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7)
7. 저학년 서열 결정전 (1)
교수들의 평가에 분개해 쳐들어왔던 2학년들이 돌아가고 난 후 아카데미의 분위기는 더더욱 불타올랐다.
정말 2학년들을 이길 줄 몰랐던 학생들은 ‘우리가 이 정도구나!’라는 걸 새삼 느꼈고, 진 아이들은 아쉬운 마음에 더더욱 수련을 했다.
그리고 지켜만 봐야 했던 아이들은 자신들도 그 자리에 서고 싶다는 욕망에 이를 악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전보다 훈련의 강도가 조금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전과 똑같이 하면 아이들의 눈에 부족하다는 의지가 가득했고, 따로 개인 훈련에 들어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몸이 상하면 인재를 잃게 되는 꼴이라 차라리 자신들의 앞에서 훈련하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에 훈련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학년 아카데미 풍경이 지옥 불처럼 활활 타오를 무렵, 2학년이 머무는 아카데미는 충격에 빠졌다.
2학년 대표의 신입생들의 평가를 들은 교수들이 경악에 빠진 것이다. 그러다 입 싼 교수들이 나불거려서 결국 다른 학년 아카데미에도 퍼지게 되면서 1학년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정말 그 정도라고?”
“교수들의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고?”
“2학년 대표가 직접 그런 소리 할 정도라면 확실하겠지. 자존심 강한 놈들이 후배를 직접 ‘괴물’로 표현했을 정도인데.”
1학년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 가장 경악한 것은 2학년들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2학년 톱이 그런 소리를 해서 믿을 수밖에 없었으니 충격을 먹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몇몇 이들은 현실 부정을 하면서 2학년 톱한테 직접 물으러 갔으나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충격을 사실로 만들어 주었다.
“1학년 1번과 붙었을 때 간신히 이겼다. 실제로 그와 나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였어.”
“대단하네. 그래도 소문만큼은…….”
“13번과 3번은 나오지도 않았어. 그들 말로는 서열에서 논외로 친다더군.”
“그럼 게네가 강한지는 어떻게 알아?”
“직접 봤다. 3번이 기사와 싸우는 걸 봤는데 무시무시하더군. 3학년 선배와 붙어도 승산이 있어 보였다.”
“13번은? 그 녀석이 더 대단하다는 소문이 많던데?”
2학년 학생의 질문에 1번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노련했다.”
“응?”
“힘의 크기는 나보다 부족해 보였어. 근데 굉장히 노련하게 대처했다. 특히 자신의 힘이 부족한 것을 잘 알고 기술적인 부분을 잘 활용하더군. 3번과는 다른 강함이었다.”
2학년 톱의 말에 근처에서 듣고 있던 2학년들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설마 이대로 우리가 1학년에 밀려서 유급되면 어쩌나.’ 하는 표정이 되면서 모두들 알게 모르게 두려움에 떨었다.
그렇게 2학년 학생들이 머무는 아카데미가 충격과 공포에 잠겼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한때 동네에서 천재 소리 듣던 인재들이었기에, 곧 투쟁심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1학년에게 밀릴 수 없다는 그 생각이 그들을 더더욱 노력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다급해진 건 3학년들이었다.
1학년만은 못해도 2학년 역시 매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에 3학년들이 다급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유 있는 4학년들과는 다르게 3학년과 2학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런데 2학년 톱이 1학년을 괴물로 평가했으니 3학년도 마음 놓고 있다가는 따라잡힐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자 아카데미 저학년들은 무서운 기세로 ‘노력’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노력하기보다는 그곳에 안주하려 한다.
그래서 북동부 군사 아카데미에서는 산봉우리마다 각 학년의 아카데미를 둔다.
다양한 경험과 더불어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안주하지 말고 계속해서 긴장하라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이 지나다 보면 반복 학습으로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수련을 게을리하게 되고 적당히 타협이란 것을 하게 되는데 이번엔 전혀 달랐다.
