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56)
18. 겨울산의 영웅 (3)
깨어나자마자 크림슨을 통해 개똥 같은 소리를 들은 아이언의 표정은 계속해서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가주 때문에 계속해서 멍하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신을 위해서 희생했던 고스트들을 만나 보기도 해야 했고, 자신의 휘하 병력도 무사한지도 확인해야 했다.
몸을 회복하는 데 주력한 아이언은 어느 정도 상처가 아물 때까지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슬슬 움직여도 되겠다 싶을 때쯤 간단한 운동으로 몸을 풀면서 최대한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몸을 만들었다.
“에휴…….”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아이언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다크 엘프의 공격으로 내상을 입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마력을 운용해서 그런지 몰라도 마력을 움직이는 건 꿈도 못 꿀 정도로 몸 상태가 개판이 되었다.
그렇다고 외상은 없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중상은 없지만 여기저기 구르고 화살에 맞고 하다 보니 몸이 성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완치까지는 멀었네.”
극심한 내상을 입은 상황에서 피닉스까지 강제 동화를 진행했으니 살아남은 게 용했다.
“퀘스트라도 깨졌으면 좀 더 나았으려나?”
최선을 다해서 차원 균열이 완벽하게 진행되지는 못하게 막았음에도 야속하게도 퀘스트는 완료되지 않았다.
아이언은 만약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면 어떤 보상이 나왔을지는 몰라도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예상치 못한 자들의 병문안을 받았다.
“소초장님!”
찰스 상병이 상병들 몇 명과 함께 자신을 보기 위해서 온 것이다.
병사 월급을 뻔히 아는데 없는 돈 털어서 음료와 꽃을 사 온 병사들을 본 아이언은 그들에게 의자를 건네고 침대 한쪽을 비워 주어 앉으라고 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살 만해.”
“아닌 것 같습니다.”
찰스 상병의 물음에 아이언이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제임스 상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괜찮다고 하는데,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보다 다들 괜찮아?”
“브라이언 상병은 부상이 좀 심합니다. 이병과 일병 몇도 중상이라 일단 사령부로 보냈습니다.”
“브라이언? 그 녀석은 괜찮았을 텐데?”
“소초장님이 혼자 가시고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몸 좋은 브라이언이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육탄전으로 막다가…….”
“죽지 않은 게 다행이네.”
찰스 상병의 보고에 아이언이 웃으면서 말했다.
“소초는?”
“부소초장이 잘하고 있습니다.”
“병장은?”
아이언이 가장 불안한 인물인 병장 숀 윅스를 물었다.
“열심히 근무 중입니다. 아무래도 소초장님 소문이 돌다 보니 괜히 돌아왔을 때 흠잡히지 않으려고 요즘 열심히 작업도 합니다.”
“소문?”
아이언이 찰스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소초장님이 고스트라는 소문과 이번 일에 엄청난 전공을 세웠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아마 훈장을 받으실 거라고 합니다.”
“그런 소문이 돈다고?”
“그렇습니다. 이미 사령부에서 저희 소초에 와서 소초장님에 대해 묻고 가기도 했습니다.”
“흠…… 그래?”
찰스의 말에 아이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다 싶더니……. 전 우리 소초장님이 엄청나신 분이란 걸 한눈에 눈치챘습니다.”
“고…… 고맙다.”
머쓱한 표정을 지은 아이언은 찰스와 제임스 그리고 다른 상병들한테 소초에 대한 것을 물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저녁이 되기 전에 병사들을 돌려보냈다.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소초는 무사히 잘 돌아가고 있었다.
죽은 병사들도 없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지원군이 빨리 온 듯싶었다.
비록 중상이지만 고스트들 중에도 죽은 사람은 없었고, 병사들 중에서도 사망자는 없는 것을 보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
“몸은 좀 괜찮나?”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상을 입었던 칼 구스타프가 붕대를 칭칭 감고 자신의 병실에 들어온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자네보다는? 듣기론 자네는 한동안 마력 운용도 못 할 거라 하더군.”
“……싸게 먹힌 거라 봅니다.”
아이언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깜냥도 안 되면서 무려 20분간 피닉스가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버텼다.
그것도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였으니 죽지 않은 게 용한 것이다.
