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58)
18. 겨울산의 영웅 (5)
겨울산에 차원 게이트가 불완전하게나마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일반 위험지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부담감이 생겨난다.
일반적으론 차원 게이트가 열린 시점에서 그곳은 반쯤 버린 지역이 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아이언의 제안과 마탑의 장로가 완성한 개념으로 차원 게이트를 박살 내는 방법을 알아냈다.
답은 무속성.
오염된 마나 역시 순수한 무속성에서 변질된 것이다.
즉, 오염된 마나 역시 일종의 속성을 담고 있는 셈.
자연에 떠도는 마나는 어떠한 것이든 자신만의 속성이나 특성을 담고 있다.
그것이 법칙이었으나, 마나 중에도 어떠한 것도 담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마나가 있었다.
오래전 마법의 신이라 추앙받던 이가 발견한 개념으로, 그는 이걸 무속성 마나로 정의했고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그 후로 마공학이 발전하면서 자연에 떠도는 마나를 아무것도 담지 않은 순수한 무속성으로 변환시키는 법을 연구했다.
그 덕에 천만다행으로 현재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무속성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다.
“무속성 변환 마법진! 준비 끝났습니다.”
한 마법사의 보고에 마일드 프리스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끝났네.”
“후…… 긴장되는군.”
마일드 프리스턴의 보고에 크림슨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과 달리 북동부의 군대만이 아닌 북부군, 레온하르트, 마탑까지 합류한 최정예 병력이 배치된 겨울산이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크림슨 입장에서도 차원 게이트를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기록들은 하나같이 차원 게이트를 대륙을 좀먹는 최악의 재앙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크림슨 입장에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크림슨이 이렇게 쫄보가 됐다니…….”
마일드 프리스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친우의 말에 크림슨은 순간 울컥했으나 이내 다시 긴장한 표정으로 차원 게이트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결심한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발동하게.”
크림슨의 말에 마일드 프리스턴이 빙그레 웃으면서 무속성 변환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차원 게이트를 박살 낼 마법 폭탄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비공선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마나를 무속성으로 변환시키는 건 차원 게이트를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
진짜는 바로 무속성을 가득 담은 마법 폭탄이었다.
-끼리리릭!
“온다!”
주변 마나가 무속성으로 천천히 변해 가자 마나에 민감한 공허충들이 일제히 동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창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고 있던 녀석들이, 겹겹이 쌓아 올린 오염된 마나가 무속성으로 변하자 황급히 나온 것이다.
도대체 저 동굴 안에 어떻게 저리 많은 공허충들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녀석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쾅! 쾅! 쾅!
공허충들의 진격을 저지할 첫 번째 공격은 포격이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포병들이 일제히 포격을 실시했다.
미약하지만 무속성 마나가 코팅된 탄환들이 공허충들이 있는 곳을 때렸다.
그리고 그 위로 수많은 탄환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마력 코팅이 된 마탄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걸 본 북부 사령관이 미간을 찌푸렸다.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만?”
“이게 끝이 아니다.”
제든 윅스의 말에 크림슨 헤일로는 꿋꿋하게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비공선과 비룡이 일제히 하늘로 올라가 준비했던 폭탄들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동굴을 부술 마력 폭탄들이 선제적으로 떨어지면서 다크 엘프들이 지어 놨던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차원 게이트가 부서지는 돌무더기를 빨아들이면서 오롯이 공중에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준비했던 무속성 폭탄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말이 맞았군.”
공허충들이 무속성 폭탄의 위험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인지 일제히 날아올라 그것을 자신들의 몸으로 받아 내었다.
오로지 차원 게이트를 지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는 걸 본 제든 윅스가 나직이 말했다.
“움직일 차례인 것 같습니다.”
아이언이 말한 것처럼 공허충들을 쓸어버리지 못하면 무속성 폭탄이 차원 게이트를 박살 내지 못할 터였다.
“후…… 먼저 가지.”
한숨을 쉰 크림슨이 그렇게 말하면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단번에 높은 상공으로 솟아오른 크림슨이 유려한 움직임으로 검을 그어 내렸다.
그러자 크림슨이 베어 낸 자리에서 폭풍이 만들어지면서 주변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공허충들이 뭉개지고 터져 나가면서 폭풍이 차원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공허충들까지 집어삼켰다.
마스터의 강력한 힘으로 공허충들을 차원 게이트 밖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한 그 순간, 상공에서 미친 듯이 무속성 폭탄들이 떨어졌다.
그러자 오염된 마나로 고정된 게이트가 무속성 마나에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공허충들로 견고하게 고정된 게이트는 쉽사리 부서지지 않았다.
“고생길이 훤하겠군.”
북부 사령관이 미친 듯이 폭풍검을 휘둘러 쓸어버리고 있는 크림슨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청난 숫자의 공허충들은 마스터도 부담되는지, 마스터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가 폭풍검의 형태로 발현되어 있었다.
“귀찮겠군.”
어느새 북부 사령관의 곁에 자리한 라이너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 갔다 오셨소?”
“저기 좀 갔다 왔소.”
라이너가 크림슨이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새 게이트를 잘 고정시켜 놨는지 단단하더군.”
“검으로 부수려 했소?”
제든 윅스의 물음에 라이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수려면 부술 수 있겠지만…… 좀 무리되는 일이라 그냥 왔소.”
제국에서 무력으로 1, 2위를 다투는 라이너조차 무리해야 할 정도라고 하자 제든 윅스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거…… 얌전히 작전을 따라야겠군.”
제든 윅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크림슨, 제든 윅스, 라이너가 얌전히 아이언이 발안한 작전을 따르며 갈려 나갔다.