1학년들이 미친 속도로 치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러자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교수들도 아카데미 사상 최강의 졸업생을 만들어 보자고 결의하며 미친 듯이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교수들이 단체로 학장실로 가서 한 가지를 받아 냈다.
바로 저학년 서열 결정전이었다.
본래 북동부 군사 아카데미에는 서열 결정전이 존재했다. 다만 그것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각 학년에서 30등 이내의 엘리트들이 다음 학년의 최하 등급 순위자들과 겨루는 방식이었다.
서열전에서 위의 학년에게 이기는 순간 한 학년을 건너뛰며 최대 2년까지 아카데미 생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반면에 아래 학년에게 진 경우에는 유급되는데, 유급은 1년만 허용되기에 서열 결정전에서 지속적으로 떨어지면 퇴출당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학생들에겐 긴장되는 순간이 서열전이었다.
그런데 교수들이 이번엔 그것을 학년 전체로 확대시켰다.
최하 서열만이 아닌 학년 전체로 확대되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부 개처럼 수련해야 했다.
그러자 현재 4~5학년들이 이 광경을 재밌게 지켜보았다. 자신들이야 어차피 따라잡힐 일이 없으니 여유 있게 관전 모드로 지켜보는 것이다.
원래 옆집 싸움이 재밌는 법이었다.
말리는 척하면서 동네 주민들이 그것을 보고선 씹고 맛보고 즐기면서 종종 안줏거리 삼는 것인데, 구백 명의 학생들이 피 터지게 싸울 예정이니 재밌을 수밖에 없었다.
“재밌네. 1학년 3번과 13번이랬나? 게네는 진짜 3학년한테 비빌 거 같은데?”
“만약 3학년 톱까지 꺾으면 볼만하겠어.”
“에이~ 그래도 차이가 있는데……. 적당히 3학년 하위 등급 정도까지만 꺾겠지.”
“장난하냐? 2학년 톱이 그 정도는 되겠다.”
4학년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이 미는 학생들이 어디까지 올라갈까, 누가 떨어질까 내기하면서 저학년 서열 결정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너희들 여유가 있어 보인다?”
“헉! 교…… 교수님.”
“후배들이 개처럼 수련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놀고 있다 이거지?”
저학년들의 소식에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며 4학년 교수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평소보다 강하게 수련시켰지만 그때뿐이었다. 애초에 1~3학년들처럼 강하게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들이 없으니 열심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5학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공중형 몬스터들이 다수 서식하는 지역이라 위험하다는 점에서 평소 긴장 상태로 지내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익숙해지다 보니 저학년들에 비해 수련 시간이 적었다.
반대로 6학년은 달랐다.
졸업반인 그들은 정말 개처럼 수련하면서 실적을 쌓기 위해서 돌아다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군사 아카데미가 그렇듯, 그냥 시간만 채운다고 졸업을 시켜 주는 것이 아니었다.
일정 수준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졸업반이라 한들 다른 동기들과 함께 졸업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딱 1년간만 유급을 시켜 주고 그 이후에도 졸업을 하지 못하면 퇴출된다.
2년 일찍 월반한 애들은 그만큼 더 기회가 주어지지만 대부분 월반한 클라스를 보여 주기에 애초에 유급될 일이 없었다.
그렇게 유급을 넘어 퇴출당하게 될 시, 상위 군사 아카데미보다 낮은 곳의 졸업반에 들어가 졸업을 해야 했다.
시간 낭비도 시간 낭비지만 상위 클라스의 군사 아카데미 졸업이라는 스펙이 날아가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졸업반에 저학년들의 피 터지는 싸움을 구경할 여유 따윈 없었다.
“후…… 이러는 게 정말 맞을까?”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아이들인데…….”
군사학 교수가 심란한 표정으로 연병장을 바라보았다. 그 옆에서 마수학 교수도 같이 바라보았다.
삼백여 명의 학생들이 미친 듯이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3단계 이상인 기사들이 당해 줄 리 없었다.
특히 북동부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4단계에 들어선 자들이다 보니 2단계인 학생들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냐! 그래서 월반할 수 있겠어!”
