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32)
10. 영입 전쟁 (5)
카이덴의 말에 제이든은 말없이 침묵했다.
하지만 그것이 긍정을 의미하는 것임을 눈치 못 챌 카이덴이 아니었다.
“하…… 꿈이 크군.”
“그렇습니까?”
제이든의 말에 카이덴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그 시점은 언제쯤이냐?”
“몬스터 웨이브는 시간이 좀 남았다 생각합니다. 다만 본격적인 전조 현상인 차원의 뒤틀림이 일어날 시기는 7년 좀 안 되게 남았다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정확하군?”
카이덴의 말에 제이든이 쓴웃음을 지었다.
“뭐 이렇게 숨기는 게 많은지……. 쯧! 알았다.”
공작가 장남이라는 신분보다 숨기는 게 더 많은 제이든을 보면서 혀를 차던 카이덴이 다시 담배를 물려다가 제이든을 보고선 꽁초를 부러뜨렸다.
“그래서 해결책은 있나? 네가 말한 대로 대재앙이라면 이걸론 부족해.”
“그렇습니다. 이렇게 준비한다 한들 3년을 버티기 어려울 겁니다.”
“3년은 무슨……. 1년도 힘겨울 거다.”
수많은 사료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힘을 모아야 간신히 전선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재앙이다.
그마저도 수많은 인간들이 죽어야만 끝나는 전쟁이다.
또한 그 상처는 몇백 년 이상을 갈 것이고, 그로 인해 파생된 몬스터들은 수없이 많아진다.
그것이 바로 몬스터 웨이브였다.
“네 말대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다면 북동부가 살아남을 가능성 따윈 없지. 일어나는 즉시 우린 후퇴해야 한다.”
“하지만 중앙에서 그걸 허락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
카이덴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빌어먹을 황족 놈들이라면 ‘제국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시간을 벌기 위해 자신들을 희생시킬 것이다.
그것은 자신도, 눈앞의 어린 소위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네 생각은?”
“길을 여는 겁니다.”
“여길 버리자고? 제국을 버리자는 말인가?”
카이덴의 말에 제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러면?”
“말 그대로 ‘길을 여는’ 겁니다.”
“길?”
“그렇습니다. 북부와 전체가 몬스터들이 중앙까지 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겁니다.”
제이든의 말에 카이덴이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 개념이 나온 것은 전생에서 한참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고 난 뒤였다.
북부가 초토화되기 시작하면서 대규모 몬스터들이 그대로 중앙까지 밀려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한 중앙의 장교 하나가 낸 꼼수였다.
북부에서 중앙까지 이어지는 요새와 길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럼 중앙은 지속적으로 소수의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동시에 북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긴 하겠지만, 그럭저럭 버티면서 중앙이 준비를 완비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전생에 제이든 역시 중앙에 버림패로 이용당해 싸우다 죽은 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제이든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카이덴을 위해서 종이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몬스터 웨이브의 특징은 광폭화와 인간들에 대한 적대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근데 신기한 건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면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더 많은 인간들이 머무는 곳으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요새를 중간중간 이런 식으로 두어서 몬스터들이 중앙 쪽으로 움직이도록 일종의 길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어차피 요새를 공략할 수 있는 몬스터들의 숫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뒤쪽의 몬스터들은 다른 곳으로 움직입니다. 그 길만 잘 만들어 주면 굳이 북부가 모든 몬스터들을 감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탐욕 때문에 성을 공략하는 몬스터들과 다르게 뒤에 있는 몬스터들은 새로운 먹잇감을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 숫자는 요새를 공략하는 몬스터들보다 많을 것이고, 북부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숫자는 계속해서 줄게 될 것이다.
하지만 괜히 몬스터 웨이브가 아니다.
북부에서 중앙으로 가는 몬스터들 숫자는 여전히 많을 것이고, 정쟁만 일삼아 부패한 중앙의 군대가 과연 몬스터들을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물론 중앙에도 엘리트들은 있었다.
문제는 좋은 가문의 혈통 능력과 좋은 실력을 가진 진짜 엘리트들은 전부 수도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럼 나머지 중앙군들은?
대부분 인맥발 혹은 뒷돈을 주면서 자리한 놈들이다.
장교들뿐만이 아니다.