“다른 대원들은 괜찮습니까?”
“덕분에. 자네 덕분에 다크 엘프들이 전부 그쪽으로 몰려가서 이후에 온 레인저들에게 수월하게 구출될 수 있었으니까. 뭐…… 한동안 임무는커녕 움직이는 것도 버겁지만 말이야.”
칼 구스타프가 붕대가 감긴 팔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그런 칼을 보면서 아이언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결국 임무는 실패했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칼 구스타프가 그런 아이언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훌륭히 임무를 수행한 것이나 다름없네. 애초에 고스트 중 막내인 자네가 이 정도까지 해 줄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 안 했어.”
“그렇습니까?”
“그래, 고스트 뒤꽁무니나 잘 따라오면 다행이지. 한데 우리보다 더한 공을 세웠으니 충분하고 남지.”
칼 구스타프가 아이언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면서 말했다.
“한동안 휴식이 주어질 텐데 앞으로 뭐 할 건가?”
“아무래도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언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이번 다크 엘프들과의 싸움에서 아이언은 무력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신수들이 있어서 밥값을 한 것뿐이지 실력적으로는 고스트들에게 방해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오랜만에 위기감을 느꼈다.
이 상태로 성장하면 스무 살 이전에 5단계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마음 놓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질적인 목표 역시 5단계로 잡았기에 급할 것이 없어 여유로워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다크 엘프들과의 전투로 그런 마음가짐이 싹 바뀌었다.
“실력을 키운다라……. 지금도 충분하지만 자네가 그렇게 느꼈다면야…….”
칼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응원하려 할 때였다.
문 뒤에서 기척이 느껴지자 칼이 고개를 돌렸다.
아이언 역시 병실 문 쪽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금발의 중년 사내가 서 있었다.
그 중년 사내를 보자마자 아이언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본 칼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중요한 손님이 오신 모양이군. 이만 가 보겠네. 몸조리 잘하게.”
“……예. 대장도 몸조심하십쇼.”
칼은 대장이라 부르는 아이언을 보면서 귀엽다는 듯 한번 웃어 주고는 병실을 나섰다.
그러자 금발의 중년 사내가 싸늘한 표정으로 아이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군.”
사자 가문의 가주, 라이너 레온하르트 로어.
그가 싸늘한 표정으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제이든.”
“여기선 아이언입니다.”
아이언의 대답에 라이너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가문에서 나간 녀석이고 엄청난 공훈을 세웠기 때문인지 그저 눈썹만 꿈틀거리며 불편한 심기만 내비칠 뿐이었다.
“내가 여기로 직접 온 건 네놈에게 한 가지 묻기 위함이다.”
“하문하십쇼.”
“가문을 나간 이유.”
라이너의 물음에 아이언이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작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사자 가문의 검술은 저와 맞지 않습니다.”
“그래, 막내 녀석도 그리 말했지. 너는 사자의 길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라이너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말 그게 진실된 이유냐고 묻는 듯 강렬한 눈빛이 아이언의 눈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모든 것을 파헤칠 것 같은 눈으로 아이언을 한참 바라보던 라이너가 조용히 말했다.
“정말 검술 때문인가?”
라이너가 기세를 내뿜으면서 말하자 아이언은 이를 악물고 버텨 내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사자검술 역시 그가 가문을 떠나오는 데 한몫했으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검술이라……. 그래서 네가 선택한 검술이 고작 그것인가?”
“제 길입니다.”
라이너의 말에 아이언이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그를 응시하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라이너는 그런 아이언을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곤 인정한다는 듯 기세를 줄여 나갔다.
“너의 길이라……. 그래, 강해지는 데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지.”
라이너가 아이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한 후 작게 입을 열었다.
아이언의 말을 곰곰이 곱씹던 라이너가 나직이 말했다.
“굳이 군부여야 될 이유가 있나? 기본 검술이라면 가문 내에서도 익힐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강해지는 데는 가문이 훨씬 낫지 않았나?”
라이너의 의심에 아이언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말처럼 지원받으며 성장하기엔 레온하르트란 가문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는 점이 문제다.
그렇게 위험하다는 북동부조차 적어도 성장 기간에는 최대한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그런데 레온하르트는 그런 게 없었다.
