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34)
11. 첫 부임지는 겨울산 (2)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그나마 후방으로, 게다가 군수물자 담당으로 빠지게 된 카를 슈타인을 뒤로한 채 다들 자신들이 가게 될 자대를 알아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훈련량은 얼마나 되는지, 몬스터들 수준은 어떤지, 군기는 어느 정도인지를 수소문했고, 기사들과 교수들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적절히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어떤 곳이든 직접 가 보지 않는 한 알 수는 없는 법이었다.
재수 없으면 군기가 빡센 곳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나마 편안히 생활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떤 곳이든 병사들처럼 내무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지는 않을 것이다.
장교로 가는 것과 병사로 가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이라도 편한 곳을 찾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 내가 여길 왜 왔지?”
“으…… 미치겠다.”
“과거의 내 선택을 후회한다!”
북동부에 온 이상 앞날에는 지옥밖에 없을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지옥에서도 조금이라도 편한 곳이 되기를 바라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처음엔 엘리트 부대에 배속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막상 자대 배치가 다가오자 몇몇 아이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과거의 자신을 후회했다.
이번 기수에서 후방 쪽으로 빠지는 학생들은 카를 슈타인을 포함해 스물한 명 정도 되었는데, 사실 말이 후방이지 북동부에서 완벽한 후방은 없었다.
군수품을 담당한다 하더라도 종종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막아 내는 역할을 하게 되며, 한창 전투 중인 부대에 군수품을 조달하는 위험 임무도 수행해야 했다.
한마디로 어떤 부대든 위험하지 않은 부대는 없으니 북동부에 온 이상 고생길이 훤한 셈이었다.
그렇지만 위험도가 달라지기에 조금이라도 최전선에서 멀어지고자 했다.
그러나 대다수가 최전방에 배속받으면서 그들의 바람은 무참히 외면당했다.
“그나저나 아이언은 진짜 운도 없다. 하필 거기냐?”
“그러게. 보통 2~3년은 지나서 운 없을 때 가는 곳 아냐?”
“솔직히 선봉 부대 동쪽 초소에 배속받았을 때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줄 알았거든? 근데 진짜 팔아먹은 건 아이언이었어.”
“아…… 눈물 난다. 겨울산이라니!”
동기들이 너도나도 아이언의 수색 부대행에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곳은 그래도 처음 배속받으면 특기 훈련 기간이라는 것도 있고 일반 최전선 같은 경우 익숙했기에 할 만했지만, 최전선 앞쪽의 수색 및 감시 부대 같은 경우에는 환경 자체가 최악이었다.
일단 처음 겪는 익숙지 않은 환경.
항상 긴장감 속에서 살아야 할 정도의 위험성.
식량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마른 음식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
이 세 가지만으로 짜증 나는데 아이언은 겨울산에 가기 때문에 극강의 추위도 덤으로 겪어야 했다.
“하…….”
아이언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자신은 그저 군 생활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노력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아카데미 내에서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동기들 전원과 안전하게 졸업하자는 생각으로 함께 전술을 연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동기들에게 전해 주면서 전체적인 전력을 끌어올렸다.
겸사겸사 병사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 발 벗고 뛰어다녔다.
자신이 최전선에 배치될 경우 병사들과 친하게 지낸 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너무 날뛴 것인지 최고위 간부들의 눈에 들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몬스터 전술 때문인가? 아니야. 그럼 북동부 자생 계획? 아니…… 거기까진 괜찮았을 거 같아. 뭐가 문제지? 으악! 그냥 적당히 했어야 했나? 2년 더 군 생활을 하는 게 나았으려나?”
머리를 쥐어뜯으며 겨울산으로 가게 될 자신을 생각해 침울해하는 아이언에게 몇몇 학생들이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그건 아이언을 놀리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토닥여 주는 녀석들 전원이 후방에서 군수물자를 담당하게 되는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간만 고생해. 어차피 순환 배치잖아.”
“다음 곳은 안전한 곳으로 가겠지.”
“맞어. 처음에 고생한 애들은 나중에 꿀 빤다고 하더라.”
“우린 나중에 고생할 팔자인가 봐.”
“넌 금방 실력이 느니까 그곳에서 쭉쭉 성장하겠지? 나중에 위험하지는 않겠다.”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면서 한쪽에서 히죽거리면서 웃는 걸 본 아이언은 처음으로 주먹이 불끈 쥐였다.
아이들 말처럼 순환 배치는 맞다.
다만 자신은 고스트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안전한 곳? 그딴 건 없었다.
아마 더 위험한 곳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았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안전해질 거라고?
절대 그렇지 않았다.
일단 고스트 자체가 5단계 이상만 모아 놓은 완전 엘리트 집단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뭔 짓을 해도 위험에서 벗어날 일은 없었다.
