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49)
16. 개판이 된 겨울산 (2)
아이스 고블린들을 처리한 아이언은 쉴 시간이 없다는 듯 곧바로 움직였다.
지칠 법도 하건만 병사에게 명령을 내려서 곧바로 움직인 것이다.
병사들 역시 불만이 있을 법하건만 군말 없이 움직였다.
그곳에 계속 있으면 더 많은 아이스 고블린들의 습격을 받아야 함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일단 스노 고블린 영역.”
“그곳도 방금처럼 작전하는 겁니까?”
“그래, 적어도 일주일은 이 미친 짓을 해야 할 거다. 그래야 빈틈이 보이니까.”
아이언의 설명에 찰스 상병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몬스터들 간의 분란이 주목적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혹 다른 임무가 있습니까?”
눈치 빠른 찰스 상병의 물음에 아이언이 그를 잠깐 바라보았다.
설명해 줄까 말까 잠시 고민하던 아이언이 작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래, 몬스터들 간의 분란은 주 임무가 아니야.”
“혹…… 뭘 찾으시는 겁니까?”
“비슷해.”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걸음을 멈추고 병사들을 뒤돌아봤다.
“궁금해?”
아이언의 물음에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궁금하긴 하지만 들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아이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차원 균열의 흔적.”
“예?”
“말 그대로야. 몬스터 웨이브의 조짐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 그것이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이야.”
아이언의 말에 찰스 상병이 완전히 예상외의 대답이었던 듯 벙한 표정을 지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상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몬스터 웨이브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병사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일전에 선봉의 중요성부터 뭔가 이상함을 느끼긴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위험하고 중요한 임무의 선봉에 서게 된 것이다.
“우리가 찾을 건 차원 균열에 조금이라도 오염된 몬스터다.”
“그럼 우리 소대만으로는 위험한 것 아닙니까?”
찰스 상병의 말에 다른 상병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차원 균열의 오염된 마나로 인해 강화된 몬스터들은 통상적으로 몇 배의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변이가 진행될수록 더욱 강해진다는 특징까지 갖고 있었다.
가뜩이나 겨울산의 몬스터들은 위험한데 오염된 몬스터까지 상대한다면 필시 소대 인원의 절반 이상이 죽을 것이다.
“그러니 외곽 지역의 몬스터들 위주로 수색해야지. 어차피 중심부로는 들어가지도 못해. 들어갔다간 곧바로 인간과 몬스터 간의 전면전일 테니까.”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비록 외곽 지역만 돌 것이라지만 몬스터들을 자극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오염된 몬스터까지 찾아야 하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굉장히 힘들어질 거다. 각오 단단히 해.”
“예!”
아이언의 명령에 병사들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병사들의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아이언이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몬스터들의 피를 뒤집어쓴 아이언이 미친 듯이 고블린들을 학살하면서 위험지역에 있는 몬스터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 * *
겨울산의 위험지역.
특수 수색대조차 함부로 들어가기 꺼리는 곳.
본디 군대란 현상 유지를 원하는 법이고, 높으신 분들은 괜히 벌집을 건드려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 법이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산의 위험지역은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 곳이었다.
소대 임무.
중대 임무.
대대 임무.
이러한 임무 속에서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한 소초장이 벌집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것도 짬밥이라고는 이제 막 시작한 초임 소초장 따위가 건드린 것이다.
당연히 다른 소초장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2중대장 역시 자신의 휘하 장교이기에 입을 다물고 있을 뿐 4소초장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긴 했다.
처음엔 공을 세우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철저하게 몬스터들 간의 경계선에서 깔짝대면서 자극만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미치겠는 건 이걸 수색대장이 승낙했다는 것이다.
“저게 무슨 의미가 있지? 괜히 몬스터들만 자극하는 꼴 아닌가?”
“괜히 우리 부대까지 피해 입는 거 아니야?”
“누가 수색대장님한테 건의 좀 해 봐!”
“벌써 며칠째야!”
다른 장교들도 서로 간의 연락망을 통해서 또라이 짓을 하고 있는 아이언을 말려 보라고 성화였다.
처음엔 옆 중대인 1중대만 불만을 갖고 있었다.
당장 몬스터들을 자극하면 자신들이 가장 힘들어지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소초장들로 불만은 확대되었다.
아이스 고블린 영역뿐만 아니라 스노 고블린, 화이트 고블린 등 고블린 영역은 이곳저곳을 쑤시면서 다니고 있었고, 심지어 한번 화나면 그냥 휘젓고 다니는 거대 서리 곰의 영역마저 깔짝거리면서 그들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인근의 실버 울프들마저 절로 자극을 받아, 현재 위험지역은 개판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전 소초장이 불만을 갖게 되었다.
이젠 1중대의 일만이 아닌 자신들 역시 위험에 직면한 탓이다.
당연히 1중대장이 이것을 그냥 보고 있을 리 없었다.
당장 2중대장한테 항의 서한을 보냈는데, 2중대장은 수색대장님의 명령이라며 책임 회피를 했다.
2중대장이 이렇게 반응하니 명분을 쥔 1중대장이 대표로 수색대장을 찾았다. 상사인 2중대장마저 4소초장의 지금 행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군.”
수색대장 칼 구스타프가 파울로 대위를 보면서 반갑게 인사하자 그가 굳은 표정으로 경례를 올렸다.
“앉게. 여기 차 두 잔 부탁하지.”
