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54)
18. 겨울산의 영웅 (1)
거대한 파장과 함께 피닉스가 큼지막한 눈을 떠 부리에 닿은 아이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세상이 멈추면서 피닉스와 아이언만이 붉은 세상 속에 남았다.
다크 엘프에게 당했던 고통, 분노, 서러움 등 거대한 피닉스의 감정들이 아이언에게 몰려들었고, 반대로 피닉스는 아이언이 전생에 느꼈던 고통과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둘의 마음속에서 분노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감정의 동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환수 피닉스와 일시적으로 동화되었습니다.
-피닉스와 신수 계약자와의 일시적 가계약으로 차원 균열로 들어가는 모든 힘이 회수됩니다.
-지금부터 20분간 피닉스가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삐오오오오!
거대한 피닉스가 일어나면서 붉은 기운이 사방을 향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분노에 찬 피닉스의 울음소리에 다가서던 다크 엘프들이 일제히 밀려나면서 벽에 처박혔다.
환상종이라 불리는 환수답게 그저 힘을 내뿜는 것만으로도 적대 세력인 다크 엘프들이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도 피닉스는 분노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불길을 토해 내면서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했다.
피닉스의 분노, 원망, 좌절감, 고통 등을 죄다 느껴 본 아이언인지라 지금 토해 내는 불길이 그동안에 겪은 것들을 토해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생했다.”
아이언의 말에 피닉스가 거대한 눈에서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자신을 옥죄던 4개의 탑을 바라보았다.
피닉스의 힘을 빨아들여서 억지로 구멍을 벌리는 역할을 하던 4개의 탑.
그것을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피닉스가 거대한 부리로 하나하나 부수기 시작했다.
잔해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불길을 토해 내 가루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다.
그러자 4개의 탑이 부서지면서 검은 힘이 사라지며 균열 역시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겨울산의 차원 균열이 멈췄습니다. 완전히 봉인시켜 겨울산을 위험으로부터 구해 내세요.
“돼…… 됐다!”
아이언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차원 균열이 멈추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위협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구구구구구!
-삐오오오!
갑작스레 공동이 무너질 듯 떨려 오자 피닉스가 자신을 묶고 있던 검은 쇠사슬을 고열로 녹여 버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언은 피닉스를 위협하던 것이 단순히 다크 엘프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 버텨 볼게.”
아이언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20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벌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입술을 깨물어서 피가 나왔지만 억지로 버티면서 피닉스가 복수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 아이언에게 피닉스가 고맙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동을 부수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고열로 단번에 천장을 뚫어 버리는 피닉스의 힘을 보면서 아이언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큭!”
마력 고갈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뻥 뚫린 천장을 통해 상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얼마 후, 피닉스를 묶고 있던 것과 같은 쇠사슬을 감고 있는 흑룡들이 산 일부를 무너뜨리고 날아올라 피닉스와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진짜 흑룡은 아니야.”
전생에 흑룡의 사체를 멀리서나마 본 적이 있는 아이언은 고작 저 정도 크기의 용들이 흑룡일 리 없다고 판단했다.
“하프 드래곤들인가?”
아이언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반쪽짜리 드래곤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반쪽이라도 그 힘은 웬만한 기사와 마법사 수십을 넘는 강력한 것이었다.
그런 하프 드래곤 네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음에도 환상종이라 불리는 피닉스답게 용들을 압도하며 분노의 불길을 토해 냈다.
“대단하네.”
괜히 환상종이라는 불리는 게 아닌 듯, 피닉스는 마스터 그 이상의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마스터들의 힘을 겨울산에서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레온하르트 가주가 저 정도일까?”
그랜드 마스터에 다가선 괴물.
신검가주와 함께 제국을 양분하는 괴물. 자신이 생각하는 레온하르트 가주라면 어쩌면 피닉스의 힘에 비견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잡생각을 하며 지켜보던 아이언의 감각에 수상한 기척이 다수 느껴졌다.
그가 뚫고 들어왔던 다크 엘프 무리가 공동에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아이언은 죽음을 각오했다.
-부!
-짹!
어느새 그의 주위로 모여든 신수들이 아이언을 보호하듯 공중에서 빙글거리며 날아올랐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다크 엘프들은 그 자리에 서서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멍하니 차원 균열을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짓……?”
고스트들에게 당한 듯 팔이나 다리가 잘린 다크 엘프들까지 하나둘 합류하더니 먼저 도착한 다크 엘프들과 똑같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 순간 아이언은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감각을 파고드는 이질감과 함께 묘한 기운이 터져 나오면서 아이언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쿨럭! 오…… 오염된 기운?”
피닉스가 깨어나면서 닫혀 가던 차원 균열이 다시금 열리기 시작하자 아이언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어째서?”
갑자기 급격하게 균열이 커지기 시작하자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이언은 검은 기운이 어디선가 흘러들어 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공동 안으로 들어온 다크 엘프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저런 미친!”
검은 기운을 차원 균열로 흘려 보낸 다크 엘프가 입고 있던 옷만 남기고 바스러지는 것을 목격한 아이언이 욕설을 내뱉었다.
