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40)
13. 실타래를 풀어라 (3)
새벽부터 내리는 쓰레기, 아니 눈을 치우고 들어온 소초의 분위기는 완전 개판이었다.
눈을 치우는 건 그렇다 치는데, 앞으로 있을 초소 보강 작업 때문에 상병들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져 있었다.
그렇다 보니 밑에 있는 일병들과 이병들의 분위기 역시 덩달아 안 좋게 변해 가고 있었다.
게다가 그런 안 좋은 분위기에서 숀 병장은 더더욱 생활관 분위기를 개판으로 만들었다.
생활관으로 돌아오자마자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개처럼 날뛴 덕분에 이병들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각 잡고 서 있었고, 일병들은 눈치껏 숀이 던진 것을 치우고 있었다.
평소라면 상병들이 말리거나 진정시키려 아부했을 것이나 이번만큼은 상병들 역시 숀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서 열심히 씹어 대고 있었다.
‘소초장한테 제대로 찍힌 숀 병장을 이대로 둘 거냐?’하는 말로 시작된 상병들의 회담은 아침 내내 이어졌다.
만약 숀 병장에게 뒷배가 없었다면 진즉 팽 당했을 일이었다.
“아, 오늘 밥 잘됐는데?”
“그렇습니까?”
부소초장과 둘이서 밥 먹는데 오늘따라 밥맛이 꿀맛이었다.
뒤늦게 병사들도 와서 식사를 시작했지만 하나같이 똥 씹은 표정들이었다.
“숀 병장은?”
“밥맛이 없다 합니다.”
상병의 대답에 아이언이 눈을 부라렸다.
“내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식사를 안 한다고?”
“그…… 그것이…….”
“그 새끼 불러와.”
아이언의 말에 상병이 엿 됐다는 표정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숀이 긴장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숀 병장.”
“병장, 숀 윅스!”
“힘드냐?”
“아닙니다!”
“근데 왜 밥을 안 먹어?”
아이언의 말에 숀이 비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 몸이 안 좋아서…….”
“아까 그거 했다고?”
“아닙니다. 감기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보고해야지.”
아이언은 다정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숀 병장이 뭔가 느낌이 안 좋은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감기라……. 이삼일이면 낫겠지?”
“그렇습니다.”
“내 방에 말린 레몬 있거든? 특별히 그거 타서 마셔. 사흘간 푹 쉬고 눈 좀 그치면 작업하러 가자.”
“……알겠습니다.”
똥 씹은 표정을 짓는 숀 병장과는 대조적으로 아이언은 상큼한 표정을 지으면서 들어가 보라고 말한 후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상병들은 절대 작업을 뺄 수 없다는 좌절감과 함께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식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상·병장에게 일종의 경고를 준 아이언은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소초장실로 돌아갔다.
“어제 못 주무신 것 같은데 좀 쉬십쇼.”
“아뇨. 전 오늘 당직 설 거니까 부소초장님이야말로 쉬세요.”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부소초장을 등 떠밀며 보내고는 소초장실로 돌아왔다.
소초장의 책장을 옆으로 밀자 나무판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무로 된 판에 종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아이언은 생각에 잠겼다.
왼쪽엔 몬스터 웨이브와 관련된 정보가.
오른쪽엔 신수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고스트의 임무와 관련된 정보들이었다.
그리고 중앙엔 현재 격렬히 대립하고 있는 두 대위들에 대한 정보를 비롯하여 현 소초의 문제점과, 특수 수색대의 임무들이 적혀 있었다.
고스트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역시 일반 수색대가 아닌 특수 수색대인 만큼 다양한 임무들이 들어온다.
그중 하나가 겨울산의 탐색이었다.
고스트가 신수와 관련해 몬스터 웨이브 문제를 해결한다면, 특수 수색대의 임무는 몬스터 자체의 문제를 조기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각자의 초소를 중심으로 겨울산 탐색을 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훈련이 없는 대신 다양한 임무들로 병사들을 굴리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은 훈련하는 시즌에, 이곳 특수 수색대는 특수 임무들로 열심히 굴러야 했다.
“할 거 많네.”
고스트 임무는 개인적으로 진행한다지만 특수 수색대 임무와 잘 엮으면 굳이 혼자 할 필요까진 없을 거 같다.
게다가 2~3개월 뒤면 임무 시즌이라 그걸 빌미로 열심히 굴릴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소대 임무, 중대 임무, 대대 임무까지, 할 수 있는 임무는 여러 가지가 있었고 그만큼 굴릴 수 있는 방법도 널려 있었다.
특히 가장 쉬운 소대 임무는 1년 동안 10개가 넘어갔다.
게다가 시즌 안에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 할 것인지는 소초장 재량에 맡겼다.
즉, 한 번에 몰아서 할지, 어느 정도 질책을 감수하고 대충 넘어갈지도 본인에게 달린 것이다.
그리고 아이언은 임무들을 그냥 넘길 생각이 없었다.
“나도 군 생활 좀 편하게 하고 싶은데…….”
아이언이 그렇게 혼잣말하면서 잠시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현대에서 군 생활을 해 봤고, 전생엔 지휘관이 되어서 수십 수백 번의 대규모 전투를 치러 본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웬만한 것은 그냥 넘기고 싶었지만 이런 건 사전에 밟아 놓지 않으면 만만하게 봐서, 일단 기어오른다 싶으면 조지고 봐야 했다.
아이언은 가만히 그동안 얻은 정보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한숨을 쉬면서 책장을 다시 원위치로 돌렸다.
그리고 바로 그날, 숀 병장이 아프다는 핑계로 작업을 빠지려고 한다고 보고가 들어왔다.
