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4)
8. 제이든의 가치 (5)
대트롤 방어전을 치른 4학년들은 그 후로도 몇 번의 전투를 더 치러야 했다.
트롤들의 공격으로 뚫린 안전 지역을 향해 틈틈이 몬스터들이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3학년 지역의 중형 몬스터들이 밀고 오면서 사령부에서 온 기사들이 정신없이 싸우기 시작했는데, 대형 몬스터들과 달리 중형 몬스터의 경우 4학년들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기에 기사들에게 힘을 보탰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사상자가 나왔지만 다행히 학생들 중에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기사들과 교수들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학생들만큼은 죽게 하지 않기 위해 애쓴 결과였다.
“일동 경례!”
사령부에서 파견된 기사단장의 말에 모두들 일제히 경례했다.
경례 대상은 이번 전투에서 희생된 자들의 관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레인저, 기사는 물론이고 북동부 병사 역시 이곳에 파견되어서 많이들 죽거나 다쳤다.
모든 전투가 끝나고, 성공적으로 막았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였다.
전쟁이란 언제나 씁쓸함을 남기는 법이었고, 이번 생의 전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은 사람들은 언제나 동료의 죽음에 슬퍼하고, 또 잊고 살아간다. 몬스터들이 끝없이 몰려오는데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천에 깔린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선 동료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싸워야만 했다.
“이것으로 해산한다.”
전사한 전우들의 관을 직접 들고 비룡이 운반하는 수송 상자에 넣는 것을 마지막으로 교수는 모든 학생들을 해산시켰다.
하지만 학생들은 곧바로 해산하기는커녕 멍하니 죽은 전사자들이 떠나가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아이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위험하다고 경고하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대형 몬스터 전술학 교수가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앞으로 너희들이 겪을 일은 이번보다 훨씬 심할 거다. 수많은 동료들의 죽음을 봐야 할 거고, 너희들 역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 모든 것을 겪고 나면…… 저들처럼 높은 경지에 올라 있겠지.”
교수가 그렇게 말하면서 동료의 죽음에도 묵묵히 일을 하는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수없이 많은 동료의 죽음을 봐서 그런지, 그들의 눈은 눈물마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메말랐다.
“전쟁에선 간혹 영웅이 탄생한다.”
교수가 그렇게 말하며 제이든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그가 영웅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동료의 희생이 있었음을…….”
교수가 그렇게 말하면서 씁쓸한 표정으로 전사자들의 시신을 싣고 가는 비룡 부대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점처럼 작아져 가는 비룡 부대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바라보던 교수는 학생들에게 해산하라고 손짓하고는 반쯤 무너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모든 전투가 끝나고 전사자들에 대한 예우와 뒤처리까지 끝난 후 한 일은 무너진 아카데미의 건물들과 물건들을 다시 복구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북동부의 병력 역시 전후 처리를 위해서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동안 제이든을 비롯한 4학년들은 다음 학년을 위해서 준비했다.
서열 결정전도 없고 유급될 위험도 없지만,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빴다.
그 이유는 북동부의 숲이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위험이 가중되었기 때문이다.
대형 몬스터 서식지인 4학년 아카데미가 있는 지역은 이번 사태로 어느 정도 정리되었지만, 문제는 5학년 지역과 저학년 지역이다.
검은 숲의 주인인 신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지고 몇몇 고위 몬스터들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몬스터들 간의 영역 다툼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단순히 일부에 그치지 않고 북동부 전방 전체로 혼란이 퍼져 나갈 기세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4학년 아카데미 지역이 버텨 내면서 이곳을 임시 거점 삼아 다시금 전선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4학년 아카데미가 무너졌다면, 대형 몬스터들이 저학년 지역까지 밀고 내려가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을 것이다.
모두의 희생으로 아카데미를 지켜 내고 복구 작업까지 바쁘게 이루어지면서 순식간에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그동안 북동부 사령부 역시 어느 정도 복구를 끝냈는지, 미루고 미룬 포상을 주기 위해 4학년 아카데미에 사령관이 직접 찾아왔다.
“모두들 연병장으로 집합한다.”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일제히 연병장으로 집합하기 시작했다.
트롤과의 전쟁 이후 스스로의 부족함을 절감했는지 학생들은 미친 듯이 수련하고 있었는데, 그렇게라도 첫 전투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라는 생각에 교수들도 웬만하면 터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카데미 학장과 사령관이 직접 찾아온 이상 질서 정연하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거기, 똑바로 서라.”
“줄 맞춰.”
“대열 흩트리지 마.”
교수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학생들의 대열을 정리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연병장에 설치된 단상에 학장이 올라왔다.
“모두들 반갑다. 신입생 때 보고 처음이군.”
북동부 아카데미를 담당하는 랜던 학장이 등장하자 교수들과 학생들 전원이 각을 잡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곳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일은 학장 입장에선 매우 유감인 일이나, 여러분들이 잘 헤쳐 나갔다는 사실에 또한 기쁘기도 하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단순히 여러분들의 결기와 용맹을 칭찬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학장이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대들은 군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충분히 증명했고, 난 학장으로서 그것에 보답하고자 한다.”
학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은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여러분의 용맹에 보답하기 위해 조기 승급을 건의했고 사령관께서 허락하셨다. 앞으로 여러분은 졸업반이 되는 즉시 소위로 임관할 것이며 졸업과 동시에 중위로 승진할 것이다.”