병사들조차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중앙군에 머물기 위해 뇌물을 쥐여 주고, 자신들은 그 아래 상인들에게 뒷돈을 받아 손해를 메꾼다.
그러다 보니 중앙군 대부분이 부패했다.
물론 제국에서 제일 좋은 무기 체계를 갖추고 있는 곳도 중앙군이지만 과연 부패한 군인의 손에 질 좋은 무기를 쥐여 준들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버티겠지.’
제이든은 그래도 중앙군은 버틸 거라 생각했다.
과거에 이룩한 정치체제와 법이 있으니, 아무리 부패하더라도 최소한의 조건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정예병의 조건은 마력 각성, 그게 아니면 일반 병사와 같기 때문이다.
기사들 역시 마도구의 힘을 빌리거나 약물의 힘을 빌리더라도 일단 3단계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즉, 어떤 불법을 사용하더라도 힘의 최소 조건은 충족해야 한다는 것.
‘좀 더 살아남아서 중앙군이 무너지는 걸 봤어야 했는데……. 그건 아쉽네.’
제이든이 전생을 생각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자 카이덴이 가만히 고심했다.
“일리가 있긴 하군. 하지만…… 이걸 다 준비할 물자도 없고, 설령 다 준비한다 한들…….”
“몬스터 웨이브를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을 겁니다.”
제이든이 솔직하게 말하자 카이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다 준비한다 한들 완벽하게 이것이 이뤄지리라 기대하긴 어려웠다.
몬스터 웨이브는 매번 재앙의 규모도 달랐기 때문에 이번에 만약 대륙 멸망급의 강력한 재앙이 닥쳐온다면 북동부가 준비한 건 뭐건 그냥 깡그리 밀려 버릴 것이다.
“후…… 알겠다. 설명은 잘 들었으니 이만 나가 보도록.”
“예! 충성!”
카이덴의 축객령에 제이든이 경례와 함께 돌아섰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는 제이든을 바라보면서 카이덴이 한숨을 쉬었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보는 북동부의 미래가 얼마나 처참한지 어느 정도 감이 왔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제이든의 머릿속에는 벌써부터 북동부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가 전부 들어 있었는데 정작 그 자신은 답이 있음에도 애써 부정해 왔음을 깨달았다.
“몬스터 웨이브라…….”
카이덴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이든의 설명을 들어 보니 몬스터 웨이브의 전조 현상이 딱딱 들어맞고 있었다.
지금 일어나는 기현상에 몬스터 웨이브라는 답만 딱 맞춰 주면 왜 이런 현상이 진행되는지 설명되는 것이다.
“대재앙이 시작되려는데 중앙은 썩어 들어가고 있고, 귀족들은 세력 싸움에 미쳐 있군.”
카이덴이 제국의 현 상황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국이 썩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부터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정도가 너무 심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대재앙까지 일어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으니, 지금의 제국의 힘으론 절대 앞으로 닥쳐올 재앙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부관!”
“부르셨습니까!”
“지금 당장 사령부로 간다.”
카이덴의 명령에 스카이 랭스가 고개를 숙이고는 사령부로 갈 준비를 하기 위해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한 마리의 비룡 위에 두 사람이 타고 곧바로 사령부로 향했다.
“자네가 직접 찾아오다니 의외인데?”
카이덴이 직접 찾아온 것을 환영하는 크림슨 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1번을 불렀다고 들었는데…… 어때?”
“후……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안 돼. 2번 줄 테니까 이번엔 1번을 양보해. 녀석은 사령부에서 더 쓰임새가 있을 놈이야.”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크림슨이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카이덴이 한숨을 쉬면서 말하고는 품속에서 군단장을 증명하는 패를 꺼냈다.
“선봉 군단의 장으로서 요청합니다. 지금 즉시 북동부 모든 군단장을 모아 주십시오.”
“자네…….”
크림슨이 갑자기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는 카이덴을 보면서 눈을 커다랗게 떴다.
북동부 군단장급 이상만 모이는 모임은 북동부 사령부에서 긴급을 요하는 일이 있을 때만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몬스터 웨이브 전조 현상과 조사입니다.”
“뭐?”
카이덴의 말에 크림슨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으나 카이덴의 표정을 보고선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는지 이내 당황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모든 군단장을 소집했다.
그래 봤자 두 명이 더 오는 것에 불과하지만 사령부에 군단장이 전부 모이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사령부는 난리가 났다.
