에 있는 차원 균열이 봉인되고 난 후 소령으로 진급하면서 더 이상 소초장으로도, 수색대의 중대장으로도 남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고스트로 복귀했고, 사령부 직속으로 임무를 받아 가면서 북동부를 이 잡듯 뒤지고 다녔었다.
고스트의 최우선 임무는 두 가지였다.
다크 엘프를 찾는 것.
차원 균열 저지.
이 두 가지 임무를 위해 몇 개월간 개처럼 구른 덕에 몇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황태자의 편지를 잊고서 임무에 집중했다.
그러자 또다시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마침내 단서를 가지고 차원 균열 위험지역들을 상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중 한 곳으로 고스트들이 집결한 상태였다.
“후…… 부엉이 녀석의 영역이라…….”
지금은 옛 영역이 된 곳이지만 검은 숲에 대한 소문은 수없이 들어 왔었다.
전성기 시절, 부엉이 녀석은 마스터급 존재도 쉽게 보지 못할 정도로 강했으며 검은 숲이라는 자신의 영역 내에선 마스터도 무조건 도망쳐야 할 정도였다.
그런 검은 숲이 뚫린 후 북동부 몬스터들의 영역 판도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동시에 북동부 너머에 있는 서리산맥에서 넘어온 몬스터들 역시 문제였다.
이 모든 것이 검은 숲에서 부엉이가 자리를 뜨고 난 뒤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검은 숲을 점령해서 다크 엘프들이 북동부에 하는 짓을 막아야만 했다.
어쩌면 겨울산 작전 그 이상으로 힘든 작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겨울산에서는 다크 엘프들이 하는 계획을 중간에 저지했지만 검은 숲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 이 새끼…….”
아이언이 또다시 편지를 보낸 황태자를 보면서 짜증을 냈다.
적당히 뭉개다가 갈 것이지 왜 또 자신을 걸고넘어지는지 모르겠다.
“피곤한 타입이시네.”
어느새 다가온 린텔이 아이언보고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황족이라……. 피곤하지.”
빌리 브란트도 황족을 겪어 봤는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차원 균열 봉인 후 재결합한 고스트들은 지난 몇 달간 같이 생활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최근에는 가장 친해지기 힘들었던 빌리 브란트와도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누는 사이까지 발전한 상태였다.
“이번엔 좀 다른데?”
[전하께서 자넬 보기 위해 레인저 3부대까지 오셨으니 일단 임시 복귀 형태로 만나 주게나.]
사령관이 직접 쓴 명령서를 보고선 린텔이 턱을 긁었다.
“이젠 만나 줘야겠다.”
“후…….”
아이언이 한숨을 쉬자 고스트들이 다들 쓴웃음을 지었다.
“좀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근처에 모인 고스트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레인저들 역시 아이언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황태자 전하가 집착이 좀 강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집착? 그래도 그냥 거절하면 되는 거 아닌가? 거절하는데 뭘 더 어쩌겠어.”
린텔이 뭐 어쩌겠냐는 듯 말하자 아이언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황태자의 집착이 일반적인 수준이 아님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듣기론 황태자 전하의 욕심이 상상을 초월한다 합니다.”
“넌 대체 그런 거 어디서 듣는 거냐?”
아이언의 설명에 린텔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맨날 자신들과 같이 있는 놈이 대체 저런 소문은 어디서 수집하는지 궁금했다.
신기하게도 저놈이 듣는 소문들은 대부분 맞았다.
“어쨌든 상당히 피곤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너 없으면 뭔 수로 작전을 하냐?”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린텔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신경 쓰지 말고 황태자 전하를 안전하게 뵙고 오는 데 집중해.”
“예.”
그동안 같이 활동해서 그런지 말을 편하게 한 칼 구스타프가 황태자 전하를 ‘안전하게’ 떨구고 오라는 말을 돌려 말하면서 명을 내리고는 고스트들에게 자리로 돌아가라 명했다.
