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6)
6. 차라리 이론 수업을 들을걸…… (2)
제이든이 괜히 열심히 논문을 작성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후회를 하기 시작할 때, 기사들은 제이든 같은 유능한 인재를 뺏길 수 없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눈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기사 차례라는 듯, 제이든의 검술 실력을 알아본다는 명목하에 연병장 한구석에서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다.
체력을 알아본다는 명목으로 병사들이 할 법한 극기 훈련을 시키고, 기사들의 시험 중 하나인 기초 검술만을 사용한 대련을 하기도 했다.
“헉……헉…….”
“기초는 상당히 잘 잡혔네. 지금 바로 제국식 기본 검형 기초편 정도는 시작해도 되겠어.”
“동의해. 검선이 좋아, 13번.”
“헉……헉…… 예.”
“딱히 다른 검술을 배운 적은 없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제이든의 대답에 기사들이 만족한 표정으로 곧바로 제국식 기본 검형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북부군의 양대 산맥이라면 오직 몬스터만을 상대하기 위한 검술과 전투 방법을 갈고닦는 대몬스터 특수 대응 기사단과, 특수 지형에 대한 탐색과 몬스터들의 대응에 특화된 특수지대 특화 정찰 부대였다.
일반적으로 몬스터 나이트와 레인저라 불리는 이들은 북동부에서 핵심 전력인데, 서로 간에 견제도 심하고 자존심도 강한 족속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레인저들이 눈독 들이는 제이든을 빼앗고자 기사단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재능이 없다면 모를까, 제이든 역시 기초 검술이 탄탄해 기사에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기사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기초 아카데미 고학년에 들어서야 배우는 제국식 기본 검형은 물론이고, 몬스터전에 적합한 마력 활용법까지 가르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모든 걸 배우는 게 쉬운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헉……헉…….”
-짹!
너무 굴린 것 같자 살짝 미안한 표정으로 휴식을 준 기사들이 물러가자 놀러 갔던 뱁새가 찾아와 제이든의 머리에 살포시 안착했다.
“뱁새야, 나 죽을 것 같다.”
-짹!
뱁새가 고생했다는 듯 작은 날개로 제이든의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뱁새의 노랫소리와 함께 체력과 마나를 회복하자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온 기사들의 고된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레인저들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인지 억지로 실전 훈련 시간을 만들어 종종 제이든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기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분통을 터뜨린 건 기사들만이 아니었다. 아카데미 교수들 역시 제이든을 눈독 들이고 있었다.
천재인 제이든을 이대로 기사들과 레인저들에게 뺏기는 건 그들 입장에서 마냥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제이든이 성장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자신들과 함께하면서 지식적으로 보다 성장해 후에 학자로서 큰일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안 된다면 하다못해 장교로 전략과 전술에 큰 업적을 남기길 바랐다.
그때부터 또 다른 지옥이 시작되었다.
틈틈이 마수학 교수를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옥 길을 걷는 것은 제이든 혼자만이 아니었다.
제이든이 구르는 걸 처음에 불쌍히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제이든이 레인저와 기사에게 치여서 지옥 같은 훈련을 한 지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그는 기사들에게 제국검식을 사사하고 훈련하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가끔가다 기사들과 실전 같은 대련을 했는데, 이때 이전과 달라진 움직임을 아이들이 보았다.
사람이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움직이는 게 다른 법인데, 아무리 전생의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걸 체화하는 건 다른 법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최근 레인저들과 실전 경험, 기사들의 고된 훈련으로 몸에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전생에 이룩했던 검술이 기초 검술과 융합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기초 검술의 발전 형태인 단순한 검로의 제국검식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밀릴 거야?”
“아니.”
군사 아카데미 입학 때 랭킹 1, 2위를 찍은 남자아이 두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연병장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13번이 열심히 구르고 있었는데, 이전과 달라진 점은 3번 역시 한쪽에서 기사들의 지도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3번은 한동안 검술 훈련을 제쳐 놓고 이론 공부만 열심히 하더니 한 학기 동안 해야 할 공부를 전부 끝마치고 지금은 저기서 무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는 1번과 2번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연병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반 애들이었던 상위권 학생들 모두 그 모습을 부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3번 학생이 정식으로 기사들에게 지도를 받은 그날, 학생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인지 미친 듯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군사 아카데미는 이론 수업보다 실기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노력만 한다면 언제든 금방 끝마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빠르게 진도를 나가는 교수들이 남은 시간을 훈련 시간에 추가하도록 도와주었는데, 아카데미 학생들 전원이 기사들과 레인저들에게 제이든과 같이 훈련시켜 달라는 요구를 했다.