거의 몇 시간을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돌아와서는 바닥난 힘을 채우는 데 온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마스터들이 갈려 나갈 정도로 힘을 쥐어짜 낸 결과, 마침내 차원 게이트가 무속성 폭탄에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지금부터가 진짜다! 모두 방어 대형으로!”
선봉 군단의 군단장인 카이든 월이 고함치면서 병력을 지휘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병력 역시 전부 방어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차원 균열을 고정시켜 두던 진이 완전히 부서지면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동시에 차원 균열이 점차 확장되더니 사방으로 오염된 마나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오염된 마나를 막아!”
“공허충이 대량으로 몰려올 거다! 막아라!”
대량의 공허충들이 확장된 차원 균열을 통해 미친 듯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중엔 날개 달린 것도, 일반 공허충보다 수십 배는 커다란 녀석도 있었다.
하지만 최악은 공허충 따위가 아니었다.
“지…… 지옥문이 열립니다!”
“그건 무조건 막아!”
“이미 헬 카우들이 공간의 틈새를 통해 나오려 합니다!”
차원 균열이 일어난 틈새를 비집고 지옥문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타 차원에서 간혹 차원 균열로 인해 발생된 공간 왜곡 현상을 이용해 이곳으로 넘어오려는 존재들이 있는데, 가장 많이 시도하는 놈들이 바로 지옥의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이곳 대륙에서는 마족보다 더한 놈들이라고 욕하기도 했다.
“지옥문이 더 벌어집니다!”
점점 더 벌어지는 지옥문을 본 크림슨이 지친 표정으로 모든 병력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지옥문에 집중한다! 사방으로 퍼지는 공허충들에는 신경 쓰지 말고 지옥문에 집중해!”
“하…… 하지만…….”
“빨리!”
크림슨의 명령에 장교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겨울산에 모인 병력으로 도망치는 공허충들까지 쫓는 건 무리였다.
지금은 일단 다수의 공허충을 묶어 두고 지옥문을 비집고 나오려는 헬 카우들을 막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겨울산에 모인 모든 전력이 지옥문을 막는 데 전력을 다할 무렵,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아이언은 상공에서 날아드는 공허충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제 우리가 활약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중대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사령관 두 명에 북동부와 북부의 엘리트들이 전부 모였고 심지어 레온하르트의 혈사자들과 가주까지 있는 곳이 과연 뚫릴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언의 말은 사실이었고, 지금 상공에 보이는 공허충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각 소대들은 흩어져서 임무를 수행한다. 명심하도록. 직접 전투를 벌이는 게 아니라 공허충들이 모이는 장소를 알리는 것이 우리의 주 임무다. 알겠나?”
중대장의 명령에 모든 소초장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놈들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아이언의 말에 중대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다.
“지금부터 작전을 시작한다. 너희들 실력으로는 공허충은 절대 못 죽이니까 만약 걸리면 튀는 데 집중해. 알겠나?”
“알겠습니다!”
“좋아. 만약의 상황이 오면 목에 걸린 호출기로 날 불러라. 주요 작전은 숙지했지?”
“그렇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모든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좋다. 지금부터 작전을 시작하겠다. 모두 살아서 보자.”
아이언이 그 말과 함께 가장 먼저 이병과 일병 몇 명을 데리고 움직였다. 그 뒤를 부소초장과 숀 병장, 찰스 상병이 분대를 이끌고 따랐다.
“소초장님! 호출합니까?”
“아니, 아직 기다려.”
공허충 몇 마리가 모인 걸 발견한 이병의 말에 아이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고작 저 숫자에 포병 전력을 소모하는 건 낭비였다.
몇 분이 지나자 대장 격인 공허충의 소리에 주변에 있던 공허충들이 좀 더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아이언이 하늘을 향해 불꽃을 쏘아 올렸다.
“물러나자.”
“예!”
아이언의 명령에 모든 병사들이 재빨리 물러났다.
그렇게 몇 분 후 상공에서 확인하던 비룡 기사가 좌표를 불러 주었고, 곧이어 포격이 시작되었다.
쾅! 쾅! 쾅!
-끼에엑!
아무리 단단한 공허충이라지만 마력 코팅된 포격을 몇 방이나 얻어터지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만약을 대비해 비공선과 비룡 역시 폭격을 위한 준비를 한 상황.
결국 아이언 분대가 발견한 공허충들은 포격과 폭격을 이중으로 처맞으며 깡그리 몰살당했다.
“좋군.”
근처 언덕에서 공허충이 몰살한 것을 확인한 아이언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후, 여기저기서 불꽃이 쏘아 올려지고 포격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수십 수백의 포격음이 들려오고 겨울산 곳곳에서 공허충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애처로울 정도로 울부짖는 공허충들이지만 전혀 불쌍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죽고 난 뒤 그 주변에 오염된 마나가 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체 역시 바퀴벌레처럼 생긴 것이, 무척 혐오스러웠다.
“징그럽습니다.”
병사 하나가 공허충의 사체를 확인하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앞으로 수없이 보게 될 놈들이야. 재수 없으면 근접전을 하면서 녀석의 체액까지 뒤집어쓸지도 모른다.”
“으에에에!”
아이언의 말에 병사 하나가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른 병사들 역시 비위 상한다는 듯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그런 병사들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던 아이언에게 간이 통신구로 연락이 들어왔다.
-아이언 소초장!
“중대장님?”
갑자기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아이언이 멍하니 중얼거리다가 재빨리 경례를 올렸다.
-큰일 났다!
중대장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사전에 이 정도 일이 일어날 것임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헤…… 헬 카우들이 몰려오고 있다!
중대장의 말에 아이언의 입이 다물렸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엿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지옥문이…… 열린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