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8)
7. 저학년 서열 결정전 (2)
순식간에 다가선 3번이 그대로 검을 뻗어 냈다.
지독한 속도의 쾌검이었지만 제이든은 단순하게 검을 내리그은 것만으로 그것을 막아 냈다.
단순한 검로였지만 오히려 단순하기에 온 힘이 실린 내리긋기가 찌르기를 정면에서 받아 내자 약간이지만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평범한 인간을 초월한 2단계 검사들이 전력을 다해 부딪쳐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이 정도 충격파가 터져 나올 일은 없었다.
“미친…….”
“벌써 저 경지라고?”
두 사람의 검에서 흐릿하게 피어오르는 푸른 아지랑이.
그것은 불완전하지만 마력이 맺혀 있다는 뜻이었다.
비록 3단계인 완전한 마력 발현과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미약하지만 검에 마력을 담아 냈다.
그렇다는 건 신체 모든 곳에 마력이 쌓여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역시…… 너도 이뤄 냈구나.”
2단계 끝에 다다른 자만이 이뤄 낼 수 있는 경지.
“몇 개월 안 남았으니까…… 3학년 꺾어야지.”
“그래, 맞아.”
제이든의 말에 3번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다시금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검에서 순간 수십 개의 검이 찔러 들어오는 것 같은 환영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3단계에 이르지 못해 잔영이 일어나지 못했지만 엄청난 속도와 아지랑이 같은 마력으로 잠깐이나마 흉내를 낸 것이다.
‘은하유성검?’
순간 신검 가문의 은하유성검을 생각한 제이든이 굳은 표정으로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저 단순하게 검을 빠르게 휘두르는 것뿐이었지만 오랫동안 한 몸처럼 휘둘린 기초 검식이 완벽한 자세로 3번의 모든 검을 쳐 냈다.
‘뱁새가 아니었다면 오늘 어려웠겠어.’
뱁새가 수련할 때마다 회복과 마력의 순환에 도움을 준 덕분에 마력 회로 자체가 상당히 확장되어 있었다. 동시에 마력 역시 많이 쌓을 수 있었는데, 덕분에 이렇게 버틸 수 있었다.
지금도 사각에서 찔러 들어오는 찌르기를 쳐 내면서 순간 마력이 뭉텅이로 깎여 나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마력이 꽤나 줄어 있었다.
“막기만 해선 못 이길 텐데?”
“안 그래도 공격할 생각이야.”
3번의 말에 제이든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 정면을 찔러 들어오는 검을 자신의 검으로 비껴 내면서 3번의 검을 타고 그대로 파고들었다.
“큭!”
빈틈을 파고드는 제이든의 공격에 당황했지만 3번은 강력한 마력으로 튕겨 내면서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제이든의 공격이 이어졌다.
“노련하네.”
“그러게. 괴물 같은 검술을 모조리 쳐 내고 빈틈을 찔러 들어갔어.”
아이들이 둘의 대련을 보면서 나름대로 검술을 분석했다.
3번의 검술은 쾌검이고, 13번은 기초 검술이다.
하지만 노련한 기술로 검술의 한계를 극복했다.
게다가 13번이 공격을 시작하자 기사들에게 배웠던 제국 기본 검식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검술의 기본은 전부 기초 검술에서 시작한다.
그것을 발전시킨 형태의 기본 검식이 사방을 가두면서 3번을 압박해 들어가자 천하의 3번이라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콰과과광!
“괴물.”
“미쳤네.”
자신들이었다면 그 즉시 항복을 외쳤을 압박감을 떨쳐 내고 사방으로 수십 개의 찌르기를 펼쳐 제이든의 압박에서 풀려났다.
연이어서 제이든의 검을 밀어내면서 압박을 풀어낸 3번이 눈을 빛내고 다시금 공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구른 짬밥이 어디 가지 않는지, 제이든은 빠르게 접근하는 3번의 공격을 비껴 냈다. 마력의 소모를 최소화하며 다시금 3번을 압박하니 주춤거리며 그녀의 기세가 꺾였다.
