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38)
13. 실타래를 풀어라 (1)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처럼 현재 겨울산의 사람들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함부로 건드렸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기에 아이언은 일단 찰스 상병을 보내고 한동안 주변의 정보를 끌어모았다.
아이언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때때로 보급하러 오는 병사를 노리는 것이었다.
“충성!”
“반갑다. 오늘은 이게 전부야?”
“그렇습니다. 사령부에서 최대한 보내 주려 하지만 한 번에 옮기는 데에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부러 살갑게 다가가서 병사와 잡담을 나누었다.
기구를 타고 이곳저곳으로 식량 보급을 나가는 병사답게 주워들은 게 상당히 많았다.
간부 같은 경우 누가 숀 병장과 같은 라인을 타고 있는지 모르니 알 수 없었고, 장교 역시 함부로 공략하기 어려웠다.
중위에 불과한 아이언이 함부로 친한 척 굴기에는 짬밥이 너무 없었다.
그렇기에 병사를 공략했는데 그게 주효했다.
식량 보급이 올 때마다 이병들을 동원해 돕게 하고 보급병과 잡담을 나누면서 시간을 때우게 해 주자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었다.
“호~ 그러니까 프랑코 대위가 파울로 대위랑 라이벌이라 이거지?”
“그렇습니다. 7~9소초의 델로스 대위는 중립이라 하지만 그냥 겁쟁이입니다.”
“그래도 특수 수색대 대위인데?”
“백이 없잖습니까? 그렇다고 그걸 뚫고 나갈 만큼 실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병사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델로스 대위를 까던 보급병이 자연스레 자신의 상사의 뒷담을 까자, 아이언은 그것을 흘려들으며 보급병에게 들은 정보로 대충 현 상황을 정리했다.
‘파울로 대위와 프랑코 대위 양강 구도인가? 흠…… 그럼 프랑코 대위도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뜻인데…….’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급병을 보며 입을 열었다.
“수색대장님이 힘드시겠네.”
“안 그래도 전 수색대장님이 이 일로 머리가 많이 빠지셨습니다.”
“어이구! 고생하셨겠어.”
“그래도 사령부로 가셨으니 이젠 편하실 겁니다. 사실 그분이 군수과장으로 오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안타깝습니다.”
대령으로 진급하면서 사령부로 들어갔는데, 보통 사령부의 과장급을 대령이 맡는 것을 생각해 보면 수색대장이 인맥이 있었다면 충분히 과장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있는 군수과장을 욕하던 보급병이 수색대장은 좋아하는 걸 보면 인덕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 사람이 손놓을 정도라…….’
생각보다 서로 간의 불신이 클 거라 짐작한 아이언이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엔 전임 수색대장이 무능력해서, 혹은 라인이 없기에 방관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현재 겨울산에서는 파울로 대위 라인과 프랑코 대위 라인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프랑코 대위의 라인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 수가 없네.’
자신의 직속상관인 프랑코 대위를 생각하면 골치가 아팠다.
아직 어리고 실질적으로 이제 갓 부대에 배치된 짬밥도 없는 자신을 도와줄 간부는 없었다.
게다가 강자를 존중하는 이곳 특성상 병사조차 휘어잡지 못하는 간부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여기로 보낸 건가?”
들으면 들을수록 아이언은 자신이 있는 소초가 개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1~3소초는 소령(진)인 파울로 대위가 중대장으로 있었고, 4~6소초는 프랑코 대위가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파울로 대위가 숀 병장을 자기편으로 삼아서 4소초조차 자신의 영향력하에 두려는 것이다.
여기서 만약 프랑코 대위가 영향력을 잃게 된다면, 그 순간 중립을 지키는 7~9소초의 델로스 대위 역시 파울로 대위 쪽으로 기울 것이다.
소령(진)으로 소령 진급이 예정되어 있기도 했고, 자신의 영역인 4소초조차 숀 병장을 필두로 해서 장악당한다면 프랑코 대위의 힘은 급격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 수색대장이 완전히 새로운 인사를 파견해서 이것을 막기 위해 잭 도일을 현재 부소초장으로 진급시켰지만 완전 초짜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현재 수색대장이자 캡틴 고스트인 칼 구스타프가 아이언을 이곳 소초장으로 파견한 것이다.
신수의 영역에서 가깝다는 이유도 있지만, 아무래도 어떤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완전 새로운 인재를 파견하면서 현재의 격렬한 싸움을 일단 봉합하려는 것 같았다.
“하…… 정치 싸움은 딱 질색인데.”
군대라고 정치질이 없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싸움에 휘말린 것 같자 아이언의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 정치질에 당해서 평생을 구른 게 아이언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나마 덜할 거라 생각한 북부군, 그중에서도 몬스터로 항상 바쁜 북동부로 왔지만 정치질이 없는 곳이란 희망 사항일 뿐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아직 어린 아이언이 정치 싸움을 할 수도 없었다.
보급병과 찰스 상병, 그리고 부소초장을 통해 정보를 모으던 아이언이 고민에 빠질 때였다.
마침내 숀 병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초장님.”
자신을 찾아온 숀 병장을, 아이언이 가만히 바라봤다.
오랜만에 단련실에서 나와 소초장실에 온 아이언이 서류를 검토하고 있자, 이 타이밍만을 본 것인지 숀 병장이 들어온 것이다.
“할 말 있나?”
“그렇습니다.”
“해 봐.”
아이언의 허락에 숀 병장이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병사들이 건의할 사항이 있다 합니다.”
