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9)
7. 저학년 서열 결정전 (3)
그렇게 2학년 톱이 결국 또 한 번 동기였던 자에게 패배를 당한 후 2학년과 3학년 사이에 순위 변동이 일어났지만,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
애초에 학년을 넘어 월반하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재능으로 되는 게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교수들이 보기에 진짜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1학년들이 서열전에 참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들 그동안 준비들은 잘했나?”
“예!”
기사의 말에 1학년생 전원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동안에도 1학년들은 2학년들이 3학년들한테 밀리는 모습을 보고 열심히 단련했지만, 서열 결정전이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열심히 했다.
그런 그들의 노력을 알기에 기사들도 온전히 서열 결정전에 임할 수 있도록 과도한 수련도,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노하우 등을 알려 주면서 1학년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만족스러운 대련을 할 수 있게끔 도왔다.
그렇게 미친 듯이 수련을 하는 동안 2학년의 순위 변동이 완전히 끝났다.
“이제 곧 헤어지겠네. 아쉽다.”
1학년 학생들이 제이든을 보고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2단 승급을 할 예정인 제이든이라 이제는 보내 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자신들은 잘해야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게 전부였다.
4학년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애들은 13번, 3번과 1, 2번 그리고 2~30위 안에 있는 애들 중 절반 정도일 것이다.
“뭐…… 가 봐야 아는 거지.”
제이든이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어 보였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충분히 자신 있었다.
2학년 톱이 3학년을 이기면서 월반했기 때문이다.
비록 등수는 생각보다 높지 않지만 2학년 톱이 올라갔으니 사실상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2학년 톱과 비등했던 1번과, 그와 비슷한 실력을 지닌 2번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다른 애들인데, 30번 애들까진 잘만 하면 비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머지 애들 역시 충분히 월반이 가능해 보였다. 그동안 같이 훈련하면서 매번 순위 변동이 뒤죽박죽될 정도로 강해졌기 때문이다.
“후…… 할 수 있을까?”
“해내야지.”
“할 수 있다!”
“아자!”
다들 긴장 어린 표정으로 마지막 수련을 끝내고 일찍 잠에 들었다.
며칠 전부터 무리한 수련 대신 가볍게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끌어 올렸고, 꾸준한 스트레칭으로 몸까지 최상의 상태를 만들어 두었다.
그렇게 긴장 반, 설렘 반이라는 감정으로 다음 날을 맞이했다.
아침부터 모두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연병장에 모였다.
어느새 매일같이 연병장에 모이는 게 일상이 된 아이들이지만 오늘따라 삼백여 명의 학생들은 연병장이 어색했다.
“오늘 서열 결정전을 하기 위해 2학년 아카데미가 있는 곳으로 간다. 다들 그동안 준비를 잘해 온 만큼 떨지 말고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도록.”
1학년을 대표하는 교수인 군사학 교수가 그렇게 말하고는 뒤를 돌자, 곧 교수들이 학생들을 인솔해서 한 사람씩 비룡에 태우고 2학년 아카데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삼백여 명의 학생들이 2학년 아카데미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이미 서열 결정전에 의해 패배하거나 유급된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현시점에서 2학년 학생들뿐만 아니라 유급된 3학년 학생들까지 모여 있는 것을 본 1학년 학생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13번.”
“예!”
자신을 가장 먼저 부르자 제이든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1학년 교수들이 평가한 현시점 1위가 너군. 나오도록.”
“예.”
젊은 교수의 말에 제이든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3학년 명찰을 단 학생 하나가 걸어 나왔다.
“3학년 278번. 열다섯 살이다.”
“1학년 13번. 아홉 살입니다.”
자신을 밝히는 3학년 학생의 말에 제이든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자신보다 훨씬 큰 키와 근육을 가진 남자아이를 보면 위축될 수 있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 학생 역시 패배자일 뿐이었다.
2학년 톱이 월반한 게 확실하다면 그다지 어려울 게 없는 상대였다.
“시작.”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3학년 학생이 빠르게 두꺼운 철검을 찔러 들어왔다.
정석적인 돌진 형태로 자세를 잡고 밀고 들어오자, 순간적으로 황소가 달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3학년 학생이 마나를 한계까지 끌어 올리면서 뿜어지는 마나 때문에 주변 공기가 묵직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 기세는 전쟁터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제이든이 돌진하는 기세를 순식간에 비껴 내면서 반격을 가하자 3학년 학생이 당황하면서 황급히 검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1분여간 제이든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하다가 그대로 끝나 버렸다.
“졌다.”
“13번 승. 저기로 가 있도록.”
순식간에 승리한 제이든이 한쪽 구석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3번 역시 승리를 거머쥐었고, 1번과 2번 역시 3학년들을 상대로 힘들게 승리했다.