그러자 레인저를 이끄는 짐 로저스 역시 레인저들에게 집중하라 명했다.
아이언은 그런 그들에게 인사하고는 혼자서 숲을 가로질러 움직였다.
일주일간 사자가주에게 개같이 구르면서 길을 재정립한 후 아이언은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상태라면 5단계도 머지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휘이익!”
아이언의 휘파람 소리에 안전지대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룡 하나가 서서히 내려왔다.
급하게 움직이거나 지원부대 요청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비룡 기사가 하강하면서 아이언을 위로 끌어 올리고 곧바로 솟아올랐다.
그렇게 아이언은 다급하게 황태자가 머물고 있다는 3부대로 향했다.
과거 아카데미 3학년이 있던 자리에 자리한 레인저 3부대.
그곳에 도착하자 황태자가 연병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전하를 뵙습니다.”
아이언이 내리자마자 곧바로 군례를 올리면서 인사하자 황태자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오오! 그대가 겨울산의 영웅인가?”
황태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의 두 손을 잡았다.
“이 어린 나이에 이 정도 기백이라니……. 사령관은 든든하시겠습니다.”
황태자가 사령관에게 부럽다는 듯이 말하면서 눈을 빛냈다.
그러다가 황태자가 잠시 뒤로 물러서더니 아이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전하?”
아이언이 눈썹을 꿈틀거리다가 황급히 군례를 올렸다.
“미안하다. 그대 같은 어린 사람을 이 위험한 곳에 근무하게 하다니, 다 내 잘못이다.”
“아닙니다.”
“북동부에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겨울산에서 고생이 많았다 들었다.”
“저보다 다른 동료들이 더 많이 고생했습니다.”
아이언이 칼같이 대답하자 황태자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지만 이내 안색을 풀고선 아이언에게 말했다.
“그대의 공이 중앙에 제대로 보고되었다면 작위라도 받았을 것을……. 고작 2계급 특진에서 그친 것은 짐의 잘못이 크다.”
“공에 비해 과분한 보상을 받았다 생각됩니다.”
“아니다, 아니야……. 그대는 충분히 작위를 받을 자격이 있어. 사령관.”
“예! 전하.”
“이 소령을 잠시 빌릴 수 있겠소?”
황태자의 물음에 크림슨의 표정이 굳어졌다.
“빌린다 하심은…….”
“아이언 소령이 온전히 받아야 할 것을 받게끔 하고 이곳으로 돌려보내고 싶소.”
황태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보며 눈을 빛냈다.
“마음 같아선 백작 위를 주고 싶으나 내 힘으론 남작이 한계구나. 그래도 작지만 봉토도 줄 것이고 후에 더 높은 작위를 주도록 힘써 볼 것이니 일단 나와 함께 폐하를 뵈러 가자.”
황태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살살 꼬드겼다.
듣기엔 아이언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영웅의 칭호를 얻은 아이언을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다져 보겠다는 심보인 것이다.
수도에서 자신의 평가를 수직 상승시키려는 저놈의 꼼수였다.
다 자기를 위해서 그런 것이면서 정말로 아이언이 부당한 처사를 당해서 안타깝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만약 아이언이 황태자를 처음 본 것이고, 평민 혹은 군부에서 밀리는 처지였다면 덥석 물었을 달콤한 과실이었다.
하지만 한번 당해 본 경험이 있는 아이언에겐 개소리일 뿐이었다.
‘엿이나 까 잡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아이언이 고개를 숙였다.
“제안은 감사하오나 거절하겠사옵니다.”
아이언의 말에 황태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재 진행 중인 임무가 실로 중하며, 부족하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 태자 전하를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제게는 그렇사옵니다.”
아이언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황태자가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크림슨이 한숨을 쉬면서 조용히 말했다.
“차원 균열에 관한 것이옵니다.”
“허…….”
차원 균열까지 나왔으니 아무리 황태자라도 더는 제안할 수 없었다.
