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53)
17. 피닉스 구출 작전 (3)
비룡에서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다시금 검은 빛이 고스트들을 노리고 날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칼 구스타프에게 내상을 입힐 정도로 강력한 힘은 아니었다.
하강하면서 손쉽게 자신을 노리는 공격을 쳐 낸 칼이 재빨리 검술을 사용해서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은 빛을 모조리 떨궈 냈다.
“화살?”
칼 구스타프의 검술이 만들어 낸 충격파에 떨어진 검은 빛의 정체를 보고 고스트가 중얼거렸다.
“다크 엘프도 엘프라는 건가?”
고스트가 붙잡은 화살을 본 아이언도 지상에 착지하며 말했다.
활의 명인이라 불리는 엘프들처럼 다크 엘프들도 활을 잘 다룰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고대의 기록일 뿐이었다.
근대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다크 엘프들은 기형적인 무기들에 특화된 종족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아이언.”
“예!”
“바짝 붙어라.”
칼의 명령에 아이언이 곧바로 뒤로 붙었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수없이 많은 화살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이언이 중요 인물이라는 걸 다크 엘프들도 파악한 듯싶었다.
“방향은?”
“저쪽입니다.”
칼의 물음에 아이언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흐릿한 새의 형상을 보면서 방향을 안내했다.
그러자 칼이 다급히 린텔에게 명령을 내렸다.
“넌 아이언을 지키는 데 집중하도록.”
“알겠습니다.”
“가자.”
린텔이 아이언의 곁에 바짝 붙은 것을 확인한 칼이 마력을 끌어 올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칼 구스타프를 밀어냈던 강력한 화살이 다시금 날아들었지만 주변에 폭풍이 불어닥치면서 화살을 막아 냈다.
“감사합니다.”
칼의 인사에 멀리서 고개를 끄덕인 크림슨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고스트들과 다르게 선명한 푸른색으로 뒤덮인 검은, 마력만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검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휘둘릴 때마다 폭풍이 불면서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다크 엘프들의 화살들을 완벽하게 차단해 주었다.
오랜 경험을 가진 크림슨답게 고스트들이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은 어떤 것을 이행 중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마스터의 경호도 받아 보고, 네 덕분에 호강한다?”
린텔이 장난스레 말하자 아이언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마스터가 경호한다는 건 그만큼 지금 상황이 위험하다는 뜻과 진배없었다.
크림슨이 근처에서 다크 엘프들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주변을 쓸어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은 점점 거세졌다.
북부 사령관은 주변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느라 정신없었고, 크림슨은 다크 엘프들의 공세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묘한 대치 상황 속에서 아이언과 고스트들은 쉼 없이 전진했다.
점점 선명해지는 새의 형상은 이제 완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투명했던 새가 점차 불그스름한 형상을 띠기 시작하면서 익숙해 보이는 형상의 모습을 갖췄을 때였다.
“어떤 결계인지 아시겠습니까?”
“나도 처음 본다. 대체…….”
발걸음이 묶인 칼 구스타프가 처음 보는 결계 형태에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결계.
그것이 가까이 다가가자 자신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력 감지는커녕 눈으로 구별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주변과 똑같이 생겼으나 묘한 힘이 자신들을 계속해서 밀어내고 있는 것을 느꼈기에 이곳에 결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다가 결계에 다가서자 칼 구스타프가 일격에 피를 토하게 만든 화살이 오로지 크림슨에게 집중되면서 둘 사이에 격전이 일어났다.
덕분에 크림슨은 고스트들을 신경 써 줄 여유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면서, 하늘 높은 곳에서 폭풍검을 휘두르며 다크 엘프만을 상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사령관께 알려야겠군.”
칼 구스타프가 그렇게 말하며 피리를 입에 물었다.
삐이이이이!
칼 구스타프가 꺼내 문 피리에서 묘한 소리가 나며 천천히 주변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눈보라가 몰아치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는, 주변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점차 퍼져 나갔다.
그러자 곧 크림슨이 그 소리를 듣고 아이언 일행을 돕기 위해 검을 휘두르려 했다.
카앙!
“마스터급…… 혹은 그에 준하는 힘인가?”
자신들을 도우려는 크림슨을 막아서는 강력한 화살을 보면서 칼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스터인 크림슨을 사실상 거의 혼자서 막고 있는 다크 엘프를 보면서 생각보다 이들 세력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자신들을 막아섰던 자들도 5단계 이상의 실력자들이었는데, 거기에 마스터까지 포함된다면 웬만한 군부대 몇 개는 이들한테 박살 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치겠군.”
칼 구스타프가 머리를 헝클어뜨리면서 짜증 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 결계는 자신의 힘으로도 쉽게 파훼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결계인지 모르는 이상 주변을 쓸어버리는 강력한 힘으로 파괴해야 하는데, 최소 마스터급은 되어야 할 듯싶었다.
칼이 자리에 멈춰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였다.
상공에서 빛줄기 하나가 떨어지면서 고스트들을 가로막던 무형의 힘을 그대로 베어 냈다.
처음 한 번이 안 되니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섬광이 결계를 때렸고, 점차 결계의 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령관 짬밥은 무시할 게 못 된다니까.”
린텔이 상공에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 북부 사령관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고스트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고, 크림슨은 마스터급으로 추정되는 존재에게 가로막힌 상황에서 북부 사령관이 억지로 틈을 벌려 결계를 부순 것이다.
덕분에 칼과 아이언, 린텔을 막고 있는 힘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졌다.
“저곳인가?”
칼의 물음에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에 상당히 커 보이는 동굴이 보였다.