제이든 입장에서는 스스로 지옥 길을 걸어 들어오는 멍청한 학우들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이미 기사들과 레인저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이들을 지옥 길로 이끌었다.
“헉……헉…….”
“힘드나? 옆을 봐라.”
스스로 지옥 길로 들어온 학생들이 기사의 말에 옆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제이든이 기사들에게 열심히 굴려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은 너희들보다 이걸 몇 달은 일찍 했다. 그만큼 더 강해졌지.”
기사의 말에 지쳐서 흐리멍덩해져 가던 눈빛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순간 기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가 사라졌다.
“지금까지 어떤 검술을 배웠든 상관없다. 오늘부터 그 검술은 다 버려. 너희들 나이에 그딴 검술은 사치다.”
“기초부터 쌓아라. 아니면 결국 무너진다.”
“제국검식을 배우라고 강요는 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강해지면 그만이니까. 다만! 기초는 탄탄히 쌓아야 한다.”
“겨우 이 정도야? 너보다 어린 애도 저렇게 구르고 있는데?”
“저 녀석이 괴물이라고? 그럼 3번은? 둘 다 아홉 살인데 그들보다 나이 많은 너희들은 뭐지?”
“둘 다 괴물이면 너희들은? 애초에 너희들도 천재라고 칭찬받으면서 여기에 온 것 아니었나?”
기사들의 말에 아이들은 지쳐 나가쓰러질 만도 한데도 악착같이 훈련을 했다.
어린애들을 너무 굴리면 몸 상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사들은 프로였다.
딱 아이들이 성장하기 좋은 수준까지만 굴리고 휴식 시간 역시 충분히 주었다. 덕분에 훈련받는 시간은 지옥 같았지만 육체의 성장 측면에서는 꽤나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간 개처럼 구르면서 기초를 쌓자 아이들의 무기술의 기초가 확실히 잡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기사들은 합동훈련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본래 아카데미 교수가 기초부터 가르치는 것을, 기사들이 아이들을 굴리면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군사학 교수와 기본적인 합격술, 검술의 기초를 가르치는 교수들이 합류해서 더 체계적인 훈련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지옥 훈련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레인저의 훈련에 실전 이론 강습을 가르치는 교수와 마수학 교수가 합류해 보다 실전 같은 훈련 체계를 새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이들의 지옥 시간은 더더욱 길어졌지만, 고통이 길어질수록 성장은 빨라졌다.
그렇다 보니 다른 학년에도 점차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 신입생들은 미친놈들이라는 소문과 함께, 지옥 같은 훈련을 통해서 괴물처럼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아카데미 전 학년에 퍼져 나간 것이다.
그 소문의 선두에는 13번과 3번이 있었다.
괴물 같은 검술 실력을 가진 3번과, 괴물 같은 기술과 경험을 가진 13번이 선두에 서서 학년 전체를 이끌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 밑으로 1번과 2번을 필두로 다른 학생들까지 전부 2~3학년을 넘볼 정도로 강력하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당연히 2~3학년 학생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도 이곳에 들어올 때는 천재 소리를 들으며 이곳의 빡빡한 훈련 체계를 버텨 냈는데, 아무리 이번 신입생들이 괴물이라 해도 자신들에게 비비려고 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다.
가끔가다 한 명씩 괴물이 들어오니 그들은 논외로 칠 수 있었다.
하지만 학년 전체가 자신들과 비비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2학년을 대표하는 상위 열 명이 1학년이 있는 군사 아카데미를 견학하고 싶다고 요청했고, 신입생을 자랑하고 싶었던 아카데미 교수들은 곧바로 그것을 승낙했다.
아무리 군사 아카데미가 군대와 같다고는 해도, 그들에게도 자존심이 있고 그것들을 지켜 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북부 사령부에서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사실 그것보다 그들 역시 궁금했다. 정말로 이번 신입생들이 다른 학년을 앞지를 정도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반갑습니다. 2학년 1번입니다.”
“오랜만이구나.”
2학년에 올라가고 나서 보지 못했던 1번 녀석이 인사를 하자 군사학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 교수 전체에서 가장 나이 많은 축에 속하는 군사학 교수이기에 대표로 인사를 받자 2학년 1번이 곧바로 물었다.
“그래서…… 귀여운 후배님들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시간이라면 연병장에 있겠구나.”
“감사합니다.”
