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37)
12. 어린 소초장 (3)
현대에서 병장이라면 사회로 나가기 위해 숨죽이고 있을 시기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현대의 병장은 떨어지는 나뭇잎도 조심해야 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 병장은 간부가 될 수 있는 문턱밖에 되지 않았다.
북부는 복무 기간 20년이라는 미친 조건 때문인지 병사들 대부분이 간부가 돼서 전역하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능력만 있다면 짬밥 긴 병사들보다 빠르게 간부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온갖 문제가 터져 나왔다.
짬밥 5~6년을 먹고도 병사 계급으로 허덕이는 자들과 몇 년 만에 간부가 된 자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갈등이 있었다.
그것은 간부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상적으로 짬밥을 다 먹고 올라온 간부 계급과 엘리트 간부들 간에 알력 싸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단순히 이것만으로도 문제가 되는데, 부패한 관료 체계가 기름을 끼얹으면서 온갖 곳에서 문제들이 발생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귀족 출신과 그렇지 않은 자들의 갈등.
명문가 방계, 돈 많은 부유 가문 출신 등과 가난한 자들 간의 갈등.
토착민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간의 갈등.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뭉쳐져 있어서 어느 한 곳을 섣부르게 건드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저 문제가 생기면 봉합하기 바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도저히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곪아 버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동부도 결코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듯, 사령부 직할임에도 병사가 간부한테 개기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래서 언뜻 보기엔 손댈 수 없는 문제 같았지만 아이언에게는 반대였다.
이 소초에서 일어난 문제에 한해서는 아이언의 실력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했다.
고스트에 실력 되고, 인맥도 사령관의 신임을 받고 있으니 충분하고, 심지어 숨기고는 있지만 혈통도 좋았다.
병장 따위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는 게 아이언이었다.
다만 병장 숀과 상병들이 그걸 모른다는 점이 문제다.
이번 아카데미 기수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고, 어린 소초장이 왔기에 ‘그중 하나가 왔구나!’ 하고 생각은 하겠지만 고스트라는 특징 때문인지 수석으로 졸업한 아이언이 소초장으로 온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며칠간 잠잠한 아이언을 보고선 자신들의 기세에 당황한 것으로 파악한 숀과 병사들은 기세등등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별거 없는 거 같지?”
숀 병장의 말에 병장 계급을 앞둔 찰스가 답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소문대로 이번 기수 졸업생이면 위험합니다.”
찰스 상병의 말에도 숀 병장은 아이언이 어리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30위권 안에 드는 엘리트급만 아니면 비벼 볼 만할 것 같지 않아?”
“맞습니다! 힘에선 밀리실지 모르지만 숀 병장님이 경험은 압도적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하~ 아직 어리니 숀 병장님의 경험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숀 병장의 말에 아부하듯 다른 상병들이 일제히 그의 편을 들었다.
상병들이 손짓하며 숀 병장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일병 이병까지 불러다가 소초장의 욕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놈이 싸가지가 없네.”
“아직 군대 생활을 못 해서 뭣도 몰라 그런 거다.”
“숀이 부소초장이 되면 금방 먹어 버릴 거다.”
등등.
없는 자리에선 황제도 욕한다고, 생활관이 순식간에 소초장을 욕하는 곳으로 바뀌어 갔다.
그런 상황에서 찰스 상병은 혼자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찰스 상병의 경우 일을 잘하고 눈치가 빨라서인지, 가만히 있어도 웬만하면 숀 병장도 터치하지 않아서인지 아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뭐라 하지 않고 있었다.
“찰스.”
“상병 찰스.”
“너도 소초장이 아직은 애 같다고 생각하지?”
“그렇습니다.”
적당히 맞장구쳐 준 찰스의 말에 숀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다른 병사들과 이번엔 부소초장을 씹어 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쉰 찰스가 숀을 바라보다 소초장을 떠올렸다.
첫날 보여 준 아이언의 모습은 분명 자신들을 압도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얌전히 있다?
2개의 상반된 모습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감춰 둔 뭔가가 더 있는 느낌인데…….’
혼자서 그렇게 생각한 찰스가 소초장이 언제쯤 움직일지 가늠해 봤다.
만약 정말 뭔가가 있다면 자신들이 선을 넘는 때를 노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열일곱 살이었지만 빠르게 진급한 편이라 스무 살이 넘기 전엔 부사관이 될 수 있을 거라 판단되는 게 찰스였다.
그만큼 눈치도 빠르고 빠릿빠릿 일도 잘하는 편인 그였기에 아무런 연줄 없이 엘리트 코스인 특수 수색대에 온 것이다.
그렇기에 전에 있었던 부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소초장에 대해 생각해 봤다.
‘부소초장과 다툼도 없고, 여유가 있어. 게다가 어린 모습을 보면 이번 기수 졸업생이고 특수 수색대까지 차출될 정도면 엘리트 출신일 확률이 높아. 그렇다면…….’
여기까지 생각이 마친 찰스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줄을 잘 타야 된다.’
곧장 이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줄 잘못 탔다가 군 생활이 꼬이는 놈들을 한두 명 본 게 아니었다.
자신도 자칫 잘못했다가 몇 년간 지옥 같은 군 생활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군 생활이란 모름지기 편하게 있다가 편하게 제대하는 것이 최상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찰스는 한동안 바짝 엎드려서 눈치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났을 때, 자신이 너무 과하게 생각했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애매하게 라인을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숀도 눈치챘는지 최근 자신에게 틱틱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이라도 숀으로 갈아타야 하나? 하…… 간부도 아니고 병장 새끼한테 꼬리 흔드는 것도 지겨운데.’
