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8)
10. 영입 전쟁 (1)
제이든과 매일같이 함께 있던 두 마리의 새들이 어디론가 사라진 후, 미친놈 같던 제이든의 훈련은 멈췄다.
대신 뭔가 진중한 표정으로 검을 들고 있는 날이 늘어났다.
학생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체 뭘 하는지 궁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각자의 훈련에 집중했다.
제이든이 미친 짓을 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제이든의 기행이 계속되자 몇몇 교수들이 지나가는 척하면서 가만히 검을 들고 있는 제이든을 바라보았다.
그때 한 기사가 ‘대체 뭐 하는 거지?’하는 표정을 지으며 살펴보더니 신기한 표정으로 바뀌며 기행의 정체를 중얼거렸다.
“마력 압축?”
검에 아주 미량의 마력을 집어넣어 한 점 한 점 압축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압축된 마력검을 만들 수 없으니, 미량의 마력을 넣어 계속 압축하는 작업을 하면서 숙련도를 늘리고 있던 것이었다.
“4단계에 다다르는 방향을 벌써 잡았다고?”
마력 응용 단계인 4단계는 저마다 자신이 선택한 검술 혹은 길을 따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력을 응용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그 길을 찾는 것은 지난한 수련을 반복하고 다양한 실전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제이든은 벌써 찾아낸 것이다.
“대체…….”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하는 날씨 속에서도 멍하니 압축 작업을 하고 있는 제이든을 기사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처음 기초 검술만 수련할 때만 하더라도 그저 기본을 탄탄히 다지려는 건가 싶었다.
제국식 기본 검법만 익힐 때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가 찾은 길 역시 지극히 단순했다.
그저 압축하고 또 압축해서 무엇보다 단단한 검을 만들어 내는 것.
단순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어려웠다.
어떠한 것을 단순하게 반복하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렵다.
어떤 경지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완벽하게 해냈다고 생각해 자만할 수도 있고, 또 지루하기에 더 완벽한 것을 계속 추구하기보다 멈춰 서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복잡한 검식, 더 어려운 마력 활용법 등이 많아지고 그것들을 통해 더 강력한 검술을 창조해 냈다.
하지만 사람은 많으니 간혹가다 특이한 자가 등장하기도 하는 법.
대륙의 오랜 역사 속에서 제이든처럼 단순한 검술만으로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렀던 존재도 있긴 했다.
그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강철의 검.
제이든은 바로 그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강철이라…….”
기사가 제이든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우직하게 검을 들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강철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꼭 이루길 바라마.”
선배로서, 또 같은 검의 길을 걷은 자로서 제이든이 꼭 목표한 바를 이루길 바랐다.
그렇게 기사에게 경악감을 심어 준 제이든의 기행은 5학년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고, 마침내 제이든을 비롯한 모든 학생들은 졸업반이 되었다.
북동부 아카데미의 모든 학생들은 졸업반을 가장 두려워했다.
유급, 그리고 최종 평가에 따라 엘리트 부대에 갈지 아니면 그저 그런 곳으로 빠질지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또 정식 장교가 아닌 견습 생도 신분으로 실전을 치러야 하기에 일반 병사들에게 무시당하기도 일쑤였고, 그렇다 보니 짐짝 취급받는 것도 감내해야 했다.
그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마침내 북동부 아카데미에서 졸업이란 걸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학년에게는 그건 별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땡! 땡! 땡! 땡!
“다이어 울프 떼다!”
일반적인 울프보다 몇 배 이상 큰 거대한 늑대 무리가 달려왔다.
마력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정상적인 점프 능력과 강철 같은 발톱 때문에, 배는 두껍고 감히 점프로 넘볼 수 없을 만큼 높게 지은 성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이어 울프들은 위협적이었다.
잘못 대응했다가는 성벽 위로 다이어 울프가 올라올 수도 있고, 그 순간 전열이 무너질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상대해야 하는 놈이었다.
“소위님! 조심하십쇼.”