스스로 희생해서 차원 균열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전원이 저러고 있으니 차원 균열이 확장되는 것은 당연했다.
스스로가 원해서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바닥까지 쥐어짜 내는 것이었고, 차원 균열과 맞는 검은 기운이 시너지가 생겨나며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아이언은 전생에 어째서 다크 엘프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북동부가 멍청했다 한들 차원 균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면 한 번쯤은 조사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스트들까지 동원된다면 적어도 한두 번은 막았을 것이다.
만약 그때마다 다크 엘프들이 이랬다면?
스스로를 희생해서 차원 균열을 확장시키고 죽어 나갔다면 몬스터 웨이브 당시 보이지 않았던 것도 납득이 갔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인간들에게 어떤 증오가 있기에.
이 대륙에 사는 생명체들에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는 걸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던 아이언이 부들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가진 힘을 다해 한 놈이라도 줄여야 차원 균열이 더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렇게 아이언이 부들거리는 몸으로 움직이려 할 때였다.
복면을 쓴 남자들이 공동으로 진입했다.
“레인……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복장을 보면서 아이언이 중얼거렸다.
그러다 황급히 소리쳤다.
“다크 엘프들을 빨리 죽이세요!”
아이언의 외침에 레인저들이 그를 바라보면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언은 레인저들에게 다시 소리쳤다.
“그놈들이 차원 균열을 벌리고 있습니다! 빨리 죽여요!”
아이언이 악을 쓰면서 외치자 그제야 레인저들이 재빨리 다크 엘프들을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자 몇몇 다크 엘프들이 차원 균열에 생명력을 보내던 것을 멈추고 레인저들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딱 적절할 때에 레인저들이 오면서 차원 균열이 벌어지는 속도가 늦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다크 엘프들을 전부 죽일 수만 있다면 다시금 차원 균열이 벌어지지 않고 점차 닫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아이언의 생각을 부수듯 근처에서 죽은 줄 알았던 다크 엘프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큭큭큭~ 푸하하하하! 이미 늦었다.”
“뭐?”
“차원 균열을 닫기에는 늦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말한 다크 엘프는 자신 역시 남은 생명력을 차원 균열에 흘려 보내면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자 죽어서 쓰러진 줄 알았던 다크 엘프들의 시신이 하나둘 가루가 되어 차원 균열 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 자신이 주었던 것을 회수하듯 공동 안에 있는 다크 엘프들의 힘을 모조리 흡수한 차원 균열이 확장을 멈추더니, 열린 구멍에 마력의 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오염된 검은 마법진으로 인해서 차원 균열이 고정되더니 작은 구멍이지만 확실하게 차원 게이트화되어 갔다.
“늦……었다고?”
그 개고생을 했는데 차원 게이트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언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이언이 허망한 표정으로 상공에 만들어진 차원 게이트를 바라볼 때였다.
붉은 빛이 상공에서 아이언을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반사적으로 받아 든 아이언이 손안에 든 작은 붉은 새를 바라보았다.
-삐…….
아이언은 뱁새처럼 작은 이 새가 아까의 그 피닉스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가진 힘을 죄다 쏟아부었는지 붉은 새의 몸에선 미약한 힘만이 느껴졌다.
가계약이지만 피닉스와 동화된 상황이기에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짹! 짹짹짹!
어느새 머리에 안착한 뱁새가 부엉이 때처럼 아공간에 들어가 피닉스를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엉이 역시 힘이 전부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나와 고생했는지 많이 지쳐 보였다.
“다들 고생했어. 들어가 쉬어.”
아이언의 말에 뱁새와 부엉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죽어 가는 피닉스를 데리고 아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혼자 공동에 남게 된 아이언은 상실감을 느끼면서 멍하니 차원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들었다.
“아이언!”
멀리서 자신을 부르면서 달려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남자의 정체는 북동부 사령관인 크림슨이었다.
“오염된 마나가 흘러나온다. 여기서 정신 잃으면 안 돼! 정신 차려라.”
점차 감겨 오는 눈을 보며 크림슨이 뺨을 때려 아이언을 억지로 깨웠다.
그러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이언이 차원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공간을 비집고 괴상하게 생긴 거대 곤충 한 마리가 나오고 있었다.
“공허충…….”
아이언의 중얼거림에 크림슨이 가볍게 검을 휘둘러 단번에 공허충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고작 한 마리 죽인 걸로는 어림도 없었다.
놈들은 바퀴벌레처럼 수없이 증식하고 잘 죽지도 않는 질긴 놈이었다.
몸의 반이 뭉개져도 살아남는 놈들이 공허충이란 놈들이었다.
“이미 닫기엔 늦었습니다.”
아이언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말하자 크림슨 역시 표정을 찡그렸다.
“봉인할 방법…… 알고 있습니다. 일단 물러나시죠.”
“공허충이 나오고 있다.”
“이곳을 영역화하기 전까진 퍼지지 않을 겁니다.”
아이언의 말에 크림슨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으나 아이언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 물러나지.”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크림슨의 부축을 받으면서 레인저들과 함께 공동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공동 안에는 다크 엘프였던 검은 가루들만 휘날리고 있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