수색대장의 말에 장교 하나가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 왜 날 찾아온 거지?”
“4소초장 때문입니다.”
“흠…….”
1중대장 파울로 대위의 말에 구스타프가 미간을 찌푸렸다.
“소대 임무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4소초장이 소대 임무를 핑계로 쓸데없이 몬스터를 자극하고 있고, 그 때문에 1중대 소초장들이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4소초장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나? 자네도 알고 있을 텐데?”
구스타프의 말에 파울로 대위가 표정을 굳혔다.
“예,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몬스터들의 침략, 숫자, 영역의 변경 등을 이유로 조사를 위해 소대 임무로 위험지역까지 간다고 했지만 근거가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기도 하지. 분명 최근 몇 년간 몬스터들이 급격하게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네. 조사는 필요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수준입니다. 1년 단위로 끊는다면 예년과 큰 변동을 보이진 않습니다. 그 정도 변동 사항 때문에 수색 대대 전체가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습니다.”
파울로 대위의 말에 구스타프가 굳은 표정으로 침묵하다 장교가 가져온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생각에 잠기자 수색대장이 고심한다고 생각한 파울로 대위가 방점을 찍기 위해 입을 열었다.
“북동부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이 정도 변동 사항에 너무 과한 대응 같습니다.”
“그런가?”
“예! 지금 즉시 4소초장을 불러들여야 합니다.”
파울로 대위의 말에 구스타프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일단 기다려 보지.”
“예? 하지만…….”
“기다려.”
기어오르려는 파울로 대위를 말 한마디로 잠재운 수색대장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턱을 괴고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파울로 대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뭘 기다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일이나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면 보냈겠지만 나가 보라는 말도 없는 것을 보면 이 상황과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났을 때였다.
“수색대장님!”
“2중대장인가?”
“그렇습니다. 붉은 불꽃이 솟았다고 합니다.”
장교의 보고에 구스타프는 괴고 있던 턱을 빼내곤 1중대장을 바라봤다.
“혹…… 4소초장이……?”
“그래, 도움 요청이다.”
“제길! 그럴 줄 알았습니다! 4소초장이 공명심에 사로잡혀 병사들을 사지로 몬 것입니다!”
1중대장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하자 구스타프는 그런 파울로 대위를 빤히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1중대장은 전 중대원을 집결시켜서 위험지역으로 출동하도록. 지금부터 대대 임무를 발동한다.”
“예?”
구스타프의 명령에 파울로 대위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4소초장에 대한 지원 임무가 아니라 대대 임무가 발동된 것에 의아함을 느낀 것이다.
“작전명은 겨울산 수색. 2중대가 선봉에 설 것이며 1중대와 3중대가 보좌한다.”
“그…… 무슨 말씀……?”
“말 그대로다. 4소초장은 내가 내린 명령을 훌륭히 해냈으니 이제부터 대대장 직권으로 대대 임무를 내리는 것이다.”
“하…… 하지만 위험지역은…….”
“항명인가?”
칼 구스타프가 싸늘한 표정으로 묻자 그의 몸이 굳어졌다.
5단계가 넘는 강력한 살기가 그의 몸을 옭아맸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그럼 바로 명령을 이행하도록.”
“예!”
칼 구스타프의 싸늘한 표정을 본 파울로 대위가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작전장교.”
“예! 대대장님.”
“2중대에서 다른 소식은 없었나?”
“그렇습니다.”
장교의 대답에 수색대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짓했다.
그러자 곧 방문이 닫히고, 그는 다시금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기대가 너무 컸나?”
칼 구스타프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도 충분히 엄청난 성과였지만 이건 소초장으로서의 성과일 뿐이었다.
이왕이면 고스트로서의 임무도 같이 성과를 내 주길 바랐지만 그건 무리였던 것 같다.
“뭐, 뒤지다 보면 나오겠지. 언제까지 어린 장교만 믿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게 사실이니…….”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식어 버린 차를 입에 털어 넣은 칼 구스타프는 실전을 치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4소초장이 쏘아 올린 지원 요청에 수색대장이 대대 임무를 발동할 즈음, 지원 요청을 한 당사자인 아이언은 위험지역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후……. 거참, 드럽게 찾기 어렵네.”
아이언이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눈으로 뒤덮인 산을 바라보자 뒤에 있던 찰스 상병이 다가와서 물었다.
“뭘 찾으시는 겁니까?”
“그래.”
“차원 균열의 흔적이라면 이미 찾으신 거 아닙니까?”
“그거 말고 다른 거.”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저 멀리 겨울산을 바라보았다.
이전보다 훨씬 뚜렷해진 형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형상은 자신을 계속 주시하면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새를 쫓아서 이곳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병사들이 부상을 입었다. 게다가 목숨이 중한 중상자도 생겼다.
물론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스노 고블린부터 화이트 고블린, 스노 폭스, 거대 백곰, 아이스 트롤 등을 수없이 상대하면서 마침내 몬스터 웨이브에 대한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다수의 몬스터 사체에서 오염된 마력에 일부가 변질된 흔적들을 찾아냈다.
언뜻 보기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흔적들이었지만 그곳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아이언은 확신했다.
전생에 수없이 느껴 봤던 재수 없는 이질감.
그것이 몬스터들의 사체 일부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갈라져야 할 것 같은데?”
“예?”
갑자기 갈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아이언을 보면서 찰스가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