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30)
10. 영입 전쟁 (3)
물밑에서 열심히 북동부 부대들의 영입 전쟁이 벌어질 무렵, 제이든과 졸업반은 최전선 이곳저곳에서 실전을 쌓으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었다.
최전선의 부대와 성벽들이라고는 하지만, 다들 비슷비슷한 구조에 오는 몬스터들도 비슷했기에 점차 익숙해져 가면서 졸업반의 활약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졸업반 대부분이 2단계에서 3단계 사이를 오가는 실력자들이기 때문이다.
보통 이 정도 실력자들은 다른 곳에서 견습 기사 신분이거나, 장교 혹은 병사가 부사관으로 임관되는 경지인데 그런 인재들이 삼백여 명이나 모여서 한 곳을 맡다 보니 전공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덕분에 최전선에서 졸업반은 애물단지가 아닌 보물이 된 지 오래되었다.
“1번 소위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고맙다.”
병사 하나가 챙겨 주는 물통을 받아 꿀꺽꿀꺽 물을 마시고 제이든은 손에 든 종이를 다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물통을 건네준 병사가 궁금하다는 듯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게 뭡니까?”
“이거? 그냥 내가 개인적으로 조사하는 거.”
“조사 말입니까?”
병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여 줄까?”
“봐도 됩니까?”
“안 될 건 없지.”
제이든이 별거 아니라는 듯 종이를 병사에게 건네주자, 그가 그것들을 빠르게 읽어 나갔다.
“어? 이거…….”
병사가 눈을 크게 뜨면서 제이든을 바라보았다.
“괜찮지?”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제이든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병사를 보면서 종이를 다시 받아 들고선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런 제이든을 병사가 멍하니 바라보다 손에 들린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종이에는 바로 오늘 전투에서 일어난 일들과 함께 몬스터들의 약점이 어떤 식으로 공략되는지, 무기 효율이 어떤지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그것들을 정리한 것도 중요하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그 글의 끝에는 단순히 몬스터들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을 넘어서 이것을 이용한 전술적인 움직임까지도 적혀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배움이 짧은 병사로선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기에 곧바로 넘겨줬지만 자신이 본 것만 해도 뭔가 대단한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렇게 병사가 제이든의 모습에 다시 한번 감탄하면서 자신이 봤던 것들을 병사들에게 소문내기 시작했다.
사실 최전선의 상황에 익숙해지고 난 후, 제이든은 무력적인 활약보다 전술적 혹은 병사들에 대한 통솔을 통한 활약이 두드러졌다.
반대로 2번의 경우 압도적인 무력을 통한 활약이 많았다.
3번도 그 뒤를 따라가고 있긴 하지만 2번만큼 압도적인 활약은 아니었다.
압도적인 재능과 그에 걸맞은 검술, 거기에 실전 경험까지 더해지자 미친 듯이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2번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보이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통 기사급 실력자들은 좀 더 위험한 곳에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부대 통솔을 위해 기사급 장교를 하나씩 배치하는데, 기사급 실력자들 역시 역시 중대 하나에 한 명 정도를 배치하기에 혼자 무쌍을 찍는 것처럼 활약하긴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 졸업생들은 수준이 높기 때문인지 저마다 몬스터들을 하나씩 맡아 주니 2번이 순식간에 하나를 처리해 버리고 순차적으로 다른 몬스터들까지 하나하나 격파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병사들 눈에는 압도적으로 무쌍을 찍는 것 같은 착시 효과가 발생했다.
거기다 3번을 필두로 한 자릿수 학생들의 활약 역시 두드러지기 시작하면서 병사들을 통솔하고 중간중간 도움을 주는 선에서 그치는 1번의 활약은 점점 묻혀 갔다.
비록 직접 도움을 받은 병사들은 1번이 얼마나 활약했는지를 알기에 침을 튀기면서 설명했지만 다른 병사들 입장에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물통을 건넨 병사가 제이든이 어떤 것을 하고 있는지를 소문내기 시작하면서 최전선에서 있는 모든 이들이 제이든이 작성한 것들을 확인하려 했고, 그때마다 그것을 숨김없이 보여 주면서 소문이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군단장에게도 소식이 들어갔는지 최전선 요새로 제이든을 직접 호출했다.
입학하던 날 북동부 아카데미로 데려다줬던 스카이 랭스를 따라 제이든이 요새로 가자 군단 사령부에 있는 많은 이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소문을 들었는지 하나같이 흥미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제이든이 그런 이들의 시선을 묵묵히 견뎌 내면서 군단장이 있는 곳까지 가자 스카이 랭스가 조심히 문을 두드렸다.
똑똑!
“군단장님, 1번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와.”
“충성! 북동…….”
“됐고 거기 앉아.”
선봉 군단장이자 최전선을 지키는 북동부 최강의 군단장 카이덴 월이 제이든을 자신의 맞은편에 앉혔다.
“얼굴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가 생기다니 운이 좋군.”
스카이 랭스가 나가자 카이덴이 재밌다는 제이든을 바라보았다.
“너도 내가 왜 불렀는지는 알겠지. 길게 말할 것 없이 소문에 대한 네 설명을 듣고 싶군.”
“어떤 것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전부.”
카이덴이 전부 듣겠다고 하자 제이든의 눈이 커졌다. 바쁘기로 유명한 카이덴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시간을 할애할 거란 걸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래 걸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군단장의 허락에 제이든이 잠시 숨을 가다듬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첫 번째는 화약과 총기를 이용한 전술 활용을 지금보다 폭넓게 가져가는 것.