전생에서 드래곤 하트를 박아 넣고도 불완전하게 오른 게 5단계였다.
신체 개조 수술부터, 마석을 박아 넣고, 약물을 주입하는 등 별짓을 다 해서 겨우 오른 게 불완전한 5단계였다.
이번 생의 목표가 5단계인 것을 감안하면 전역 전까지 안전은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에 아이언은 우울함을 느끼면서 아카데미에서 나름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동안 최전선에서 열심히 구른 덕분인지 졸업생들에게 딱히 터치하지는 않았다.
본래부터 졸업식 전에 약간의 자유를 주면서 특별히 터치하지 않는 게 관례지만, 이번 졸업생은 1년 전체를 최전선에서 보낸 기수답게 선생들이 아카데미에서 웬만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즉, 완전한 자유를 준 것이다.
그렇게 며칠간의 자유와 함께 동기들과 마지막 친목을 다졌다.
“오늘의 메인 이벤트! 서열 1위 아이언과 2위 아리엘의 마지막 대련식이 있겠습니다!”
“우와와와!”
“마지막 서열을 가려 보자!”
“이번엔 아리엘이 꺾을 때 됐다!”
“잡기술 쓰는 더러운 아이언을 끌어내리자!”
“얼음 공주님! 더러운 강철을 부숴 주세요!”
졸업식을 앞두고 자체적으로 마지막 서열 결정전을 치렀다.
3번이었던 카드로 역시 아이언과 아리엘에게 다시 한번 도전했지만 처참하게 발렸다.
1년 정도 실전을 치렀지만 아이언의 경험에 대적하기엔 아직 부족했고, 아리엘은 그냥 아리엘이었다.
나머지 애들 역시 아이언에게 도전해 보려 했지만 카드로에게 막혀서 좌절한 이후 결국 남은 건 둘뿐이었다.
“이번엔 꼭 꺾어 볼게.”
“하하…… 사…… 살살 하자.”
흉흉한 기세를 뿜으면서 검을 쓰다듬는 아리엘을 보면서 아이언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검만으로라도 꺾어야겠어.”
다른 것에서도 천재성을 보이는 아이언이기에 검만큼은 꼭 꺾고자 마음먹은 아리엘이 기세를 끌어 올렸다.
“하…… 하하…… 하하하…….”
살기까지 뿜어내면서 이번엔 꼭 꺾어 보이겠다고 마음먹은 아리엘이 검을 겨눴다. 그러자 당황하던 아이언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세를 다잡았다.
이번 기수 중 마지막까지 제국식 기본 검법을 수련하는 건 아이언 본인뿐이었다.
중간까지는 자신을 따라 하면서 몇 명이 수련하고는 했지만, 결국 실전을 치르면서 더 좋은 검법이 필요했는지 갈아타 버리고 말았다.
“이번엔 그 방어식을 뚫어 줄게.”
“그래, 해 봐.”
아이언이 그 말과 동시에 굳건한 방어 자세를 취하는 순간 아리엘의 화살 같은 찌르기가 날아들었다.
마력이 담긴 푸른 궤적이 몇 초 만에 수십 개가 만들어지면서 아이언의 곳곳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이언은 제국식 기본 검법의 스텝으로 피하면서 검으로 튕겨 냈다.
흘려 낸다는 잡기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리엘의 검속은 그걸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빨랐고 쳐 내는 것도 간신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철 같은 그의 방어는 완벽하게 아리엘의 검속을 받아 냈다.
게다가 지쳐 가는 아리엘과 다르게 아이언의 검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4단계에 대한 감을 잡아 가기 위해 5학년 때부터 검에 마력을 압축하는 작업을 한 것이 헛것은 아니었는지 아리엘의 검격을 받아 냈음에도 마력이 담긴 빛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우와…… 미쳤네. 저게 지금 나이에 가능한 검속이냐?”
“그걸 받아 내는 아이언도 대단하다.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다 막고 있잖아.”
“게다가 지친 건 아리엘이야. 봐. 아이언의 검에 담긴 마력은 흔들림이 없잖아.”
아이들은 아이언과 아리엘의 대련을 보면서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놀랐다.
하지만 아이들조차 알아볼 정도로 대련의 결과는 아리엘이 불리했다.
아이들의 말대로 초반에 압도하며 공격하던 것과 다르게 지쳐 가는 건 아리엘이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아니지. 4단계도 완전히 들어서지 못한 아이에게 질 정도로 내가 인생을 헛산 건 아니거든.’
아이언이 그렇게 마음먹으면서 자세를 수비 자세에서 공세로 바꾸었다. 이제는 자신이 압박할 타이밍이었기에 가장 단순하지만 견고한 검세로 아리엘을 압박해 들어갔다.