“선배를 잡아먹으려면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13번과 같이 올라갈 거라며! 더! 더! 노력해!”
“교수들이 만들어 준 기회를 헛되이 할 셈이냐!”
기사들의 다그침과 함께 어린아이들이 마력을 쥐어짜 내 기사들을 공격했다.
실전 같은 훈련으로 여기저기 잔부상을 당하면서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 중심에는 제이든과 3번이 있었다.
기사들이 자랑하는 방진을 깨기 위해 선두에 서서 공격해 들어갔다.
그 뒤를 1번에서 30번까지의 아이들이 받치고 있었고 나머지 학생들은 사방에서 빈틈을 찔러 들어갔다.
고작 서른 명도 안 되는 기사들이었지만 그들이 짠 방진은 매우 강력했다. 특히 마력을 엮어서 만들어진 합격진은 아이들이 뚫을 수 없을 만큼 견고했다.
그뿐만 아니라 레인저들의 훈련 역시 살벌했다.
노련한 움직임으로 몬스터를 다량 끌고 와 아이들에게 실전을 가르쳤다.
여기저기서 곡소리 날 정도로 구르면서 실전 감각을 익히자 눈동자에 독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부족한 이론 수업을 밖에서 틈틈이 할 정도로 아이들의 열망은 대단했다.
학년 전체가 위 학년을 잡아먹는다는 위업을 자신 때문에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1학년들 전체가 한마음으로 굴렀다.
2학년과 3학년이 위기감에 노력하고 있다지만 1학년들의 노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1학년들은 그렇게 구르고 나서도 개인 훈련 시간을 따로 가졌다.
제이든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었다. 이미 기사들에게 제국검식의 기초는 전부 배운 상태였기에 그것을 몸에 익히도록 반복적으로 검을 휘둘러야 했는데, 수련을 할수록 성장하는 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이 가문에 있을 막냇동생이라도 된 것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부족한 재능을 칭호가 일부 커버하고, 뱁새의 빠른 회복력이 함께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괴물 소굴에서 앞서 나갈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후…….”
“넌 정말 기초 검술만 수련하는구나.”
옆에서 지켜보던 3번이 처음으로 제이든에게 말을 걸었다.
몇 개월간 가장 많이 붙어 다녔음에도 딱히 대화하지 않았던 제이든이다. 오히려 다른 애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기에 3번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웬일이야? 말을 걸고?”
“매번 기초 검술만 연습하기에 숨기는 게 있는 꺼림칙한 녀석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 거 없어.”
3번의 말에 제이든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사실 신수도 있고, 이론적으로 보다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제이든이지만, 적어도 검술에 한해서만큼은 진실했다.
“알아. 그동안 봐 왔으니까.”
3번이 그렇게 말하면서 제이든에게 검을 겨누었다.
“한번 붙어 보자.”
“뭐?”
“너도 그러고 싶었잖아.”
3번의 말에 제이든이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것을 듣고 있던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사실상 1학년 최강자를 가리는 결정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들 어느 정도는 3번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다. 검술이나 마력 자체는 3번이 앞선다고 보고 있었고, 그건 그들만이 아니라 교수들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13번에게는 자신들에게 없는 경험과 노하우, 잡기들이 있었다.
이런 아이들의 생각과 달리 1번의 생각은 13번이 우세하다는 쪽이었다.
‘13번의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에 비하면…….’
1번이 3번을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와서 13번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1번이었다.
1번은 초반에 기술들을 따라 하기 위해 13번에게 다가가 노하우를 물으면서 지속적으로 친분을 다졌었다.
비록 기술은 따라 하다가 나가떨어졌지만, 그렇기에 13번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실력은 기술을 따라 한다고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럴 시간에 자신의 검술을 연습하는 게 훨씬 유리했다.
“준비…… 시작.”
1번이 중앙에 서서 팔을 내리는 순간 3번이 빠른 속도로 제이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제이든이 단순한 검로로 철검을 내리그었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