두 번째는 자신이 어느 정도 조사한 근거를 바탕으로 미래 지식을 결합해 정리한 몬스터에 대한 약점과 그것을 이용한 전술.
세 번째는 대규모 화약을 공급받을 방안.
네 번째는 미래에 개발될 무기를 자신의 상상력으로 대체하면서 언급하는 것이었다.
제이든의 설명을 쭉 들은 군단장이 턱을 괴면서 상념에 젖어 들었다.
지금 하는 말이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흠…… 몬스터의 약점을 이용해 총기의 전술을 폭넓게 확장시키는 건 확실히 괜찮군. 북동부 사령부에 건의해서 정식으로 부대 하나를 창설해도 될 정도야.”
“감사합니다.”
“문제는 세 번째부터인데……. 이거 1학년 때 네가 냈던 리포트를 발전시킨 건가?”
“그렇습니다.”
제이든의 대답에 카이덴은 고민에 빠졌다.
“그게 정말 가능하리라 보나?”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1번과 2번의 효과가 증대되려면 화약이 대량으로 필요하고 군수품 역시 대량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현재 지원받는 금액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필수……라는 건가?”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이든이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카이덴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가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서 두꺼운 서류 뭉치를 꺼낸 카이덴은 제이든의 앞에 툭 던졌다.
“읽어 봐.”
카이덴의 명령에 제이든이 조심스럽게 두꺼운 종이 뭉치를 들고서 빠르게 읽어 나갔다.
곧 제이든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이건……?”
“비슷하지?”
카이덴이 피식 웃으면서 묻자 제이든이 멍하니 시선을 내려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직접 작성한 거다.”
“이걸 정말로…….”
제이든이 멍하니 카이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런 제이든의 시선이 재밌다는 듯 카이덴 역시 마주 바라보았다.
카이덴이 작성한 것에는 북부 연합안이 적혀 있었다.
먼저 북동부가 북부와 연계해 세력을 뭉치고, 북동부 상인 연합을 끌어들여 북부만의 정치 세력을 결성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과 이해가 비슷한 이들을 끌어들이는 것, 예를 들어서 서부와 북부 야만족과의 동맹을 통해 중앙에서 무시하지 못할 군부 세력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너랑 내가 생각이 비슷하네. 북동부의 발전을 위해서 북부와 북동부 상인들을 끌어들이고 최종적으로 서부까지 끌어들여 북부 지역 전체를 제국의 중앙 권력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것.”
“놀랍습니다. 1~2년 준비하신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이곳에 머물면서 틈틈이 수정하고 보완한 것이니 족히 십수 년은 넘었지?”
제이든의 말에 카이덴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근데 말이야…… 한 가지 의문점이 있어. 보통 군인들 혹은 귀족들은 이렇게까지 생각은 안 해. 왜? 이게 실행되는 순간 황실 권력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든.”
“그건…….”
마치 거기까지 생각 못 했다는 듯 표정 연기를 했지만 제이든의 그런 연기가 가소롭다는 듯 카이덴이 말했다.
“처음엔 어려서 그런 줄 알았는데 네 계획을 듣고 나니까 확신이 들더군. 넌 현 황실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아닙니다. 절대 황실에 대한 제 충성심이…….”
“개소리. 나한텐 끝까지 말 안 했지만 네 리포트에는 서부의 상인 연합을 자극시키는 것, 남부 분쟁을 이용하는 것까지 적혀 있었다. 그걸 종합하면 뭔지 알아?”
카이덴이 그렇게 말하면서 제이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중앙의 고립. 그것은 곧 이제껏 이어져 오던 황실 권력을 바닥까지 끌어내리겠다는 생각이다. 아닌가?”
카이덴이 그렇게 말하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일 때까지 제이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눈치챌 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단순 어린애의 치기 정도로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에 알게 모르게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넣었는데,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자신의 1학년 리포트를 읽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네가 생각한 거…… 황실에 대한 불만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생각이거든. 단순히 지원이 적다, 북부를 홀대한다 정도가 아닌…… 황실 그 자체에 대한 불신. 후…… 너한텐 그게 있어.”
카이덴이 그렇게 말하면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마치 자신 역시 그러하다는 것처럼 진중한 눈빛으로 제이든을 바라보았다.
심중에 어떤 것을 품고 있는지 모조리 파헤치려는 눈빛에 제이든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과거에 난 수도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었지. 근데 황족의 방계 하나 때문에 그 길이 무너졌다. 그리고 북부로 좌천되었고, 크림슨 영감이 날 이곳으로 보냈지. 그게 벌써 수십 년 전 일이야.”
“…….”
카이덴은 자신의 과거 얘기에 말없이 침묵하는 제이든을 보면서 담배를 비벼 끄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불만은 없어. 내가 병신같이 당한 거니까. 근데 여기 와 보니까 나 하나가 아니더라고? 그것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좌천된 이들만 수십이 넘어가니 뭔가 의심이 생겼어.”
“수십……입니까?”
“그래, 1년에 수십 명의 엘리트들이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북부에 좌천되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했지. 그리고 나름대로 조사해 본 결과, 결론은 하나더라고.”
‘황실의 중앙집권 공고화를 위한 가지치기.’
제이든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자 카이덴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황실의 가지치기.”
카이덴이 그렇게 말하면서 제이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넌 이걸 알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