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55화 (52/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55)

18. 겨울산의 영웅 (2)

크림슨이 직접 아이언을 업고서 공동을 빠져나왔다.

기절할 것같이 비틀거리는 아이언을 업고 나오는 크림슨을 향해 군인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어느새 상공에는 비룡들과 비공선이 몰려와 있었고, 엄청난 숫자의 군사들이 몬스터들을 죽여 나가고 있었다.

“사령관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네. 그보다 이 친구 좀 곧장 의무대로 보내게.”

크림슨의 등에는 어느새 기절한 아이언이 업혀 있었다.

그런 아이언을 보면서 장교가 황급히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알겠습니다!”

사령관이 직접 구해 온 아이언을 장교 하나가 대신 들쳐 업고 황급히 사라지자 다른 장교들이 크림슨을 바라보았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경상이지만 여기저기에 상처 입은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마스터인 그가 상처 입은 적은 거의 없다 보니 대부분 그저 강직하고 변함없는 모습만을 봤기 때문이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보고는 들었겠지만 차원 균열이 열렸다. 그 원흉은 다크 엘프들이었고…… 그중엔 나를 상처 입힐 정도로 강력한 존재도 있었지.”

크림슨의 말에 북동부 나이트를 이끄는 사단장 카심 나이츠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스터급입니까?”

“그래. 게다가 다른 다크 엘프들의 수준도 상당하더군. 나와 같이 온 북부 사령관도 고생할 정도니까.”

크림슨이 그렇게 말하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북부 사령관이 인상을 한껏 찌푸리면서 다가왔다.

“그렇게 고생 안 했습니다.”

“그 꼴로?”

크림슨이 헛웃음을 지으면서 말하자 그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중년의 나이처럼 보이지만 크림슨과 고작 열 살 좀 넘게 차이 날 뿐인 제든 윅스가 한숨을 쉬었다.

“사령관이 되면 고생 좀 덜할 줄 알았는데…….”

“북부에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크림슨이 헛꿈 꾸지 말라는 듯 제든 윅스를 타박했다.

한때 섬광의 제든 윅스라 불리면서 날아다녔던 그가 늙은이처럼 지친 표정으로 눈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차원 균열이라…….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감도 안 옵니다.”

“있는 그대로. 북부 망하는 꼴 보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지원하라고 압박해야지.”

그렇게 말하던 크림슨의 머릿속에 오래전에 보고받았던 아이언의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다.

중앙을 협박해서 최대한 지원을 받아먹고 북동부가 독립할 기반을 닦는 것.

어쩌면 이번 사건으로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동부의 독립이라…….’

점점 아이언이 말한 것처럼 북동부에 몬스터 웨이브 조짐이 일어난다.

아니, 이젠 확정적이었다.

차원 균열이 일어나고, 북동부 단독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적들이 나타났다.

만약 정말로 몬스터 웨이브가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난다면 북동부가 틀어막을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다크 엘프들까지 나타난다면?

크림슨은 북동부의 군대가 전멸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사자 가문에 요청을 넣어야겠군.”

“도와주겠습니까?”

“적어도……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면 북동부로 와 달라는 요청이라도 해야지.”

제든 윅스의 말에 크림슨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몬스터 웨이브가 온다 한들 그 또라이들은 자기 세력으로 틀어막을 놈들이었다.

자존심 세고 자기들밖에 모르는 오만한 족속들.

그것이 레온하르트라는 가문이었다.

“오늘 고생했다.”

“고생은 영감님이 더 하셨죠.”

“너도 영감 아니냐?”

“전 아직 중년입니다.”

크림슨의 말에 제든 윅스가 아직 자신은 젊다 말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선봉 군단의 정예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고, 사령부에서도 레인저와 나이트가 하나둘 당도하기 시작했다.

두 마스터들은 피곤함을 느끼면서 그들에게 정리를 맡기고 절대 동굴 안을 자극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임시로 마련된 텐트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며칠 후.

기절하듯 뻗어 있던 아이언이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일어났다.

“일어났나?”

“사령관님을…….”

“앉아 있게.”

크림슨이 옆에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한 아이언이 황급히 일어나려 했지만 워낙 부상이 위중해 신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자 크림슨이 아이언의 어깨를 잡고 눕게 도와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살아 있습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크림슨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칼 구스타프는 중상, 빌리 브란트는 팔 하나가 절단됐고, 린텔 베르너는 다리 한쪽이 반쯤 잘렸다. 퇴니에스와 짐멜은 내상을 입었고 베버, 슈판은 사경을 헤매고 있지. 하지만 다 살아 있긴 하네.”

“다행……입니다.”

“자네 덕분이다.”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자네가 피닉스를 깨운 덕분에 싸우던 다크 엘프들이 일제히 자네가 있는 곳으로 몰려가서 다들 기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

“아…….”

“게다가 얌전히 가 준 덕분에 빌리와 린텔의 팔다리도 무사하고 말이야. 포션으로 대충 붙여 놨으니 나중에 수술 받으면 문제는 없을 것이네. 뭐…… 한번 잘렸으니 마력 회로는 다시 이어야겠지만 그 정도 수고야 감수할 만하지.”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이 천만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고스트들은 북동부의 핵심 전력 중 하나였다.