“아쉽구나. 그래도 후에 임무가 끝나면 수도로 찾아오게. 내 반드시 그대를 귀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리하겠습니다, 전하.”
아이언의 대답에 아쉽지만 물러나야 함을 알고 있는 황태자가 사령관과 함께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리는 순간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 걸 매의 눈으로 확인한 아이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내가 있는 한 네가 북동부에서 가져갈 건 없을 거다.’
아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속으로 비웃었다.
이미 크림슨 사령관은 자신의 제안대로 행동하고 있었고, 북부와 레온하르트도 마찬가지였다.
내기에서 이긴 조건으로 북동부를 도와 달라 청한 아이언의 부탁을 가주가 성실히 이행 중이었고, 크림슨은 자신이 생각한 북동부 독립 작전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즉, 황태자가 여기서 뭔 짓을 하고 가든, 수도에 어떤 보고를 하든 상관없었다.
그렇기에 아이언도 맘 놓고 황태자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여기서 끝나면 베스트겠지만 아쉽게도 인재 욕심이 남다른 황태자는 질척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아이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서 3부대에 남겨 놓고 지근거리에서 질척댔다.
3부대에 있으면서 몇 번이고 질척거리는 황태자를 향한 아이언의 대답은 언제나 칼 같았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안타깝지만 힘들 것 같사옵니다.”
뭔가를 부탁할 때마다 이렇게 칼같이 정리하면서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철벽으로 대응하는 아이언 때문에 무려 사흘을 3부대에서 생활했지만 결국 설득하지 못했다.
결국 더는 안 된다는 듯 크림슨이 눈치를 주자 할 수 없이 수도로 떠날 준비를 했다.
떠나는 날까지도 황태자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홀로 수도에 가야 하는군. 자네 같은 인재를 두고 가야 하는 것이 아쉽구나.”
“기회가 된다면 수도에 가서 꼭 태자 전하를 뵙겠습니다.”
“그리하라. 그대가 온다면 언제든 나한테 올 수 있도록 명을 내려 둘 것이다.”
황태자가 웃으면서 마치 자기가 황제라도 된 것처럼 말하고는 멋있게 뒤돌아서서 비룡에 올라탔다.
그리고 두 사령관과 함께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전히 혓바닥 하나는 잘 놀려.”
대범한 척 연기한 황태자지만 사실 분노 조절도 못하는 또라이라는 걸 아는지라 연기하는 황태자를 보면서 아이언은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아! 기분 좋네.”
아이언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황태자에게 한 방 먹여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속 시원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본 아이언이 미소를 한가득 담은 채 다시 임무로 복귀했다.
이대로 무사히 황태자까지 돌려보냈으니 한동안 북동부는 검은 숲에만 전념하면 될 터.
오히려 혼란에 빠지는 건 수도가 될 터였다.
이 시기에 북동부가 위기에 빠졌던 전생과 다르게 이번 생에선 반대로 수도가 위기에 빠질 것이다.
황태자가 북동부에 가서 사죄를 통해 민심을 어느 정도 제어하기는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지원 물자에 대한 협상은 제대로 못 꺼냈다.
이미 사전에 사령부에서 손써 놓은 게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근히 추가로 발견되는 차원 균열 위험에 대해 강조한 상황에서 지원 물자 축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귀족들의 불만은 커질 것이고, 세금 때문에 백성들 역시 불만이 치솟을 것이다.
결국 황태자가 북동부에서 한 짓이라고는 일시적으로 자기 평가만 좋게 만든 것뿐 실속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것이 귀족들의 반발이든 제국민들의 반발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불만은 표출될 것이니, 전생과 같은 황실의 권력은 쥘 수 없을 것이 확실했다.
“뭐…… 북동부가 수상하다는 건 확실히 알아 갔을 테니 성과 하나 정도는 있는 건가?”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었다.
허울뿐인 사죄와 시찰만 하고 온 황태자가 과연 수도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