2학년 1번이 대표로 대답하고는 곧바로 연병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삼백여 명의 학생들이 기사들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구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기사 몇 명이 학생들을 농락하고 있었고, 자신들을 농락하는 기사들에게 맞서 1학년 학생들이 이를 악물고 기사를 한 대라도 때리기 위해 발악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평범한 지도 대련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사들은 정말 실전처럼 아이들을 가격하고 위협하고 있었다.
그것을 어린 나이에 받아 내고 합동으로 빈틈을 만들어 내려 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들도 2학년에 올라와서 실전 같은 훈련을 하고 있었지만 1학년 때는 이 정돈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정했다.
“우리 때보다 훨씬 과격한 훈련이긴 하네.”
“그러게. 교수들이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니었어.”
“그래도 우리를 벌써 앞지른 건 선 넘었지.”
그들은 비록 분기에 한 번꼴이지만 간단한 임무 수행도 나갔었다.
그때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2학년 학생들 입장에서는 1학년은 풋내기와 다름없었다.
아무리 레인저들이 데리고 나가 실전과 같이 훈련시켰다고 해도, 훈련과 진짜 임무 수행은 다른 것이다.
“반갑습니다. 2학년 1번입니다.”
2학년 대표가 자신들에게 다가와 인사하자 기사들이 훈련을 멈추고 그들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1학년 후배님들이 저희들보다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고요.”
“음…… 그런 소문도 있지. 하지만 아직 배운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들이다.”
기사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2학년 1번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수록 확실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군대가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군사 아카데미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증명해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2학년 대표의 말에 기사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아끼자 1학년 1번이 나섰다.
“선배님들이 그리 말씀하시는데 들어드리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되겠습니까?”
2학년 대표의 말에 기사들이 한숨을 쉬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견학 오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는 했다.
이대로라면 학년 간 위계질서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원로 교수들이 은근슬쩍 이런 상황을 만들기도 했기 때문에 기사들의 입장에선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련용 검을 준비하고 혹시라도 있을 불상사를 대비해 간단한 경갑을 준비한 후 연병장에 작은 대련장을 만들었다.
“나가서 쓸어버리고 와.”
“그래, 너희들까지 나올 필요는 없을 거다.”
2학년 10번이 검을 움켜쥐고 나서자 1학년에서 11번이 나왔다.
그러자 10번 학생이 의아한 표정으로 11번 학생에게 물었다.
“난 13번이 나올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13번과 3번은 학년 서열에 논외로 치고 있습니다. 선배님들 측에서 열 번째분이 나오셔서 저희도 그렇게 나섰습니다.”
11번의 대답에 2학년 10번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너 이 새끼…….”
“말은 필요 없지 않습니까?”
11번의 말에 2학년 10번이 굳은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그러자 11번 역시 검을 들어 올리면서 자세를 잡았다.
그동안 숱하게 구르면서 익힌 기초 검식의 자세였다.
그러자 기사의 손이 올라갔다 내려가면서 동시에 두 아이의 검이 중간에 충돌했다. 둘 다 2단계에 오른 검사인 만큼 일반인의 몸놀림을 훨씬 상회하는 빠른 속도로 검들이 부딪쳐 나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쉽게도 11번의 패배였다.
“……미안하다.”
“괜찮아. 이후부터 우리가 이기면 돼.”
그렇게 말하면서 다음번 학생이 나섰다. 그러자 처음에 자신이 쓸어버리려던 2학년 10번도 체력이 다했는지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11번과 2학년 10번을 시작으로 한 명씩 대련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헉……헉…….”
“2학년 1번의 승리다.”
기사의 말에도 2학년 1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자신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종이 한 장 차이였고, 무엇보다 최종 결과가 5 대 5였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데, 소문난 13번은 나오지도 않았고, 천재라고 불리는 3번 역시 나오지 않았다.
만약 그 둘이 나왔으면 자신들이 패배했을 거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정말 네가 학년 최강이 아니야?”
“……아쉽게도 아닙니다.”
1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13번과 3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2학년 1번이 문득 궁금하다는 듯이 기사에게 물었다.
“13번과 3번이 정말 이 녀석보다 많이 강합니까?”
2학년 1번의 물음에 기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둘을 불렀다. 그러고는 자신과 대련하자는 말과 함께 곧 13번과 3번의 협공을 막아 내는 기사의 대련 상황이 펼쳐졌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2학년 1번은 인정했다.
“괴물들이네. 저 둘이라면 3학년 선배님까진 잡아먹겠어.”