1학년 상위 서른 명의 경우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승리를 했다.
패배한 학생들 역시 전혀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열 결정전이 진행되는 동안은 언제든 기회가 있었다. 끝나기 전까지 2단 월반의 기회가 있는 만큼 이를 악물고 싸움을 복기했고, 그 밖의 학생들 역시 어떻게든 제이든과 같은 곳에 있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이었다.
대부분의 1학년 학생들은 선배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서열 결정전에서 패배한 학생들만 모였다고 해도, 그들 역시 엘리트들이었다.
1학년이 노력한 만큼 그들 역시 노력했기에 서열 결정전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저마다의 사정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월반을 하기 위해, 유급을 하지 않기 위해 서열 결정전에 임했고, 며칠이 지나자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3학년 아카데미로 갈 놈들은 확정됐군.”
아직 서열 결정전이 끝나지 않았지만, 3학년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1학년들이 그곳에 가면 또 다른 서열 결정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담당 교수는 일정 문제 때문에 확정된 학생들을 데리고 3학년 아카데미로 향했다. 비룡에 몇 명씩 타고 이동하자 금세 3학년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이동해야 해서 도보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리였지만, 날아서 가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이야~ 드디어 우리 후배님들 오셨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한 학생이 앞으로 나와서 제이든과 1학년 학생들을 반겼다.
그러자 그런 학생을 교수가 제지했다.
“그만. 도발은 서열 결정전이 시작되면 해.”
교수의 말에 3학년 학생이 순순히 물러났다. 지금 상황에서 괜히 개겼다가는 자신만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이든의 눈빛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괜히 자신을 도발하기 위해서 거들먹거리면서 비열하게 웃는 3학년의 모습에서 전생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불완전하게 레온하르트 가주가 된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 파티장에서 시비 걸던 귀족들.
정당한 가주가 아니었기에, 괜히 문제 일으키지 말라는 황제의 경고를 듣고 애써 참아야 했던 그날들이 생각났다.
“피곤할 테니 서열 결정전은 오후에 진행하겠다.”
3학년 교수의 말에 1학년 학생들이 큼지막한 나무 그늘로 모여들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키득거리는 3학년 학생들.
이미 서열 결정전이 어느 정도 끝났는지 월반한 2학년들은 기가 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 안에는 2학년 톱이었던 학생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3학년들은 질이 안 좋네.”
제이든의 말에 1학년 학생들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자신들에게도 저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3학년 학생들이 모여서 패배한 3학년과 월반한 2학년들을 깔보면서 비웃고 있었다.
“저 녀석 때문 아니야?”
3번이 아까 제이든에게 시비를 걸려 한 3학년을 보면서 말하자 제이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분위기를 만든 것은 3학년 1번이 분명했다.
한쪽에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장면을 보면서 비웃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일부 3학년 학생들이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수 없어.”
3번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장난기로 가득한 3학년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슴에 1번이라 적힌 이름표를 달고 있는 3학년을 보면서 표정을 구겼다.
그건 제이든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지 마.”
3번의 말에 제이든이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피식 웃었다.
1번과 2번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 역시 제이든을 바라보면서 지지 말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제이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건방진 아이에게는 따끔한 회초리가 필요한 법이었다.
전생에 자신을 경멸했던 영웅들이기에 딱히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그들의 행동을 가까이서 봐 온 제이든이기에, 저런 녀석들을 어떻게 박살 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저런 타입은 어떻게 했더라…….’
보통은 살살 약 올리면서 패배시키거나 초장부터 박살 내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어떤 자는 절묘하게 패면서 항복을 외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경우도 봤었다.
하지만 그건 압도적인 무력을 갖고 있을 때였다.
그와 저 3학년 1번의 무력 차는 비등하거나 오히려 3학년이 더 앞설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을 경험을 통해 극복해야만 했다.
‘3단계는 아니라 했으니…… 충분히 극복할 만하지.’
현시점에서 3학년이 그보다 앞서는 건 나이에 따른 육체 능력과 마력의 양 정도일 것이다.
그 밖에 경험, 기술, 기초의 탄탄함 같은 건 그가 우세했다.
어찌 보면 비슷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질 자신이…….
“1학년 13번. 3학년 1번. 나와라.”
교수의 부름에 앞으로 나서자 3학년 1번이 특유의 장난기 섞인 미소와 함께 제이든을 바라보았다.
“1학년 13번. 아홉 살입니다.”
“3학년 1번. 열 살입니다.”
“준비.”
교수의 말에 제이든이 자세를 다잡았다. 정석적인 자세에 3학년 1번이 건들거리면서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 살살 해 줄게.”
시작도 하기 전에 도발하는 3학년 1번을 제이든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내가? 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어깨를 으쓱하자 3학년 1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후배님, 살짝 건방졌어.”