감기 걸렸다는 말로 근무까지 죄다 빠지려 하자 이번에도 소초장이 숀 병장을 불러서 호되게 질책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언은 쉴 수 있을 때 쉬라는 듯 어떤 터치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과 작업하기 시작하면 쉴 수 있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거기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군대란 곳은 찾아보면 작업할 건 널려 있었고, 그 후로는 임무를 핑계로 숀 윅스를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굴릴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되면 수련 시간이 없어지네.”
4단계에 대한 길을 잡은 지도 꽤 시간이 흘렀는데, 수련 시간 부족으로 졸업 때와 비교해서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지금은 이것이 더 중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리엘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겠지? 이러다 카드로에게도 곧 따라잡힐지 모르겠네.”
혼잣말로 중얼거린 아이언이 가만히 서류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개판을 쳐 놨는지 근무 일지에는 가짜로 작성한 것들투성이였다.
조금만 비교해 봐도 나올 수 있는 것들이 이 정도라면 실제로는 엄청나다는 것이다.
“악마가 되긴 싫은데…….”
현대에서 자신의 삶의 모토는 적당한 삶이었다.
군대 역시 그렇게 하다가 전역했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느낀 것은, 그딴 식으로 살다간 죽기 딱 좋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려면 열심히 굴러야 했다.
그리고 이곳은 군대.
자신만 구른다고 되는 곳이 아니었다.
장교가 된 만큼 휘하 병력까지 같이 굴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다.
겸사겸사 자신에게 틱틱대는 녀석까지 교육시킬 수 있기에 더욱 빡세게 굴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아이언은 독하게 마음먹으면서 작업을 나갈 당일이 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숀 병장의 감기가 낫고, 날씨마저 화창하게 변했다.
“모두 모였나?”
“예!”
아이언의 물음에 상·병장들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두 완전군장을 메고 거기다가 작업에 필요한 물품까지 잔뜩 짊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건장한 몸에 마력까지 사용 가능한 자들이라 그런지 그렇게 짊어지고 있음에도 거뜬했다.
반면에 아이언은 상당히 간소한 차림이었다.
자신이 사용할 간이 텐트와 식료품, 무기 등을 챙겼지만 병사들에 비하면 가벼운 편이었다.
“그럼 가 볼까?”
“어디부터 가십니까?”
“일단 1초소부터 가도록 하지.”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고는 앞서 걷기 시작하자 병사들이 짐을 짊어지고는 겨울산을 타기 시작했다.
겨울산을 타고 한 초소를 이동할 때마다 상병들의 표정은 굳어지고 숀 병장의 표정은 점차 일그러졌다.
특히 상병들 같은 경우는 괜히 숀 병장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면서 점점 숀 병장에 대한 불만이 올라갔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소초장이 숀 윅스를 찍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거리는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은 점은 숀의 뒷배경 때문이다.
말디니 후작가의 방계인 중사와 직계인 파울로 대위는 위험한 사람이었다.
북동부에서는 자신의 본래 가문을 밝히지 않는 관례조차 깰 만큼 대놓고 행동한 인물이 파울로 대위였다.
과연 숀 병장을 위해서 어디까지 해 줄지 알 수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렇기에 상병들은 상황을 보면서 불만을 삭이고 있었다. 다만 분노를 삭이는 것뿐 사라진 건 아니기에, 여차하는 순간 대놓고 반기를 들 수도 있었다.
숀 역시 어린 소초장을 여차하면 꺾어 버릴 생각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이미 소초장을 라인에 합류시키는 건 버린 지 오래였다. 머릿속에는 오직 말디니 중사를 꼬셔서 소초장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상·병장들이 저마다의 생각으로 가득할 때였다.
아이언이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부터 시작해야겠군.”
“예?”
아이언의 말에 숀 병장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러자 아이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병장이 건의했잖아, 계단이 얼어서 위험하다고. 그럼 까야지.”
“아…….”
“시작해라.”
아이언의 말에 상병 중 제일 짬이 떨어지는 브라이언이 가방을 내려놨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아이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다른 놈들은 뭐 하냐? 같이 안 해? 아, 양이 적어서 그래? 걱정 마라. 저기까지 보이지?”
“……혹시 저기까지 전부……?”
“그럼, 전부 다 해야지. 그러니까 전부 가방은 여기 두고 곡괭이 들어라.”
아이언의 말에 상병들이 일제히 표정을 구겼다.
다들 속으로 구시렁거리긴 했지만 애초에 숀이 건의한 것이기에 불만은 소초장인 아이언보다 숀 병장에게 향해 있었다.
괜히 그딴 건의를 해서 자신들이 이렇게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불만이 커져 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인 숀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치 보면서 자신은 적당히 할 속셈인 것이다. 상병들도 눈이 있기에 그것을 보면서도 딱히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상병들의 마음을 대변해 아이언이 직접 입을 열었다.
“숀, 뭐 하냐? 네가 가장 앞장서야지. 넌 1초소부터 까면서 내려와라. 짬밥을 젤 많이 먹었으니 가장 잘하겠지?”
“……예.”
“좋아! 바로 출동해!”
아이언의 말에 숀 병장이 애써 대답하면서 곡괭이를 들고 1초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아이언이 상병들을 진두지휘하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실타래를 풀 첫 번째 작업은 시작됐고……. 이 소식을 들은 옆 소초 양반들이 어떻게 나올지만 보면 되는 건가?’
아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가 어떤 방식으로 풀어질지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미 옆 소초가 꼬장을 부릴 시 대응 방안까지 전부 생각해 두었기에 오기만 한다면 친절하게 응대해 줄 자신이 있었다.
그 과정에 숀 병장이 많이 힘들긴 하겠지만 그동안 꿀 빨았던 걸 생각하면 좀 많이 굴려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자! 후임들을 위해 열심히 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