다수의 마력 각성자들을 키워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위 레벨의 기사급 전력을 키워 내는 것이다.

고스트들은 전원 5단계 이상의 주요 전력이었다.

후에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다면 상위 몬스터들을 상대할 전력이라는 뜻이었다.

“며칠이 지난 겁니까?”

“사흘. 자네는 사흘을 누워 있었다.”

“아…….”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대로 공허충들이 영역 밖으로 나오지는 않더군.”

아이언의 말처럼 공허충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크림슨은 이제나저제나 아이언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자네가 그랬지, 차원 균열을 봉인할 방법을 안다고.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이젠 믿을 수밖에 없군.”

노회한 얼굴의 크림슨이 날카롭게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아이언이 어째서 이러한 정보들을 알고 있느냐는 합리적인 의심.

하지만 그는 경험 많은 노장답게 묻지 않았다.

물어봤자 대답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 중요한 것은 차원 균열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차원 균열을 완전히 닫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봉인이란 건가?”

“그렇습니다. 그래도 구멍이 작아서 자연스레 닫히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을 겁니다. 다만…… 그러려면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아이언의 말에 크림슨이 더 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허충들을 일단 한번 밀어내는 겁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다크 엘프들이 만들어 낸 거대 동굴은 현재 공허충들에 의해 오염된 마나로 가득했다.

더 이상 오염된 마나로 인한 차원 오염 지역이 늘어나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 막아야 할 판이었다.

“완전히 쓸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차원 게이트를 부술 때까지 계속해서 구멍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구멍 너머까지 쓸어버려야 합니다.”

아이언의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크림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그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몇 시간은 모든 힘을 쥐어짜 내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북부 사령관도 필요하겠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다음은?”

“게이트를 부수고 대규모 마법으로 차원 균열을 자극합니다.”

“뭐?”

아이언의 말에 크림슨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차원 게이트를 부수고 차원 균열을 자극하면…….”

“폭주합니다.”

“자네 미쳤나?”

아이언의 말에 크림슨이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그러자 아이언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처음 마탑의 설명을 들었을 때 미친놈들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연구는 성공적이었다.

“과거 기록들을 살펴보면 차원 균열 중 폭주하는 사료들이 있습니다.”

“그럼 차원 균열이 폭주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겠군.”

“그렇습니다. 순간적으로 구멍이 엄청난 크기로 커지면서 온갖 차원 괴물들이 나타날 겁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차원 몬스터들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수십 년간 막는 것보다는 싸게 먹힌다.

잘 대비한 상황에서 몇 달간만 잘 막으면 차원 균열의 크기는 줄어든다.

폭주로 인해서 무리하게 커진 구멍은 계속해서 작아질 것이고, 이내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작아져서 한동안 오염된 마나를 뿜어내다가 완전히 봉합된다.

이 짓을 위해서 수많은 마스터들과 고위 기사들이 희생되었고, 그 희생을 통해서 몇 개의 차원 균열을 처리했었다.

“그 사료들을 보시면 몇 년 동안 치열하게 싸운 후 그다음이 없다는 걸 깨달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는 차원 균열에서 오염된 마나로 대지가 망가진 것 말고는 위험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그게 근거의 전부인가?”

“아닙니다.”

크림슨이 더 말해 보라고 턱짓을 하자 아이언이 한숨을 쉬었다.

‘한 번만 팔아먹을게.’

“신수들이 가르쳐 줬습니다.”

아이언이 뱁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팔아먹자 크림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봤을 때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찾은 것이 사료들이었고?”

“그렇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크림슨이 한숨을 쉬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에게 아이언이 조용히 말했다.

“정 걱정되신다면 마탑에 자문을 구해 보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자문이라……. 후~ 일단 알겠네.”

크림슨이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일어났다.

아이언의 말만 믿고 행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렇다고 나오는 공허충들을 가만히 놔두기엔 더 무리가 있었다.

북동부 주요 병력을 여기다 배치한 것도 모자라 북부군에서도 정예군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차원 게이트가 된 이상 자신들이 뭘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족히 100년간 이 짓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도박을 걸어 본다는 것에 자꾸만 마음이 간 크림슨은 곧장 마탑에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는지 가려던 것을 멈추고 아이언을 향해 말했다.

“자네가 잠들어 있는 동안 레온하르트에 지원 요청을 보냈네.”

“…….”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침묵했다.

“차원 균열의 심각성을 인지하여 가주가 직접 혈사자들을 데리고 지원하러 오겠다고 했네.”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의 표정이 찡그러졌다.

레온하르트의 인간들이 그딴 걸 신경 썼으면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철저히 개인주의와 강함만을 추구하는 미친놈들이 레온하르트다.

그런데 가주가 직접 온다는 건…….

“자네도 눈치챘겠지만…… 아마 자네가 레온하르트임을 눈치챘을 수도 있네. 원한다면 숨겨 줄 수도 있네만…….”

“괜찮습니다.”

크림슨의 제안에 아이언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크림슨이 미안한 표정을 한번 짓더니 쉬라는 말과 함께 병실을 나갔다.

“× 됐네.”

크림슨이 나가자마자 망했다는 표정을 지은 아이언은 레온하르트 가주를 생각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미친놈을 피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북동부까지 왔는데 제일 미친 놈을 만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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