“입 털지 말고 준비나 해. 꼭 말 많은 것들이 실력은 쥐뿔도 없더라.”
“뭐?”
3학년 1번이 제이든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옆에서 듣고 있던 교수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이 들었던 제이든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패배자 새끼가 왕 노릇 좀 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너…….”
3학년 1번의 몸에서 살기가 나왔지만 제이든은 무시했다.
2단 승급을 하지 못한 3학년 1번의 재능은 제이든이나 3번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래도 가장 어린 나이로 들어와 월반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다른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천재 소리를 듣던 1번이었다.
그런 그의 자존심을 제대로 긁은 제이든이 충분히 도발이 먹혔다고 판단했는지 미소를 지었다.
그런 둘의 자존심 싸움을 보던 교수가 마침내 팔을 내렸다.
“시작.”
“뒈져! 이 새끼야.”
핏발 선 눈으로 초반부터 전력을 드러내는 1번의 검격을 안정적인 자세로 흘려 낸 제이든이 스텝을 밟으면서 조여 들어오는 검격을 하나하나 피해 냈다.
“입 턴 거 치고는 별거 아니네.”
제이든이 그렇게 말하면서 빈틈을 노리고 반격해 들어가자 1번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면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옷 일부를 베어 낸 제이든이 검을 빙글 돌리면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1번을 바라보았다.
“너…….”
자존심이 제대로 상한 3학년 1번이 자세를 제대로 잡았다.
지금까지 흥분했던 것이 거짓말같이 사라지면서 검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검에서 빛이 살짝 감도는 아지랑이가 맺히기 시작했다.
연기처럼 금세 흩어지기는 하지만 2단계 막바지에 도달한 자들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1번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떠올랐다.
마력과 경지의 우위로 인한 자신감 회복이었다.
“건방진 후배님을 위해 교육 시간 좀 가져야겠어.”
“또 입 터네.”
제이든이 혀를 차면서 이번엔 먼저 움직였다. 그러자 1번이 자신감 어린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엉성해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눈치챈 제이든은 스텝을 밟으면서 공격할 듯 말 듯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어차피 바닥까지 끌어모아서 만든 힘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시간을 끌수록 자신이 유리했다.
그러자 1번이 시간 끌려는 제이든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강하게 압박해 들어왔다. 자신의 마력이 담긴 검이 유리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반드시 막을 수밖에 없게끔 검으로 베어 들어간 것이다.
그 순간 제이든의 눈이 빛났다. 일부러 자신의 검을 노리고 날아들기에 힘이 완벽하게 실리지 않은 검이었다.
콰앙!
“큭! 너…….”
“기초가 부실하네.”
자신의 검격에 하중이 흔들리는 1번을 슬쩍 비웃어 준 제이든은 연이어서 검을 휘둘렀다.
똑같이 푸른 아지랑이가 흩날리는 검이었고, 힘이 비슷하다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제이든이 유리했다.
하물며 승기를 잡은 상황이었기에 평소라면 걸리기 힘든 잡기술까지 모조리 걸리며 1번이 코너에 몰리기 시작했다.
“아래 비었다.”
“상체 안 막냐?”
“옆구리 비었잖아.”
“동작이 너무 크다.”
마치 지도 대련하듯 빈틈을 때리면서 1번을 박살 낸 제이든이 지쳐서 비틀거리는 녀석에게 시원하게 발 차기를 날렸다.
그러자 결국 체력이 버티지 못한 녀석은 발라당 대자로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1학년 13번 승리.”
교수의 외침에 제이든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3학년 1번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나대지 말고 살자.”
친절하게 앞으로 살아갈 마음가짐까지 가르쳐 준 제이든이 물러나자 3학년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표정은 3번이 나오는 순간 더더욱 썩어 들어갔다.
3번 역시 압도적으로 3학년 2번을 발라 버렸고, 나머지 1학년들 역시 비록 상위권은 아니지만 3학년 학생들 일부에게 승리를 거머쥐면서 안정적으로 안착했다.
이 이후로도 몇 번 더 3학년 1번에게서 대련 신청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제이든은 압도적인 경험으로 철저하게 발라 줬다.
심지어 3번에게마저 3학년 1번이 진 이후부터는 3학년들의 멘탈이 심각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덕분인지 2학년들과 1학년들이 기세를 잡아 본래 실력보다 높은 순위권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로써 서열 결정전을 끝마친다.”
북동부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서열 결정전이 끝난 후 교수들이 피곤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후…… 4학년 교수들이 상당히 피곤하겠군.”
서열 결정전 동안 만들어진 파벌 때문에 서로에게 대련 신청을 남발한 학생들의 몰골을 본 교수가 하루라도 빨리 이 학생들이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