“레온하르트 가문에서 죽어 나가는 아이들의 숫자가 얼만지 알고 계십니까?”
“……그 정도도 버티지 못할 거라면 사자 가문에서 살아 나갈 수 없다.”
아이언의 물음에 라이너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자신 역시도 그 모진 수련을 견디면서 가주 자리에 올랐다.
나약한 녀석들은 모질더라도 버려야만 아이들이 독기를 품고 강함에 집착한다.
그것이 레온하르트의 오래된 가풍이었고, 그렇기에 북부 최강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예,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제 재능으로는 직계의 수련법을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그나마 무능했기에 수련하는 시기를 늦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그마저도 제게 맞는 검술을 찾은 이후로는 불투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 가문을 나간 건가?”
라이너의 물음에 아이언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이언의 말처럼 남아 있었다면 지금쯤 불구가 되었을 것이다.
완전히 못 써먹을 놈이 아니라면 사자 가문의 직계혈족의 수련법에 따라 맹수의 숲에 집어넣고 살아남으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온갖 실전을 통해서 직감을 단련시키려 했을 텐데, 그러한 사자 가문의 수련은 아이언을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너는 아이언이 욕심났다.
“돌아오거라.”
“전 사자검식과 맞지 않습니다.”
“상관없다. 사자 가문은 강함을 추구하는 가문이지 고작 검술 하나에 얽매이는 가문이 아니다.”
라이너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제가 돌아가서 뭘 할 수 있습니까? 가주 자리라도 주시렵니까? 아니면 제가 군부를 버리고 갈 만큼 엄청난 것이라도 줄 수 있습니까?”
“아니, 하지만 강제로 데려갈 수는 있지.”
라이너의 협박성 말에 아이언이 코웃음 쳤다.
“군부가 만만하신가 봅니다.”
“아니, 하지만 마스터와 신성을 저울질했을 때 뭐가 더 가치 있는지는 명확하겠지.”
“무슨…….”
“널 데려오는 조건으로 최소 2년, 내가 여기에 직접 머물 생각이다.”
라이너의 말에 아이언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내 실수를 바로잡아야 하니까. 재능 없는 줄 알고 버리려던 아이가 실은 막내 녀석만큼 쓸 만한 놈이라는 걸 알았으니 바로잡아야겠지.”
라이너의 말에 아이언이 한숨을 쉬었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럼 강제 소환이다.”
“저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아이언의 분노에 찬 외침에 라이너가 빤히 아이언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사자 가문이 아닌 군부를 선택한 이유를 증명하고 싶나?”
라이너의 물음에 아이언은 입을 다물었다.
“그럼 증명해라. 우리의 육성이 잘못되었음을 네놈 스스로 증명해. 그럼 너에게 자유를 선사하마.”
“그냥은 싫습니다.”
라이너의 말에 아이언이 이를 악물면서 대답했다.
“원하는 게 있나?”
“예.”
라이너의 물음에 아이언이 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런 아이언을 라이너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감히 자신에게 원하는 걸 말하는 자는 실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이지?”
“그건 증명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종의 내기인가? 재밌군.”
라이너가 오만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가 작게 올라간 것에 불과하지만 사자의 그것처럼 표정에는 오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좋다. 앞으로 2년. 그 안에 겨울산에서 네놈의 길을 증명하라.”
“2년?”
“그래, 내가 이곳에 머물 수 있는 기한이지.”
“설마, 이곳에서 저와 함께 생활하실 거란 말씀입니까?”
아이언이 경악한 표정으로 묻자 그가 피식 웃었다.
“애초에 널 강제로 데려갈 걸 염두에 두고 2년의 시간을 비워 뒀으니 써먹어야겠지.”
“…….”
질색하며 싫어하는 자신의 아들놈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막내 녀석은 얼마 전에 4단계에 돌입했다.”
“아…….”
“막내한테 따라잡힌다면 네놈의 길이란 것도 보잘것없다는 것이겠지. 네놈이 머리 말고 무력으로도 달리지 않다는 걸 증명해 보거라.”
라이너가 그렇게 말하면서 여유로운 걸음으로 병실 문을 열었다.
“네놈의 길이 어떤 것인지 기대하며 지켜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