누구라도 막을 수 있는 검세였지만 막는 순간 충격이 일어난다. 강철같이 견고한 마력이 담긴 검은 막을수록 상대에게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세를 취하는 자는 강철같이 견고하기에 상대보다 충격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차이로 승기를 잡아 가는 것이다.
단순하고 멋없는 검세라 무식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전장에서는 무엇보다 효율적이었다.
“윽!”
막다가 충격을 받았는지 살짝 신음을 흘린 아리엘이 황급히 스텝을 밟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비장의 한 수를 꺼내 들었다.
‘유성우인가?’
은하유성검의 오의 중 하나인 유성우.
흡사 하늘에서 유성우가 쏟아지는 것같이 수많은 푸른 빛줄기가 줄기차게 날아들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찔러 넣는 검 중에 허초가 없다는 점이다.
4단계에서 마력 활용을 통해 검에 담긴 마력을 분출하는 기예를 보일 수 있는데, 그것을 응용해 찌르기에 담긴 검격에 마력을 분출해서 수십 개의 푸른 빛줄기가 일종의 참격처럼 날아가게 하는 것이다.
즉! 아이언을 압박하는 모든 푸른 빛이 전부 실재한다는 것.
다만 4단계가 완벽하지는 않은지 중간중간 마력이 흩어지고 있어서 그나마 구분이 가능했다.
“흡!”
아이언은 크게 숨을 들이마심과 동시에 자신에게 오는 아리엘의 검격을 하나하나 격파해 나가기 시작했다.
실로 무식한 방법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강철 같은 기세로 수십 개의 검격을 말 그대로 베어 내면서 동시에 허초 사이에 진짜 검격을 준비하는 아리엘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수십 개의 검격을 한데 뭉쳐 놓은 듯한 거대한 마력이 담긴 검이 아이언을 향해 날아들었다.
동시에 아이언 역시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종 베기를 통해 아리엘의 찌르기를 향해 그대로 내리그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먼지가 휘날리면서 승패가 갈렸다.
여전히 검에 마력이 넘실거리는 아이언과 달리 아리엘의 검에서는 마력이 허망하게 흩어져 나가고 있었다.
목숨을 건 것이 아니기에 중간에 멈추기는 했지만 끝까지 했으면 누가 이겼을지는 자명한 상황이었다.
“졌네.”
“1년만 더 있었어도 내가 졌겠다.”
아이언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똑같을걸. 항상 그랬으니까……. 후…… 담에 언제 보게 될진 모르겠지만…… 만약 보게 된다면 다시 한번 붙자.”
“그래, 그땐 살살 해 줘.”
“엄살은…….”
아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바지를 툭툭 털고는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아이언 역시 웃으면서 그녀와 악수를 하고는 동기들과 함께 졸업식 전 아카데미에서의 조촐한 파티에 참가했다.
그리고 다음 날, 실로 오랜만에 모습을 보이는 학장이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면서 마지막 축사를 내뱉었다.
“북동부 아카데미 127기이자 자랑스러운 학생들이여. 부디 북동부에서 모두 빛나는 활약 하기를 바란다.”
학장의 마지막 말이 끝남과 동시에 졸업식이 마무리되면서 모든 학생들이 서로 친했던 학생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교수들 역시 학생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
“후…… 이것으로 구 북동부 아카데미의 마지막 기수를 보내게 되겠구나.”
“예?”
교수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언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다른 학생들 역시 교수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마지막 기수라니요?”
“말 그대로야. 사령부에서 얼마 전에 몬스터 웨이브가 의심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고 조사에 들어간다 했거든. 만약 그럴 경우 확실한 증거들이 나온다면 북동부 아카데미는 폐쇄되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될 거다. 그럴 경우 새로운 아카데미가 되어 버리니 기존의 기수는 의미가 없어지지.”
“허…….”
“그…… 그럼 우리 후배님들은?”
“뭐야!”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모두 패닉에 빠져서 후배님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각 부대에서 나온 장교들이 하나둘 침착하게 패닉에 빠진 학생들을 데리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언에게도 일전에 보았던 고스트가 찾아왔다.
“자네는 겨울 매 수색 부대 제4소초장으로 임명될 거다. 임무서는 봤으니 알지?”
“예.”
“급할 거 없다. 처음 1~2년 정도는 적응 기간이 될 테니 무리하지 말고 가서 적응하는 데 주력하라는 사령관님의 명이다.”
“알겠습니다.”
“준비는 된 거 같고……. 바로 출발하자.”
고스트의 말에 아이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걱정 반, 두려움 반이라는 묘한 감정으로 비룡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