한 병사가 다이어 울프가 벽에 달라붙었다가 점프하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외치는 순간, 소년이 폭탄을 아래로 툭 던졌다.
쾅!
-깽!
똥개가 맞는 소리와 함께 힘껏 점프했던 다이어 울프가 다시금 아래로 추락했다.
그저 툭 던진 폭탄 하나에 성벽 위로 올라올지도 몰랐던 다이어 울프를 아래로 보낸 것이다.
큰 폭발력이 아니기에 죽지는 않겠지만 힘들게 올라온 걸 다시 떨어트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충격이 없을 수는 없었다.
“뚜…… 뚫렸다! 막아!”
“어떤 새끼가 뚫린 거야!”
“막으라고!”
병사들이 악을 쓰면서 성벽 위로 올라온 다이어 울프를 막기 위해 창을 잡았다.
전부 강제 각성을 통해 마나를 품고 있기 때문에 다이어 울프에게 힘에서 확 밀리지는 않지만 덩치와 품고 있는 마력의 차이 때문에 점차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 미…… 밀린다!”
병사 하나가 점차 밀려나는 자신의 다리를 보면서 두려움에 이성을 잃을 때였다.
성벽 끝에서 악을 쓰면서 버티는 병사를 향해 한 아이가 재빠르게 다가갔다.
“진정해.”
어느새 뒤에 나타난 아이 하나가 진정하라는 말과 함께 다이어 울프를 향해 마탄을 발사했다.
타타탕!
-크르…….
눈 쪽으로 발사해서 그런지 다이어 울프는 본능적으로 앞발을 들어 보호했다.
그 순간 밀려나던 병사가 성벽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병사를 끌어 올리고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크왕!
다이어 울프가 거친 울음소리와 함께 자신에게 꽂힌 창을 부러뜨리면서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소…… 소위님!”
거대한 다이어 울프가 아이를 단번에 찢어발길 것 같은 상황에서, 소년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다이어 울프의 배 쪽을 가르고 지나갔다.
푸르스름한 마력이 담긴 검은 단번에 다이어 울프의 가죽을 찢어발기면서 치명상을 입혔다.
하지만 명색이 중상위권에 위치한 다이어 울프답게 고작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 듯, 꼬리를 이용해 뒤에서 공격해 오는 병사들을 견제하면서 소년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앞발을 휘두르거나 이빨로 물어뜯으려 할 때마다 소년은 믿을 수 없는 움직임으로 죄다 피해 내면서 목덜미, 허리, 배 등을 차례차례 베어 냈다.
-크르…….
“고생했다.”
콱!
피를 철철 흘리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다이어 울프에게 그 한마디와 함께 미간에 검을 꽂아 마무리한 소년이 다음 먹잇감을 향해 움직였다.
소년은 어디 엘리트 집단에서 나온 것처럼 정확한 사격 자세로 다이어 울프의 눈을 노리고 마탄을 쏘거나 성벽 위로 거의 다 올라온 다이어 울프에게 폭탄을 날리는 등,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다이어 울프가 성벽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았다.
동시에 넘어온 다이어 울프 역시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체력 소모를 최소화해 가면서 죽여 나갔다.
“흥분하지 마. 점프할 거 같은 놈들에게는 폭탄을 던져.”
“이쪽은 거의 올라왔습니다.”
“창으로 견제해. 지금 간다.”
소년이 또다시 냉정한 표정으로 위험에 빠진 병사를 향해 바삐 움직였다.
전장에서 수십 년을 구른 병사처럼 냉철한 판단으로 적절한 도움을 주는 소년을 보면서 고작 몇 분 만에 병사들에게 그 소년, 1번은 진짜 ‘소위’가 되어 있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1번 소위가 압도적이긴 하지만, 2번, 3번을 비롯해 다른 소위들 역시 전쟁터에서 믿을 수 없는 활약을 보여 주고 있었다.
“끝났네.”
소년이 땀을 훔치면서 말하자 병사들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삼백여 명의 소위들의 활약에 약간의 경상자만 나온 상태에서 그들은 안전하게 다이어 울프들을 쫓아냈다.