학장의 말에 학생들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고작 1년을 앞당겨 주는 것에 불과하다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건 굉장히 큰일이었다.
아카데미 역사상 소위로 졸업하는 자가 없다 보니 굉장히 큰 영예였기 때문이다.
“남은 1년간 잘 준비해서 정식 임관에 부족함이 없길 바란다.”
학장이 그 말을 끝으로 나가자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학년 전체를 조기 진급시키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지자 모두가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단상에 북동부 사령관이 직접 올라왔다.
그러자 환호하던 학생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북동부를 맡고 있는 크림슨 헤일로라고 한다. 몇몇 얼굴은 기억에 남는 것도 같아서 굉장히 반갑군.”
크림슨이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어린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고작 어린아이들이 믿을 수 없는 전공을 세웠다는 것에 전원 훈장이라도 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이들에게 훈장을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 무사히 커서 아카데미 생활 동안 몇 가지 공만 더 세운다면 4학년 대부분이 훈장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앞서 학장님이 말씀한 것처럼 여러분은 믿을 수 없는 용맹함을 보여 주었다. 모두가 용맹하게 싸웠고 아카데미를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특별한 공을 더 세운 인물이 있다 들었다. 1번?”
“예!”
“앞으로 나와라.”
크림슨이 직접 호명하자 제이든이 긴장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뒤에 있는 학생들의 얼굴엔 부러움이 담겼다.
“그대는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믿을 수 없는 공을 세웠다. 트롤에 대한 새로운 전술을 도입했으며, 아카데미 활약 당시 교수와 기사를 살리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에 북동부 사령관의 직권으로 자네에게 철십자 훈장을 하사하고자 한다.”
크림슨의 말에 모든 학생들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몇몇 교수들 역시 놀란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사령부에 끈이 닿아 있는 교수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싶었지만 몇몇 교수들은 진짜 몰랐는지 놀란 눈으로 옆의 교수에게 물을 정도였다.
“그대의 공을 인정해 황색 철십자 훈장을 하사하는 바이다. 앞으로 정진하며 제국을 빛낼 인재로 크길 바란다.”
크림슨의 말에 제이든이 경례를 올리면서 그가 걸어 주는 작은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
철색 십자가에 윗부분에 황색 보석이 작게 박혀 있는 훈장은 북동부만이 받을 수 있는 독특한 것이었다.
제국의 다른 지역에서 흔히 가슴에 달아 주는 훈장과 다르게 북동부는 훈장을 목걸이의 형태로 작게 만들었다. 여기에 훈장을 받은 지역의 마크를 새겼는데, 제이든의 경우에는 황색 보석이 박힌 윗부분에 아카데미의 문양을 박았다.
또 어떤 공을 세우더라도 일단 황색 보석부터 시작한다는 점 역시 독특했다.
공훈을 쌓으면서 일정 공훈치를 넘을 때마다 황색, 녹색, 적색, 청색으로 철십자의 끝에 하나씩 보석을 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일생에서 황색 철십자 훈장은 한 번만 받을 수 있었다.
“이 철십자 훈장의 가운데에 은독수리까지 박아 넣길 바란다.”
크림슨이 그렇게 말하면서 제이든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제이든이 그에게 다시 한번 경례한 후 뒤로 돌아서 한 번 더 경례했다.
그렇게 경례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자 사령관이 내려오고 학장 역시 모두가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연병장에서 물러났다.
“다들 수고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만큼 자유 시간을 주겠다. 모두 편히 쉬도록!”
대형 몬스터 전술학 교수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자 모든 학생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제이든에게 다가왔다.
“와…… 이게 철십자 훈장이구나.”
“이걸 벌써 받다니…… 미쳤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도 미친 거지. 졸업반에 소위 임관이라니!”
“그러게. 잘하면 우리도 졸업식 때는 훈장 하나 정도는 받는 거 아냐?”
학생들이 흥분하면서 제이든의 훈장을 구경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3번과 심드렁한 표정의 2번은 관심을 끊고 다시 검을 집어 들었다.
강해지는 것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2번이나 준천재에 속하는 3번이나, 제이든이 받은 훈장에 큰 관심은 없었다.
황색 훈장 정도야 그들도 노력하면 몇 년 안에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반응이야 어쨌든 동기들은 처음 보는 훈장의 모습에 몹시 흥분했는데, 제이든의 훈장 소식에 흥분한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교수들 역시 제이든이 드디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며 흥분했고, 북동부 역시 제이든의 훈장 소식에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하면서 담소를 나눌 정도였다.
그렇게 제이든에 대한 소문이 북동부에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면서 사령부뿐만 아니라 최전선에도 ‘4학년 1번’이란 호칭이 조금씩 알려졌다.
“열 살이라……. 이제 곧 열한 살인가?”
“그렇습니다.”
북동부에서 알아주는 천재이자 엘리트인 스카이 랭스가 굳은 자세로 말하자 중년의 남자가 피식 웃었다.
“재밌네. 데려오면 쓸 만하겠어.”
“바로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사령부에서 낚아채기 전에 여기로 데려와.”
남자의 말에 스카이 랭스가 경례를 하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남자가 스카이 랭스가 준 보고서를 보고선 의자에 털썩 앉았다.
“키울 만한 녀석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최전선을 지키는 방패이자 크림슨 헤일로가 오기 전 북동부 최강으로 군림하던 1군단장 카이덴 월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