그녀 역시 무리하게 검법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위 검법은 신묘한 무리가 담겨 있어 경지가 높아질수록 위력이 높아질 수는 있지만 반대로 경지가 낮은 자들에겐 무리가 가는 검술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3번의 팔이 점점 떨려 왔다.
아무리 재능이 많다 한들 아직은 3단계에도 들어서지 못한 애송이였기 때문이다.
결국 완벽한 자세로 휘둘린 제이든의 검에 3번의 검이 튕겨 나갔다.
“졌어.”
3번이 패배를 인정하자 제이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분하다는 듯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다음에 다시 붙자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이 정도 재능이라……. 대체 누구지?’
비록 전생에 황가에 놀아난 자신이지만 그 자리까지 거저 올라가지는 않았다.
수많은 전쟁터에서 나름대로 공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천재라 불리는 자들과 마스터의 검술을 직접 견식한 적도 수십 번이다.
그런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3번과 같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신검세가와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전생에 몇 번 본 적 있는 검술이다. 아무리 막눈이라도 은하유성검의 기초 정도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사자검식과 비견되는 최상위 검술이었기 때문이다.
은하유성검의 기초 검식이라 일반 군부에서도 배울 수는 있지만, 3번의 검술은 군부에서 배웠다기엔 녹아 있는 기술이 상당했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지금 그가 할 일은 아카데미 조기 졸업이었으니 그것 하나만을 목표로 달려가도 부족했다.
그렇게 제이든은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아이들은 묘한 표정으로 제이든을 바라보았다.
비공식 최강이었던 1학년 3번과 13번이 마침내 결착을 내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13번이 이겼기 때문이다.
‘3번도 괴물이긴 했지만…….’
처음에 몬스터와 싸울 때도 느낀 거지만 13번에게는 결코 이 나이대에 가질 수 없는 노련함이 있었다.
게다가 지금껏 수련하고는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시하고 있었던 제국 기본 검식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무시무시한 3번의 쾌검을 모조리 격파하면서 몰아넣던 기본 검식의 무서움을 직접 목격한 탓이다.
기사들이 사용할 땐 그저 경지의 차이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완벽한 검로를 그리며 압박해 들어가는 기본 검식은 완전히 다른 검술이었다.
그날 이후, 1학년들 사이에서 자신들끼리 종종 대련하는 광경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공식 서열전을 허락하지 않는 아카데미 때문에 개인 수련 시간에 자신들끼리 몰래 순번을 정해 가면서 서열전을 하는 것이다.
괴물 같은 13번과 3번을 제외하고 자신들끼리 서열을 정리하기 위해서 대련을 시작했는데, 교수들 역시 이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애써 모른 척하면서 넘어가 주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을 때, 1학년 내에선 어느 정도 서열 정리가 되었다.
13번과 3번, 1번, 2번까지를 제외하고는 매번 순위가 뒤바뀌기는 했지만 큰 틀에서는 결국 서열이 바뀌지 못했다.
30번까지는 자기들끼리 순위가 바뀌기는 했지만 그 아래로 잘 내려가지 않았고, 100번까지 역시 그 아래로 잘 내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피 터지는 건 그 아래 번호들이었다.
100번대부터 300번까지는 매번 순위가 요동칠 정도로 자주 바뀌었다.
“180번, 저번에 서열 102번이었으니 오늘은 100번대 안의 녀석과 대련할 거야?”
“나 떨어졌어. 137위야.”
“아…… 그랬나? 매번 순위가 바뀌니 이젠 좀 헷갈리네.”