믿을 수 없는 활약에 병사들은 경악했고, 급히 달려온 장교들은 신입들이 정말 보고서대로 미친 활약을 보이자 놀라워했다.
“정말 막아 냈군.”
최전선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대장이 아카데미에서 온 보고서를 들고 한 구역을 온전히 졸업반 학생들에게 맡기라고 했을 때만 해도 모든 장교들이 반대했다.
이곳은 최전선이라 절대 도박하면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관은 밀어붙였고, 결국 삼백여 명의 소위들이 그나마 안전한 구역에 병사들과 함께 배치됐다.
기사도, 장교도 없이 아이들만 병사들과 덩그러니 배치된 것이다.
최전선의 가장 안전한 곳에 배치한 아카데미 졸업반 학생들이었으나 영악한 다이어 울프들은 아이들을 보자마자 곧바로 일부를 빼내 빈 공간을 공격해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기사들은 움찔거리면서 위기에 처하면 언제라도 도우러 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이 알아서 안전하게 끝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선두에는 철모에 1번이 박힌 소년이 있었다.
“미쳤군.”
“그러게. 이번 소위님들은 다들 괴물들인가?”
“베테랑들인 줄 알았어.”
안전하게 다이어 울프들을 쫓아낸 병사들 역시 다들 휘둥그레진 눈으로 한쪽에 모여 있는 삼백여 명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병사들은 삼백여 명의 신출내기들만 데리고 이곳을 막으라는 소리에 온갖 불만을 터뜨렸었다.
베테랑 장교 하나쯤은 파견해 줘야 할 텐데 그런 것 없이 신출내기들만 갖고 막으라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말만 소위지 사실상 견습 장교들에 불과한 아이들을 데리고 막으라니 속이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안전한 곳이라지만 최전선에서 완전히 안전한 곳 따윈 없었다. 언제라도 몬스터들이 넘어올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다이어 울프들이 공격해 들어왔고, 베테랑 병사들은 악을 쓰면서 어떻게든 막기 위해 움직였다.
벌벌 떨 아이들을 믿느니 자신들이 모든 걸 다 막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판단은 오판이었다.
“충성! 군사 아카데미 소속 소위 1번, 임무 완료했습니다.”
“충성. 다들 수고했다. 실전은 처음이라 힘들겠지만 앞으로 3개월간 이곳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익숙해져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불만 갖지 말고 최대한 빨리 익숙해지도록. 알겠나?”
“예!”
“좋다. 다들 전투에 임하느라 지쳤을 텐데 오늘은 푹 쉬도록.”
대대장의 명령에 그제야 긴장을 푼 학생들이 저마다 성벽 근처에 앉기 시작했다.
“와…… 다이어 울프 드럽게 크네.”
“그러게. 그나저나 1번, 너 장난 아니더라?”
“그러는 168번도 병사들을 지휘해서 다이어 울프를 죽였잖아.”
“헤헤~ 봤어?”
168번이 쑥스럽다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다들 자신들이 다이어 울프를 어떻게 쫓아냈는지 자랑하느라 사방이 소란스러워졌다.
“근데 이번에 겪어 보니까…… 무조건 3단계는 올라가야겠더라.”
“그러게. 얼마 안 남은 거 같긴 한데…… 감이 안 잡히네.”
학생들은 잡힐 듯 안 잡히는 3단계 때문에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특히 오늘 다이어 울프를 상대하면서 그 갈증은 더 심해졌다.
현재 3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세 명이었는데 1, 2번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둘을 쫓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해 겨우 벽을 뚫은 3번 역시 오늘 다이어 울프를 막아 내는 데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줬다.
벽을 뚫은 지 한 달도 안 된 3번이 고작 미약하게 검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이어 울프의 두꺼운 가죽을 가르고 상처를 입혔던 것이다.
병사들의 도움이 있었다 해도 직접 상처를 입히고 죽일 수 있는 것과 그저 밀어내거나 시간만 끄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학생들 전원의 3단계에 대한 갈망은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