그리고 얼마 후 두 명의 군단장이 사령부에 도착했다.
“카이덴, 네가 요청했다지?”
“몬스터 웨이브? 너 그거 근거 제대로 안 대면 나한테 한 대 맞을 줄 알아라.”
문이 열리며 두 명의 남녀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사령관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산악 군단장 오스 테리보와 안개 군단장 포그 코즈웨이로, 카이덴의 선배들이었다.
두 사람은 사령관한테 인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카이덴이 제이든이 그렸던 종이를 품속에서 꺼내 책상에 올려 두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제이든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하며 설명하자 처음에는 헛웃음을 짓던 군단장들과 크림슨이 설명이 길어질수록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제이든의 말에 코웃음 치던 카이덴처럼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몬스터 웨이브의 전조 현상과 비슷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설명이 끝나자 사령관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걸 말한 게 이제 열두 살인 아이라고?”
“그렇습니다.”
“레온하르트 장남이고?”
“예.”
크림슨의 물음에 카이덴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군단장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천재라도 정도가 있었다.
열두 살짜리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놀라운데, 그것을 머릿속에서 꺼내 납득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근거를 대면서 설득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래도 1번은 사령부로 데려와야겠어.”
“안 됩니다. 최전선에서 제가 직접 녀석을 데리고 조사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산악 군단이 더 가까운데? 우리가 데려가는 게 낫지.”
사령관의 말에 카이덴이 반박하고, 산악 군단장 오스 테리보 역시 욕심을 냈다.
그러자 포그 코즈웨이가 멍청한 남자들이라며 욕설을 내뱉고는 말했다.
“나이를 생각해! 우리가 데려가서 육성시키는 게 훨씬 나아! 이참에 안개 군단에서 이번 졸업생들을 전부 데려가 육성시키는 게 어떨까? 잘 키워서 나눠 줄게.”
“이런 욕심 많은 여편네가! 할망구가 1번을 키울 능력은 있고?”
“두 분은 나이가 많아서 안 됩니다. 그나마 젊은 제가 머리가 돌아가니 천재를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딜 어린 노무 새끼가 끼어들어?”
“늙어서 은퇴 날만 기다리는 두 분보다는 낫지요.”
세 명의 군단장이 서로 헐뜯으며 싸우고 있는 동안 크림슨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고스트.”
가만히 침묵하고 있던 크림슨이 ‘고스트’란 이름을 입에 담자 세 명의 군단장이 입을 다물고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첫 발령지를 고스트로 낸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고스트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도 안 됩니다.”
카이덴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하자 두 군단장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북동부의 숨겨진 최정예부대이자 가장 위급한 지역에 동원되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 부대.
그게 바로 고스트였다.
그렇다 보니 들어갈 수 있는 조건도 어려웠다.
최소 5단계, 그리고 각 부대에서 공훈을 쌓은 자일 것, 담당 분야에 높은 숙련도를 갖고 있을 것 등 조건이 까다로웠다.
“1번이 신수 계약자라고 들었는데?”
“맞습니다만……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합니다.”
“그래도 그 능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지.”
카이덴의 대답에 크림슨이 단호하게 말하고는 말을 이었다.
“최근 북동부에 원인 불명의 일이 생긴 지역들이 있지? 그중에 신수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지역도 몇 곳 있다고 들었다.”
“설마…… 그곳에 파견할 생각입니까?”
“하! 사령관, 미쳤습니까?”
“차라리 절 주십시오.”
크림슨의 말에 군단장들이 단체로 반발했다.
최전선 안쪽에 위치한 감시초소.
그쪽에 배치하려는 것이다.
북동부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최전선보다도 몇 배는 위험한 곳.
그곳에 이제 열세 살을 앞둔 소년을 배치하려는 것이다.
“1번을 고스트에 배치하는 조건으로 이번 졸업생들에게서 사령부는 손 떼겠다.”
크림슨의 말에, 반발하던 군단장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합니다.”
“특수 수색대장으로 캡틴 고스트를 임명할 생각이다. 또한 근처 초소 몇 개에도 고스트들을 파견하지.”
사령관의 말에 카이덴이 한숨을 쉬면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두 군단장들 역시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모든 군단장들의 동의하에 제이든의 첫 부대가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