“건의 사항?”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되묻자 숀 병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초소 간의 계단이 얼음에 뒤덮여서 너무 위험하다고, 작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작업? 병사들이 지금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병사가 계단이 위험하다고 작업이 필요하다 건의 사항을 올렸다는 말에 아이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현대에서 병사 생활을 해 본 아이언이다.
병사들은 절대 쓸데없는 작업을 늘리는 건의 사항 같은 걸 하는 족속들이 아니었다.
물론 보급에 영향을 미칠 경우 병사들이 직접 건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가 알기로 보급로는 주기적으로 길을 닦아 놓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작업을 할 건데?”
“얼음을 까야 할 것 같습니다.”
“흠…… 미끄럽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숀 병장의 말에 그럴듯하다고 느꼈다.
계단에 얼음이 끼어 있으면 자칫 미끄러져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쪽이 가장 급한데?”
“4-1초소입니다.”
“그쪽은 아래쪽이잖아. 게다가 3-8초소와 연결되어 있지 않아? 그쪽은 보급로가 3-8초소를 일부 겸하고 있어서 우리 쪽은 딱히 관리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이언의 말에 숀 병장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옆 초소 병사들이 이왕 할 거, 같이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왔습니다.”
“그래서 같이 하자고?”
“그렇습니다. 3소초장님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그럼 중대장님한테 건의해야 하지 않나? 옆 중대와 같이 할 일이라면 내 선을 넘어가는 건데?”
아이언이 아무리 소초장이라 해도 그래도 중대 소속이기 때문에 중대장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각 소초당 어느 정도 자율권을 준다지만 그래도 타 중대 소속의 소초와 개인적으로 함께 작업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일단 이건 중대장님께 상의해 보지. 또 할 말 있나?”
“……없습니다.”
“그럼 나가 보도록.”
아이언의 말에 숀 병장이 똥 씹은 표정으로 경례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런 숀 병장을 보면서 아이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 가기 시작했다.
“나한테 손을 벌린다? 흠…….”
자신을 그쪽 라인으로 데려가려 하는 움직임을 본 순간 아이언이 곧바로 부소초장을 불렀다.
“혹시 부소초장도 숀 병장에게 라인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들었습니까?”
“없습니다.”
“간접적인 것도?”
“음…….”
아무래도 직접적인 제안은 없어도 간접적인 것은 몇 번 있었던 것 같았다.
부소초장은 그걸 거절해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것이고.
여기까지 알게 되니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일단 부소초장은 이걸 중대장님께 보내 주십쇼.”
“프랑코 대위 쪽으로 가시는 겁니까?”
“딱히 라인 탈 생각은 없습니다. 그딴 거 없어도 되기도 하고요.”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부소초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는 부소초장은 파울로 대위 라인이 아쉽습니까?”
“딱히 그렇진 않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꼬투리 잡힐 일 없게 중대장님께 이거 보고하고 나머진 내가 직접 처리하죠.”
아이언의 말에 부소초장이 불안한 눈으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마치 가까운 시일 내에 뭔가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제 움직이실 생각입니까?”
“뭐 알아볼 만큼 알아봤고, 옆 중대에서 우리 소초 먹겠다고 오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아이언의 말에 잭 도일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아이언이 어떤 실력을 갖고 있는지, 어떤 인맥, 어떤 혈통을 갖고 있는지 하나도 모른다.
하지만 저 자신감이 그저 근거 없는 게 아니라는 것 하나만큼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직감, 그리고 어린 몸으로 이곳까지 온 것과 북동부 아카데미 역사에 남을 기수의 졸업자라는 것.
이 모든 것이 믿음의 근거가 되어 주었다.
“도울 일이 있으면 최대한 돕겠습니다.”
부소초장의 말에 아이언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직접 움직일 예정이라 딱히 부소초장이 도울 일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움직일 때 비어 있을 소초가 생각났다.
“흠…… 뭐 도울 일이 있을 것 같긴 하네요. 제가 없는 동안 이곳 소초 좀 잘 관리해 주세요.”
“예?”
아이언의 말에 잭 도일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런 부소초장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아이언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제 건방진 병장 새끼를 조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잭 도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소초장님, 숀 병장은…….”
“아! 다 알아보고 건드는 거니까 괜찮습니다.”
“그러시다면야…….”
소초장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만류하는 것도 이상해서,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언이 미소를 지었다.
“병장 놈은 제가 직접 조질 테니까 부소초장은 남은 녀석들 관리나 해 주세요. 그 정도는 가능하죠?”
“예.”
“아! 참고로 상병들도 찰스 빼고는 전부 데려갈 겁니다. 그러니 소초를 관리하는 데 딱히 문제는 없을 거예요.”
“예? 그게 무슨……. 어딜 가십니까?”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의 부소초장을 보면서 아이언이 사악하게 웃었다.
“군대에서 제일 엿 같은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말년 병장을 데려가서 일시키는 행보관입니다.”
아이언의 말에 부소초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런 게 있습니다. 다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니 믿고 맡겨 보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은 현대에서 겪었던 엿 같은 경험을 손수 실천해 주기 위해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우선 소초에서 제일 엿 같은 작업을 찾기 위해서 서류를 뒤적거리며 어디부터 갈지 라인을 정했다.
사실 이건 단순히 엿 먹이고자 하는 일은 아니었다.
요즘 경계 근무도 빼먹고 간간이 불침번이나 서느라 배에 지방이 끼어 있을 병장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장 빡센 곳으로 알아보았다.
“어이쿠! 이런 데가 있었네?”
뭔가를 발견한 아이언의 얼굴엔 어느새 사악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