문제는 거기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를 건축물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곳이…… 있었다고?”
칼과 린텔이 멍하니 건축물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결계에 가로막혀 있었다고 하더라도 겨울산에 저 정도 크기의 건축물이 있는데 여태껏 보지 못했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세 명 모두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신 차려라.”
칼의 목소리에 아이언과 린텔이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그들의 주변으로 몇몇 다크 엘프들이 접근하는 게 보였다.
“여긴 내가 맡을 테니…….”
“저희가 막겠습니다.”
칼의 말을 끊고 나타난 빌리 브란트가 다른 고스트들과 함께 검을 휘두르면서 각자의 적을 처리하기 위해 산개했다.
그러자 칼이 검을 길게 내리그으면서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들어간다.”
“예!”
칼의 명령에 린텔이 대답하면서 아이언을 데리고 빠르게 동굴로 진입했다.
그러자 어김없이 다크 엘프들의 습격이 이어졌다.
북동부 사령관은 마스터급으로 추정되는 다크 엘프에게 묶여 있고, 북부 사령관은 다수의 몬스터와 다크 엘프에게 묶여 있다.
고스트들 역시 다수가 다크 엘프들에게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뚫겠다.”
“…….”
아이언이 침묵하자 칼이 그런 그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오기 전에 말했지? 고스트는 뭐라고?”
“임무가 우선입니다.”
“그래, 임무를 완수해라.”
칼의 명령에 아이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냈다.
그 순간 주변에 충격파가 퍼지면서 동굴 내부에 강력한 파장이 퍼져 나갔다.
“가자.”
“예.”
칼이 다크 엘프들의 시선을 끄는 동안 린텔이 앞장서면서 아이언의 앞을 지켰다.
“어디지?”
“왼쪽입니다.”
“다음은?”
“오른쪽입니다.”
복잡한 동굴 내부를 붉은 새가 알려 주는 방향대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마치 다크 엘프들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다는 듯 쏙쏙 피해 가는 길만 알려 주었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어느새 따라잡은 다크 엘프들이 사방에서 아이언에게 달려들었다.
타락했어도 한때 정령, 신수와 교류했던 존재답게 아이언이 신수 계약자임을 단번에 파악한 것이다.
캉! 캉! 캉!
린텔이 달려드는 다크 엘프들을 사력을 다해서 쳐 내고 막아 냈지만 점점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이언을 습격했던 정도의 실력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일반 기사급을 넘어서는 실력자들이었기에 5단계인 린텔에게도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먼저 가라.”
린텔이 웃으면서 말하자 아이언이 잠시 침묵하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라면 둘 다 잡힐 수밖에 없고, 그럼 임무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부엉아!”
-부!
아이언의 부탁에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부엉이가 아이언의 두 손을 잡아끌며 마력을 이용해 빠르게 돌파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런 그를 붙잡기 위해 몇몇 다크 엘프가 따라붙었지만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린텔이 아니었다.
사력을 다해 아이언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은 린텔 덕분에 아이언은 재빨리 피닉스가 있는 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다크 엘프들이 쫓아왔지만 사력을 다해 피하면서 마침내 동굴 안에 있는 거대한 공동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피닉스가 검은 사슬에 묶여서 네 군데에 세워진 거대한 검은 탑에 힘을 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피닉스의 뒤로 공간이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차원 균열을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아이언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욕이 나왔다.
“이런 미친 새끼들!”
전생에 자신이 고생했던 이유가 다크 엘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자 속에서 온갖 욕설이 튀어나왔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다크 엘프들이 철천지원수처럼 보였다.
“이 개 같은 새끼들!”
-짹!
지금 욕할 시간이 없다는 듯 뱁새가 재촉하자 아이언이 부엉이를 타고 빠르게 피닉스에게 접근했다.
자신이 간다고 저 거대한 피닉스가 풀려나겠나 싶었지만 일단 뭐라도 해야 했다.
핑!
그때 빠르게 피닉스에게 다가가던 아이언에게 갑자기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왔다.
아이언은 본능적으로 부엉이에게서 뛰어내려 바닥을 굴렀지만 완벽히 피할 수는 없었기에 팔에 살짝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큭!”
전격의 힘이 담겨 있는지 화살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짜릿한 고통이 온몸을 감돌았다.
검은 뇌전이 휘감긴 화살을 쏘면서 다가오는 다크 엘프를 보며, 아이언이 재빨리 다리에 마력을 주입했다.
아직 내상이 회복되지 않았고 도핑에 대한 후유증까지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고스트들이 사력을 다해 만들어 준 기회였다.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아이언은 미친 듯이 달렸다.
그 마음을 아는지 부엉이도 눈에서 빛을 뿜어내면서 접근하는 다크 엘프를 막아 냈다.
어느새 사방에서 몰려드는 다크 엘프들을 보면서 아이언은 모든 마력을 쥐어짜 냈다.
스텝을 밟아 가면서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무기들을 피했다.
화살, 표창, 단검, 창 등 다양한 무기들이 원거리에서 아이언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모든 것을 겨우겨우 피해 낸 아이언이었지만 점점 지쳐 갈 수밖에 없었다.
“헉……헉…….”
-짹!
뱁새가 피닉스에게 접촉만 하라고 외치면서 아이언에게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마석으로 도핑할 때처럼 일시적으로 힘이 넘쳐 나면서, 아이언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다시 달렸다.
“으아아아아!”
아이언이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무기들을 피하면서 몸을 날려 누워 있는 피닉스의 부리에 손을 가져다 대는 그 순간, 감겨 있던 피닉스의 눈이 떠지면서 주변에 강렬한 파장이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