찰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심에 빠졌다.
웬만한 일은 전부 부소초장에게 맡겨 두고 소초장은 그저 단련실에서 개인 단련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찰스는 자신의 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절대 이대로 넘어갈 눈빛이 아니었다.
이미 전에 있던 부대에서 한차례 실수해서 간부에 찍혔던 경험이 있는 찰스 상병은 이번만큼은 소초장에게 바짝 엎드렸다.
적어도 북동부에서만큼은 부소초장과 소초장은 격이 달랐다.
그리고 이러한 찰스 상병의 생각은 그의 목숨을 한번 살린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찰스 상병.”
“예!”
부소초장의 부름에 찰스가 재빨리 일어났다.
평소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부소초장이 찰스를 부르자 생활관에 누워 있던 상병과 병장이 일제히 부소초장을 바라봤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도 부소초장은 무감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초장님이 부르신다.”
부소초장의 말에 모든 병사들이 일제히 찰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찰스 본인조차 자신을 왜 부르는지 몰랐기 때문에 당황한 표정으로 부소초장인 잭을 따라 소초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충성! 상병 찰스…….”
“됐고. 앉아.”
아이언의 말에 경례하던 찰스가 곧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아이언이 찰스에게 근무 일지를 툭하고 던져 줬다.
“이건…….”
“거기 보면 병장 숀이 근무를 나갔다고 되어 있거든? 근데 여기 있네?”
“그…… 그건…….”
찰스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동안 지켜봤잖아. 근데 병장이란 놈이 근무는 안 나가는 거야. 뭐 병사 중에 최고 짬밥이니까 어느 정도 열외 되는 건 이해할 수 있어. 근데 말이야…… 상부에 보고하는 근무 일지에는 자기가 제일 많이 나가는 걸로 써 놨단 말이야.”
아이언의 말에 찰스가 고개를 숙였다.
“이건 아니잖아? 열외 되는 거야 이해를 하는데 남의 밥그릇을 뺏는 건 아니지.”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찰스를 바라보았다.
“부소초장도 그렇고, 다른 상병들도 충분히 병장한테 반기를 들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얌전한 게 이해가 안 가. 이 정도면 도를 넘었어도 한참 넘은 거거든.”
아이언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하면서 찰스를 바라봤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이 새끼 뒷배가 누구야?”
아이언의 물음에 찰스가 잠시 고민했다.
“부소초장은 모르는 것 같거든? 아마 온 지 오래되지 않아서 그렇겠지? 근데 넌 알잖아.”
“……예.”
“누구야?”
아이언의 물음에 찰스가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바로 답이 안 나오는 걸 보면 뒷배가 상당하다는 뜻인데…….”
아이언은 침묵으로 긍정을 표한 찰스에게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다 좋아. 근데 이거 하나만 알아 둬. 여기선 숀이 뭐라도 되는 거 같지? 조금만 올라가도 저런 애 널리고 널렸어. 뒷배? 어디까지 되는지 모르지만 뭣도 아니라는 거야.”
아이언의 말에 찰스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입을 열었다.
“숀 병장은 현재 말디니 중사를 뒷배로 두고 있습니다.”
“말디니? 잠깐…….”
말디니라는 이름에 아이언이 찰스의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혹시 말디니 중사가 중앙의 말디니 후작가 출신이냐?”
“방계로 알고 있습니다.”
설마하니 말디니 후작가의 성을 사용할 줄은 몰랐던 아이언은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가, 돌아온 대답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돼?”
“방계 출신이라 말디니를 성으로 사용하진 못하지만, 대신 가명으로 사용한 것이니 군법상 저촉될 일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미친놈이네.”
그래도 말디니 후작가의 성을 이름에 넣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말디니 후작가에서 용인했다는 것이겠지. 북동부에 끄나풀을 심은 건가? 근데 중앙의 자존심 높은 귀족 놈들이 겨우 이것만으로 그걸 용인했다고?’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던 아이언의 머리에 번뜩이며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후…… 좋아. 근데 그걸로 이 지랄 난 건 말이 안 되거든? 다른 게 또 있냐? 장교랑 연관됐어?”
“……그렇습니다. 말디니 중사와 파울로 대위님이 서로 친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설마 그 파울로 대위라는 양반이 말디니 후작가 직계는 아니겠지?”
아이언의 질문에 찰스 상병은 말없이 고개만 숙였다.
“하! 이거 생각보다 재밌게 돌아가네. 아무리 후작가 직계라도 대위 주제에 북동부에서 깝칠 여력은 안 될 테고. 그 새끼 뒤에도 누군가 있겠지?”
“북부 사령부 참모장 밀라니오 소장입니다.”
갑자기 대위에서 소장으로 팍 튀어 오르자 아이언이 살짝 놀란 얼굴로 찰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이 정도 정보를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참모장이라……. 넌 이걸 어떻게 알지?”
“제 가문이 상가 출신입니다.”
“북부?”
“동부입니다.”
찰스의 말에 아이언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눈앞에 있는 병사 역시 평범한 녀석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북동부 관례상 상대방의 과거는 캐묻지 않는 것이 예의이기에 아이언은 더는 묻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단순히 힘든 환경만 생각했던 이곳에도 생각 외로 정치적인 요소가 다분히 남아 있었다.
“이거 재밌게 돌아가네. 북부 사령부 참모장이라면 북동부에도 영향력 있는 자가 있겠지?”
“후방 부대 쪽 보급 부대 소장과 친분이 두텁다 들었습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저 병장 새끼가 깝치는 게 말이 되지. 복잡하게 얽혀서 함부로 건들 수 없다 이거지?”
아이언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