제이든이 180번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300번까지 학생이 너무 많기도 했고, 매번 순위가 바뀌는 탓에 외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몇 명의 번호라도 외운 것은 180번을 비롯한 몇몇 학생들이 자신에게 노하우 좀 가르쳐 달라면서 매번 찾아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1번, 180번을 비롯한 몇몇 학생들과는 굉장히 친해질 수 있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2번은 자신이 대장 노릇 하며 파벌을 만들었고, 3번은 의외로 여학생들을 규합해서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자신에게 하는 것 보면 혼자 다니게 생겨 놓고 의외로 사교성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곧 저학년 서열 결정전이지?”
“어, 2학년부터 시작할 거라고 하더라고.”
제이든의 말에 들은 게 있는지 근처에 있던 학생 하나가 말해 주었다.
먼저 2학년과 3학년이 붙어서 서열 결정전을 하고 나면 떨어진 3학년 학생들과 남은 2학년 학생들이 1학년과 붙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차례차례 붙었다간 시간이 너무 걸리니 처음엔 똑같은 번호끼리 붙었다가 지면 점차 내려가고 이기면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이기든 지든 처음엔 50단계씩 변동되며, 대련 수가 열 번을 넘어갈 때마다 10단계씩 줄여 나간다.
그렇게 계속 대련을 하면서 점차 변동 폭을 줄여 나가는 시스템이었는데, 그렇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진행하는 건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면서 학생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성큼 다가온 저학년 서열 결정전 때문인지 1학년 학생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떨어지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
평균 수준은 2학년에 다다랐다지만 2학년에 못 미치는 학생이 분명 있을 수밖에 없으니, 결국 이 라인에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 라인만 부여잡고 따라가다 보면 자신들도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 길은 엘리트만이 갈 수 있는 찬란한 길인 것이다.
그렇기에 더 간절하게 수련했고, 그럴수록 강해졌다.
모두들 저학년 서열 결정전만 보고 달려 나갈 때, 마침내 2학년과 3학년의 서열 결정전이 시작되었다.
2학년 역시 1학년 때문에 위기감을 느끼고 미친 듯이 준비해 온 만큼 나름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감은 서열전이 시작되자마자 처참히 박살 나기 시작했다.
2학년이 준비한 만큼 3학년 역시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1학년에 대한 위기감으로 2학년이 수련을 시작했다면, 3학년은 2학년 때문에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둘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1년 차이의 간극은 좁히기 쉽지 않았다.
어지간한 재능이 아닌 이상 그 간극은 쉬이 좁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2학년 학생들이 하나둘 무릎 꿇기 시작했다.
2학년 톱 역시 3학년을 넘지 못하고 무릎 꿇었다.
“별거 아니네.”
3학년 1번이 2학년 톱을 보면서 감흥 없다는 듯이 말했다.
과거 신입생 시절 톱을 먹었던 학생에게 다시 한번 패배한 2학년 톱이 고개를 숙였다.
신입생 때 한 번 월반한 녀석들이 대부분 3학년 하위권에 머무는 것과 다르게 녀석은 결국 3학년 1번 자리를 꿰찼다.
‘대단하긴 하네.’
자신을 패배시킨 녀석이었지만 재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월반이었고 천재인 현 3학년 톱조차 2단 승급은 하지 못했다.
“야.”
“……어.”
“정말 1학년 톱이 그렇게 강하냐?”
같은 나이였고 신입생 동기였지만 자신보다 한 학년 높은 녀석의 물음에 2학년 톱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겠네. 얼른 올라와서 한번 붙어 봤으면 좋겠다.”
과거 신입생 엘리트 출신이자 현재는 1위에 안착한 3학년 학생이 재밌다는 듯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너처럼 재미없으면 곤란한데……. 너보단 낫겠지?”
3학년 학생의 말에 2학년 톱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너 같은 쓰레기를 발라 버릴 정도는 되어야 천재 소리를 듣는 거지.”
자신을 비웃는 3학년 학생의 말에 2학년 톱이 속으로 생각했다.
‘너도 발릴걸.’
2학년 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음 대련을 준비했다. 자신이 그때 봤던 것보다 더 강해졌다면 적어도 자신을 이긴 녀석 정도는 충분히 발라 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